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10)
암살검가 로이넨-210화(210/258)
제210화. 검의 길 (3)
“크흑!”
라유비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친구라 여겼던 블라네가 한 순간 돌변하여 달려들었다는 것.
도저히 장난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흘러넘치는 살기는 그 행동에 어떤 거짓도 없다는 걸 말하고 있었으니까.
“도, 도대체 왜 그래!”
하지만 공허한 외침이다.
블라네는 검을 들고 있는 라유비아의 한쪽 팔을 뒤로 꺾으며 제압에 나섰다. 주요 관절을 꺾는 것이다.
우두둑, 우두둑.
작은 체구에서 울리는 선명한 소리. 쏟아지는 고통에 소리치려 했지만, 블라네가 입을 틀어막았다. 블라네 눈동자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이 순간, 블라네에게 라유비아는 그저 임무의 표적에 불과했다.
찾고 있던 브리온 오러의 발현자. 모든 게 확실해진 이상, 어린애 장난은 끝났다. 이젠 제압해야 할 대상일 뿐.
‘기절시켜서 도련님한테 데려가야겠어.’
블라네는 암연으로 라유비아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숨결을 막으면서 의식을 끊으려는 것이다.
“…….”
라유비아의 입을 틀어막은 그녀 손이 축축해졌다. 눈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유목민족의 소녀는 고작 눈물이나 흘릴 뿐이다.
그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암살자로 육성되는 암살검가의 자제에게, 표적이 흘리는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읍… 읍…….”
라유비아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래, 잠들어라.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가 그렇게 잘생겼다며 좋아하던 루한 멜라스를 마주하게 해줄게.
그런데 그때였다.
끼리이, 끼리이.
블라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필 이때 괴수라니.
돼지 머리에 박쥐의 몸을 지닌 이름 모를 괴수. 하늘을 떠돌다 이제 막 두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끼리이!
놈들이 사냥감을 향해 쇄도한다.
라유비아를 기절시키긴 했지만 금방 의식을 되찾을 터.
블라네는 일단 라유비아를 붙들고 돌무더기 아래로 뛰어내렸다. 괴수 두 마리가 그대로 돌무더기에 떨어져 내린다.
쿵!
“귀찮은 놈들.”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오히려 화살 두 발 쓰는 게 아까울 정도다. 블라네는 무릎으로 라유비아를 짓누른 채, 두 괴수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와라.”
타닷, 소리와 함께 놈들이 날아오르자 블라네는 암연으로 감각을 벼렸다.
두 놈이 앞뒤로 겹치는, 이때!
손끝을 떠난 단 한 발의 화살이 그대로 놈들을 관통한다. 끼리리리! 울부짖으며 놈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으… 으, 도, 도대체 왜?”
정신이 돌아온 라유비아의 물음이었지만, 블라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제대로 기절시키기 위해 다시 암연을 움직이려는데.
크르르르르.
“…젠장!”
늑대 소리다. 경계용으로 암연을 배분해놨어야 했는데, 너무 소홀했던 게 실책이었다.
이젠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암연이 경고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라유비아가 아니라,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해질지 모른다고 말이다.
‘엘키오라 했지.’
그 본인은 얼굴조차 기억 못 하는 아비의 이름 ‘펠키온’. 엘키오라는 늑대의 이름은 거기서 따온 게 분명했다.
휘이이이.
엘키오의 털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 서늘한 눈동자가 블라네에게서 움직이지 않는다.
살기. 분명한 살기였다.
심지어 암연을 저릿저릿하게 할 정도다.
“쉽지 않겠는데.”
이 늑대는 체구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괴수에 비하면 그저 맹수에 불과한 외형. 하지만 단순한 외형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힘이 있었다.
늑대가 앞발을 한 발짝 움직였다.
두우웅.
놀라웠다. 공기의 울림이 달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암연은 재난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려대는 중이다.
‘어쩌면 내 예상이 한참 잘못됐을지도 몰라.’
늑대의 무위는 2, 3성의 무인과 동격일 거라 생각했다.
예전이라면 이마저도 어려운 싸움이었겠지만, 지금의 블라네는 루빈 덕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터.
그런데 저 늑대, 어쩌면 4성보다 더 강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 한 번 움직였을 뿐이지만, 블라네는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본능으로 알았다.
“후…….”
크르르르르.
블라네의 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선명한 목소리. 다름 아닌 늑대에게서 나온 인간의 언어였다.
“잘 들어라, 인간.”
“……!”
맹수가 말을 한다. 오크조차 이토록 명확하게 말을 할 순 없는데?
“그 아이는 네가 그렇게 깔고 있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뭐?”
“하여간, 라유비아도 참…. 인간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
“너는 뭐지? 마수(魔獸)인가?”
