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08)
암살검가 로이넨-208화(208/258)
제208화. 검의 길 (1)
대족장의 투흔푸 밖.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쿤달리트는, 자신의 이름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조심스럽게 안을 들춰보았다.
‘왜 말소리가 안 들리는 거지?’
내부가 너무 고요해 슬쩍 안으로 들어가 본 쿤달리트는,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둘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돌아 나왔다.
“쿤달리트?”
나오자마자 라유비아가 눈을 초롱초롱 밝히며 다가왔다. 아직도 이야기가 안 끝난 건지 궁금한 것이다.
“이냐키투가 루한 님의 내면세계를 확인하는 중인 것 같아.”
“진짜? 그 제국인을?”
그 눈동자에 부러움이 더해졌다.
이냐키투가 대족장에 오른 뒤, 투흔족 아이들은 열네 살이 되면 대족장 앞에 마주 앉아 자신의 영혼을 확인받게 된다.
투흔족 아이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의식이었고, 열세 살인 라유비아 역시 내년이면 그 의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네 늑대는?”
“아, 맞다!”
라유비아는 말들이 놀랄 걸 걱정해서 제 늑대를 한쪽으로 숨겨놓았다. 생각난 김에 잘 있는지 살피려는데.
“거기서 떨어져!”
라유비아가 뭉툭한 단검을 빼 들었다. 상대는 네르하임이었다. 그녀는 멀찍이 떨어져 늑대를 관찰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눈으로만 보고 있었단다, 얘야.”
“하늘이나 보고 있으시지? 언제 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말조심하렴, 꼬마야. 벼락보다 더한 게 너한테 떨어질 수 있으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라유비아는 늑대의 목을 어루만지며, 수혈인 성주가 무슨 나쁜 짓을 하지 않았나 꼼꼼히 살폈다. 늑대는 라유비아의 손길 속에, 네르하임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 늑대, 이름은 있니?”
“엘키오.”
“엘키오라… 그래, 투흔족 문제아가 지을 만한 이름이네.”
네르하임은 음흉스럽게 웃었다.
신비로운 늑대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느껴졌다. 엘키오는 짐승을 지배하는 저의 능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있다.
그녀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저 늑대를 지배하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물론 그러려면 먼저 감찰관이 일을 마치고 떠나야겠지만.
‘기대되네.’
그들 곁으로 또 다른 소녀가 다가왔다. 어찌 보면 라유비아보다도 더 거슬리는 아이, 블라네였다.
며칠간 함께 초원을 이동하며 블라네가 독하고 무서운 아이라는 걸 깨달은 네르하임이었다.
“성주님.”
“…….”
“루한 님께서, 라유비아의 늑대를 탐내지 말라 하셨을 텐데요.”
“눈으로만 봤네요, 눈으로만. 쳇!”
블라네가 네르하임을 노려봤다. 투흔의 해일 덕분에 한층 강해진 그녀의 암연. 그녀는 공격적인 암연으로 네르하임을 에워쌌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막 루한 님과 대족장의 대화가 끝났으니, 그리로 가보시지요.”
“왜죠?”
“글쎄요. 볼일이 끝났으니 이제 군영도시로 돌아가라 지시하실 모양인가 보죠.”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네르하임이 눈을 끔벅거렸다. 그 모습이 고소한지 라유비아가 키득거렸다.
블라네의 예측이 맞았다.
대족장과 이야기를 마친 루빈은, 우선적으로 네르하임을 떨어뜨려 놓는 결정을 내렸다. 길 안내를 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이젠 히베르다드 성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할 참이었다.
복귀해도 된다는 말에도 선뜻 움직이지 않는 네르하임에게, 루빈이 물었다.
“혹 다른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쇄골부족에서 성주님을 호위할 투흔인 열 명을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귀환 여정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쿤달리트도 저와 함께 가는 겁니까?”
루빈은 고개를 내저었다.
“쿤달리트는 저와 함께 움직일 겁니다. 대신, 초원의 중간지점까지는 제 수행원, 쿠제가 함께할 겁니다.”
“…….”
네르하임이 얼굴을 한쪽으로 휙 돌렸다. 보호해주는 것도 있지만, 자신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더 명백해 보였다.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기에,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시죠.”
“지금이요?”
“예. 지금.”
쿤달리트한테 지시를 받은 쇄골부족 전사들이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쿠제가 투흔마에 올라타며 말했다.
“루한 님, 저는 지시하신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성주님, 출발하시죠.”
