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76)
암살검가 로이넨-176화(176/258)
제176화. 징벌 (2)
장례? 루빈은 귀를 의심했다.
‘암살검가에서는 ‘장례’라 칭할 만한 의식이 없는데.’
적어도 루빈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랬다. 회귀하기 전에는 장례식 같은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로이넨가에 그런 의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맞습니다. 암살검가는 죽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불가항력? 독특한 표현이네. 불가항력적인 장례식이라니.”
“장례식을 치르도록 명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명이 내려졌다? 황명을 말하는 거야?”
데이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황명. 그렇다면 불가항력적이라는 표현도 틀린 건 아니다.
루빈은 빠르게 머릿속을 헤집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짚어 봐도 이 시기에 장례를 치른 적은 없었다. 장례식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없었는데.
전생에는 없었던 또 하나의 사건인 건가.
“언제 죽은 거지?”
그러자 데이몬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누구의 죽음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으시는군요.”
“그거야 짐작이 되거든.”
“누구를 짐작하셨습니까?”
“도리언 형님이나 매피스 형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겠지.”
아까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나타난 반응으로 보자면,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누가 됐든 상관은 없지만.’
매피스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4년 전이던가. ‘빛과 반역의 탑’으로 견학 가는 길이었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티나를 만나기 며칠 전.
그때 이미 루빈의 경지는 매피스를 넘어서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교육하겠다던 형을 역으로 찍어 눌렀었지.
그걸 빼면 별다른 기억도 없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무의미한 형제였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몬의 대답이 이어졌다.
“매피스 도련님이 임무 중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는 그걸 기리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루빈의 예상이 맞았다. 그때, 가만히 있던 그로칼 랭이 나섰다.
“데이몬 님, 도련님께 그냥 속 시원히 말씀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본가로 돌아가면 다 알게 되실 텐데요.”
역시, 단순한 장례는 아니라는 거지.
황명에 의한 장례라면 숨은 뜻이 없을 수가 없다. 텔마흐는 장례식을 통해 암살검가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말해, 데이몬.”
“알겠습니다, 도련님. 매피스 도련님은 임무 중에 크나큰 실책을 저질렀고, 그게 황제 폐하의 분노를 샀습니다.”
“분노? 그렇다면, 이 장례식의 또 다른 의미는…….”
“암살검가에 대한 징벌이라 할 수 있겠죠.”
징벌이라는 말이 발음되자, 루빈의 암연이 저절로 날이 선다. 화르륵 퍼뜨려지는 공격적인 암연에, 가신들이 순간적으로 흠칫거렸다.
“황제 폐하께선 우리가 어찌 나오기를 원하는 거지? 징벌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데?”
“징벌의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폐하께서는 장례식을 치르되, 암살검가의 ‘여덟 대가문’ 가주들을 모두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들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칙명부 수장이 황제 폐하의 뜻을 밝힐 것 같습니다.”
거기에 본가의 남은 두 아들, 루빈과 도리언도 장례식 겸 징벌 결정식에 참석해야 했다.
“…내 무능한 형제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듣도록 할게.”
“알겠습니다. 쿠제가 돌아오는 대로 귀가의 여정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징벌이라.
텔마흐는 뭘 어쩔 셈인 거지?
* * *
솨아아아아아.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
루빈 일행은 귀환 여정을 시작했다. 날이 밝은 뒤에 출발해도 괜찮았지만, 루빈은 그러기를 원치 않았다.
자정 무렵이 되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7인의 암살자가 비바람을 헤치며 말을 몰았다.
‘지금쯤, 오스카는 클로이와 함께 엔조를 만났겠군.’
카포티니를 빠져나가고 한참 더 내달리던 루빈. 문득, 뒤를 돌아봤다. 마법사 도시가 멀어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점점 작아졌다.
마나의 환이 빠르게 옅어지는 걸 보니, 거대 마나석과 멀어지고 있음이 실감됐다.
이제 오스카와 관련해서는 모든 게 매듭지어졌다. 위더스푼가의 비호 속에서 ‘선택받은 마법사’답게 성장해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일단은 베야네그로로 이동하겠습니다.”
