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56)
암살검가 로이넨-156화(156/258)
제156화. 야외 수업 (6)
마핵초 채집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순탄하다는 건, 가이젠에게도 루빈에게도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와, 이건 식물이 무슨 생선처럼 생겼냐.”
“만지면 움직이는 식물도 있네.”
새로운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가이젠은 조를 배정하여 전체 무리에서 분산시켰다.
각 조장은 조원들을 이끌며 동굴 곳곳에서 색다른 마핵초들을 발견했다.
각 조장들에겐 동굴 지도가 한 장씩 주어진 상태. 오후 시간이 되면 최초로 분산했던 지점에서 다시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오늘 수업은 루든 포이넨의 실종으로 인해 예상보다 일찍 끝나겠지만.’
가이젠 얼굴에선 숨기지 못한 웃음이 언뜻언뜻 비쳤다.
“여기서부터는 베니테즈 교수님이 세 개 조를 데려가 주시죠.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한 조씩 나누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이젠은 교수들도 확실하게 떨어트려 놓았다. 루빈이 지도를 보니, 가이젠은 교수들을 최대한 먼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가자, 루든. 너랑 나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해.”
“네, 교수님.”
그렇게 조가 하나씩 줄어들더니, 점심 무렵이 되었을 땐 루빈과 가이젠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개굴개굴개굴.
끊이지 않는 형광개구리의 울음. 다들 도시락을 꺼내 먹는 그때, 가이젠은 루빈을 쳐다보며 물었다.
“식사할 때가 됐다만, 좀 더 돌아다녀도 되겠지?”
“그럼요, 구석구석 다녀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안쪽엔 독특한 마핵초들이 많을 테니.”
루빈은 가이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로젠탈러는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까. 암연을 넓게 펼친 채로 가만히 적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런데 저 버섯은 뭐지? 아까부터 들고 있던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겠지만, 루빈만은 알고 있었다. 가이젠은 동굴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버섯 하나를 뜯어냈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런 막혔군.”
갑자기 가이젠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느덧 그들은 동굴의 끝에 와 있었다. 찰나의 순간 루빈의 암연이 가이젠을 훑고 지나갔고, 이내 그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에 뭔가가 있다.
루빈은 그렇게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암연을 넓게 펼쳐봤더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숨은 공간인가.’
눈앞에 있는 막다른 길.
동굴의 끝에 다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달랐다. 눈앞에 있는 건 암석이 아니라 나무였고, 그 너머로 통로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느껴지는 인영 하나. 그는 캄캄한 통로에 몸을 감춘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분명 로젠탈러겠지.
“이럴 수가.”
가이젠은 형편없는 연기를 이어갔다.
그는 가로막힌 벽을 손으로 짚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 어설픈 손동작과 함께, 손에 들려 있던 버섯이 벽과 마찰을 일으켰다.
파지짓.
‘재밌네, 가이젠. 이런 공간도 찾아놓고.’
그때, 벽으로 보였던 나무뿌리가 버섯에 반응했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굵디굵은 뿌리가 뒤틀리더니, 이내 틀어막고 있던 통로 하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쿠쿠쿠쿵.
“와, 신기하네요, 교수님.”
“저 안에 뭔가가 있을 수도 있겠군.”
계획을 세우느라 나름 고생했을 거다. 그러니 이쯤에서, 가이젠이 반길 만한 소리를 해줘야겠지.
“교수님, 제가 먼저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너무 궁금해서요.”
제 발로 들어가겠다고? 오, 너무 고맙군. 가이젠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희열이 떠올랐다.
“그, 그렇다면 나는 혹시 모르니 여기에 표식이라도 남겨놔야겠군.”
“예,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바로 따라가지. 아, 잠깐만.”
“……?
“들어가기 전에, 이걸 갖고 가.”
가이젠이 루빈의 손에 뭔가를 내주었다.
“이건… 마적석?”
“그래, 안전용으로 준비해둔 거야. 빙격살이 내장되어 있으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가동시켜. 마적석을 꽉 쥔 다음, 시동어 ‘빙격’을 외치면 돼.”
“네, 알겠습니다.”