“…예.”
이윽고 투흔마에 오른 두 사람은 전사들의 호위 속에 쇄골부족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움직일까요.”
말에 올라탄 루빈이 남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 곁에는 쿤달리트, 라유비아, 블라네 이렇게 셋이 있었다.
쿤달리트는 망루 앞까지 그를 안내하는 역할이었고, 라유비아는 그보다 앞선 시점에 흩어질 터.
“쿤달리트, 장벽까진 얼마나 걸립니까?”
“날이 저물 때쯤 도착할 겁니다.”
투흔족은 보름에 한 번씩 새로운 자리에 투흔푸를 펼친다. 쇄골부족은 최근 두 달 전까지 장벽 바로 근처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 덕에 아직 목축 흔적이 남아 있어 경로가 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루한 님.”
“예, 말씀하시죠.”
쿤달리트는 거리를 벌린 채 그들을 따라오는 두 소녀를 돌아봤다. 언제 우정을 쌓았는지 모르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라유비아는 왜 데려가시는 겁니까?”
루빈은 블라네를 가리켰다.
“제가 망루에 올라 고고학적 탐사를 하는 동안, 저기 있는 제 수행원이 이곳의 토질을 조사할 겁니다. 저리 아이 같아 보여도 꽤 유능한 조수죠. 그래도 낯선 땅이니, 혼자서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라유비아의 도움이 필요하겠지요.”
“두 아이의 사이가 좋아 보이긴 하는군요.”
“가능한 한 장벽과 거리를 두도록 지시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나저나-”
루빈은 고개를 뒤쪽으로 돌려, 라유비아를 쳐다보았다.
펠키온이 가장 많이 만난 투흔인, 누블라. 저 아이가 누블라의 딸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보고 있지만, 그 외에도 몇몇 특이한 지점들이 있었다.
“쇄골부족엔 아이가 없더군요. 라유비아 말고는.”
“…알아차리셨군요. 사실 몇 년 전 저희 부족에 역병이 돌았습니다.”
“역병이라…….”
“그때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다시금 바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역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국의 의료체계가 있었다면 참사를 막아냈을지도 몰랐다.
마법을 비롯한 여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투흔족은 치명적인 역병조차 ‘바람의 동행’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라유비아입니다.”
열세 살의 라유비아가 쇄골부족에서 가장 어린아이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라유비아가 자신을 소개할 때 ‘누블라의 딸’이라고 하더군요. 그녀도 그때 죽었습니까?”
쿤달리트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벽 근처에 그 당시 떠나간 이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래요? 투흔인들은 풍장(風葬)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예외도 있지요. 물론 그때뿐이었습니다. 역병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슬픔이었으니까요. 아직도 라유비아는 거기서 곧잘 시간을 보내곤 하지요.”
애잔한 투로 말하는 쿤달리트였지만, 루빈은 그다지 감상에 빠져들지 않았다. 곧장 블라네에게 전음을 보낼 뿐.
“…….”
라유비아와 재잘거리던 블라네는 머릿속에 울리는 루빈 목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날카로워졌으나, 금세 웃던 얼굴로 돌아왔다.
-블라네. 우리랑 길이 나뉘면 라유비아에게 제 어미의 무덤에 데려가 달라고 해.
그러면서 루빈은 방금 쿤달리트에게 들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전했다. 전염병과 죽음, 그리고 어미의 무덤에 대해.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라유비아가 다른 이들의 눈에 안 보이게끔 시간을 끌어. 그래야 이마카룸을 유인할 수 있으니.
라유비아의 시간을 뺏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궁금했다. 그래서 어떻게 이마카룸을 유인한다는 거지?
블라네에겐 이런 의문이 생겨나는 건 당연했다. 그녀는 아직 루빈의 로이네크로우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니.
수혈인 성주 네르하임 때문에 그동안 몸을 사렸던 티나였다. 그러나 이젠 네르하임도 떼어놓았으니,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였다.
-티나, 날이 저물면 라유비아로 변해서 쇄골부족의 영역을 돌아다녀. 분명 이마카룸을 만날 수 있을 거야.
* * *
날이 저물고 있었다.
“젠장, 언제 끝나는 거야?”
너무 지루한 나머지, 이마카룸은 말들이 뜯어먹는 풀을 제 입에도 넣어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제국의 방문자들이 쇄골부족의 영역에 머무는 동안 그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되겠기에 피신해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강인한 자신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족장과 쿤달리트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나마 꿋꿋하게 고집을 부려 멀리까지 안 가고, 가장 이웃한 ‘발등부족’의 주거지에 숨어 있게 된 것이다.
