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81)
암살검가 로이넨-181화(181/258)
제181화. 돌아오다 (2)
루빈은 자신의 언행에 자극받은 듯 보이는 도리언을 슬쩍 쳐다보고는, 곧바로 안개를 뚫고 걸어갔다.
저택의 문지기 가신이 대문을 열었다. 안개의 경계를 넘자, 눈앞에 가려졌던 저택의 전경이 펼쳐졌다.
언뜻 보면 버려진 장소 같았다. 정원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걸음을 내디뎌 정원을 가로지를 때마다, 곳곳에 은신해 있는 가신들이 느껴졌다.
순간순간 저들의 암연이 흐트러지는 걸 보아하니, 귀환한 루빈의 모습에 놀라는 것 같았다.
“저택을 떠나 있는 동안, 도련님이 성장한 건 무위만 아닙니다. 외형 또한 절정에 한 발 다가섰기에, 가신들이 놀라는 겁니다.”
데이몬이 설명하듯 말했다.
고작 2년이다. 그런데 루빈의 외형은 그 2년 안에 모든 성장기를 압축한 것 같았다. 요릭의 두개골 속에 들어 있던 ‘고룡 기벤라트의 눈물’ 덕분이었다.
루빈이 느끼기엔, 육체가 완성되기까지 아직 2, 3년 정도 남았지만.
“도련님과 나는 가주님을 뵈러 어스름홀로 가겠다. 척살조는 거처에서 대기하고, 로이넨서 쿠제는 별채로 이동해 도련님을 기다리도록.”
“쿠제, 거기에 가면 내 유모가 있으니까 이야기하고 있어.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면 적당히 말해주고.”
“네, 도련님.”
일행들과 헤어지고, 루빈은 어스름홀로 향했다.
“……!”
어스름홀이 가까워질수록, 암연의 환이 진동하는 듯했다. 하늘 끝에 닿을 듯한 태산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세이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8성에 올라섰다 한들, 그녀 혼자서 이만한 암연을 내뿜을 순 없으니까.
“혼자 계신 게 아닌 것 같군.”
“흑영들과 이야기 중이신가 봅니다.”
이제는 암연의 환이 저릿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암살검가 가주들 중에서 정점에 오른 8인이다. 모두 한곳에 모여 있으니 용암이 출렁이는 것과 같았다.
두 사람은 어스름홀 밖에서 대기했다. 이윽고, 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직속가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킬리언.
“도착하셨군요. 막내 도련님.”
흑영들의 귀를 의식한 건지, 킬리언은 이전과 달리 예를 갖추었다.
“가주님께선 흑영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니, 일단 별채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시지요. …그리고 직속가신 데이몬은 곧바로 어스름홀로 들라는 가주님의 명이다.”
“알겠습니다.”
킬리언은 곧장 문을 열어 데이몬을 들여보냈다. 잠깐 열린 문틈으로 루빈은 냉엄한 세이렌의 눈길을 마주했다.
아주 짧은 마주침.
“…….”
붉지만 차가운 눈동자에, 루빈은 가만히 몸을 숙였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막내아들이 돌아왔음을 간결하게 알렸다.
‘그나저나, 흑영들… 진짜 엄청나군.’
그가 서 있는 각도에서는 흑영 8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물론, 그건 저쪽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더 궁금해하는 쪽은 루빈보다는 흑영들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는 강대한 암연들이 느껴졌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턱 내뱉을 정도였다.
이쪽에서도 숨김없이 암연을 드러낸다면, 그렇다면 저들을 놀라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더 적당한 때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때.
“가시지요, 도련님. 제가 별채로 안내하겠습니다.”
킬리언이 루빈을 이끌었다. 어느새 어스름홀의 문은 닫힌 상태. 루빈을 에워싸던 흑영의 암연들도 흩어진 뒤였다.
저벅저벅.
“…….”
한동안 침묵하던 킬리언과 루빈은 별채가 가까워지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빠르게 엄숙함을 집어던지는 킬리언이었다.
“휴, 갑갑해 죽는 줄 알았네. 인생 막바지에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어스름홀에서는 꾹 참고 있었는지, 그는 서둘러 수통 뚜껑을 따고 오아쿰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익숙한 목 넘김 소리에 루빈이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야, 킬리언.”
“그사이 몰라보게 성장했나 보군요, 막내 도련님.”
장난스러운 존대. 곧바로 전음을 날리며 본색을 드러냈다.
-칙명부의 썩은 살을 ‘직접’ 도려냈다며?
-어떻게 알았어?
