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48)
암살검가 로이넨-148화(148/258)
제148화. 새벽의 특별 수업 (2)
대장장이에 대한 기억을 헤집는 데 시간을 오래 허비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지만, 급할 건 없었다. 탐지 마도구 제작은 좀 천천히 진행하면 될 일이다.
이제부터 판을 짜놔야 할 건 따로 있었다.
‘일단 기숙사부터 들렀다가… 거길 가봐야겠군.’
엔조의 비밀 공간에서 나온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루빈.
따지고 보면 2주 만에 돌아온 셈이었다. 장교육성위의 시험이 기습적으로 치러진 새벽 이후 처음이었다.
피피피핑.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안에 들어가자마자 열쇠벌레가 날아와 루빈에게 안착했다. 창밖엔 민트색 눈동자의 비둘기가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를 콕콕 찍어대며 구구댔다.
평일 오전. 수업이 한창일 때라, 기숙사 안은 생도들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지금처럼 생도들이 없는 시간에는 스레힘 사감의 동물들도 여유롭게 복도의 그늘을 차지하며 낮잠을 즐기곤 했다.
성큼성큼.
그때 들려오기 시작하는 발소리. 복도 저 멀리서부터 스레힘 사감이 늑대와 함께 다가오는 게 암연을 통해 느껴졌다.
끼이익.
“왔군, 루든 생도.”
“안녕하세요, 사감님.”
“교장님이 말씀하시길, 별다른 혐의가 없는 한 오늘 돌아올 거라 하셨는데. 별일 없었나 보군. 잘 지냈느냐?”
“편히 지냈습니다. 사감님의 동물들이 없어서 허전하기도 했고요.”
“너스레는…. 방은 확인했느냐? 잘 살펴야 할 거다. 네 룸메이트가 수시로 다녀갔으니까.”
“어쩐지 좀 더럽다 했더니.”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스레힘이 끌끌 웃었다.
“오늘은 수업에 들어갈 필요 없이 기숙사 방에서 쉬고 있어도 된다.”
그러나 루빈은 마침 기숙사를 나설 참이었다. 다만 기숙사 사감에게 행선지를 밝혀야만 했다.
“사감님, 잠시 어디 좀 다녀와도 될까요? 가이젠 교수님 연구실에 볼일이 있습니다.”
“가이젠 교수? 거긴 왜?”
“제가 가이젠 교수님의 보조학생이거든요. 그동안의 수업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흠, 그런 이유라면 얼마든지 허락해주지.”
타당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너그러워진 느낌이었다. 학기 초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길 만큼.
‘장교육성위 차출시험 결과 때문이군.’
수혈족이긴 해도, 스레힘은 카포티니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자였다. 루빈이 장교육성위 차출시험에서 학교의 명예를 세웠다고 여겨 호감이 생긴 듯했다.
“그러고 보니까, 가이젠 교수님이 은근히 널 찾는 것 같더군.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네가 돌아왔냐고, 언제 돌아오는 거냐고 물었거든. 그분이 그럴 성격이 아닐 텐데…….”
루빈은 예의 바른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곤, 기숙사를 나섰다.
루빈은 답을 알고 있다. 가이젠이 자신을 찾은 건, 두려움에 기인한 호기심. 무서워하는 만큼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일종의 반발심이랄까.
그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검은 잎’이 일으킨 공포와 암시 마법약이 깊게 배어들었음을 루빈은 잘 알았다. 이제는 루빈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 터.
게다가.
‘날 페르라고 의심하고 있겠지.’
루빈이 걸어놓은 암시 중 하나였으니, 틀림없다.
‘좀 더 자극해서, 가이젠이 로젠탈러를 끌어들이게 만들어야겠어.’
로젠탈러가 자신을 공격하게 하는 상황, 그러나 암살검가 루빈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여 공격하게 하는 상황이 필요했다.
그래야 로젠탈러의 경지도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가이젠의 연구실 앞.
문 너머로 가이젠의 존재가 느껴졌다. 루빈은 망설임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루든 포이넨입니다.”
노크도 없이 문부터 여는 무례한 모습에, 가이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원래의 그였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고 역정을 냈겠지만, 상대가 루빈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얼어붙었다.
“…….”
“교수님 수업의 보조학생으로서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나, 궁금해서요.”
“…마법사여단의 조사는 잘 끝났나?”
“네, 무사히 조사받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 났습니다. 지금 막 학교에 돌아온 겁니다.”
가이젠은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책상 맞은편에 앉는 루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물러가게 하는 것도 뭔가 망설여졌다.
“네가 없는 사이 마핵초와 관련하여 수업이 두 차례 진행됐지만, 교과서만 잘 들여다보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저, 그런데 하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사를 받으면서 떠올랐는데,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서요.”
