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30)
암살검가 로이넨-230화(230/258)
제230화. 잠입 (2)
군영도시 히클리온.
북부2군단의 본부가 위치한 이 도시엔 근래 들어 통제구역 하나가 추가됐다.
사실, 규모가 큰 군영도시였으니 통제구역이 추가되거나 해제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 자체로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덜컹덜컹.
자정을 넘긴 시간. 통제구역의 철창 앞으로 소가 끄는 수레 하나가 다가왔다. 소를 이끄는 병사가 투구를 살짝 들어 올리며 통제구역의 경비병들에게 경례를 붙였다.
“식사 왔습니다.”
기다리던 경비병 하나가 쓱 지나치며 소와 수레를 확인했다. 소는 살이 보기 좋게 올라 있었고, 수레엔 죽은 돼지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경비병은 괜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았다.
“제대로 양 맞춰온 거 맞지?”
“예, 그 수혈인 성주님께서 지시해둔 대로 맞췄습니다.”
“근데 ‘저놈’은 왜 자꾸만 오싹한 소리를 내냐 이 말이야. 식사도 꼬박꼬박 챙겨주는데.”
“그 뱀이 말입니까?”
그 소리에 경비병이 큭큭 웃었다.
“뱀이라고? 너, 저놈 한 번도 못 봤지?”
“뱀이라고 하던데, 아니었습니까.”
“그래, 뱀이긴 하지. 빌어먹을 거대한 뱀. 한 번 마주치면 오금이 저려서 발도 못 뗄 거다. 괴수도 저런 괴수가 없다고.”
소달구지를 가져왔던 병사가 턱을 들어 보이며 철창 너머를 바라봤다.
철창엔 고차원의 결계마법이 서려 있었는데, 외부의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안에 가둬놓은 거대한 뱀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결계마법에 따라 철창에선 지지직 소리가 울린다. 병사는 철창 너머에서 스아아아아, 하는 뱀의 기묘한 울음을 들은 것 같았다.
“……!”
어둠을 찢는 소름 끼치는 안광을 보아버렸다. 몸이 얼어붙을 정도의 살기가 병사를 휘감았다.
“…확인하셨으면, 전 돌아가겠습니다.”
“큭큭, 눈을 마주쳤나 보군. 밤에는 더 섬뜩하지.”
병사는 서둘러 경례를 붙이곤 사라졌다. 소를 몰고 갈 필요는 없었다. 그 또한 ‘페니악’의 식사에 포함된 것이니까.
“자, 우린 페니악이 식사에 만족하기만을 바라자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경비병. 그러면서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동료와 함께 통제구역의 철문을 열었다.
드드드드드.
마차가 지나갈 만큼 틈이 만들지자, 이번엔 거대한 쇠사슬을 끌어왔다. 통제구역 안쪽과 이어진 쇠사슬이었다. 그걸 소의 목에 채워진 연결부위에 걸고, 제대로 걸렸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이제는 페니악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소를 안으로 집어넣어야 했다. 옆에 놓인 레버를 돌리자, 쇠사슬이 팽팽해지더니 소가 앞으로 끌려 나가기 시작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하는지, 소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저항했다. 그 모습에 경비병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소름 끼치는 식사 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히베르다드 성 땅속에 있던 놈이라면서?”
“그래, 그 수혈인 여자가 가장 아끼는 놈이라지.”
“이봐, 아무리 수혈인이어도 히베르다드 성주야. 입을 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데. 혓바닥이 두 개가 아니라면 말이야.”
쇠사슬에 의해 소는 점점 더 안으로 끌려가더니, 기어이 어둠에 파묻혔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경비병은 눈을 감곤 몸을 돌렸다.
끄드드득. 끄드드득.
식사가 시작됐다. 소를 시작으로, 수레에 실린 돼지들까지. 심지어 수레마저도 놈의 식사거리였다.