-데이몬의 약식 보고를 받은 세이렌한테서 전해 들었다. 그놈, 5성이었다던데… 생각보다 말짱하군. 눈알이랑 귀 두 짝이 말짱히 붙어 있는 거 보니.
-내가 흑색탑에서 말했잖아. 두 개의 암연 모두 6성 특성을 개화시킬 거라고.
-그래, 그랬었지.
6성의 저주에 대해 알려주었지만, 오히려 호기롭게 대답했던 루빈의 모습이 떠올랐다. 킬리언으로선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루빈의 6성.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아, 킬리언.”
“……?”
“혹시 여기서 지내면서 내 유모는 만나 봤어? 퓌레라고, 그 성격이 아주…….”
별채에 들어서며, 루빈이 퓌레에 대해 소개하려는 그때.
계단을 후다다닥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 2층에서 쿠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퓌레였다.
루빈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루빈을 향해 냅다 달려왔다.
이를 지켜보던 킬리언으로선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퓌레는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퓌레는 루빈을 앞에 두고, 순간 멈칫했다.
2년 사이, 너무나 늠름해진 모습. 그러나 몰라보게 성장했어도 아기 때부터 보아온 그 모습을 감출 순 없다. 언뜻언뜻 비치는 루빈의 모습에 그녀는 더 감격했다.
“얘야, 옆에 나도 있는데…….”
퓌레는 킬리언의 목소리는 간단히 무시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무슨 고생을 했기에 이렇게 장성해버린 거지……!”
“얘야, 그건 말이지, 이 욕심 많은 막내 도련님께서 무얼 드셨나면…….”
“로이넨서한테서 들었어요! 마법사 도시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마법생도들 틈에서 지냈다면서요! 이것저것 사건도 해결하셨다고요! 마법사들이 음흉하기 그지없다던데!”
“얘야, 내가 장담할 수 있는데 음흉한 걸로 치자면 여기 이 막내 도련님이야말로…….”
“좀, 조용히 좀 해주시죠, 킬리언 님!”
루빈은 킬리언과 퓌레의 오묘한 역학관계에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 세이렌의 냉엄했던 눈빛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퓌레의 따뜻한 환대.
“오랜만이야, 퓌레.”
루빈은 또 다른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퓌레를 가만히 포옹하며 자신이 집에 돌아왔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 * *
어스름홀.
가주석에 앉아 있는 세이렌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어스름홀에는 그녀와 데이몬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 맞은편에 자리했던 여덟 흑영가주들은 모두 물러간 뒤였다.
8성에 오른 그녀조차도 한자리에 모여 있는 흑영들과 마주하는 건 고역이었다.
세이렌과 흑영들 두 진영 다 의도적으로 암연을 가다듬었다지만, 팽팽한 긴장감만은 어쩔 수 없었다.
순혈의 암연. 그리고 역사상 최강의 가주.
한 명씩 마주한다면, 그 존재감만으로 흑영을 압도할 만한 세이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저들의 태도를 살피고자, 일부러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일종의 상견례를 마련했던 터였다.
릴, 아논, 카반, 데스릴.
네 명의 상위 흑영 중 누가 최강자인지도 가려낼 겸 말이다.
예상했던 거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하위 네 명은 몰라도, 상위 네 명은 꽤나 공고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주들뿐만 아니라, 가문 자체적으로도 소통이 이뤄지고 있을지 몰랐다.
결국, 저들 중에 누가 최강자인지는 감별해낼 수 없었다.
“데이몬.”
“예, 가주님.”
세이렌의 눈길이 데이몬에게 향했다.
사실, 세이렌은 의도적으로 직속가신을 어스름홀에 등장시켰다. 킬리언과 데이몬 같은 가신들은 본가만의 저력이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군. 흑영들이 데이몬보다 루빈을 신경 쓰고 있을 줄이야.’
안으로 들이지 않고, 어스름홀 외부에 대기시켰던 루빈.
세이렌은 흑영의 암연이 루빈을 관찰하는 데 집중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르기 힘들 만큼 노골적이기도 했고.
카반 크로키슨을 제외하면, 흑영들에게 루빈은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1차, 2차 선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본가 자제의 우승은 드물었고, 있다면 세이렌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흑영들은 세이렌 같은 존재가 또다시 나타나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루빈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을 말해 봐.”
세이렌이 낮은 음성으로 명했다.
약식 보고를 통해 루빈이 제 계획대로 로젠탈러를 제거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는 세이렌의 궁금증만 자극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 5성의 무인을 죽일 수 있었던 건지.
“아, 잠깐. 킬리언이 오는군. 같이 듣도록 하지.”
이윽고 킬리언이 나타났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이렌이 따로 명했던 대로, 루빈의 로이넨서를 대동했다.
