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27)
암살검가 로이넨-227화(227/258)
제227화. 다가오는 적운
“부관이라? 재밌네. 작전 중 비상식량이라 생각하면 되나?”
군단장 오크 칼란타가 네르하임을 지나쳐 의자에 앉았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을 한 것치곤 무덤덤했다.
덤프 장군과 네르하임도 자리를 잡고 앉자, 칼란타가 씩 웃었다.
“부관? 겁먹지 마. 웃자고 한 소리니까. 인간들 농담을 따라 해본 건데, 별로였나.”
“하나도 안 웃긴데요.”
“이게 안 웃겨?”
몹시 의외라는 듯 칼란타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네르하임은 이에 지지 않고 소신 발언했다.
“당연히 안 웃기죠. 오크의 소화기관이 살아있는 인간을 먹기에 최적화되어 있단 소문을 들은 사람은요.”
“하하!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고분고분한 부관은 아닌 것 같군.”
그러면서 칼란타는 자신의 오크 부관에게 손짓했다. 방금 임명된 인간 부관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분고분한 오크였다.
잠시 후, 오크가 군단장 취향에 맞는 음료를 내왔다.
“여기엔 박쥐가 많아. 놈들을 짓이기면 제법 걸쭉한 음료가 되지. 별미라네. 한잔하겠나?”
덤프 장군도, 네르하임도 고개를 내저었다. 특히 수혈인이었던 네르하임은 욕지기까지 느껴야 했다.
오크 장군을 보좌하라니. 네르하임은 덤프 장군의 눈치를 살피며 이 이해 못 할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단순히 보좌만 하라는 건 아닐 테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는 뭔가가 있었다. 오크 장군을 감시하라는 건가? 아니면 때가 되면 그를 배신하라는 건가? 덤프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네르하임은 뛰어난 수혈인이야. 그러니 작전에 도움이 될 걸세.”
“수혈인? 짐승을 다루는 인간 말이지?”
“그래. 어지간한 괴수도 ‘정신지배’ 할 수 있을 정도지.”
“오호.”
칼란타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기분 나쁜 붉은 눈동자가 네르하임을 빠르게 훑었다.
“괴수를 다스릴 수 있다…. 혹시라도 광기에 빠진 오크들을 정신지배 할 꿍꿍이는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광기에 빠지더라도 칼란타 장군의 통제하에 있을 텐데.”
네르하임의 능력이 통하는 대상에는 오크도 포함되었다. 다만 여기에는 일정한 조건이 있는데, 바로 오크가 광기에 빠진 상태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마저도 불가능하지.’
방금 말한 것처럼 칼란타 때문이었다. 지휘관으로 태어난 칼란타는 애초부터 자신의 지배권에 들어온 모든 오크를 통제할 수 있다. 광기에 빠진다 해도 말이다.
“아니면…….”
칼란타는 으깬 박쥐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꿀꺽 삼키는 동안 오크의 목젖이 들썩거렸다.
“내가 광기에 빠질 때를 대비하는 건가?”
그 말에 네르하임은 덤프 장군의 반응을 살폈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칼란타 군영에서 칼란타는 절대적이었다. 무려 1만이라는 숫자. 이만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제국군은 대륙 곳곳에서 오크들을 끌어모은 터였다.
원래대로라면 박멸의 대상이었지만, 이번을 위해 일부러 관리해둔 것.
‘다만, 군영의 오크들을 동일한 씨족으로 구성하진 못했겠지.’
오크들은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천여 마리씩 씨족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거대한 군집이 되는 것이다.
지휘관으로 태어난 칼란타만이 각기 다른 씨족들을 한데 통합할 수 있었다. 오크 씨족 군집의 절대적 지도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 칼란타가 광기에 빠져든다면? 오크 군집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질 것이다. 오크를 규합하는 힘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칼란타 자네가 광기에 빠진다면 일이 아주 심각해지겠지. 씨족이 다른 오크들끼리 서로 죽이고, 잡아먹고… 개판이 되겠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네르하임을 자네 부관으로 임명시킨 건 아니야.”
덤프 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말해주지. 일단,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번 작전에서 자네를 광기에 빠트릴 만한 대상은 없어. 유입시킬 장벽 너머 괴수들 중에 6성의 선을 넘을 만한 놈들이 없다는 말이야. 나약한 투흔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
“그리고 또 하나. 만에 하나 광기에 빠진다 해도, 네르하임이 자넬 정신지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네르하임도 같은 생각이었다.
무려 6성이다. 광기에 빠진다면 당연히 그 경지는 일시적으로 폭증할 테고, 그건 네르하임이 정신지배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네르하임은 북부초원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 그래서 자네 부관으로 앉힌 거야. 덤으로 작전 중에 짐승들을 부릴 수도 있고.”