“어이, 이마카룸!”
언덕 위에서 발등부족의 투흔마들이 뛰노는 걸 지켜보던 그때. 그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가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쇄골부족 사내였다.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다 끝난 거냐?”
“그래, 제국인들은 다 갔어. 이제 돌아와도 돼.”
말이 떨어지지 무섭게 이마카룸은 투흔마에 올라탔다.
소식을 전해준 사내는 제국 사람들과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부족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랴! 이랴! 좀 더 빨리 가자, 혈족!”
히이이잉! 푸르르르!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투흔마가 속력을 끌어올린다. 이마카룸은 그의 이명 ‘투흔의 바람’처럼 빠르게 초원을 가로질렀다.
예상보다 빠른 저녁 무렵. 그는 쇄골부족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투흔푸들을 지나치며 여기저기 살폈지만, 걱정과 달리 부족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평화로운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별일 없는 건가?”
웃고 떠드는 소리들. 말들의 울음소리도 평상시와 같은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그때, 이마카룸이 온 걸 알아차린 투흔인 하나가 그를 불렀다.
“이마카룸, 라유비아 만났어?”
“라유비아? 라유비아가 돌아온 거야?”
이마카룸은 라유비아가 며칠 전에 훌쩍 모습을 감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대족장을 만나러 왔던 루빈 일행에 그 아이가 섞여 있었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아까 널 찾아다니더라고. 또 무슨 사고를 친 건지 궁금하네. 어쩐지 이번엔 늑대도 안 데리고 있던데?”
잠잠해진 불안이 다시금 꿈틀거린다.
늑대와 떨어져 있다니? 요즘처럼 라유비아가 늑대와 한 몸인 적은 없었다. 특히나 밤에도 늑대를 끌어안고 자는 아이인데.
초원에서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여기에 왔다는 제국 사람들이?
“알겠어, 내가 라유비아 투흔푸에 가볼게.”
라유비아의 투흔푸는, 쿤달리트와 이마카룸의 투흔푸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누블라가 죽은 뒤, 제 어미의 투흔푸를 물려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
투흔푸 안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천막 너머, 불빛에 어른거리는 실루엣은 분명 라유비아다.
“라유비아!”
“어어!”
소리치며 냅다 뛰어 들어가자, 라유비아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유비아가 저런 맹한 얼굴을 할 리가 없는데.
“괜찮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네 늑대는? 그 엘키오라는 놈은 어디다 뒀어?”
라유비아는 침을 꿀꺽 삼킬 뿐 대답하지 않는다. 그게 더 불안해서 이마카룸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도대체 제국 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 이마카룸?”
라유비아가 그 이름을 부르자, 이마카룸은 눈썹을 들어 올린다.
“쿤달리트는? 투흔푸 안이 깜깜하던데.”
“이마카룸! 보고 싶었어!”
“내가 감옥에서 돌아온 지가 언젠데 또 그래? 너, 설마 무슨 사고 친 거냐?”
“아…. 감옥.”
라유비아는, 아니 티나는 이 1급 죄수에게 안긴 채로 눈알을 굴렸다. 얼굴조차 모르니, 냅다 투흔푸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도 이마카룸임을 알아볼 수 없었다.
‘왜 투흔족엔 노크란 게 없냐.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이마카룸이 들이닥치기 직전, 변신 시간의 제약 때문에 잠시 다른 생물체로 변해 있었던 티나였다. 변신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났을 거다.
“일단, 날 따라와 봐, 이마카룸.”
“무슨 일인데?”
“위급 상황이고 비상 상황이야. 대족장한테는 가지 말고, 우리끼리만 움직여야 해.”
위급과 비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마카룸을 흥분시키기엔 충분했다.
“일단 말부터 타자.”
“네 늑대는 어쩌고?”
“그건 나중에. 일단 급하니까 빨리.”
티나는 틈을 주지 않고, 이마카룸을 재촉했다. 이마카룸이 얼마나 똑똑한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됐다.
‘속임수가 먹혀야 할 텐데.’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금세 쇄골부족의 영역에서 벗어난 두 사람. 라유비아는 아직까지도 자초지종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짜고짜 따라 나온 걸 보면 둘 중 하나. 이마카룸이 그다지 신중하지 않거나, 혹은 라유비아를 무지하게 아끼거나. 어쩌면 그 둘 다일 수도 있었고.