뱀의 모습을 한 괴수라지만, 여러모로 뱀의 습성에선 벗어난 놈이었다.
독니의 독으로 먹잇감을 마비시킨 뒤 곧바로 집어삼키며 소화하는 뱀과 달리, 저놈은 맹수처럼 이빨로 아작아작 씹어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소름이 돋는지 근무가 끝난 뒤 꿈에서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군단장이 최근에 직접 지시를 내려 구획된 통제구역. 네르하임이 가장 아끼는 괴수 페니악을 위해 급조된 것 같지만, 사실 통제구역의 명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네르하임의 임시 집무실.
“저 안에 뭘 숨겨놨기에, 여기가 하루아침에 그 여자 집무실이 된 거야?”
“뭔가 중요한 게 있겠지. 저 뱀은 그걸 지키는 거고. 그런 건 우리가 알 바 아니잖아? 그나저나 너, 말조심하라니까.”
“말조심은 무슨. 어차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수혈인의 능력도 제한된다고 했잖아. 그 여잔 내일 밤에나 돌아온다고 했고.”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잉.
소를 끌어갔던 쇠사슬이 철문으로 다시 날아와 부딪쳤다. 쾅 하는 굉음이 울렸고, 병사들은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페니악이 식사를 마쳤다는 뜻이었다. 뒤이은 페니악의 울음소리.
사아아아.
사실, 페니악은 배가 고프다거나 식사가 맛있었다고 울음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저벅저벅.
통제구역 안에서 울리는 발소리. 경비병들이 잡아내지 못할 움직임으로 내부에 잠입한 루빈을 감지한 것이었다.
“여기 있었네.”
이름이 페니악이라 했었지? 방금 전 경비병들의 대화를 떠올린 루빈은, 페니악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아갔다.
그 순간, 페니악이 머리를 쳐들며 사아아아아 다시 울어댔다. 연병장으로 써도 좋을 만큼 널찍한 공간이었지만, 몸을 둘둘 말고 있는 거대한 뱀 때문에 다소 비좁게 느껴졌다.
페니악. 거대한 뱀.
칼란타에 의해 믿을 만한 괴수들을 잃었다지만, 네르하임에겐 이놈이 남았다.
일전에는 히베르다드 성의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네르하임의 새로운 임무 때문에 히클리온으로 옮겨온 모양이었다.
사아아아아.
“…….”
그저 커다랗기만 한 뱀은 아니라는 건가. 독니에만 독이 있는 게 아니라, 비늘 틈틈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스스스스슷.
침입자를 알아차리자 비늘의 틈이 벌어지면서 강력한 독이 주욱 흘러나왔다. 물론, 결계 때문에 독이 통제구역 바깥으로 새어나가진 않겠지만.
“여기가 네르하임의 임시 집무실이란 거지.”
페니악의 독이 루빈을 감싼다. 그러나 루빈은 덤덤하기만 했다. 제법 강력한 독이나, 그래봤자 루빈한테선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어디에 있을까.
루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임시 집무실이고 페니악까지 데려다 놓은 걸 보면, 분명 이곳에 작전에 대한 자료가 있을 텐데.
그때, 페니악이 루빈을 향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더 다가오면 공격하겠다는 의도였다.
루빈은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암연을 집약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루빈의 암연이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조형됐다.
이내 ‘암연의 뱀’이 페니악을 향해 대가리를 쳐들며 정면으로 맞섰다.
사실, 괴수를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조용하게 자료만 확인해야 하기에 그러지 않을 뿐이지.
사아아아아아.
루빈의 암연이 페니악을 휘감자, 놈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꽉 결박되었음을 확인한 루빈은, 페니악의 몸을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어디에 자료가 있을지 알 것 같군.’
몸을 둘둘 말고 있는 페니악. 놈의 똬리 한가운데 무언가 감추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웬 책상 하나였다.
“여기 있었구나.”