칼란타가 미심쩍은 눈으로 덤프 장군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국과 거래를 하면서 이런 꿉꿉한 상황쯤은 예상했던 거니까.
“어이, 인간 부관. 혹시라도 허튼 생각 하지 마. 내 법은 제국군 군법보다 훨씬 엄격하니까.”
“…그러죠.”
서로 간의 소개는 끝났겠다, 덤프 장군이 빠르게 분위기를 바꿨다.
“자, 이제 ‘일몰 작전’이나 되짚어보도록 하지.”
* * *
늦은 밤. 칼란타 군영에서 나와 히클리온 성으로 돌아가는 길.
“…….”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덤프 장군.
그 맞은편에 앉은 네르하임은 방금까지 지속됐던 회의를 되짚어봤다.
‘작전이 개시되면…….’
우선 장벽이 열리며 ‘투흔의 해일’에 면역력을 지닌 5천의 괴수가 초원에 유입된다.
같은 때, 제국군은 칼란타 군영의 1만 오크들을 초원까지 수송하기로 했다.
대륙에 괴이한 소문이 나서는 안 되니, 황궁에서는 그랑버드를 두 기를 오크 수송용으로 내어준 터였다.
‘칼란타의 오크 부대는 초원 남쪽에서부터 북진한다.’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는 괴수들과는 달리 오크들은 칼란타의 지휘 아래 전술적인 움직임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면역 약물의 효과가 모두 입증되고, 투흔인을 모두 쓸어버린다면…….’
그다음엔 괴수와 오크, 두 청소부끼리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황궁과 북부2군단에서는, 만장일치로 오크들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 수치까지 계산되었는데, 1만 오크 중 최종적으로 생존하는 숫자는 3천쯤 될 거라 했다.
‘그러고 나서, 제국은 생존한 오크들이 마음껏 살아갈 수 있도록 초원의 일부를 양도한다.’
그게 칼란타와 제국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라 했다. 칼란타가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오크 군락지를 마련해주는 것 말이다.
‘근데 정말 그렇게 되려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북부초원에 오크족이 군락지를 만들도록 해주겠다니. 그것도 6성의 지휘관 오크가 버티는 군락지였다. 과연 제국으로서 남는 장사일까?
“담배가 땅겨서 잠이 안 오는군.”
때마침 덤프 장군이 선잠에서 깨어났다. 이제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네르하임이 입을 열었다.
“덤프 장군님, ‘일몰 작전’에 대해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정말로 작전이 완수된 후에는, 오크들에게 초원의 일부를 내어주는 겁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덤프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제 좁은 시야로는 도저히 남는 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대로 봤어. 당연히 남는 장사가 아니지.”
그가 담배 연기를 뻑뻑 내뱉으며 설명했다.
“면역 약물의 효과가 입증되고 3개월이 지나면, 다시 대대적인 군사작전이 있을 거야. 오크를 싹 밀어버리는 거지. 그땐, 우리 북부2군단이 직접 투입될 걸세.”
장군들 중에서도 일부만 아는 1급 기밀이었지만, 덤프는 네르하임을 신뢰했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네르하임은 여전히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살아남은 오크들은 개중에서도 가장 강한 개체들일 겁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제거할 계획입니까?”
“칼란타, 그 오크 새끼부터 암살하고 나머지를 밀어버린다. 간단하지. 청소부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마무리 청소는 결국 집주인이 해야 하는 법이잖나.”
“…….”
군락지를 형성한 6성 오크를 암살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일인가 궁금했지만, 네르하임은 황제의 의지를 엿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황제가 그리 마음먹는다면 된 거다. 황제라면 6성 오크가 아니라 9성 오크라도, 그를 죽일 만한 암살자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예, 장군님.”
“자네가 왜 오크 놈의 부관이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겠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바로 광기 때문이야.”
“광기라면, 아까 그 자리에서 말씀해 주셨잖습니까. 칼란타의 광기를 이끌어 낼 만한 일은 없을 테고, 광기에 빠진다고 해도 저로선 그자를 정신지배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만에 하나, 저 오크 놈이 광기에 빠질 불상사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투흔 놈들 숫자도 적지 않네. 이마카룸 그 범죄자 놈과 비슷한 경지를 지닌 놈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어.”
네르하임이 파악한 바로는 그 만큼의 위험인물은 없었지만, 거기에 대해선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제가 정신지배 할 수 있는 최대치는 4성 정도입니다.”
칼란타가 광란에 빠지더라도, 그녀의 능력만으론 정신지배 할 수 없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칼란타가 광기에 빠지면, 그 경지는 7성에 가까울 것이니.
“칼란타 저놈은 오크 군락지 하나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어. 오크 놈들은 감자처럼 덩이줄기로 태어나는 거 알지? 그중 하나가 저 지휘관 오크였지.”
