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26)
암살검가 로이넨-226화(226/258)
제226화. 칼란타 군영
“…….”
네르하임은 펼쳐진 대륙 전도 속 북부초원을 가만히 응시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북부초원의 면적은 옛 시대에 비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엄청난 면적이었다. 개척만 한다면, 도시를 건설하고 교역로를 개설하는 등 제국으로선 다양한 쓰임새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대로 남겨두었을까. 투흔족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아니다. ‘투흔의 해일’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황제 폐하의 주도하에 ‘해일을 이겨내는 약물’이 개발되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개척. 즉 전쟁의 시작이다.
“저 넓고 푸른 땅을 개척하면 그 이득이 얼마나 클까. 상상이나 해 봤나? 북부초원 개척이 제국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말일세.”
“…개척의 필요성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이미 오래전에 개척되지 않았겠습니까.”
“하긴. 개척의 필요성 따위 뭐가 중요하겠나. 바로 지금, 황제 폐하께서 그리하시길 원한다는 게 중요하지.”
맞는 말이었다. 애초부터 황제가 원했기에 이 작전이 착수됐던 것. 모든 것은 그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럼 극지의 괴수는 얼마나 유입되는 겁니까?”
“현재 파악하기로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한 괴수 수가 5천이 넘는다더군.”
장벽 인근의 괴수들. 괴수끼리 세력 다툼을 하면서 개체 구성이 바뀐 것까지 감안한 최소한의 수치였다.
“5천을 모두 유입하는 겁니까?”
덤프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5천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장벽을 개방하여 그만큼의 괴수를 북부초원으로 들인다면, 그 일대가 지옥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괴수의 해일.’
순간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게 되는 네르하임이었다. 그걸 입 밖으로 낸다면, 덤프 장군은 끌끌 웃으며 재밌는 표현이라 칭찬했겠지.
가장 먼저 ‘괴수의 해일’을 맞는 건 장벽에 인접해 있는 쇄골부족이 될 거였다.
첫 번째 밤이 지나기도 전에, 쇄골부족의 모든 투흔푸가 갈기갈기 찢기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될 것이다.
대다수 투흔인은 전투 능력이 미비했고, 다섯 부족 모두 경비 체계랄 것이 없으니 이는 기정사실이었다.
“괴수들로 투흔인들을 청소한다.”
청소부. 제국 입장에서는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투흔족이란, 제국의 확장을 위해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니.
“하지만 청소를 마친 다음에도 괴수가 초원에 버티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약물의 효능에 따라 ‘투흔의 해일’에 면역이 생겼다면, 괴수들이 초원의 새로운 주인으로 군림하려 할 수도 있었다. 몇몇 종은 번식력이 바퀴벌레를 능가하는 경우도 많았고.
괜히 장벽 안쪽에 괴수 범람지를 만드는 꼴이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덤프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다음 단계가 수립되어 있지. 그것도 두 가지나 말이야.”
하나는, ‘투흔의 해일’ 면역을 무효화하는 또 다른 약물의 투여.
투흔족을 완전히 박멸한 뒤, 면역 약물의 역반응을 이끌어내는 또 다른 약물을 초원 곳곳에 투여하는 작전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때였다.
피이이이잉.
집무실의 통신석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말을 멈춘 덤프 장군은 통신석으로 다가갔고, 곧 연결된 부관과 대화를 나눴다.
“…알겠다. 지금 출발하도록 한다.”
까닥까닥.
이윽고, 통신석을 통한 대화를 마친 덤프 장군이 네르하임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만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마침 잘 됐군, 네르하임. 나랑 같이 움직이지.”
“……?”
“청소부를 처리할 두 번째 방법이 뭔지, 내 보여주겠네.”
말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건가. 네르하임은 상관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어차피 히베르다드 성주로서 당장 해야 할 일도 없었고.
“당황할 건 없어. 어차피 자네로서도 며칠 후에 봤어야 하는 거니까. 뭐, 찾아온 김에 미리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저와 연관이 있는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기에 자네의 임무도 있거든.”
그러고 보니, ‘일몰 작전’ 자체에만 너무 몰입했던 모양이다. 정작 자신이 왜 이 작전에 투입됐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아주 재밌을 거야.”
집무실을 나서기 전, 덤프 장군은 두툼한 담배를 또 입에 끼워 물었다.
네르하임과 덤프 장군은 마차를 타고 두 시간을 이동했다. 군단장이라는 직책이 제국군 안에서도 요직인 만큼, 마차 앞뒤로 철통같은 호위가 붙었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산악지대. 완전히 인적이 끊긴 곳이었지만, 주변 곳곳에 제국군의 경비 병력이 눈에 띄었다.
네르하임은 수혈인의 능력으로, 작은 들짐승들을 통해 주변을 탐색했다. 경비 병력의 군세가 대단했다. 그저 진지(陣地)를 예상했으나,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인 군영에 가까웠다.
덤프 장군에게 묻자, 그가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우리 군단의 제4군영도시랄까.”
