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68)
암살검가 로이넨-168화(168/258)
제168화. 암살 명령 (4)
그날 저녁을 기점으로, 쿠제와 엔조가 위조한 연회 초대장이 모두 발송되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임박한 발송이었지만, 루빈은 걱정하지 않았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중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테니까. 여기엔 초대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베니테즈 교수, 당연히 받았겠죠?”
“네? 받다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랩소디관으로 가던 도중에 만난 베니테즈를 만난 솔라나 교수. 인사를 나누자마자 연회 얘길 꺼냈다.
“연회 초대장 말이에요.”
솔라나가 손에 들린 종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종이에서는 미량의 마나가 느껴졌다. 아무리 마법사 도시라지만, 이런 특제 종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 그거 말이군요. 우편함에 있는 걸 보긴 했는데, 미처 확인을 못 했네요.”
“안 뜯어봤다고요? 하긴, 제도에까지 알려진 유명 학자라 이거죠? 이런 초대장이 귀한 게 아니다?”
베니테즈는 손을 내저어 겸손을 떨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솔라나의 이어지는 말에, 베니테즈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델린-이엘로스 가문이 연회를 연다는 건 익히 알고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인 것 같았다.
“그럼 다 받았다는 말씀입니까, 교수님들 전원?”
“그래요, 심지어 조교들까지 빠짐없이.”
“허… 조교들까지요?”
“다들 주말에 잡아놨던 약속까지 급히 취소한다더군요.”
그럴 만했다. 삼휘 마법사들과 인근 귀족들로선 오래도록 자랑거리가 될 만한 일.
게다가 에릭이나 달리아가 제국의 고위 장교가 되어 유명세를 타면, 자랑거리에 덧붙일 말도 늘어나겠지.
“시기가 적절하긴 하네요.”
살인 사건과 마법학교 사이엔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교수들도 기숙사의 경비 태세를 오늘 자정을 기점으로 종료하기로 결정했던 터.
두 사람이 랩소디관에 가는 이유도 모든 교수들이 모이는 마지막 회의 때문이었다.
“위에 올라가면, 다들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웅성웅성.
“거봐, 내 말이 맞는다니까!”
솔라나 말대로, 한자리에 모인 교수 전원은 내일 있을 연회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마법학교와 이엘로스가 가문이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군.’
그저 연회에 초대를 받았고, 내일 저녁이 기대된다는 게 주된 이야기였다.
“두 아이가 ‘차출 후보생’으로 뽑힌 게 대단하긴 하네요. 그 이엘로스 가문이 학교 교수들까지 다 초대하는 걸 보면.”
“뭐, 그쪽 가문에선 마법생도로서가 아닌 ‘이엘로스가의 아들’이 얻어낸 쾌거라고 생각하겠죠.”
연회 이야기는 끊어질 새 없이 계속 이어졌다. 니스 왕족이 온다더라, 이웃 왕국 명문 귀족이 온다더라, 에릭이 연회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 담임교수인 가이젠을 추모할 거라더라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도 많았다.
“어쩌면 이번 연회에서 그 둘… 뭔가 깜짝 발표라도 하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둘? 달리아와 에릭?”
“에이, 걔들 나이를 생각하세요. 칼란딘 교수님!”
어느새 솔라나도 교수들 사이에 섞여들어 한마디씩 얹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멋쩍게 웃는 베니테즈.
이런 갑작스러운 분위기가 아리송했지만, 흉흉한 사건을 뒤엎는 밝은 대연회가 기다리는 것 같아 나쁘진 않았다.
‘주말이라 쉴까 했는데, 나도 가봐야겠군.’
베니테즈는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하는 그때.
스르륵.
그림자 장막 안에 은신한 채로, 교수들의 시끌벅적한 회의를 지켜보던 루빈.
‘이젠 취소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겠지.’
모든 게 의도대로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 방으로 돌아갈 때였다.
* * *
이튿날, 연회가 열리는 토요일 아침.