물론,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투흔족의 문화에 있었다. 그들은 거짓이란 걸 극도로 혐오하는 부족이기에, 이 모든게 속임수란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마카룸. 지금 상황이 뭐냐면…….”
티나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국 사람 둘이 쿤달리트의 안내를 받아 장벽으로 향하다가 사소한 마찰이 일어났는데, 쿤달리트가 제국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했다는 것.
“뭐? 그게 사실이야?”
이마카룸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넘치는 살기. 얼마나 격렬한지 티나의 암연에 저릿한 울림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제부터 정말 자극적인 부분인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늑대가 크게 다쳤고, 자신만 힘겹게 도망쳤다는 것.
“제국 사람들이 쿤달리트를 장벽 쪽으로 끌고 갔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 이마카룸!”
티나는 울먹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이마카룸의 이름을 힘주어 불렀다. 이마카룸!
이마카룸이 말을 멈춰 세운 건 그때였다. 설마 눈치를 챈 건가? 투흔족 여자애 연기는 처음인데… 너무 서툴렀나?
여차하면 로이네크로우로 변해서 하늘로 날아오를 생각까지 하는 중에-
“걱정 마, 라유비아.”
“…….”
이마카룸이 티나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 제국 사람들, 내가 아작 내 버릴 테니까.”
“…아작 낸다고?”
“아무리 투흔마여도 이대로는 늦겠다.”
이마카룸이 말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걸치고 있던 웃옷을 쫙 찢어버렸다. 그러곤 그대로 바닥에 툭 내던졌다.
완고하면서 상처가 그득한 근육이 달빛에 훤히 드러났다.
“…어쩌려고?”
반응이 이어지기까지 약간의 시간 차가 있었다. 게다가, 그건 대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오싹하기 그지없는 울음소리였으니까.
그르르르르.
그 순간, 티나의 머릿속으로 루빈의 충고가 떠올랐다.
‘수인화! 이마카룸은 수인화가 증명된 투흔인이니까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말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려 했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말이 본능적으로 이마카룸으로부터 물러나고 있었다.
거혈인들의 ‘거대화’는 본 적 있지만, ‘수인화’는 그녀로서도 처음이었다.
스스스슷.
억세고 거친 맹수의 털이 손목에서부터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물감이 쓱 칠해지듯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졌다. 원래부터 거한이었던 몸체도 한 단계 불어났다.
이윽고 이마카룸은, 온통 새까만 털로 뒤덮인 맹수로의 탈바꿈을 마쳤다. 짐승의 동공이 하얗게 점멸했다. 마치 흰자와 검은자가 뒤바뀐 것처럼.
‘표범, 이마카룸의 수인체는 표범이었구나.’
수인체.
그건 맹수의 힘을 받은 무인인 거지, 맹수 그 자체는 아니었다. 엉덩이 쪽엔 움직이는 꼬리가 있었지만, 그 몸은 인간처럼 직립해 있었다.
그 모습으로, 공기를 들여 마셔보는 이마카룸. 그로서도 실로 오랜만의 수인화였다.
크르르르.
그는 사족보행의 자세를 취했다. 질주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수인체가 되어도 이성은 잃지 않는다고 했…었지?’
움직이기 전, 이마카룸은 티나를 바라봤다. 티나는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었으니까.
이윽고, 이어지는 수인의 목소리. 본래 그의 목소리보다 어두우면서도, 분노의 일렁임이 또렷이 느껴졌다.
“라유비아, 넌 대족장에게 돌아가. 안전하게 그곳에 있어. 내가 네 늑대도 데려오고, 쿤달리트도 구해 올 테니까.”
“…으, 응.”
이마카룸이 자세를 낮추고 방향을 가늠한다. 장벽, 동쪽의 망루. 그리고 빌어먹을 제국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하여.
“……!”
타닷! 파바바밧!
도약하는가 싶던 수인이 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졌다. 투흔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속도였다.
“…임무 성공.”
안도의 한숨으로 보상을 대신한 티나는, 곧장 로이네크로우로 변하여 하늘로 떠올랐다. 이제 블라네를 만나야 했다.
‘루빈, 괜찮을까?’
하지만 금세 걱정을 지웠다.
이마카룸과의 싸움은 루빈이 알아서 할 일. 강해지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놈이니, 오히려 싸움을 반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