그게 블라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한계였다. 마법에 의한 생물체라면,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질문은 내가 하지. 왜 라유비아를 공격하는 거지? 역시, 투흔과 제국의 관계 때문인 건가?”
“…….”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네. 뭐, 좋아. 교육비가 비싸긴 했지만, 너희 덕분에 라유비아에게 좋은 가르침이 됐을 거다. 인간의 거짓된 얼굴에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말이지.”
그 말만 들어보면, 마치 라유비아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네가 보좌하는 그 남자도 한패겠지?”
“…….”
“오랜만에 제대로 싸우겠군. 투흔족 아이가 내 주인이라는 사실에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지루하다고?”
“너도 봤잖아, 라유비아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평화롭다는 거. 나도 보잘것없는 괴수보다는 제대로 된 놈들을 상대하고 싶던 차였다.”
말이 계속될수록 블라네는 모욕감을 느꼈다.
늑대는 라유비아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블라네와 싸움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분노와 여유가 동시에 느껴지는 그 태도가 짜증 났다.
‘발을 보자, 발을.’
블라네는 엘키오의 앞발에 집중했다. 다리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순간, 그때가 싸움이 시작이라 여겼던 그녀는 곧바로 바닥을 차며 뒤로 움직였다.
타닥!
뒤쪽으로 몸을 빼내면서도 그녀는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곧 늑대를 향해 연달아 날아가는 화살들.
휘유융! 휘융! 휘유융!
그러나 늑대는 쇄도하는 움직임에서 방향을 약간 틀어버리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화살을 피해냈다
잔상이 일어날 정도의 속도감. 블라네의 화살은 속절없이 늑대의 잔상만 뚫고 바닥에 꽂혔다.
‘제길!’
블라네는 곧바로 다음 작전에 들어갔다. 무려 다섯 발의 활을 한꺼번에 시위에 걸었다. 그러면서 뒤로 도망치는 것 대신 앞쪽으로 방향을 전복했다.
다섯 발의 화살을 동시에 날린 다음, 엘키오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회피를 이끌어내 변칙적으로 치명타를 입힌다.’
증명하고 싶었다. 루빈과의 시간은 헛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경지의 성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투 능력까지 끌어올렸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 *
퍼드덕! 퍼드덕!
티나는 로이네크로우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블라네의 로이네크로우 오호스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이마카룸에게 계략을 성공시키면, 곧바로 블라네를 찾아 움직이라는 루빈의 지시가 있었다.
‘루빈은… 뭘 걱정하는 거지?’
당연하게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던 루빈이었다. 그 역시 짐작되는 게 있다면서 그저 오호스와 함께 움직이라는 걸 강조했을 뿐.
그래서 오호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티나는 블라네와 연결감을 갖추지 못했지만, 오호스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쟤, 왜 저래?’
오호스가 날갯짓에 힘을 주며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리라.
속력이라면 오호스보단 티나가 월등했다. 티나는 곧바로 오호스와 나란히 날며 부리를 움직였다.
까아아, 까아악!
뒤이어 오호스 쪽에서도 울음이 이어졌다. 티나는 로이네크로우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블라네가 위험하다고?’
혹시 이마카룸이 루빈이 아닌 블라네 쪽으로 간 건가? 그게 아니면 블라네가 위험해질 만한 상황은 없을 텐데.
까아아아!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오호스의 날갯짓에 간절함이 묻어날 정도였다.
“오호스! 뭐가 보여? 블라네의 근처에.”
연결감이 높을수록, 로이네크로우는 제 주인의 감각을 섬세하게 공유받는다. 만약 블라네가 상처를 입는다면 오호스는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 주변 환경도 점멸하는 장면으로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었다.
까아아아. 까아아아.
“흠, 그렇단 말이지…….”
티나가 제 날개에 힘을 불어넣는다. 그녀 특유의 민트색 눈동자가 한순간 짙어지면서, 환혈족 특성 ‘속도’가 발휘되었다.
뒤이어, 블라네를 향한 쾌속 비행이 시작됐다.
잠시 후, 오호스가 목격한 걸 기반으로 쇄골부족의 무덤 인근에 도착한 티나. 이 부근이 확실한 것 같은데, 아직까진 블라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챙! 챙! 콰콰쾅!
어느 순간, 밤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굉음이 티나에게 닿았다. 다행히 아직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최악으로 치달은 것까진 아닌가 보다.
티나는 날개를 접고, 지상을 향해 쇄도했다.
‘와, 벼락이라도 맞았나?’
전투의 흔적이 엄청났다. 바닥이 파헤쳐지고,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한쪽엔 쓰러진 라유비아가 보였다. 그리고-
“뭐야, 웬 늑대?”
늑대와 블라네와 싸우고 있었다. 예상했던 상황과 달리 이마카룸은 어디에도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저 늑대가 이마카룸과 다를 바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었다.