군단은 군영도시 셋의 집합체이니, 이는 군단의 숨겨진 군영도시라는 뜻이리라.
어둠 속 협곡의 군영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숨겨져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테니.
이후, 그들은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시찰을 위해 군단장이 왔다는 걸 알아본 제국군 병사들이 절도 있게 군례를 올렸다.
‘협궤 열차?’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었다. 몸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직사각형 차량. 워낙 좁아서 한 명씩만 타야 했다.
선로는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산의 내부로 이어졌다.
‘괴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네.’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선로를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여기 올 때마다 늘 짜릿하단 말이지. 안 그래? 곧 여길 방문할 대장군께서도 그리 느끼시면 좋겠는데.”
덤프 장군이 직사각의 차량에 먼저 들어가 자세를 잡았다. 두 팔을 옆 난간에 걸쳐둔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욕조에 들어간 노인 같았다.
반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네르하임. 그 모습에 덤프 장군이 끌끌 웃어댔다.
장군 뒤 차량에 네르하임이 타고, 그 뒤로는 호위 병사들이 하나씩 탑승했다. 이윽고 열차가 줄줄이 출발했다.
‘먼저 살펴봐야겠군.’
다행히도 주변에 네르하임이 정신 지배할 수 있는 박쥐가 얼마든지 있었다. 네르하임은 박쥐 두어 마리를 한데 묶어 선로의 도착 지점을 향해 날려 보냈다.
이후 수혈의 능력을 날카롭게 다듬고 있는데, 덤프의 목소리가 와 닿았다.
“마음껏 살펴봐. 어차피 이번 작전이 끝나면 없어질 군영이니까.”
“…….”
그녀가 짐승을 이용해 주변을 살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뭐, 허락까지 해주었으니 머뭇댈 필요는 없었다. 네르하임은 눈을 감고 박쥐에 대한 정신지배를 더 강화했다.
트트트트트트.
내리막에 들어선 협궤.
차량에 속도가 확 붙었다. 담배를 새로 피우려는데 거센 바람에 성냥불이 꺼져버리자, 덤프 장군이 인상을 팍 구겼다.
결국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고개를 돌려 자신보다 앞선 차량에 타고 있는 부관을 바라봤다. 소리칠 필요도 없었다. 워낙 목소리가 우렁찼으니까.
“부관! 단검 있으면 던져.”
“예, 장군님!”
부관이 제복 안쪽으로 착용하고 있던 단검을 꺼내고는, 그대로 허공에 놓아버렸다.
슈우우우웅! 바로 다음 차량의 덤프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는 가볍게 받아냈다.
위우우웅.
덤프는 단검에 오러를 발현했다. 바람이 아무리 거센들, 작열하는 오러가 꺼질 리는 없으니까.
화르륵.
오러에 휩싸인 단검을 입에 문 담배 끝에 가져다 댔다. 드디어 불붙이는 데 성공한 덤프 장군은 클클클 웃었다. 소문대로 북부 군단 최고의 애연가다웠다.
“…….”
장군은 다음 칸의 네르하임을 바라봤다. 눈을 감고 있던 네르하임이 움찔한 것도 그때였다.
“자네 동물 친구들이 뭘 알려주던가?”
트트트트트.
네르하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협궤를 나아가는 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 목에 핏대를 세울 만큼 소리쳐야 했다.
“…오크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오크!”
“제대로 봤어. 역시 뛰어난 수혈인이구먼!”
덤프 장군은 장난스레 단검에 오러를 입혔다가 거두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번쩍번쩍. 어둠을 몰아내는 적갈색 오러. 그는 하나뿐인 눈으로 단검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총합 1만의 오크지.”
“1만…….”
이미 박쥐를 통해 협곡에 바글바글한 오크들을 보았음에도, 구체적인 숫자가 발설되자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1만이라는 규모는 일반인들로선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숫자.
그래도 네르하임은 북부2군단에 소속된 자이니만큼, 넓은 연병장에 그만큼의 병사들이 도열한 걸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도 체감했던 터.
‘그래도 이건 달라.’
사람이 아닌, 오크다. 이토록 많은 오크는 처음이었다.
박쥐가 보여준 바에 따르면, 협곡의 지하에 거대한 도시가 구축되어 있었다. 자연과 인공의 건축물들이 괴상하게 뒤섞인 층층의 공간들. 그곳에 오크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오크들이 모두 전사라는 점이었다. 전쟁이 임박하여 대기 중인 전사들.
‘도착하는 게 겁나는데.’
차량은 죽 나아가 선로의 끝에 다다랐다. 차량 밖으로 나오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낭떠러지 저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중이다.
“저 아래에… 1만 오크전사들이 있는 겁니까?”
“그래, 오늘은 아래까지 내려가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
덤프 장군이 앞서 걸어갔다. 일행은 벽면에 붙어 있는 아슬아슬한 다리 위로 올라, 죽 걸어 올라갔다. 다리 끝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누각이 보였다.