루빈은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사실, 잠을 자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을 감은 채로 내면의 하네케와 검투에 몰두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몸 상태는 좋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로젠탈러를 마주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스카 저 아이는 연회 때문에 들떠있군.
투명천장 맞은편, 오스카는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그 역시 달리아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감동한 모양.
꼭두새벽부터 카포티니 도심에 나가 예복을 빌려왔고, 그걸 입은 채로 귀족 춤 연습에 열중이다.
“뭐 하는 거야, 오스카?”
“일어났냐. 보면 몰라? 춤 연습이지.”
입학식 무도회 이후 귀족 춤을 다 잊었던 터라 오스카의 몸짓은 엉성하기만 했다. 루빈은 피식 웃었고, 하네케도 껄껄껄 웃는다.
그러고 보니, 학기 초가 저절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입학식 무도회를 준비한답시고 그때도 춤 연습에 매진했었지. 결국 오스카는 누구와도 춤을 추지 못했지만.
벌써 그때로부터 몇 달이 지났고, 몇 달 사이의 일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카가 춤을 연습하는 저 모습은 똑같지만, 그날과 오늘은 정반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면, 오늘은 끝인 셈. 오늘 이후 카포티니를 떠나는 날만 남아 있는 오스카였다.
‘회귀하고 여기로 오지 않았다면.’
선택받은 마법사, 오스카와 또다시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했을 터.
비록 그 자신은 기억할 수 없겠지만 오스카의 이번 삶은 전생과 너무나도 다르다. 칙명부에게 인생을 빼앗기지 않고 아버지를 잃지도 않았다.
‘적이 아닌 동료가 되는 대마법사라. 죽이지 않아 다행이군.’
“…….”
물론 지금 당장은, 엉성한 춤동작에 발이 꼬이면서 꽈당 넘어지는 마법생도에 불과하지만.
“아흐… 아파라.”
-제 인생에 대해 한 치 앞도 모르는 저 모습이 재미있군. 당장 내일 아메릭마나로 가게 될 수도 있는 신세이거늘.
꽈당! 콰다당!
“아이씨, 룰루한테 도움 요청해야 하나.”
연거푸 넘어지던 오스카가 울르딘 곰을 떠올리는 그때. 루빈은 침대 밖으로 나와 창가로 다가갔다.
‘슬슬 움직여야겠군요.’
-그 전에, 루빈.
‘……?’
-내일부터는 어찌 되는 건가?
하네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클로이와 오스카를 만나게 해주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느냐 말일세. 자네가 카포티니에 온 목적은 달성하는 거잖나.
하네케는 벌써부터 내일을 궁금해했다. 로젠탈러와의 싸움에서 루빈이 패배하여 죽는 경우. 그런 참극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검술 스승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 당연하다는 듯한 그런 믿음이 싫지 않은 루빈이었다.
-로이넨서 교육이 끝날 때까지, 계속 카포티니에 있는 건가?
‘그건 모르겠네요. 어찌 될지…….’
하네케 말처럼, 오늘이 지나면 카포티니에 온 목적은 모두 달성되는 셈이다. 페르 로렌치니를 제거하겠다는 본래 목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라 해야겠지.
오스카가 아메릭마나로 간 뒤에도, 나는 계속 카포티니에 있을까?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어느 쪽으로 확언할 수 없는 루빈이었다.
-담당 칙명부 요원이 죽게 되면, 자네한테도 변화가 생기는 거겠지? 예를 들어 새로운 도시로 가게 된다거나 말이지.
물론 그런 건 아니다.
로이넨서 교육의 기준은 암살검가의 자제였지, 칙명부 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를 담당하던 칙명부 요원이 죽었다 해서, 도시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외 또한 존재했다. 말을 잇던 루빈은 도중에 멈추었다. 창밖으로 고정되는 그의 시선. 그 눈빛에 빠르게 힘이 들어갔다.
창밖의 어느 한 곳을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어쩌면, 저한테도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먼 거리.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먼 거리의 누군가를, 루빈은 바라보았다.
-왜 그러나? 뭐라도 있는 겐가?
‘…….’