데이몬이 말을 늦추며 루빈에게 다가왔다.
이번 여정에서 네이프는 베야네그로까지만 함께한다. 그리어스가의 가주로서 이곳에 남아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명목상으로 로젠탈러 제거를 완수한 건 루빈이 아닌 그였으니, 사후 보고를 해야 했다. 루빈에 관한 흔적들 또한 하나하나 없애야 했다.
다만 마법학교 내에서 ‘루든’ 이름으로 남은 기록들은 유지될 것이다. 수업 과정이나 교수들의 기록물들까지 전부.
마법생도와 암살자는 양립하기 힘든 개념이어서 그쪽 관련 기록들은 차라리 남겨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외, 루든이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이고, 이제부터는 루빈의 위장 신분도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다시 루빈 로이넨으로 돌아온 셈이군.’
일행은 베야네그로에 도착해서 그리어스가의 위장별채에서 몇 시간을 쉬었다. 날이 밝을 무렵, 다시 길을 떠났다.
“이 방향이라면… 파무크 대로에 오르려는 거구나.”
“예, 도련님. 가장 빠르고 수월한 경로입니다. 대로에 오르면 제국의 마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로라는 파무크 대로. 파무크 왕국이 관리하는 이 도로를 이용하여 대륙을 횡단하면 로이넨 저택까지 가는 시간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루빈! 루빈! 나, 하늘에 있어!
파무크 대로가 시작되는 ‘관문도시’에 막 들어선 직후. 갑자기 티나의 전음이 루빈을 불렀다.
루빈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기엔 로이네크로우로 변한 티나가 활공하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다른 암살자들의 로이네크로우는 일찌감치 파무크 대로의 상공으로 들어선 상태인데.
-티나, 너도 다른 로이네크로우들과 함께 있어야지.
-그럴 일이 있었지!
티나의 전음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그녀를 흥분시키는 사건이 있었던 것 같았다.
-너, 그 가신들 따돌릴 수 있냐?
루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일행은 관문도시를 빠져나가는 마지막 절차를 앞두고 있었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티나라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따돌리라는 게 아니라, 잠깐만 빠져나오라고. 한 시간쯤?
-무슨 일인데 그래?
이어지는 티나의 대답. 그 대답을 듣자마자 루빈은 걸음을 뚝 멈췄다. 앞서 걷던 데이몬이 돌아봤다.
-말하는 그리폰을 만났다! 하늘에서 말이야. 널 알고 있었어. 아니지… 널 찾아온 거지!
‘셀록?’
말하는 그리폰이라면 셀록밖에 없다. 오스카의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뒤로는 셀록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오스카를 수호하는 게 셀록의 존재 이유. 셀록조차 어쩌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거라면…….
하지만 이어진 티나의 말에, 루빈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오까지 안 나타나면, 네가 원하는 ‘정보’를 안 알려줄 거라고 했어! 무슨 대장장이 어쩌구 하던데?
대장장이에 대한 정보. 루빈으로선 나중으로 미뤄두려고 했던 것이었다. 오스카가 아메릭마나에 있는 한, 그를 찾으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모습을 드러낸 채로 찾아왔다는 건… 오스카도 결국 셀록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거네.’
의외로 진도가 빨랐다.
-그냥 가라고 해?
-아니. 꼭 필요한 정보야. 나중에 들으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어.
그렇다면 잠시 가신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가신들에게 벌써부터 셀록의 존재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데이몬.”
“예, 도련님.”
티나 말처럼 가신들을 따돌릴 필요는 없겠지. 이들과 난데없는 추격전을 벌인다면, 뭐 그것도 나름대로 수련이 되기야 하겠지만 불필요했다.
“나한테 한 시간만 시간을 줘. 다녀와야 할 곳이 떠올랐어.”
“저희 없이 혼자서 다녀오시겠다는 겁니까?”
“응, 그럴 만한 일이거든.”
자초지종을 생략한 채 이렇게만 말했다.
그를 바라보는 데이몬의 눈빛. 거기엔 조금의 의심이나 불안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도록 하시죠. 혹,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으면 티나를 보내주십시오.”
로젠탈러와의 싸움까지 지켜봤던 데이몬이었다. 당장 여기서 루빈이 위험해질 일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럴게. 고마워.”
