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12)
암살검가 로이넨-212화(212/258)
제212화. 흑표의 수인, 흑칠의 오러 (2)
“블라네, 깨어났구나? 견딜 만해?”
“…이제는 괜찮아.”
“조금만 참아.”
두 마리의 로이네크로우, 티나와 오호스였다. 블라네는 오호스의 등 위에 눕혀 비행 중이었다. 장벽의 동쪽 망루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블라네는 암살검가의 비약(祕藥)과 암연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엘키오가 남긴 상처는 가볍지 않았다. 오호스에 올라탄 채로 두 시간을 꼼짝없이 잠들었어야 했다.
깨어난 블라네는 한숨을 내쉬며 자책했다.
“브리온 오러의 발현자를 놓쳤어.”
라유비아를 생포해 루빈에게 데려가려 했지만, 늑대 엘키오를 얕잡아 본 게 실책이었다.
엘키오와의 끔찍했던 전투가 다시 떠올랐다.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질 만큼 힘겨운 전투. 잠잠해진 고통이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아냐, 그 덕분에 또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으니까.”
또 하나의 비밀?
“티나, 그 늑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음… 짐작 가는 게 있지만, 아직은 말해줄 순 없어. 루빈에게 먼저 말해줘야 할 거라서.”
루빈을 거쳐야 하는 비밀이라는 말에 블라네는 곧바로 수긍했다. 사실, 당장 중요한 문제는 엘키오나 라유비아가 아니었다.
‘루빈과 이마카룸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거야.’
이마카룸의 수인체를 보았던 티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둘의 싸움은 아침이 올 때까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루빈이 패배할 수도 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저거, 설마…….”
동쪽으로 향하던 그들 눈에 명멸하는 섬광이 들어왔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거대한 빛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역시 아직도 싸우고 있구나.”
더 가까이 가니, 공기의 파장 또한 느껴졌다. 밀어내는 힘이 대단했다. 한번 격돌할 때마다 날개에 힘을 줘야 할 정도였다.
‘블라네와 엘키오의 싸움도 엄청나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그 차이가 명확했다. 초원이 하나의 생명체라 가정한다면, 블라네와 엘키오의 싸움은 그저 작은 생채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두 오러의 격돌이 초원에 만들어낸 상흔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날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격렬했다.
콰콰콰콰쾅!
“도대체…….”
섬광 직후에 언뜻 드러나는 두 인영. 블라네의 암연으로는 그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조차 간단치 않았다.
‘엘키오 말고도 다른 놈이 있었나?’
루빈과 맞서고 있는 저 검은 짐승은 분명 엘키오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블라네는 자신이 착각했음을 금세 깨달았다.
“저 흑표범이 바로 그 범죄자라는 거지?”
“맞아, 이마카룸이야.”
“엄청나구나, 도련님과 싸우면서도 전혀 밀리질 않잖아.”
말 그대로 호각지세.
블라네의 감탄은 루빈보다는 이마카룸을 향했다. 하긴, 블라네에게 루빈은 완성형의 무인이었으니까.
반면, 티나의 관점은 달랐다. 티나는 극한의 힘까지 끌어올린 루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로젠탈러와의 사투. 그때로부터 얼마나 지난 거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때는 로젠탈러의 약점까지 찾아두고 시작했던 싸움이었는데도 어렵게 이긴 루빈이었는데.
그때의 로젠탈러가 지금의 루빈과 맞붙는다면? 틀림없이 싸움은 싱겁게 끝날 것이다. 패배하는 쪽은 당연히 로젠탈러일 테고.
‘초원에서 단 한 번도 ‘투흔의 해일’을 피하지 않았다더니. 또 무섭게 성장했네.’
지금의 이마카룸은 수인화의 영향으로 5성이 아닌 6성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일시적으로 경지를 끌어올려 전투 병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절대로 이마카룸이 약한 게 아닌데도 싸움의 균형은 이미 기울어진 것 같았다.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이미 끝나 있었겠는데.’
아침이 올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고치는 티나였다. 싸움은, 이미 막바지에 도달한 터였다.
* * *
크르르르카아!
이마카룸이 포효하며 공격을 이어나간다.
공기를 가르는 흑표의 발톱.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단검의 길이만큼 길어졌다. 심지어 발톱엔 투흔 오러가 형형하게 빛나며 응집한 상태였다.
수인에게 몸은 그 자체로 무기. 그래서 검이나 창 같은 다른 무기가 불필요했다.
그들의 감각은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월등했다. 체계적인 무술 같은 건 없었지만, 맹수의 본능이 그들의 무위를 절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한편, 루빈은 암연을 유연하게 전환시키며 감각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하고 있었다.