저 멀리서, 뜻밖의 존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빈이 제 존재를 감지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윽고 그자는 몸을 돌려버린다.
루빈 또한 시력에 온전히 집중시켰던 암연을 거두었다. 뜻밖의 방문자가 나타났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가 아니다.
‘당장 날 방해할 것 같지는 않군. 뭐, 때가 되면 내 앞으로 나타나겠지.’
‘저자’가 방해할 거였으면, 이미 일을 틀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어찌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겠다는 것 같았다.
루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당장은 클로이를 만나고, 로젠탈러를 제거해야 하는 게 급선무였다. 도중에 네이프 그리어스를 완벽하게 속여야 하기도 하고.
“야, 너 어디 가?”
“서점에 가봐야 해.”
루빈이 나갈 채비를 하자, 오스카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오늘도? 이따가 달리아 연회에 같이 가야지! 일곱 시니까… 이엘로스 영지까지 여기서 얼마나 걸릴까나…. 흠, 한 다섯 시쯤 출발하면 되려나?”
“오스카. 미안한데, 나는 따로 갈 거야.”
루빈은 덧붙였다.
“그리고 네 시에 출발해. 그래야 늦지 않아. 영지로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길을 잃지는 않을 거야.”
“야! 같이 가자니까!”
“연회장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아리송한 인사다.
그런 인사를 남기며 루빈이 제 방을 나가버렸다. 오스카는 투명천장 너머 비어버린 룸메이트의 방을 괜히 머리만 긁적였다.
“하여간, 맨날 바쁜 척한다니깐.”
* * *
“아가씨, 도착했어요.”
클로이는 눈을 떴다. 어느새 이엘로스 영지에 도착했다는 건 마나의 환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대 마나석이 매장되어 있는 카포티니에서 벗어났기에 마나의 환이 살짝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 역시 오래된 마법가문의 터. 영지 곳곳에, 마법사들을 위하여 세공된 마나석들이 조형물처럼 설치되어 있다.
“삼휘 마법사들 중에 가장 성공한 가문답군요. 쓸모없는 토지들이 좀 있다 해도, 면적만 보면 제도의 귀족들 부럽지 않겠네요.”
“…….”
클로이는 마차의 덧창을 살짝 들어보았다. 지금 그녀가 도착해 있는 곳은 이엘로스의 넓은 영지 중 고풍스러운 연회장이 자리 잡은 지역.
“이들 가문은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하네요. 특히 이엘로스가의 와인은 대륙 서부권 곳곳에 퍼져 있다 합니다.”
“응, 아까 보니까 와인 창고들이 정말 많더라. 아메릭마나로 돌아가기 전에 오빠들과 가신들에게 선물할 것들로 좀 준비해 줘.”
“네, 아가씨.”
“아, 경비대장한테 줄 것도 같이.”
현재, 그녀를 경호하는 제국군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언덕 위를 차지한 그들 모습에 이엘로스의 가신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중이다.
“네, 그러도록 하죠…. 저기, 가주들이 오는 모양이네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두 가문의 가주 내외, 그리고 달리아와 에릭이었다.
셀레스네가 먼저 나가 마차의 문을 열고, 제국귀족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윽고 클로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몸을 낮춰 예를 표했다. 심지어 달리아조차도.
‘역시 의외라는 얼굴들이네.’
초대장을 보내긴 했지만, 클로이가 올 거라 확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클로이는 연회가 시작하는 일곱 시보다 무려 두 시간 반이나 일찍 왔다.
제국귀족처럼 연회의 주인공보다 더 주목받을 만한 이들은, 행사의 2부쯤에나 나타나는 게 관례라면 관례인 것인데.
‘페르는 도착했을까?’
클로이로서도 다섯 시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다섯 시는, 엔조가 제 아들을 드러내겠다고 미리 말한 시각이었다.
“제국귀족을 뵈옵니다.”
“제국귀족을 뵈옵니다.”
“반갑습니다, 두 가문의 경사를 함께 축하해줄 수 있어 기쁘군요.”