책상 위에 그대로 올라와 있는 서류철. 네르하임은 페니악을 믿고 보안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다. 간단한 암호 장치조차 걸려 있지 않았다.
하긴, 이 정도 보안에 그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이곳은 경비가 삼엄한 군영도시. 정보 또한 새어나가지 않게 극비로 취급하고 있으니, 제국군으로선 안심할 만했다.
투흔족은 초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크 군영은 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세상으로부터 가려졌다. 제국군으로 한정해 보더라도 지휘부의 소수 인원만이 이 작전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테고.
-작전명 일몰
서류철의 첫장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루빈은 빠르게 다음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자세히 적혀 있다.’
네르하임이 칼란타 군영에 최초로 투입된 건 약 2주 전. 자료는 그날을 기점부터 해서 작전 준비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이었다.
요긴한 정보였다. 물론 네르하임의 상관, 그러니까 덤프 장군이나 대장군만이 지닌 정보는 따로 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엔 충분했다.
왜 ‘일몰’이라는 작전명을 쓰는지도 금세 짐작이 갔다.
이 작전의 최대 목적은 ‘투흔의 해일’을 이겨내는 것. 그래서 이마카룸의 혈청을 기본으로 하여 ‘투흔의 해일’에 면역을 일으키는 두 종류의 약이 만들어진 것이다.
‘투흔의 해일’은 날이 저문 뒤 발생하는 자연현상을, 일몰은 투흔인이 아닌 자에게는 초원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제한을 의미했다.
일몰 이후엔 눈을 감거나, 투흔인 옆에 붙어 있거나. 반드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제국이 그 자유를 움켜쥐려는 것이다.
‘개척’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 작전이 가리키는 건 영토 개척이었다. 제국의 뜻에 따라 오크와 괴수들이 남쪽과 북쪽에서 밀어닥쳐, 모든 투흔인들을 내몰 것이다.
약물 덕분에 ‘투흔의 해일’조차 그들을 막아낼 수 없으니, 초원이 피로 물드는 건 시간문제.
‘…그랑버드가 오크 군단을 초원으로 수송한다…….’
루빈은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자료를 확인했다.
‘장벽의 괴수들은 해일처럼 밀어닥치고, 오크 군단은 칼란타의 지휘 아래 남쪽에서부터 북진한다…….’
최종적으론 오크들이 괴수들까지 청소하는 것. 그리고 초원의 일부를 양도받음으로써 이 ‘일몰 작전’이 종료된다고 쓰여 있었다.
‘정말로 오크들에게 영토를 줄진 모르겠지만.’
칼란타는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제국으로부터 땅을 양도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루빈이 알고 있는 텔마흐라면, 오크족은 그저 약물이 잘 발현되는지 확인하는 실험체에 불과할 것이었다.
청소가 끝나고 나면, 이용 가치가 없어진 도구는 결국 버려지겠지. 회귀 전의 암살검가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실체를 확인했으니 이제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해야 할 때였다.
가장 먼저 대장군 헤네케. 일단 그에게 곧 닥쳐올 초원의 전투에 대해 알려야 했다.
‘하네케?’
몇 번이고 불러보았지만, 내면에선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현재 하네케는 흑혼검에 의해 라유비아 곁에 육화된 상태였다.
‘아, 그러고 보니’
시점을 가늠해보니, 지금쯤 라유비아는 적운 위에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루빈은 하네케가 내면세계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 * *
같은 시간, 투흔초원 상공.
루빈의 예상처럼, 하네케는 땅이 아닌 구름 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구름의 토양을 만져보는 하네케.
적운은 물컹물컹하거나 부드럽지 않았고, 마른 나뭇잎처럼 퍼석대는 특성이 있었다. 걸을 때마다 독특한 발소리가 울렸다.
휘이이이이이이.
상공의 거센 바람이 몰아닥쳤지만, 적운의 외곽으로 공기가 띠를 이루며 바람을 막아주었다. 엘키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공기의 띠는 단순히 바람만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방어마법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저벅저벅.