순발력과 민첩함을 폭증시키고, 어쩔 땐 근력마저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드드드드드.
이마카룸이 깍지 끼듯 두 발톱을 교차시킨 채 루빈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흑표의 발톱은 흑칠의 오러 앞에 맥없이 막힌다.
검신에 오러를 응집하는 한편, 암연으로는 검을 쥔 팔 힘을 극대화하는 루빈. 힘 싸움에도 두렵지 않았다.
크드득.
땅을 디디고 있던 그들의 다리가 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
이마카룸의 반전된 눈동자에 놀라움이 떠오르는 게 당연했다. 흑표로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힘에서 밀린 적이 없던 그였으니.
크드드득.
충격은 더 커져갔다. 그의 발톱이 점점 뒤로 밀리고, 루빈의 검신은 어느새 목 앞까지 다가왔다.
결국, 이마카룸은 힘 싸움을 멈추기로 했다. 검고 긴 꼬리로 루빈의 발을 휘감아 힘을 준다. 중심을 흩뜨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 발로 루빈의 하복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루빈의 반격도 이어졌다. 검을 쥐지 않은 손을 펼쳐 이마카룸의 복부 가까이 댄다. 다만 그 몸에 밀착시키진 않고, 약간의 틈을 남겨둔 채로.
펑!
‘파공’이 터졌다.
이마카룸의 몸이 살짝 튀어 오르자, 루빈은 다시 한번 파공을 날렸다.
펑!
뒤편으로 튕겨 날아가는 이마카룸. 그 꼬리가 여전히 루빈의 발을 붙들고 있어 둘은 함께 튕겨져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둘은 허공에 뜬 채 계속해서 격투를 벌였다. 오러가 격돌할 때마다 대지가 진동했다.
쾅! 콰쾅! 쾅!
다시 지면에 내려온 둘은 서로에게 떨어져 잠시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이마카룸은 동굴 쪽을 바라봤다. 동굴 앞에 매여 있던 두 필의 투흔마. 이미 전투에 휩쓸려 죽어버렸다.
루빈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비록 투흔마는 죽었지만, 동굴 안에 기절해 있는 쿤달리트는 아직까진 전투의 여파를 피해간 상태였다.
‘뭐, 운 나쁘게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때, 루빈의 또 다른 감각이 하늘에 나타난 두 로이네크로우를 찾아냈다.
블라네를 태운 오호스와 티나. 둘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끝내야겠군.’
루빈은 마지막 격돌을 가늠했다. 지니고 있는 모든 힘을 써야 할 때였다. 흑칠의 오러가 더 짙어졌고, 검신에서 뿜어지는 핏빛서리의 눈보라가 맹렬하다.
한순간 눈빛이 짙어지는가 싶던 루빈은, 이마카룸을 향해 그대로 도약했다.
이번 격돌이 마지막이라는 걸 감지했는지, 이마카룸도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포효를 쏟아냈다.
크르르르카아!
둘은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높이까지 뛰어올라 격돌, 공격을 나누기 시작했다. 검격과 발톱이 서로를 향해 쏟아졌고, 그 순간마다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상으로 떨어지는 둘. 맹렬했던 검격의 끝, 흑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큭.”
결국 흑표의 하복부에 박혀 들어간 루빈의 핏빛서리. 역수로 쥔 검을, 루빈은 그대로 쇄골까지 밀어올렸다.
“크아아!”
불꽃이 타오르듯 붉은 검의 궤적이 아래에서 위로 직선을 그렸다. 검궤의 마지막은 암살검가의 검술 5식, ‘그림자 불꽃’이었다.
‘끝났다.’
곧 흑표의 가슴팍에 다섯 갈래의 검궤가 길을 만들고, 고통에 찼던 신음도 거기서 멈추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쿵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흑표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했다.
“하아… 제길.”
이마카룸은 쓰러진 채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선 다섯 갈래의 피가 쿨럭쿨럭 쏟아져 나왔다.
그의 반전된 눈동자에 담겨 있는 밤하늘.
“어째 오늘따라… ‘하늘의 문신’이…….”
스스스.
더 이상 수인화를 유지할 힘조차 없기에 그의 몸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거칠기 그지없는 그의 얼굴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체의 검상과 다를 바 없이 쿨럭쿨럭.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며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참 지랄도 맞지. ‘하늘의 문신’이 너무 아름답잖아…. 말 궁둥이처럼.”
“…….”
