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00)
암살검가 로이넨-200화(200/258)
제200화. 초원의 아이 (1)
“뭔데? 놈이 왜 날 구해준 건데?”
잔뜩 안달이 난 이마카룸. 하지만 아무리 재촉해도 쿤달리트는 침착하기만 했다.
“다른 1급 죄수들이라면 너만큼 막무가내인 놈들이겠지?”
“그럼! 다 제국의 미움을 살 만큼 위험한 놈들이지. 나도 그 멋진 녀석을 본받아 최대한 많은 감방을 부수고 나왔고.”
“본받긴. 그자는 널 이용한 거다. 네가 잡히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겠지. 그냥 소동을 키우고 싶었던 거니까.”
“자꾸 얘기가 빙빙 도는군. 이제 딱 말해 봐. 녀석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편하게 탈출하기 위해 그랬겠지.”
“쳐들어온 이유는?”
“그것까진 나도 몰라. 뭐, 제국에 한 방 먹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흠.”
이마카룸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의도가 있었던 간에 상관없었다. 그자가 아니었다면 자기는 얼마 안 되어 처형됐을 테니까.
이윽고, 그는 바닥에 깔린 호랑이 가죽 위에 드러누웠다. 두 손으로 뒷머리를 받치고는 흥얼거리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까먹고 있었다!”
“왜, 또 할 말 있어?”
“라유비아 얼굴을 보는 거 까먹었다고! 족장, 우리 쇄골부족의 어여쁜 딸은 어디에 있지? 이 투흔의 바람이 돌아왔다는 거, 그 아인 모를 텐데.”
“라유비아는 말들을 이끌고 돌산에 갔어. 곧 돌아올 거야.”
“라유비아가? 말들을 데리고? 벌써 그렇게 컸나. 감옥에 갇힌 지 3년밖에 안 지난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30년은 지난 것 같잖아.”
“이제 열세 살이다. 충분히 일을 맡겨도 돼. 그리고 말들을 이끄는 일만큼은 너보다 잘하지.”
그때였다.
족장의 투흔푸 안으로 ‘혈육의 고기’가 들어왔다. 이마카룸이 짊어지고 온 말의 고기였다.
이마카룸은 자신을 무시하는 족장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혈육의 고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 혈육을 우리 몸에 깃들게 하자.”
“그래, 그게 먼저지.”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투흔푸를 나와 초원을 거닐었다.
드넓은 초원. 비가 그치고 맨발로 밟는 풀들은 싱그러운 물방울들을 품고 있었다.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와 있었지만, 넘쳐나는 생명의 기운은 채 가리지 못했다.
“얼른 가자니까, 쿤달리트!”
“그래, 가자, 가.”
티격태격하는 그들 모습에, 투흔 사람들이 미소 지었다.
‘바람’과 ‘불꽃’이 함께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다니. 쇄골부족뿐만 아니라 모든 투흔족에 다시 희망이 깃드는 것 같았다.
“돌산이 어느 방향이었더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마카룸. 3년 만에 돌아온 초원이었기에 순간적으로 방향이 헷갈렸다.
그러나 투흔족 사람들에겐 ‘하늘의 문신’이 언제나 길을 안내하는 법. 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렸다.
“아, 저기구나.”
곧 방향을 가늠한 이마카룸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참 앞서나가다가, 뒤에서 느릿하게 따라오는 족장을 향해 연신 손짓했다.
“어련히 돌아올 텐데, 저놈도 참…….”
지금 돌산에는, 쇄골부족의 가장 어린아이가 말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다.
라유비아.
공동체가 함께 양육하는 투흔족의 관습에 따라 모든 이가 가족이었지만, 이마카룸에게 라유비아는 유독 특별했다.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칠 정도였다.
“라유비아가 벌써 말을 데리고 다닐 정도라니. 기특하군.”
“그 말, 몇 번째 하는 거냐?”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이마카룸이 실실거리는 그때.
콜록콜록, 등 뒤에서 기침소리가 울렸다. 이마카룸이 홱 고개를 돌렸다.
“족장. 너, 어디 아프냐?”
“올해 감기는 꽤 독하군.”
그 말에 이마카룸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런 망할, 투흔족이 감기라니! 이게 다 네가 족장이 되어 하늘의 무게를 견디느라 몸에 탈이 난 거다. 아무래도 내가 얼른 늑대를 하나 잡아다가 감기를 쫓아줘야…….”
“이마카룸!”