또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만, 루빈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적석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마법을 금지한다고 해도, 이 공간 탐사는 예정에 없던 거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왠지 변명하는 듯한 말투.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 먼저 들어가 있으면 곧바로 따라가겠다.”
루빈은 가이젠을 뒤로 하고 곧장 통로를 걸어갔다. 형광개구리가 있었던 건 딱 통로 직전까지였기에, 점점 어둠이 짙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어갔을까.
등 뒤로 가이젠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표식을 남긴다고 했으나, 놈이 정말 그랬을 리는 없었다. 그럼 뭘 하느라 꾸물거린 걸까? 답은 빤했다.
쿠쿠쿠쿵.
등 뒤로 느껴지는 나무뿌리의 진동. 표식을 남기기는커녕 아예 입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이제 통로 안엔, 루빈과 가이젠 그리고 매복한 로젠탈러밖엔 없었다.
“…….”
곧 가이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움과 희열, 개운함이 뒤섞인 눈동자가 번뜩인다.
문이 완전히 닫혀버려 희미하게나마 비쳤던 빛마저 완전히 차단된 상태.
‘어둡다면 나야 더 좋지.’
루빈은 통로 끝까지 쭉 걸어갔다. 거기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가이젠이 여기서 나를 밀어버렸을 게 분명했다.
‘단순하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루빈은 잔뜩 벼려진 암연을 등 뒤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로젠탈러의 시선이 온전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타앗!
움츠리고 있던 복면의 로젠탈러가, 시퍼렇게 날 선 오러를 드러내며 돌진해왔다.
‘시작해볼까.’
* * *
단숨에 쇄도하여 페르를 낚아채려는 그 순간, 로젠탈러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타다닷.
‘…어라? 피했어?’
피한 것뿐만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리기까지.
‘우연인가?’
아무리 잠재력 많은 녀석이라고 해도, 페르는 그저 어리고 평범한 마법생도일 뿐이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채 기습하는 로젠탈러를, 절대 눈치챌 수 없어야 함이 맞았다.
‘우연이겠지.’
그래도 어쨌거나 실패는 실패. 화가 뻗치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복면으로 가려진 로젠탈러의 얼굴에서 무시무시한 안광이 도드라졌다.
타탁!
그는 몸을 재빨리 추스른 후, 다시 도약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곧장 표적을 따라붙는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큰 살기를 담았다.
슈우웅.
표적에게 막 가닿기 직전, 로젠탈러는 오러를 한껏 담은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평범한 이라면, 오러가 담긴 주먹을 절대 버틸 수 없다. 심지어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은 맨몸이다. 맞으면 최소 기절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번엔 막아?’
이번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주먹을 가로막는 물리적 저항력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오러가 담긴 주먹을 무슨 수로 막아냈는지는 모르겠다만.
‘젠장!’
간단히 기절시키려 했는데, 이번에도 완벽한 실패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내느라 표적이 뒤로 한참이나 밀려났다는 것이다.
지이이익.
표적의 두 발이 뒤로 쭉 밀리면서, 시원한 마찰음이 통로 안을 가득 메웠다. 표적은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후.”
짧은 한숨을 내뱉은 로젠탈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내려가봐야 했다. 자신의 주먹을 막아낼 정도면, 떨어졌다 해도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제기랄!”
고작 꼬맹이 생도 하나를 확실히 처리하지 못해, 이런 수고까지 해야 하다니. 자존심이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타닷.
크게 도약한 로젠탈러는, 곧 낭떠러지 아래에 착지했다. 캄캄한 공동(空洞). 그는 곧장 주변을 살폈다.
‘여긴 뭐야?’
평범한 공동이 아니었다. 온 사방에 키가 큰 낯선 식물들이 빼곡했다.
해바라기인가? 그렇게 보였다.
꽃잎 색깔만 보면 평범한 해바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위쪽으로 꽃을 활짝 펼치고 있는 외형은 꼭 해바라기였다.
장소를 골라도 뭐 이런 꽃밭을 고른 건지.
납치를 벌이기엔 참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로젠탈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데, 이 애새끼는 어디…….”
그 순간. 로젠탈러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사 로브를 펄럭이며 갑작스레 돌진해오는 인영. 로젠탈러는 순간적으로 팔을 들어 막아냈다.