“별말씀을요. 다른 가신들에겐 제가 잘 일러두겠습니다.”
이후, 루빈은 무리에서 벗어나 티나를 따라갔다. 관문도시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숲속. 티나가 상공에 원을 그린다.
그 아래에, 푸른 깃털의 그리폰이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그 곁에 오스카도 서 있었다. 그동안의 염색 마법을 지워버리고, 자신 본연의 푸른 머리칼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모든 진실을, 심지어 자신이 ‘선택받은 마법사’라는 것까지 알게 된 오스카는, 과연 어떤 성격이 되었을지.
루빈은 전생에서 보았던 페르의 냉혈한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야, 루든! 이제 널 뭐라고 불러야 하냐! 정의의 사도? 아님 검은머리 구세주? 둘 중 뭐가 좋냐?”
오스카는 여전히 오스카였다.
웬 수다가 이리 끝없이 이어지는지. 셀록에게 대장장이 정보를 들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자, 친구. 우리 정리를 해보자.”
루빈과 오스카가 마주 선 숲속. 검은 머리와 푸른 머리. 그들 각자 뒤에는 로이네크로우 티나와 푸른 깃털의 그리폰 셀록이 서 있었기에 묘하게 대칭적인 구도였다.
“정리?”
“네가 내 입장 되어봐!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집어졌는데 정리가 안 필요하겠어? 물론, 좋은 쪽으로 뒤집어졌다는 건 인정!”
팔을 번쩍 들더니, 오스카가 정리를 시작했다.
“흩어져 도망쳐 살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누구 덕분에? 친구 덕분에! 아메릭마나의 속도(屬島)에서 살게 되었다. 덤으로 그곳의 마법 교육까지 받으며. 누구 덕분에? 친구 덕분에! 그 이름조차 빛나는 대마법사 글레이튼의 뒤를 이어, 내가 ‘선택받은 대마법사’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구 덕분에? 친구 덕분에!”
“정리하면 그렇게 되는 거 같긴 하네.”
“루든, 그렇게 덤덤하게 나오면 내가 뭐가 되냐. 은혜를 어찌 갚으오리까? 셀록이 알려주겠다는 정보로는 부족한 거 맞잖아.”
루빈은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오스카. 최대한 빨리 대마법사가 되어야 해.”
“대마법사…?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7성에 오르는 걸 무슨 뒷동산 갔다 오라는 것처럼 말하네.”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갑자기 칭찬? 흠, 그건 고맙네. 아무튼 그렇다 치고, 이유는?”
“머지않아 내 편에서 싸워야 할 테니까.”
“싸워? 누구랑?”
대답 대신, 루빈은 씩 웃었다. 그러곤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7성에 올라있길 바랄게. 그때쯤, 나 역시 7성의 무인이 될 테니까.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르고.”
“7년 안에 7성 경지에 오르라고?”
“그래.”
인생을 다 바쳐 대마법사가 되라는 게 아니다.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현재로선 저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일 것이다.
“아니, 대체 누구랑 싸우려고 하길래 그러는 건데? 말 좀 해줘!”
오스카가 과장된 몸짓으로 제 머리에 두 손을 올렸다.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껏 스물이 되기 전에 7성에 오른 무인이나 마법사가 있었나를 떠올려 보면, 말도 안 되는 요구였음에도.
오스카는 초연해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저의 재능을 믿고 있는 거겠지. 지금 오스카의 태도를 보면, 정말로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루빈도, 오스카가 해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거의 10년을 앞당기는 일인데.’
쉽다거나 어렵다는 걸 벗어난 개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불가능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차라리 그럴듯하겠지. 그러나, 함께 텔마흐에 대적하려면 그만한 힘이 되어줘야 했다.
“안 알려준다 이거지? 휴, 알겠다. 한두 번이냐?”
“너무 실망하진 말고.”
“됐고. 아메릭마나에서 죽어라 마법 훈련만 하라는 거잖아?”
“클로이도 널 도와줄 거야.”
“참 고맙네요.”
입술을 비죽 내민 오스카. 실망하는 그를 보며 루빈은 아주 조금, 힌트를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 아주 조금은 알고 있어도 괜찮겠지.
