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52)
암살검가 로이넨-152화(152/258)
제152화. 야외 수업 (2)
가이젠 교수는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행정실장인 팔란트와 함께, 야외 수업 장소를 물색 중이었다.
“후, 후아! 습하네, 습해.”
팔란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산길에 놓인 바위 하나를 골라잡아 엉덩이를 붙였다.
손을 부채 삼아 열심히 움직였지만 소용없다. 온몸에 달라붙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맞다, 흐흐.”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실실 웃는 팔란트. 중년의 대머리 마법사는 맞은편에 앉은 가이젠에게 밀약의 눈짓을 던졌다.
“…무슨 뜻이죠?”
“카포티니를 벗어나면 마법 쓰는 게 극히 제한되지 않습니까. 이 습한 날씨에 얼음 하나 만들어내는 것도 조심스럽고.”
“교장님 특별 지시가 있었으니까요.”
행정실장 팔란트가 함께 있는 이유.
키건 교장은 야외 수업 요청을 간단히 승낙했지만, 장소만큼은 행정실장과 함께 결정하도록 했다.
여기는 카포티니의 동북쪽 인근. 하지만 엄연히 카포티니의 경계 너머인 곳이었다.
실제로 산 하나를 넘자마자, 기후부터 달라졌다.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 더 이상은 카포티니가 아니었다.
뒤적뒤적.
“…….”
가이젠은 행정실장이 제 배낭을 뒤적이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마법을 쓸 순 없지만… 온몸에 지렁이가 달라붙는 것 같은 이 빌어먹을 느낌에서 구해줄 만한 걸 준비해뒀죠.”
“마적석을 챙겨오신 겁니까?”
“네, 창고에서 하나 챙겨왔어요. 지난 학기 설계마법학 수업 끝나고 지금껏 그대로 쌓여 있던 거죠. 교육용이니 마법 효과는 미약하겠지만. 뭐, 이게 어디입니까.”
휘이잉.
손바닥에 올린 4급 마적석에서는 냉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던 팔란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법을 쓴다는 건 카포티니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고작 산을 하나 넘어왔을 뿐이지만, 이제부터는 마법사라는 걸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 마법사는 별종에 가까웠고, 괜히 두려움만 일으키곤 했으니까. 경우에 따라선 의도치 않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가이젠 교수님, 우리 후보지 다 돌아본 거죠?”
기분이 한결 산뜻해진 행정실장이 물어왔다.
“네. 돌아본 세 곳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네요. 행정실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뭐, 나야 다 괜찮더군요. 일단 괴수들 서식지가 아니잖아요. 셋 다 마을과는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오전 내내 돌아다닌 끝에, 후보지 세 곳이 추려졌다.
카포티니를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자연림에 속한 곳으로, 제각각 매력이 있었다.
첫 번째 후보지에는 동굴이 있었고, 두 번째 후보지에는 연못이, 세 번째 후보지에는 조그마한 늪이 있었다.
“거기 있는 식물들이 다 마핵초라는 거죠? 그것도 일반적인 식물이 아닌 놈들로?”
“네, 이곳 기후의 영향을 받은 식물들입니다. 외형부터 남달라서 생도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겁니다.”
팔란트는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반들반들한 정수리 위에 냉기를 뿜어내는 마적석을 올려놓았다. 짜릿한 냉기가 등골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뭐, 말했듯이 나는 다 좋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신경 쓰는 건 안전! 안전! 안전이니까요. 최종 결정은 담당 교수님이 하시죠.”
“흠… 그러면 실장님, 한군데만 다시 가 봐도 되겠습니까?”
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다시 간다고? 저절로 미간이 좁혀지는 팔란트에게, 가이젠은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저 혼자서 다녀오겠습니다. 행정실장님은 먼저 마을에 내려가셔서 목이라도 축이고 계십시오.”
“하여간… 교수님들은 다들 꼼꼼하시다니까. 우리 학교 미래가 참 밝군요. 정 그러시겠다면 저는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마을에서 기다리도록 하죠. 얼른 다녀오세요.”
그러더니 팔란트는 흥얼거리며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가이젠은 비릿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혹시나 따라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야.’
이윽고 그는 다시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서 방향을 틀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산기슭을 쭉 돌아 들어가자, 야트막한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바로, 첫 번째 후보지였다.
찰박찰박.
특유의 기후 때문에, 동굴 천장에서는 수시로 물기가 떨어졌다. 동굴 내부는 어두컴컴했지만, 가이젠은 굳이 마법으로 빛을 만들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동굴 벽에 붙어 있는 형광개구리들이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개구리들 수십 마리가 일제히 울어대며 형광 성질의 피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굴이 환해졌다.
행정실장이 감탄했을 만큼, 동굴 안은 형광개구리들을 비롯해 다양한 식생의 식물들로 가득했다. 햇빛이 비치지 않지만, 형광개구리들의 불빛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녀석들이다.
동굴 속 넝쿨.
꽃과 이끼.
형형색색의 버섯까지.
모두 마핵초의 성질을 띠었다. 카포틴 호수의 거대 마나석이 여기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여기 있군.’
퍼서석.
가이젠은 벽돌 틈에 자라난 버섯 하나를 발견해 손으로 떼어냈다.
이후, 빨라지는 발걸음. 그는 서둘러 최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첫 번째 갈림길, 두 번째 갈림길… 세 번째, 네 번째…….’