블라네의 온몸에 상처가 낭자했다. 언제부터 싸운 건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블라네는 지금 그저 ‘버티기 위한 싸움’을 하는 중이라는 점.
‘일단 블라네부터 구해야겠네.’
까아아아악!
“……!”
공중에서 울리는 까마귀 울음에 엘키오와 블라네가 동시에 반응한다.
순간적으로 오호스가 나타난 거라 생각했던 블라네였지만, 이내 루빈의 로이네크로우라는 걸 알아보곤 실망했다.
하지만, 머뭇거릴 순 없었다.
블라네는 바위를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그런 그녀를 티나가 낚아챘다.
“고마워, 티나!”
“별말씀을.”
“말을 할 줄 알아?”
로이네크로우한테서 인간의 언어가 나오자, 블라네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키오에 이어 티나까지?
그 놀람을 알아차렸는지 티나가 가볍게 웃으며 사실을 밝혔다.
“이제야 제대로 인사하게 되는 건가? 난 루빈의 로이네크로우이자 환혈족이거든.”
“화, 환혈족?”
이미 루빈의 허락을 받은 티나였다. 블라네에겐 진짜 정체를 밝혀도 된다고. 티나는 깜짝 놀란 얼굴의 블라네를 안심시켰다.
“자세한 얘긴 나중에 하자. 그나저나 저 늑대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휘우웅. 휘우우웅.
“어떻게 된 거냐면…….”
티나는 지상의 늑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비행했다. 늑대가 도약하여 낚아채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도 없게끔.
그렇게 공중을 맴돌며, 블라네가 말해주는 것들로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아이가 루빈이 찾고 있는 그 오러의 주인이다?”
“응.”
“그리고 저 늑대는 5성의 무위를 지녔고, 또 말까지 한다고?”
“그래, 어쩌면 엘키오도 환혈족 아닐까?”
그 말에 티나가 코웃음을 쳤다. 환혈족이 맞는다면 늑대의 모습으로도 인간의 언어를 쓸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추측은 틀렸다.
환혈족의 피에는 폭력에 대한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위협을 가하는 괴수에게 반격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게 정상이었다.
‘설마?’
그 순간 티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의 이미지. 몇 개월 전이었으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루빈의 수다쟁이 룸메이트 오스카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오스카 곁을 지키던 한 놀라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푸른 깃털의 그리폰.
‘이름이 셀록이라 했었지?’
아무리 시도해봐도 티나는 결코 그 존재로 변할 수 없었다.
과연,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뿐일까?
‘확인해보면 알겠지!’
까아아아.
때마침 오호스가 도착했다. 티나는 오호스에게 블라네를 넘겨주고, 저 늑대로 변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변신이 불가능하다면, 저 늑대 또한 셀록과 동격의 존재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래쪽.
“크르르르르… 젠장할.”
하늘을 올려다보던 엘키오. 블라네와 싸울 때까진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 커다란 까마귀들을 보니 생각보다 좋지 못한 상황에 얽힌 것 같았다.
“엘키오… 어떻게 됐어? 블라네는?”
정신을 차린 라유비아가 그를 발견했다. 엘키오가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설마, 걔를 죽인 거야?”
“…….”
“걘 내가 반역자의 딸이라서 그런 걸 거야. 말하지 말걸 그랬어.”
그때, 엘키오가 아가리를 벌려 라유비아의 옷을 물었다. 그러더니 휙 자신의 등에 태웠다.
“라유비아,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음?”
“하늘을 봐.”
하늘엔 두 마리의 까마귀가 활공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에 올라타 있는 블라네도 보였다.
괴수인가? 라유비아의 눈에는 저토록 커다란 까마귀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번에 했던 이야기 기억해? 그랑버드만큼 위험한 놈들 이야기.”
“그 까마귀?”
“그래. 그때 같이 말했었지. 암연의 일족이라고.”
“기억 나.”
둘이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엘키오가 해준 이야기였다. ‘세력’에 대하여 그리고 ‘신수’에 대하여. 그런 거대한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암연의 일족’이라는 자들이었다.
물론 라유비아는 기억만 할 뿐, 그때나 지금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일단 피해야겠어. 저 여자애 하나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치우겠는데, 문제는 하나가 아니라는 거니까.”
“루한?”
“그래, 로이네크로우가 두 마리잖아. 그놈도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아. 저 여자애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놈까지 합세하면 어찌 될지 몰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내가 질주하면 저놈들이 따라붙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다행히 안전하게 피신할 장소도 준비되어 있었다. 저놈들이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만한 장소가.
“일단 움직이자, 라유비아. 꽉 잡아.”
“그치만…….”
엘키오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라유비아는 늑대 갈기를 꽉 끌어안으며 불안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엘키오가 말했다.
“부디 저놈들이 ‘반역자의 딸’을 찾으러 온 것이길 빌자. ‘선택받은 검제’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