몸의 떨림을 억누르며 힘겹게 예를 표하는 쿠제. 그를 바라보는 세이렌의 눈동자엔 아무 감정도 배어나지 않았다.
“쿠제.”
“예, 가주님.”
“여기서 보고 들은 걸 루빈에게 전해라. 그게 내가 널 부른 이유다.”
“…알겠습니다.”
이후, 직속가신 데이몬의 보고가 시작됐다.
루빈이 로젠탈러와의 사투에서 승리하는 과정은 물론, 그 대결이 있기 전까지 루빈이 만든 위조 초대장과 네이프 그리어스를 따돌렸던 일까지 포함된 보고였다.
“…그리고 루빈 도련님은 파무크 대로에서 저와 수련을 하면서 제 6성 검식을 모두 받아냈습니다. 검식을 파악하기 위해 묘수를 생각해내셨는데…….”
죽 이어진 보고가 끝났을 때, 정작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인 건 세이렌보다는 킬리언이었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러의 환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마나의 환까지?”
마도무인이라는 개념을 그 역시 모르는 건 아니다. 확률이 없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마나의 환이라니? 그들은 암연의 환을 지닌 자들이지 않은가.
말로만 들어서는, 루빈이 오러 뿐만 아니라 마법까지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검은색의 오러라.”
세이렌의 반응은 이상하게도 침착했다. 그녀 반응에 킬리언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이렌, 너는 놀랍지 않아?”
놀랍기는커녕 마치 오래 간직해온 수수께끼를 이제야 풀어낸 사람 같았다.
‘그랬던 건가.’
루빈이 발현했다는 흑칠의 오러.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왼편 팔뚝에 가져다 댔다. 13년 전, 하네케가 남긴 상흔이 아직도 이따금 욱신거렸다.
‘첫 번째 선택에서, 루빈은 우승을 차지하고도 그저 검날 조각을 선택했었지.’
그때부터 품어온 의문이었지만, 세이렌은 구태여 그 너머를 파헤치려 하지는 않았다.
모든 건 루빈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때 루빈이 우승자의 특권으로 선택했던 하네케 브리온의 검날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게 루빈에게 암연의 한계를 뛰어넘고 오러의 환을 지니게 해준 것 같았다.
하네케의 죽음.
대장군이 남긴 검혼과 검날 조각.
그리고 루빈과 브리온 오러.
연결고리가 언뜻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이 연결고리는 나만이 볼 수 있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루빈의 이런 면모는 ‘돌연변이’나 ‘위험 요소’에 지나지 않을 터.
‘아무래도 루빈을 직접 봐야겠군.’
그녀의 눈길이 쿠제에게 향했다.
“쿠제.”
“예, 가주님.”
“왜 루빈은 로젠탈러를 직접 죽이려고 했던 거지? 그 아이의 역할은 네이프 그리어스를 돕는 것이었다. 혹 카포티니에 있으면서 로젠탈러와 갈등이라도 있었던 건가?”
쿠제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심호흡을 했다. 차마 루빈이 모든 상황을 조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협곡 감옥’에서 벌인 일과 엔조와 페르에 관하여. 그리고 로젠탈러가 가이젠을 죽이도록 한 것까지.
“루빈 도련님은, 로젠탈러를 6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으로 생각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 싸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만한 무인과 싸우지 않고선 5성의 벽을 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내막을 털어놓을 순 없지만, 쿠제는 거짓말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본래 크로키슨가의 가신이었던 쿠제는 세이렌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방금 세이렌의 얼굴에 떠오른 만족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킬리언과 데이몬은 달랐다. 둘은 슬쩍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고, 전음이 주고받았다.
-내가 보기에 우리 로이넨가의 차기 가주는 정해진 거 같은데. 안 그래, 데이몬?
-…킬리언 님. 저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공표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나날이 지나야 하겠지만, 킬리언 전음의 의미는 가주의 마음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었다.
-흠, 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 너무 파격적인 거 아냐?
-…….
-아니지. 열세 살에 5성의 경지에 오른 것도 모자라 6성을 목전에 둔 놈이지. 그런 놈을 차기 가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더 파격적이려나.
그런데 그때였다.
가신 중 하나가 어스름홀 문밖에서 직속가신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전음을 받은 건 데이몬 뿐이었지만,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건 그곳에 있는 나머지 세 사람 모두 알아차렸다.
“데이몬,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킬리언이 물었다.
“역시, 루빈 도련님이 크게 사고 친 거지? 맞지? 내가 흑색탑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깐.”
“아직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주님. 훈련장으로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