기침을 멈춘 쿤달리트가 괜히 심각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그러지? 감기에는 늑대 요리만 한 명약도 없는데.
“혹시라도 라유비아 앞에서 늑대를 잡아먹겠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왜?”
“왜냐면…….”
라유비아가 얼마 전부터 늑대 한 마리를 키우고 있거든, 이라고 족장은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마카룸의 눈이 동그래지는 일이 벌어졌다. 늑대 얘기를 하던 중에, 정말로 눈앞에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막 새끼 탈을 벗은 놈 같은데?
그래도 피는 못 속이는지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어둠을 뚫고 형형하게 빛난다. 잘만 크면 초원의 늑대들 사이에서 우두머리가 될 놈이다.
그르르르.
겁도 없이 녀석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누가 사냥감인지 모르는 게다.
‘일단 잡고 보자.’
콧구멍을 넓히며 반색하는 이마카룸. 망설이지 않고 늑대를 향해 도약했다. 팔을 뻗어 늑대를 움켜쥐려 했는데, 놈이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내뺀다.
‘어라? 요것 봐라.’
이마카룸이 제대로 쫓으려는데-
“누구야!”
어둠을 찢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쿤달리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돌산까지 갈 필욘 없겠네.”
“음?”
“라유비아야. 방금 그 늑대는 라유비아가 얼마 전부터 키우는 놈이고.”
“뭐? 투흔족이 늑대를 키워?”
이윽고, 라유비아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으로는 방금 전 이마카룸에게서 도망친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누가 제 늑대를 괴롭혔는지 제대로 혼내주겠다는 얼굴이었는데.
“쿤달리트? 그리고…….”
족장 옆에 서 있는 거한을 알아보자마자 초원의 아이가 울먹이며 달려온다.
“이마카룸!”
라유비아는 열세 살이라고는 해도 평균적인 투흔족 아이보다 작은 편. 그렇기에 이마카룸과 포옹하지는 못하고, 고작 다리에나 착 달라붙을 뿐이었다.
이마카룸은 자신의 허벅지가 라유비아의 눈물에 젖어가는 걸 느꼈다.
“라유비아, 진짜 많이 컸네, 말들도 이끌 줄 알고.”
그르르르.
두 투흔족의 해후를 지켜보던 늑대가 다시 송곳니를 드러낸다.
이마카룸이 눈을 부릅떠 눈싸움을 걸었지만, 늑대는 신기하게도 물러서지 않았다. 감히 ‘투흔의 바람’에 맞서다니. 제왕을 꿈꾸는 늑대 새끼다, 이건가.
이마카룸은 살기를 거두곤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족장을 돌아보며 코를 훌쩍였다.
“어이, 족장. 올해부터는 꼼짝없이 감기에 시달려야겠어. 이제 평생 늑대고기는 못 먹게 됐으니까.”
* * *
한편, 아베른의 동쪽 밀림.
루빈의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랬던 거군.’
지금 루빈은 ‘그림자 장막’을 통해 커다란 바위 속으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모습뿐만 아니라 암연까지도 죽였기에 블라네가 이 바위를 집중적으로 탐색하지 않는 이상 감지될 일은 없었다.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라.
블라네의 경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 경지는 예상대로 3성에 들어선 터였고, 암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투 능력엔 인상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다.
두려움이라곤 없는 담대한 아이로 성장한 블라네. 이 부분에서만큼은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저놈, 4성급인가?’
블라네는 약간의 짜증을 느꼈다.
두 번째로 맞선 오크 전사마저 격파하고, 또다시 오크 무리와 난전을 벌였던 그녀다.
숫자만 많을 뿐이지, 오크 전사가 아닌 일반 오크들은 블라네의 기지만으로도 섬멸해나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밀림에 불청객이 난입했다.
-최근에 웬 오크 무리가 이 밀림으로 들어왔다더니.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겠네. 오크들끼리 영역 다툼이 있었던 거군.
불청객. 오크들을 여기로 내몬 또 다른 오크 무리였다.
놈들은 블라네가 세 번째 오크 전사와 일대일로 싸우려는 그때 나타났다. 갑자기 들이닥치며 밀림의 오크들을 죽여 나갔다.
-저기, 저놈 보이나? 저놈이 우두머리일세. 자네 말대로군. 내가 보기에도 최소 4성급 이상이야.’
훨씬 거친 놈들이었다. 광기에 빠지지 않았는데도 밀림의 오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특히 하네케가 말한 그 우두머리. 4성급의 오크가 선두에 서서 무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끄르르, 끄, 끄르르 끄끄!”