“지금 네가 증오하는 사람.”
“…뭐?”
“나도 그 사람한테 빚이 조금 있거든.”
내가 증오하는 사람?
오스카는 가만히 생각했다.
제 어머니를 죽게 하고, 아버지와 자신을 도망자로 만든 사람. 얼굴조차 모르고, 이름조차 함부로 발음해서는 안 되는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화, 황…제?”
루빈과 달리, 오스카는 텔마흐의 실제 무위를 알지 못했다. 반신의 경지를 지녔다는 걸 안다면, 오히려 7성 경지로는 역부족이라 생각해야 했으니까.
다만 ‘황제’라는 유일무이한 명칭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황제에 맞서려면 대마법사와 7성 무인쯤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스카. 아메릭마나에 있으면서, 그 계획을 들키면 안 돼.”
“다, 당연히 그래야지.”
사실상 마법생도 둘이서 말 그대로 ‘반역 모의’를 하는 셈이다. 비록 그 분위기는 엄숙함이나 비장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뭐, 일단은 7성이 되고 나서 보자. 하지만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황제 같은 거 시켜줘도 안 할 거다! 난 ‘선택받은 마법사’ 쪽이 좀 더 끌리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시켜달라고 떼를 써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루빈의 목적은 제국을 새롭게 바꾸는 게 아닌, 그저 복수. 복수가 성공한 이후에 세상이 어찌 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 그럼 이제 내 보따리를 좀 풀어볼까나? 네가 모종의 이유로 불참했던 연회에 대해서 말이지.”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던 것처럼, 오스카는 루빈을 붙잡고 어제의 연회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놓았다.
얼핏 들으면 제 무용담인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연회가 치러지는 와중 어딘가에선 루빈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었다는 것까진 모르는 그였다.
…그렇게 한참 후.
“이제 셀록이랑 얘기 좀 할게. 곧 가봐야 하거든.”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오스카가 고개를 돌려 셀록에게 손짓했다. 셀록이 푸른 깃털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가 접곤 그쪽으로 다가왔다. 오스카는 둘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잠시 뒤로 물러났다.
셀록이 부리를 움직였다.
“오스카가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 네 로이네크로우한테 한 시간을 내달라 했었던 거다. 역시 부족했던 것 같지만.”
“열 시간도 모자랄 거야. 그나저나 넌 벌써 적응한 것 같네.”
“훗. 재밌는 농담이군.”
곧 셀록의 지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로이네크로우의 흔적을 따라왔다고 했다. 동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 루빈에게서 로이네크로우의 냄새를 맡았던 것처럼, 셀록은 로이네크로우에 민감했다.
“영혼무구까지 가진 놈이어서 심상치 않다고 짐작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일족에서 중요한 도련님이었나 봐?”
데이몬과 척살조의 존재 또한 감지했던 모양이다.
“흠, ‘일족’이라. 네가 활동하던 옛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보다 훨씬 방대해졌지만.”
“그래 보이더군. 너를 따라잡으러 날아오는데, 다른 여러 도시에서도 로이네크로우들이 느껴졌으니까.”
이제 정보를 받을 때였다. 1급 마적석 탐지 마도구를 만들어주고, ‘로젠탈러의 비검’을 단검으로 개량해줄 대장장이 말이다. 루빈은 그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다.
“좀 복잡할 거다. 북쪽의 초원으로 가서…….”
셀록이 내놓은 정보는 길고 또 복잡했다.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해온 은둔의 대장장이를 만나는 길이었다. 쉽지 않을 게 당연했고, 더 어렵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도 이번에 깨어나서는 그 대장장이 놈을 직접 본 게 아니라는 거 알지? 놈이 살아있다고 장담은 못 해. 하지만 누가 걜 죽이지 않는 이상 살아있을 테니까, 열심히 찾아봐.”
“그러지.”
루빈은 셀록의 정보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하필 북쪽 초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 걸렸다. 거긴 유목민족 투흔족의 초원. 야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거친 자들이다. 골치 아플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정보를 얻었으니, 일단은 장례식과 황제의 징벌에 집중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