첫 번째 공격은 막아냈으나, 이어 그 다리 쪽을 노려오는 두 번째 공격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어쩔 수 없이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크흑.”
로젠탈러는 자신에게 달라붙으려는 녀석을 반대쪽으로 내던져버렸다. 휘이이잉.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상대는 부드럽게 착지했다.
‘뭐지? 이건 예상 밖인데. 그냥 간단한 납치일 거라 생각했는데.’
로젠탈러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이제 막 입학한 마법생도가 아닌가? 아무리 페르 로렌치니라 해도, 납득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혹시 위장인가?’
투둑. 투둑.
로젠탈러는 거추장스러운 외투부터 벗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본격적으로 상대할 수밖에. 이렇게 힘을 쓰게 만들면, 간단한 납치로 끝내긴 어려웠다.
‘재밌군, 저 녀석.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설마 날 이겨먹으려는 건가?’
로젠탈러가 외투를 벗었듯이, 표적 역시 생도용 로브를 풀어헤쳤다. 다만, 두 사람 다 얼굴만은 복면 뒤로 감춘 상태였다.
‘진짜 해보자는 거냐?’
로젠탈러는 피식 웃었다. 좀 더 힘을 끌어올려 볼까. 그래도 검까지 뽑아 들 일은 없겠지. 되도록 칼집 내지 않고 데려가야 하니까.
그가 ‘롭슨의 비검’ 대신 꺼내든 건, 두툼한 몽둥이였다. 아무리 몽둥이라 해도 오러가 담기면, 그때부터는 평범한 몽둥이가 아닌 법. 흉흉한 살육 병기가 되는 것이다.
프스스스.
한 겹의 오러가 몽둥이를 빈틈 없이 감쌌다. 표적을 흔적도 없이 으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이 정도가 적당했다.
뭐, 이것만으로도 신체 부위 하나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깨끗하게 데려가는 건 포기해야겠군.’
* * *
루빈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순간 빛을 흘린다. 두 무인의 안광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먼저 일었던 바람이 스러지기도 전에, 새로운 바람이 그 위를 뒤덮으며 한데 뒤엉킨다. 그때마다, 공동 가장자리의 해바라기 군집이 뿌리뽑힐 기세로 휘청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루빈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로젠탈러 역시 표적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힘 조절을 하고 있겠지만, 그건 루빈 역시 마찬가지.
다만 루빈의 속사정이 좀 더 복잡할 뿐이었다.
루빈은 로젠탈러의 힘을 조금씩 끌어올려야 했다. 루빈이 갑작스레 전력을 다하면, 로젠탈러 쪽에서는 곧바로 암살검가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살검가 일원이라는 걸 들키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
그와 동시에 로젠탈러의 전투 습관을 찾아내야 했다. 보폭과 보법, 전투 동작에서 묻어나는 크고 작은 버릇들 말이다. 전투 중 습관은 상대가 얼마나 강하느냐와는 무관하게 언제든 드러나는 법이다.
실제로 합을 겨루는 중간중간 약점과 빈틈이 언뜻언뜻 보였다. 루빈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머릿속에 새겼다.
‘지금까지만 보면, 로젠탈러는 최소 3성 경지다.’
오러의 격으로만 보자면 루빈이 지닌 것과 동일했다. 놈의 천장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했다.
루빈은 로젠탈러에게 감지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암연을 펼치며, 놈의 경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후우, 후우…….”
로젠탈러의 숨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거리를 벌리곤 살기 어린 눈빛으로 루빈을 노려보았다.
‘페르라는 애새끼가 이만한 실력자였다고?’
이는 칙명부의 실책이었다. 엔조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의 아들에 대해선 아니었다. 세상 어느 마법사가 이렇게 날랜 움직임을 보인단 말인가.
‘심지어 오러나 마법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놈이 암연을 쓰는 암살자일리도 없었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삼휘 마법사 중에는 간혹 마도무인도 있다던데, 혹시 그쪽인가? 지금 상황에선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아 보였다.
‘아니면 혹시, 그사이 엔조가 죽어버린 건가?’
즉, 이미 ‘각성의 사슬’이 끊긴 게 아닐지.