군락지를 파괴하던 제국군은 칼란타를 보고, 근래 발견한 가장 높은 경지의 오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칼란타를 어떻게 이용할지 황궁에 의견을 물었고, 그 결과 칼란타 군영에 대한 계획이 수립된 것이었다.
이쯤 되자, 네르하임은 덤프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칼란타에게 어떤 조치를 해놓은 거군요.”
톡톡.
덤프 장군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 뒤편 정중앙을 건드렸다.
“그래. 저놈이 태어나기 전에 심어둔 게 있지. 마적석이야. 그것도 황궁에서 특별히 내어준 최상위 마적석.”
“…설마, 1급 마적석입니까?”
“그래. 거기에 놈이 광기에 빠졌을 경우를 대비한 마법이 내장되어 있다. 뭐라더라, 놈의 정신을 취약하게 하는 거라나. 나도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쨌든 그 마법 덕분에, 수혈인의 정신지배가 통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굳이 네르하임처럼 수준 높은 수혈인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아무 수혈인이나 데려다 부관으로 앉혀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1만 오크를 임시로 다스리게 되는 셈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나?”
“…….”
그 순간, 네르하임의 머릿속엔 칼란타가 광기에 빠지는 불의의 사태가 그려졌다.
제국군도 오크 군단도 원치 않는 불상사였지만, 네르하임 개인에겐 달콤한 상상이기도 했다.
어찌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지휘관 오크를 통해야 한다지만 그리고 아주 잠깐이겠지만, 어쨌든 1만 오크를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녀는 자신이 지배하려는 대상이 위협적일수록 더 강한 욕망을 느끼는 부류였다. 일종의 정복욕이랄까. 라유비아의 늑대가 탐이 났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네르하임은 욕망을 숨긴 채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칼란타 곁에서 충실히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뭐, 어디까지나 대비한다는 뜻이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마. 놈이 광기에 빠질 일이 쉽게 일어날 리도 없고.”
담배를 다 피운 덤프 장군은 팔짱을 끼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 왔다는 그 감찰관… 루한 멜라스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루한 멜라스.”
일전에 히베르다드 성에서 수인화 연구 자료를 요청한 터라 덤프 장군도 루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어떤 자였나?”
“그 경지를 직접 확인하진 않았지만, 모호하고 위험한 자인 것 같았습니다. 감찰관답게 말입니다.”
“그자에 관해서는 나한테도 정보가 제공되지 않더군. 아무리 제국감찰관이라지만 드문 일이야.”
더군다나 루빈의 신분은 하급 감찰관이었다. 이제껏 하급 감찰관인데도 불구하고 군단장에게까지 정보가 제한된 적은 없었다.
덤프가 눈앞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오늘부터 딱 3주. 그 후에도 초원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자네가 직접 움직여야 할 거야.”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루한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겁니까?”
“그래, 괜히 휩쓸려 죽으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대답하는 네르하임. 덤프 장군은 고개를 숙인 채 침음을 흘렸다.
감찰관의 안전을 중시하는 거니까 당연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
황궁에서 따로 감찰관의 안전을 언급한 적이 이전에도 있었던가? 덤프의 기억엔 없었다. 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감찰관의 안전을 확보해둘 것.’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명령은, 북부2군단장인 덤프에게 직접 전달된 지시였다.
* * *
2주가 지났다.
자는 시간을 빼곤 오직 검술 수업에만 매진했던 루빈과 쿤달리트.
이제 쿤달리트는 미약하게나마 브리온 오러를 발현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만하면 제국군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한밤중.
“쿤달리트, 이제 떠나시죠.”
“예? 지금 이렇게 갑자기요?”
모두가 잠든 때였다. 루빈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쿤달리트가 희생하는 건 비밀이었기에, 송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물론 쿤달리트가 갑자기 사라져도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도록 이미 조치가 이루어진 터. 대족장 이냐키투가 쇄골부족민들을, 엘키오가 라유비아를 맡기로 했다.
두두두두두.
잠시 후, 둘은 투흔마를 끌고 초원의 접경지로 향했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말의 질주를 살짝 늦추었을 때, 쿤달리트가 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손끝에는 거대한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
구름이라. 수직으로 솟아 있는 커다란 구름. 루빈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적운(積雲)이군.’
그러나 일반적인 적운과는 달리, 노을을 품은 것처럼 붉은빛이 감돌았다.
‘생각보다 빠르군.’
엘키오가 말하길, 곧 하늘의 성이 성주에게 나타날 거라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다.
찬란한 붉은 빛의 구름. 루빈도 그 위에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괴수에게 뿌려진 약물에 관해 조사해야 할 때.
그리고-
‘쿤달리트를 내주면서 황제에게 한 방 먹일 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