잠시 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루빈. 감정이 배제된 그 검은 눈동자에 이마카룸은 끝을 예감했다.
“…사냥꾼, 빨리 죽이는 게 좋을걸. 앞서간 ‘투흔의 불꽃’을 쫓으려면.”
하지만 루빈은 그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이마카룸 옆에 털썩 주저앉을 뿐.
“내가 왜 널 죽여야 하지? 넌 감옥으로 돌아간다.”
“…뭐?”
“지금은 죽을 것처럼 아프겠지만, 네 목숨을 끊어낼 만한 궤적은 아니었다. 그리고-”
스으으으.
루빈은 흑칠의 오러를 잠재운다. 그의 의지에 따라 핏빛서리도 한기와 눈보라를 거둬들였다.
“‘투흔의 불꽃’은 무사해. 잠깐 기절시켜둔 것뿐이니까.”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루빈은 피식 웃었다. 내가 자신을 풀어준 그 사람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 볼만하겠네.
“너희 대족장은 뒤를 이을 사람으로 쿤달리트를 내정해뒀더군.”
“……!”
물론, 그것도 쿤달리트가 건강할 때에야 가능하겠지만. 루빈은 그 정도에서 말을 맺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카룸을 그대로 놔둔 채, 한쪽으로 발을 뗐다. 이제는 티나, 블라네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였다.
둘에게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 지시에 따라 두 로이네크로우가 방향을 잡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
두근!
루빈의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단순한 박동이 아니었다. 뒤이어, 암연의 환이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을 일으켰으니까.
“허억.”
숨이 턱 막힌다. 마치 검이 심장을 관통한 기분. 전투 중에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루빈이었는데, 무력하게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뭐지?’
다가오는 두 로이네크로우의 날갯짓이 다급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투우우우웅.
이번엔 그의 가슴팍에서 시작된 둔중하고 거대한 울림.
루빈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반구형의 돔이 퍼져나간다. 소리 없이 면적을 넓히는 반투명한 막. 이마카룸 또한 이에 삼켜졌지만, 그에겐 아무 영향도 없었다. 그는 암연을 지니지 않았으니까.
“……!”
막이 지나쳐가는 찰나, 블라네와 티나는 저들의 몸과 암연이 순간적으로 부유(浮游)하는 걸 느꼈다. 고작 1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똑똑히 말이다.
“도련님!”
“루빈!”
그들에겐 1초, 하지만 루빈에겐 훨씬 긴 시간이었다. 내면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 * *
어둠이다.
밤이 만들어내는 어둠과는 또 다른 어둠.
루빈이 기억하는 건 심장에 가해졌던 엄청난 고통, 그리고 티나와 블라네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퍼져나갔던 괴이한 울림뿐이었다.
그 순간 커다란 막이 퍼져나갔고, 루빈 앞으로 어둠의 공간이 펼쳐진 것이다.
모든 걸 지우는 어둠 속. 방향도, 높이도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깊은 심해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하네케?’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껴 내면을 들여다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하네케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절한 건가? 아니면… 내면세계의 붕괴?’
루빈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가드는 느낌도 없이, 루빈의 눈앞에 어떤 형체가 스르르 나타난다.
어둠을 굴절시키는 또 다른 어둠. 일렁이는 암흑의 물질. 그것은 루빈과 같은 인형(人形)이었다. 얼굴도 표정도 없이, 마치 그림자 같은 인형.
-넌 기절한 게 아니야.
“……!”
-그리고 하네케는 여기 없어.
루빈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는 암흑 인형. 표정은 없지만, 왠지 이쪽을 바라보며 얇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넌 날 알 거야. 이미 예감하고 있으니까. 자, 네 예감을 말해 봐.
예감을 말하라고? 무슨 말이지? 그러자 암흑 인형이 느긋한 투로 말했다.
-넌 지금 초월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 있어. 남들에겐 1초에 불과한 영원 속에.
“혹시 넌-”
-맞았어.
그런데 입을 떼기 무섭게, 암흑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네 예감대로, 나는 ‘암연’이야. 그리고 넌 막 6성에 도달했어.
루빈의 예감이 적중했다. 이마카룸과의 싸움 끝에 6성의 벽을 넘은 것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궁금증. 하지만 뭐라 묻기도 전에 암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네가 처음이야.
“…내가 처음?”
-6성에 도달했다고 누구나 날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래, 맞아. 베닉도, 킬리언도, 너희 어머니인 세이렌도. 날 만날 수 없었지.
왜지? 왜 하필 나인 거지?
암연이 대답했다.
-오직 너에게만 펼쳐진 일이니까. 이게 네 숙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