엔조는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 소식이 끊겼다. 죽었는지, 아니면 어디론가 도망쳤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역시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었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지금 눈앞 상대의 경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면… 가이젠 이 새끼가 날 죽이려고 수를 쓴 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이젠이 실력있는 무인을 고용했으리라는 가정이었다.
뇌리에 이 생각이 스쳤을 때, 로젠탈러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페르를 포획하든 안 하든, 어차피 가이젠은 죽어야 했지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빌어먹을. 이걸 어째야 하나.”
나지막한 로젠탈러의 목소리. 답답한 나머지 기어이 루빈 앞에서 육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걸로 미루어, 루빈은 슬슬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차근차근 놈의 경지를 끌어올리며 전투 방식과 습관들을 파악했으니, 이제는 놈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할 때였다.
그러려면 놈을 당황시킬 일격이 필요한데.
‘브리온 오러는 절대 안 돼. 암연을 드러내는 것도 아직은 안 되고.’
암연으로만 로젠탈러를 상대하면, 자신의 경지를 들킬 위험이 있었다. 쓸데없이 벌써부터 칙명부의 관심 대상에 오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차라리 마법을 쓸까, 생각했던 루빈은 이내 그만두었다. 현재 루빈의 마나는, 실전에서 써먹을 만큼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바로 그때. 괜찮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루빈의 주머니에 든 묵직한 것.
‘가이젠이 줬던 마적석이 있었지.’
가이젠의 말처럼 내장된 마법이 진짜 ‘빙격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루빈을 곤란하게 만들 마법임엔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로젠탈러 또한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는 뜻.
‘암연도 살짝 드러내자. 내 경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살짝만.’
그러고 나서, 자신 역시 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거였다고 둘러대면 될 것이다. 둘 다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그 외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작전을 수립한 루빈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윽고 공격 자세를 취한 뒤, 곧바로 로젠탈러에게 쇄도했다.
‘근데 페르 이 새낀 마법생도라면서 왜 마법은 안 쓰는 거지?’
마치 그 의문이 전달이라도 된 것처럼, 루빈이 때맞춰 마적석을 작동시켰다. 마적석을 꽉 쥔 상태로 시동어를 외친다.
“빙격!”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 한순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로젠탈러에겐 그 생각을 이어갈 틈이 없었다. 루빈이 발광하는 마적석을 공중에 내던졌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그러면서 암연으로 폭증시킨 순발력을 이용해, 로젠탈러 코앞으로 점멸했다.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페르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로젠탈러였다.
다음 순간.
콰쾅.
마적석이 발현됨을 알리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온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힘과 속도였다.
‘이 새끼가…!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건가?’
루빈은 일시적으로나마 로젠탈러의 모든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곧장 단검을 빼 들었다. 영혼무구 핏빛서리가 아닌, 눈속임용 무기였다.
피이이잉.
그 순간, 공중에서는 마적석으로부터 얼음으로 이루어진 구(球)가 튀어나왔다.
‘역시 빙격살은 거짓이었군.’
마적석에 내장된 마법은 빙격살이 아닌, 빙격뢰. 즉, 얼음으로 된 폭탄이었다. 빙격살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격마법이었다.
“너, 너, 설마?”
로젠탈러는 자신이 상대했던 놈이 루빈이었다는 걸 직감했지만,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루빈이 자신의 목을 틀어쥐고 막 단검을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지 않으려면 네 진가를 보여야 할 거다, 로젠탈러!’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빙격뢰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얼음 파편들이 튀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로젠탈러는 5성의 오러를 일시에 발현시키며,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
뿐만이 아니다. 사방으로 튀는 수많은 얼음파편들 속에서, 놈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곧이어.
휘이이이잉.
허공을 찢는 괴음과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한쪽에 고이 놓여있던 로젠탈러의 보구. 샛노란 오러가 덧씌워진 장검이, 루빈 쪽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제 주인의 부름에 따라 그의 손안으로 날아드는 것이다.
‘날아드는 검, 저거였구나.’
롭슨의 비검.
피할 수 없는 속도와 각도로, 루빈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무사히 피할 수 없음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루빈은 복면 속에서 씩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