클로이가 두 명의 가주와 인사를 나눴다. 그러곤 뒤편에 서 있는 달리아를 슬쩍 쳐다봤고,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클로이는 2주 만에 보는 친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지만, 달리아로선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미소였다. 지금까지 교실에서 친구처럼 지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후, 격식을 갖춘 짧은 환담이 오가고.
“이엘로스 가주님.”
이제는 다음 장소로 움직여야 했기에, 셀레스네가 이엘로스 가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
“연회장을 미리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제국귀족의 안전을 위한 절차니,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내가 깜빡했군. 당연히 확인시켜 드려야지.”
“30분간 연회장의 내부 인원을 물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0분. 알겠소. 그러면 그동안 영애님께선 저희와 함께 저택으로……?”
“아뇨, 저도 셀레스네와 함께 가도록 하죠. 드레스 상태도 확인해야 하니.”
웃으며 말하는 클로이에, 가주들은 더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다른 분 말고 달리아가 안내해 줬으면 해요.”
원래대로라면 연회 장소가 이엘로스 영지였으니 에릭이 안내해야 했다. 하지만 제국귀족이 학급 친구의 안내를 받길 원한다니 뭐, 별수 있나.
“…가시지요.”
달리아가 클로이와 셀레스네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도 클로이와 아주 친하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두 입술 사이를 떼지 않는 달리아였다.
“달리아, 정말 멋진 연회가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우리끼리 있을 땐 반말해도 돼.”
그럼에도 달리아는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수백 명… 아니, 어쩌면 천 명 가까이 모일 수도 있겠구나.”
“아냐. 이번 연회는 고위 인사들만 모일 거야. 예정된 참석자는 백 명에 불과해. 물론, 그중에서 제국귀족이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
클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차를 타고 연회장을 오는 동안, 일찌감치 출발한 참석자들을 꽤 많이 지나쳐왔다. 그들 숫자만 보면 고작 백 명에 그칠 게 아닌데.
그러나 꼬치꼬치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다. 두 가문이 알아서 잘 준비했겠지.
“여기야?”
연회장 건물 앞에서 멈춘 그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안에서는 한 무리의 가신들이 서둘러 빠져나가는 중이다.
셀레스네가 내부로 들어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는 사이.
“달리아.”
“……?”
“다른 애들 못 봤어? 아무나. 우리 반이든, 다른 반이든.”
달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처음이야. 학교 친구로는.”
“…그렇구나.”
“아가씨.”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셀레스네가 다가왔다. 클로이는 셀레스네와 눈빛을 교환하곤 이내 연회장 내부로 발걸음을 뗐다.
그러다가 잠시 멈추어 달리아를 돌아봤다.
“달리아. 꼭 장교생도가 되길 바라. 제도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고마워.”
클로이의 말은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다음 순간, 연회장을 중심으로 하여 고차원의 결계와 방어막이 동시에 생겨났다.
“……?”
셀레스네가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제아무리 제국귀족이라지만, 드레스 확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달리아 눈에 의문이 담겼다.
또각또각.
하지만, 클로이는 이미 구두 소리를 내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잠시 후, 연회장 안.
막바지 준비 중인 연회장은 어두컴컴했다. 클로이는 일부러 마법으로 빛을 밝히지 않았다. 이제껏 숨어 지내온 페르였다. 이 정도 배려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네요.”
셀레스네가 속삭였다. 앞서 들어왔을 때 연회장 곳곳에 경계용 마도구를 설치해둔 터. 클로이와 페르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현재로선 페르가 완전히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다.
“연회장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계에 감지됐을 거예요. 지금은 결계 근처엔 달리아 아가씨뿐이에요.”
왠지 모르게 초조해진다. 클로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두컴컴한 연회장의 메인홀. 그녀의 숨소리가 자그맣게 울렸다.
그런데 그때.
“셀레스네, 아직도?”
“네, 아직도요. 결계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
셀레스네가 말을 멈추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연회장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누군가가, 뒤늦게 느껴졌기 떄문이다.
저벅저벅.
다음 순간,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클로이는 깜짝 놀라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