“…괜찮은 생각?”
루빈은 두 눈을 반짝이며 가이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천적을 마주한 나약한 짐승처럼, 자신의 눈길을 은근히 피하는 가이젠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보조학생으로 수업 진행에 관한 제안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요.”
“…해도 좋다.”
“제가 조사받던 곳은 카포티니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매일 그곳 호수를 산책할 수 있었는데, 마핵초가 자주 눈에 띄더군요.”
“마핵초?”
거대 마나석이 매장되어 있는 카포티니 근처였으니, 식물들 중 상당수가 마핵초의 성질을 띠는 건 다양했다.
“단순한 마핵초도 많았지만, 호수 너머 밀림에는 꽤 독특한 마핵초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줄기가 두 겹으로 나는 식물도 보았거든요.”
“…식물 본연의 모습부터 독특하다면, 마핵초로 쓰일 때도 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
뿌리는 마법의 종류, 줄기는 마법의 강도, 잎은 마법의 발현 시점을 결정하는 마핵초였다.
마나석의 영향을 받은 식물은 전부 마핵초가 되지만, 식물의 본래 형태와 성질에 따라 마핵초의 질도 달라지곤 했다.
“그래서, 그 괜찮은 생각이라는 게 뭐지?”
“학교에서 보는 마핵초 말고도 야외에 있는 다양한 마핵초를 볼 수 있는 수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야외 수업으로요.”
“야외 수업… 그러니까, 마핵초를 직접 찾아보는 수업을 말하는 거냐?”
“네. 맞습니다.”
가이젠은 길게 늘어진 회색 머리칼을 습관처럼 매만졌다. 그 동작을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실, 야외 수업이란 건 가이젠이 먼저 계획한 것이었다. 페르를 찾아 제거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그였으니까. 원래는 학교 외부에다 그런 상황을 만들 작정이었다.
‘내가 언제 수업에서 이 계획을 말했던가?’
당연히 말한 적 없었다. 가이젠이 이 계획을 말했던 건, 수업이 아니라 루빈의 ‘검은 잎’에 굴복했던 그날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린 그였다.
루빈은 태연한 얼굴로 설명을 이었다.
“제가 말한 그쪽 부근이 아니어도 됩니다. 저는 단지 다양한 마핵초를 직접 찾아보고 싶은 거니까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든 좋습니다.”
네가 세웠던 계획을 펼쳐봐라. 그리고 나를 잡기 위한 새로운 방책을 쌓아봐라. 어차피 전부 다 내가 통제 안에 있을 테니까.
가이젠을 바라보는 루빈의 얼굴에 예의 바른 미소가 떠올랐다. 가이젠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무얼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한번 검토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루빈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가이젠도 따라 일어났다. 어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직접 문까지 열어줄 정도. 왠지 모르게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쿵.
연구실에서 나온 루빈은 곧장 기숙사로 향했다.
“…….”
이제 새로운 판이 시작됐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 목표는 로젠탈러.
‘어쩌면 이 여파로 가이젠이 죽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런 상황이 예견되긴 했지만, 가이젠의 생사 여부는 루빈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늘 수업이 다 끝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은 건가.’
여전히 루빈 혼자만 독차지하고 있는 기숙사 복도를 가로질러 방으로 돌아온 루빈은, 털썩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때, 전음이 울렸다.
-루빈, 다녀왔냐?
창문턱에 있는 비둘기.
티나였다.
-들어와도 돼. 지금은 스레힘 사감 동물들도 낮잠 잘 시간이거든.
-난 여기가 좋거든? 바람도 좋고.
전음 속 티나의 목소리엔 여유로움이 넘쳤다. 아닌 게 아니라, 루빈이 돌아왔으니 덩달아 티나가 도맡았던 일이 대폭 줄어들 터였다.
-이제야 좀 편해지겠다. 엔조한테 꼬박꼬박 식사 챙겨주는 것도 안 해도 되고.
-글쎄, 내일부터는 더 고단해질 텐데.
그 한마디에, 티나의 부리가 홱 돌아섰다. 이쪽을 매섭게 째려보며 유리창을 콕콕콕 찍어댔지만, 루빈은 누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한동안 가이젠을 감시해야 해.
-가이젠? 감시? 왜 또!
-로젠탈러가 가이젠한테 접근할 수도 있거든. 다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겠지.
로젠탈러와 가이젠.
앞서 두 사람이 접선했던 방식을 떠올렸다.
‘그때 로젠탈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영상이 녹화되어 있는 마적석만 건네는 게 고작이었지.’