이 동굴은 갈림길이 잦았다.
생도들한테야 모험이라도 떠난 것처럼 흥미 요소 중 하나겠지만, 반복되는 갈림길들은 결국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만들어지겠지.’
페르와 단둘이 남겨질 때가 말이다.
가이젠은 또다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안전하고 유익한 활동이 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채집 당일, 불의의 사고로 생도 하나가 사라지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하겠지.
“여기였나?”
마침내 나타난 익숙한 정경. 가이젠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갈림길을 여러 번 거쳐 온 끝에 다다른 막다른 통로였다.
저벅저벅.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젠은 막힌 벽을 향해 쭉 걸어 나갔다. 그렇게 벽 앞에 서서는, 아까부터 들고 다니던 동굴버섯을 바로잡았다.
그런 다음, 그걸로 벽면을 문질렀다.
프스스슷.
프스스슷.
그 순간, 성냥을 그어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동굴버섯에서 불빛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드르륵.
갑자기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벽이 아니다. 벽처럼 보이는 거대한 뿌리, 동굴버섯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무의 뿌리였다.
두두두둥.
작은 진동이 일었다.
그 직후, 나무뿌리가 뒤틀리면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작은 틈이 만들어졌다. 버섯을 열쇠로 삼아, 나무의 두꺼운 뿌리 문이 열린 셈이다.
이 너머에는 특이한 공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이젠은 잘 알았다. 행정실장과 함께 왔었지만, 그 미련한 대머리는 알아차리지 못한 공간이었다.
수년 전 가이젠이 발견한 공간이자, 이번 채집활동에서 페르를 사로잡을 곳.
가이젠은 나무의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좁은 통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을 죽 걸어가다 보면, 바닥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의 낭떠러지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루든이 서 있으면…….’
가이젠은 상황을 가정해봤다. 낭떠러지 끝에 루든이 서 있고, 미리 도착해 숨어있던 그 무시무시한 무인이 습격을 개시한다. 둘은 그렇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낭떠러지 아래, 깊고 캄캄한 구덩이 안에서 두 사람의 격전이 이어지겠지.
아무리 재능 있고 차출시험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 하더라도, 무인을 상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무려 5성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니까.
‘차라리 거기서 루든 그놈이 죽으면 좋겠군.’
아니, 아니지.
‘루든뿐만 아니라, 그 무인도 같이 죽었으면.’
그게 가이젠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더는 정체 모를 조직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최연소 교장으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이젠 믿지 않았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런 생각과 함께, 그는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아공간 주머니를 펼쳐, 안에서 마적석 하나를 꺼냈다.
아까 행정실장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4급 마적석 하나를 챙겨왔던 터. 그가 챙겨온 마적석엔 냉기가 내장되어 있었다.
딸깍.
가이젠은 마적석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냉기가 풀려나왔다. 한여름의 더위를 식힐 정도의 미약한 냉기에 불과했지만, 쓰임새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방법을 알고 있고.’
가이젠은 들고 있던 마적석을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졌다.
휘이이이, 퉁!
“…….”
사실, 아래쪽 구덩이에는 특이한 식물 군집이 그득히 피어 있었다. 크기나 생김새는 해바라기와 비슷하지만, 꽃잎의 색깔이 노란 대신 검붉은 식물.
‘이놈들, 이름이 뭐였더라?’
문득 궁금해졌지만, 중요치 않았다. 구덩이 아래쪽에 저 식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게 중요하지.
‘저 위에 이 마적석을 떨어뜨리면…….’
상온에는 그냥 평범한 식물에 불과하지만, 냉기를 느끼는 그 순간부터 저것들은 평범한 식물이 아니게 된다. 괴수 중에서도 흔하지 않다는 식물형 괴수가 되는 것이다.
크르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저 아래쪽에서 괴상한 울음이 솟구쳐 올라왔다.
가이젠은 자기도 모르게 으스스 떨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실험 재료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한 송이를 채집했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스산한 기억을 떠올리며, 가이젠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거슬리는 마도무인과 무시무시한 5성 무인. 둘이 한바탕 싸우든, 물어뜯든, 동맹을 맺든. 알 바 아니다.
이 마적석 하나면, 저 아래는 놈들의 포식 현장으로 변모할 것이니. 가이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 뒈져버리라지.’
* * *
다음 날.
가이젠은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희소식을 접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톰슨.”
“루든 포이넨 생도가 ‘그 책’에 관심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 동문 대담집? 엔조 로렌치니편, 그거 맞나?”
천연덕스럽게 묻는 가이젠. 톰슨 조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든 생도한테 교수님이 돌아왔다고 말해놓을까요?”
“그래. 나도 마침 물어볼 것도 있으니.”
루빈과의 대면이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인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엔조 로렌치니의 책을 왜 원하는 건지 물어봐야만 했고, 녀석이 정말로 페르인지도 알아내야 했으니.
게다가, 일이 쉽게 풀릴 가능성도 있었다. 가이젠이 캐묻지 않아도 녀석 쪽에서 먼저 털어놓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엔 각을 세우는 것 같아도, 지금은 은근히 내게 의지하는 것 같단 말이지.’
가이젠은 점심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예상하기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녀석이 자신을 찾아올 것 같았다.
똑똑똑―
예상 그대로였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톰슨이 자리를 비운 그사이.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가이젠은 침을 삼켰다.
“교수님, 저 루든 포이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