누각은 이곳의 지휘소였다. 정중앙에는 덤프 장군 전용의 안락한 의자도 비치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선 군영의 지휘관. 그는 민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덤프를 향해 군례를 올렸다.
네르하임이 조심스레 물었다.
“장군님, 이 군영에 이름이 정해져 있습니까?”
“이름? 뭐 비공식적인 군영이라, 대충 ‘칼란타 군영’이라 하고 있지.”
덤프 장군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크들 보니까 설마 내가 반란이라도 꿈꾸는 건가 싶지?”
“아닙니다.”
“걱정할 거 없네. 저 오크들은 황궁의 인가를 받아 만들어진 병력이니까.”
“…‘일몰 작전’에 투입되는 겁니까?”
“맞아. 사실상 주축이지. 이번 작전에서 인간 병사가 초원에 발을 디딜 일은 없을 거거든.”
덤프 장군이 안락의자에 앉자, 군영 지휘관이 옆으로 착석했고, 네르하임을 위한 의자도 마련되었다.
네르하임은 칼란타 군영으로 출발하기 전, 장군과 나누던 대화를 떠올렸다.
‘투흔의 해일’에 면역을 지닌 괴수들의 처리 방법.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대화가 끊겼음을 말이다.
“혹 이것들이 괴수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맡는 겁니까?”
쉽게 말해, 청소부를 청소하는 무리.
덤프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꽤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투흔인 이마카룸의 혈액을 기반으로 한, 투흔의 해일 면역 약물.
성공적인 개척의 발판을 위해, 면역 약물은 두 가지 공법을 거쳐 제작되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실험체들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갔다.
“하나는 극지의 괴수, 다른 하나는 이 오크들이었군요.”
덤프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작전 계획이 수립됐을 때부터 여기에 오크들의 터전을 구축해두었지. 전부 오크전사들로만 모아, 지속적으로 약물을 시험해 온 거야.”
네르하임은 의자에서 일어나 누각의 난간으로 걸어갔다. 아득한 높이 저 아래 오크들이 초원에 투입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피어오르는 작은 의구심.
‘놈들을 완벽히 통제하는 게 가능한가?’
물론 오크라는 종족에는 한때 문명을 이뤘다는 기록이 존재했다. 아직까지도 이인종의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러나 오크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했다. 엘프가 오크를 이인종으로 인정하지 않는 명확한 이유.
바로 광기(狂氣).
“저들의 광기 본능이 작전을 그르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광기에 빠진 오크는 통제 불능이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네.”
그때였다.
“……!”
누각을 향해 다리 위를 걸어오는 어떤 존재가 네르하임의 눈에 들어왔다.
오크였다. 딱 봐도 거대한 체격. 착용한 오크식 갑옷은 멀리서 보아도 상당한 완성도를 지녔다.
덤프 장군이 말한 방법이 어쩌면 저 의문의 오크일지도 모르겠다고, 네르하임은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저기 오는군.”
뒷짐을 지고 네르하임 옆으로 다가온 덤프 장군이 덧붙여 소개했다.
“저놈이 칼란타야.”
칼란타. 군영의 이름과 같았다. 아마 저 오크 때문에 군영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모양이었다.
“최초의 계획은 괴수를 둘로 나누어 각각 두 가지 면역 약물을 확인하려 했던 거였네. 근데 저 오크 놈을 알게 되고서 계획을 전면 수정했지. 오크 부대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예사 오크가 아니라는 거군요.”
“오크는 태어날 때부터 경지가 정해져 있지. 저놈은 지휘관 오크야. 만약 오크가 왕국을 이뤘다면, 못해도 군단장쯤은 했을 놈이지.”
다가오는 오크 군단장 칼란타를 바라보며, 덤프 장군이 크게 웃었다.
“심지어 저놈은 경지가 나와 같아. 이 얼마나 빌어먹을 부조리인가! 난 평생을 걸쳐 수련을 해왔건만, 저놈은 태어나자마자 6성이었다는 거잖나.”
그렇게 말하는 덤프 장군이었지만, 막상 칼란타가 누각 위로 올라오자, 군단장에 대한 예우를 해주었다.
“어서 와. 칼란타. 자리에 앉지.”
“…이 인간 여자는 누구지?”
칼란타의 입에서 인간 언어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들으면 인간이 말했다고 착각할 정도의 유창함.
심지어 그 외형도 일반적인 오크와는 차이가 선명했다. 일반 오크는 외피에 초록빛이 감도는 데 반해, 칼란타는 푸른빛이 감돌았다.
붉은 눈동자는 섬뜩했고, 그 기운은 음습했다. 등 뒤에 차고 있는 대검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훈련에 열중인가 보군?”
“반항하는 놈이 있었다. 본보기로 몇을 죽였지. 피 냄새가 거슬리나?”
“그럴 리가.”
“그나저나, 나는 저 인간 여자가 누구인지 물었는데.”
칼란타의 붉은 눈동자가 네르하임을 향하자, 덤프 장군이 부드럽게 설명했다.
“아,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네르하임이라고 하네. 이번 작전에서 자네 곁을 지킬 부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