푸슉!
챙! 챙!
푸슉!
오크들끼리의 난전이 펼쳐지는 와중, 졸지에 블라네는 그들의 안중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일단 큼직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이놈들은 뭐지? 도련님 계획은 아닌 것 같은데.’
블라네는 루빈이 자신을 죽음 앞까지 내몰지언정 정말로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새로 나타난 오크들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련 상대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특히, 저 오크. 목젖에 커다란 짐승의 뿔을 박아 넣는 방식으로 흉측하기 그지없는 첫인상을 남긴, 저 4성급의 오크 전사는.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거다.’
지친 게 사실이지만, 그녀는 루빈에게 자신을 입증하고 싶었다.
‘틈을 노린다.’
4성급의 침입자와 일대일로 맞설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끄르꾸레, 끄! 끄으르르!”
4성급의 오크 전사가 크게 외쳤다. 그러더니, 곧바로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있는 블라네에게 눈길을 옮겼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눈동자. 놈은 이미 블라네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금 그 외침은, “저년은 내 거다!”라는 뜻이겠지.
오크 전사의 외침에 따라, 침입한 오크들이 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밀림 오크들을 바깥으로 몰아내어 전투의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크르! 크르! 크르!”
침입 오크들이 빙 둘러싼 채로 외쳐대는 소리. 어서 검투장 안으로 입장하라고 블라네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뜻을 알아차린 블라네는 피식 웃으며 나뭇가지에서 내려왔다.
“불법 검투는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잘 빠진… 인간 여자…. 팔면… 비싸다…. 고기보다… 돈 좋다.”
4성급의 오크다웠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언어에도 어느 정도 익숙한 듯했다.
“발음 나쁘지 않네. 그래도 말은 예쁘게 해야지?”
“나를… 이긴다…. 너는… 산다.”
“간단하네. 접수 완료.”
블라네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새 밀림은 새로운 오크들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
‘도련님은 어디 계시지?’
아무리 암연을 퍼뜨려 봐도 루빈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밀림 밖으로 나가 계신 걸까?
문득, 블라네의 머릿속에 여기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렵지는 않았다. 여기서 기필코 살아 나가서 루빈에게 인정받겠다는 욕망이 더 컸으니까.
그녀는 양쪽 허벅지에 묶어두었던 단검을 빼냈다. 양손에 단검을 쥐고, 심호흡을 해보았다.
“어이, 돈 밝히는 오크. 시작할까?”
“크르르카아!”
4성급 오크 전사가 고함을 질러댔다. 놈은 그대로 돌진해왔다. 블라네도 곧장 암연을 집중시키며 공격을 시도했다.
그런데.
“……!”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블라네의 앞을 막아서는 한 사람.
“도련님?”
루빈이었다.
“끄르르? 끄?”
오크 전사는 새로운 인간의 등장에 우뚝 멈춰선 상태.
단지 길을 막아섰기 때문에 멈춰선 건 아니었다. 루빈에게서 쏟아지는 암연이 오크 전사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네. 계획은 좀 틀어졌지만, 어쨌든 수고했어.”
“오늘 수련은 끝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오늘은.”
루빈은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맞은편의 오크 전사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살기로 가득 찬 암연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도련님,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저놈은 제가 죽일 겁니다.”
“난 널 가파르게 성장시키려는 거지, 혹사시키려는 게 아니다. 이놈들은 내 계획에 없었어.”
그제야 블라네는 루빈의 손에 전에 보지 못한 무기가 들려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묘한 무구. 마치 그 주인과 닮아있었다.
블라네는 문득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년간 도련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어.’
루빈은 천천히 걸어나갔다.
한 걸음. 핏빛서리에서 눈보라가 움튼다.
또 한걸음. 검신에 흑칠의 오러가 덧씌워진다.
루빈은 어설프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금방 정리하지.”
이제부터 살육의 시간이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났을까.
밀림은 오크들의 얼어붙은 피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정리되는 데엔 30분이면 족했다.
“…….”
블라네는 단 두 합 만에 머리통을 잃고 바닥을 나뒹구는 4성급 우두머리의 사체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부르소가 했던 말, 루빈이 그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그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블라네?”
“…….”
“블라네.”
그제야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루빈을 느낀 블라네.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
“…아, 네. 도련님.”
“뭐 하고 있지? 북부초원으로 출발하자.”
“…예,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