하네케는 뒷짐을 진 채, 산책하듯 적운 위를 걸었다. 드리운 달빛의 각도에 따라 적운의 드넓은 지대가 드러나는 중이다. 그 면적만 보자면 그랑버드 너덧 마리를 이어붙인 정도일 터.
그때였다.
타다다다다다닷.
드넓은 적운 위를 뛰어다니는 검은 형체. 하네케를 발견하자, 검은 형체가 달빛 아래 멈춰서며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표범으로 수인화한 이마카룸이었다.
루빈과 쿤달리트가 쇄골부족의 영역을 떠난 이후, 이마카룸은 라유비아의 숨은 정체와 하네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적운 위에 오를 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라유비아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계단’에 발을 디뎌본 것도 이마카룸이었다.
단순한 그에게 자신의 숙명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어쨌든 결국엔 이마카룸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적운의 성주’라거나 ‘선택받은 자’라는 개념보다는, 그저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적응한 것이다.
“여기 있었네, 하네케!”
이마카룸이 수인화를 해제하며 알은체를 했다. 그에게 하네케는 제국의 전설적인 대장군이 아니었다. 그저 라유비아와 펠키온의 조상일 뿐.
그래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투흔인과 다를 바 없이 친밀하게 대하는 중이었다.
“라유비아가 날 찾나?”
“응,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의견을 나누고 싶어 해.”
잠시 후, 적운에 탑승한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봤자 신수 엘키오를 포함해 모두 넷에 불과했지만.
적운의 동쪽 끝. 라유비아와 이마카룸의 투흔푸가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일종의 조종간이자, 지휘소인 셈.
“엘키오! 너도 와라!”
이마카룸이 허공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자 적운의 바깥, 허공에 떠올라 있던 엘키오가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곧 한쪽으로 흘러가던 적운의 움직임도 마침내 멈추었다.
타닷, 타닷, 타닷.
지휘소로 돌아오는 엘키오. 허공에서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발밑으로 물결이 동그랗게 퍼져나갔다. 엘키오는 허공을 밟아나가며 일행들 곁으로 돌아왔다.
“다들, 적운 탐방은 끝났나 보군.”
“그래, 워낙 넓어서 투흔마를 데려와야 했나 후회하는 중이다.”
“엘키오, 지금 우린 어디에 있는 거지?”
라유비아가 물었다.
“지금 우린 극지 장벽 위를 지나고 있어. 저 아래에 괴수들이 있지만, 워낙 상공에 있으니 신경 쓸 거 없어. 그랑버드 역시 우릴 발견하지 못할 테고.”
“투흔초원이 아닌 대륙 전체를 떠다니는 유목민족이 되어버렸네.”
이마카룸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가 좋겠어, 하네케?”
“워낙 선택지가 많아 고민이 되는군. 어쩄든 최우선 목표는 라유비아가 강해질 수 있는 땅인데…….”
“할아버지, 루빈에게 의견을 물어보셔도 돼요.”
하네케의 고민에, 라유비아가 가볍게 툭 말했다.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조언이었다. 현재의 라유비아가 이룬 모든 것. 흑혼검과 브리온 오러 그리고 하네케와 적운까지. 그것들을 얻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게 바로 루빈이었으니까.
“힘을 길러서 황제를 처단하는 데 도움이 되려면, 제가 어디로 가야 좋을지 말이에요.”
“그러마, 라유비아. 마침 어떻게 되어 가는지 루빈 소식을 알아보려 했거든.”
“네, 그럼 다녀와서 말씀해 주세요.”
라유비아는 쥐고 있던 흑혼검을 구름 위에 내리찍은 다음, 꽉 움켜진 손을 풀었다.
스스스슷.
하네케의 형체가 조각조각 나뉘며 흩어지더니, 이윽고 라유비아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빈의 내면세계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