그날 루빈은 가이젠의 집에 은신해 있었고, 칙명부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로 가이젠에게 내리는 지령을 보았었다.
‘화면 속 인물…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남자.’
그자는 로젠탈러가 아니었다. 그리고 루빈은 최근에야 화면 속 남자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때 그놈이 히탄이었다고?
-거점창고에서 확인한 반출목록에도 똑같은 4급 마적석이 있었거든. 장면이 녹화된 것도 마찬가지로 4급 마적석이었고.
게다가.
‘협곡 감옥’을 뒤엎기 직전, 소장실에 있는 히탄을 보고 나서 확신할 수 있었다.
-티나, 내가 차출시험을 보고 있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
-히탄, 그놈이 죽었잖아.
마법사여단의 심문소에서 지내는 2주 동안, 거점창고에서는 ‘협곡 감옥’의 사후 정보를 보내왔다.
초기부터 관련 소문이 완전히 차단됐던 터라, 세간에는 탈옥 사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그나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조차, 히탄 소장이 그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만 알고 있었다.
물론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히탄은 자살한 게 아니야. 암살검가 소행도 아니고.
인근의 암살자로 한정한다면, 히탄 정도 되는 칙명부 요원을 죽일 만한 사람은 그리어스 가주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명을 받지 않았다. 이 말인즉, 칙명부가 직접 히탄을 처단했다는 뜻.
게다가 그리어스가의 첩보에 의하면, 그날 ‘협곡 감옥’의 정문을 통과하는 로젠탈러를 목격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페르에 관한 작전을 주도한 건 히탄이었을 거야. 로젠탈러는 그저 받쳐주는 역할이었겠지. 하지만 히탄이 처단당했으니, 이제는 로젠탈러가 주도하는 흐름일 확률이 커.
칙명부 내부의 구도 변화.
-그럼, 로젠탈러 놈이 가이젠을 만날 거라는 건 무슨 뜻이야?
-엔조를 놓쳤으니, 칙명부도 다시 원상태야. 그나마 손에 쥐고 있는 건 페르가 마법학교 학생으로 있다는 정보뿐이지. 이제 놈들은 가이젠을 압박할 거야.
마법학교 안에 있는 내부조력자 가이젠. 마법학 교수를 이용하자는 건 히탄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로젠탈러의 생각이었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루빈도 어느 쪽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마주했던 로젠탈러는 복잡하거나 교묘한 수를 선호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가이젠이 히탄의 작품이라면.
히탄이 그랬듯, 로젠탈러에 의해 가이젠 또한 제거될 확률이 높았다.
-근데, 루빈. 나 불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지금 가이젠은, 네가 페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이잖아?
어느새 티나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비둘기 날개를 퍼덕여 루빈의 책상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놈이 로젠탈러한테 네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 로젠탈러는 네가 절대 페르일 리 없다고 할 텐데. 그럼 네 계획이 어그러지잖아?
합당한 지적이었다. 루빈이 노리는 건, 로젠탈러로하여금 자신을 페르로 오인하게 해서, 싸움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티나 말대로라면, 로젠탈러가 가이젠을 불신하면 불신했지, 루빈을 페르로 여기고 싸움을 걸어올 리는 없었다.
하지만 루빈은 단언했다.
-괜찮아. 가이젠은 절대 로젠탈러에게 말 못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티나도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끄덕였다.
-알겠다. 너, 암시 걸어놨구나? 네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티나 말대로 암시 마법약을 써둔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확신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가이젠이라고 해서, 칙명부에게 시달리는 게 좋을 리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협박하고 조종하는 조직의 정체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니.
‘검은 잎’으로 내면을 들여다본 가이젠은 생존과 출세에 대한 욕망이 그득한 자였다. 그런 그가 무턱대고 손에 쥐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지는 않을 터.
오히려 가이젠은 자신의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칙명부가 페르의 정체를 확인하는 그 순간, 본인의 이용가치도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판이 깔리지 않을 수도 있지.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 네가 가이젠을 관찰해야 해. 일이 틀어진다 해도, 다음 전략을 짜야 하니까.
-쳇, 이제 좀 한가해지나 했는데.
한가해지기는커녕, 루빈 말처럼 더 피곤해지는 셈이었다.
-사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로젠탈러를 감시하는 거야. 그러고 싶어?
칙명부의 실세를 감시한다고? 누가 뭐래도 마법학 교수를 감시하는 쪽이 훨씬 안전하리라는 건 자명했다. 티나는 고개를 열심히 내저었다.
그때.
“헛, 야! 누가 왔나 봐! 난 간다!”
티나가 속삭이며 다시 창문턱에 올라섰다. 창밖의 나뭇가지 위로 날아든 티나를 바라보며, 루빈도 침대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