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45)
암살검가 로이넨-245화(245/258)
제245화. 뒷목을 가르는 검
“……!”
네르하임에게 위압을 가하려는 그 순간, 칼란타는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명징한 감정들. 수색대 중 하나에서 문제가 발생한 게 분명했다.
그 감정들은 분노, 적개심이 뒤엉켜 있는 것 같더니, 결국엔 공포로 뒤덮여버렸다. 그것도 숨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란 공포로.
‘이건 몰살이다.’
직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만한 공포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한테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나 퍼지는 것이었으니까.
“괘, 괜찮습니까?”
네르하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칼란타는 대답 없이 공포가 끼쳐온 방향을 노려봤다.
몰살이라.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긴급히 편성한 수색대라 하지만, 모든 수색대의 절반은 중갑의 쇤느바르토 오크들로 구성했던 터. 강한 놈들로 안전성을 신경 썼는데, 순식간에 전멸하는 게 말이 되나?
“수색대 하나가 궤멸됐다.”
“예? 정말인가요. 어디죠?”
“남동쪽 기암지대로 보낸 수색대인 것 같군. 가서 정확히 확인해야겠지만.”
“믿을 만한 오크한테 병사를 내주어 보내는 게 낫겠네요. 수색대 하나가 궤멸될 정도면 그쪽에 수인들이 모여 있을지도 모르니까.”
의견을 내놓던 네르하임이 흠칫거린다. 그녀를 바라보는 칼란타의 눈에 적개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향한 의심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오히려 궤멸당한 수색대에 대한 혐의마저 덧입혀진 것 같았다.
“장군,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직도 제국군을 의심하고 있겠지만, 더 냉정해야 할 때라고요.”
“…….”
칼란타는 말없이 자신의 두 무기를 챙겼다. 해머와 도끼를 각각 등에 부착하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네르하임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직접 가시려는 겁니까! 그러다간 권역이 흐트러질 수도 있습니다.”
오크 군단 내에서 이렇게 첨언할 수 있는 이도 네르하임 뿐이었다. 오크 부관조차 어쨌든 칼란타의 지배력에 속해 있었으니까. 칼란타의 뜻에 거스르는 생각을 내놓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배할 수 있는 권역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려는 겁니까. 너무 멀어지거나, 혹은 장군이 부상을 입는다면…….”
“부상?”
칼란타는 크게 비웃었다.
“설사 수색대가 궤멸했다 해도, 나까지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나?”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확실하지가 않으니까-”
“그래, 냉정함이 필요할 때지. 하지만 내 인내력이 지금 간당간당하다. 제국군이든, 투흔 놈들이든, 괴수 새끼들이든. 직접 처리해야겠다.”
그러면서 칼란타는 부대장 셋을 모이도록 했다. 같은 오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외형이 다른 셋이었다. 제각기 다른 씨족에서 태어난 부대장들은 각각 3천 오크의 지배력을 지녔다.
셋은 천막 안에 들어서자마자 칼란타 앞에 몸을 낮추었다. 칼란타가 입을 열었다.
“(5백의 병사를 데리고 나가 확인하고 오겠다. 그동안, 너희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여길 지켜라. 저 인간 계집을 감시해.)”
“(알겠습니다, 칼란타.)”
셋 중 둘이 천막 밖으로 나가고, 덩치가 너무 커서 트롤처럼 느껴지는 오크 하나만 남았다. 칼란타는 낯빛이 어두워진 네르하임을 노려봤다.
“넌 여기에 남아. 허튼수작하려 하지 말고. 아, 그리고 저 괴수 놈 좀 천막에서 떼어내. 주둔지 동쪽에 배치시켜.”
칼란타가 천막 뒤에 그림자를 드리운 거대한 뱀을 가리키자, 네르하임이 항변했다.
“장군도 자리를 비우는 마당에, 저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장치는 해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다. 나 말고 다른 오크들이 널 죽이는 일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안전을 보장하는 말치고는 섬뜩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네르하임이 괴수를 움직이지 않자, 칼란타가 크르르르 울음소리를 냈다.
“저대로 뱀을 계속 놔둔다면 내가 나가면서 죽여버리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오크들 틈에 고이 놔두죠.”
결국 거대한 뱀이 머리를 들어 올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단장의 천막에서 점점 멀어져 동쪽에 도열한 오크들 속으로 스윽스윽 나아갔다.
“여기서 계속 덤프에게 통신을 시도하고 있어.”
“…….”
칼란타는 천막을 나섰다. 타고 이동할 오크토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함께 움직일 5백 오크는 곧바로 조직되어 오크토프 뒤에 도열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온다. 뒤처지지 마라.)”
“칼란타! 칼란타!”
5백의 오크가 소리를 내지르는 동시에, 주둔지에 빼곡하게 서 있던 오크들이 일시에 양옆으로 비껴 섰다.
길이 만들어지자, 칼란타는 오크토프를 빠르게 몰았다.
얼마 후.
끼쳐왔던 공포는 이제 완전히 휘발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칼란타는 습격 현장에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었다. 짙은 피비린내. 오크들의 피 냄새가 그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크르르르.
크르르르.
5백의 오크들이 낮은 소리로 이를 갈기 시작했다. 칼란타의 지배력이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이놈들은 피비린내에 물들어 ‘광기’에 빠졌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눈앞에 나타난 건 수색대 오크들의 시체로 쌓아 올린 무더기였다. 마치 칼란타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일부러 차곡차곡 쌓아둔 것처럼 보였다.
“……!”
시체 무더기 너머로 어떤 존재감이 확 끼쳐왔다. 그 순간, 칼란타는 오크 병사 5백을 뒤로 물렸다. 괜히 공격시켜 봤자 병사들만 죽일 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르르르르.
병사들은 뒤로 빠지고, 칼란타는 오크토프에서 내려왔다. 몇 걸음 내디디며 외쳤다.
“웬 놈이냐?”
이윽고, 시체 무더기에 올라서며 모습을 드러내는 루빈. 시체 위에 걸터앉으며 오크들을 죽 둘러봤다.
“칼란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네.”
“네가 수비대를 몰살했군. 그것도 혼자서.”
칼란타는 저 젊은 인간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놈으로 인지했기 떄문이다.
혼자서 깔끔하게 수비대를 몰살한 놈이다. 그 경지는 자신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인간, 너는 제국군이냐?”
그 물음에 루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었던 건데. 너야말로 제국군이냐? 사냥개처럼 잘도 초원을 누비는 걸 보니, 앞으로 제국의 장군이라도 되려는 건가 했거든.”
“뭐?”
도끼를 들고 있는 칼란타의 오른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인간. 제국군이냐 물었는데 그따위로 대답한다면, 설사 네가 덤프의 심복이라 할지라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널 살려주지 않을 건데, 뭘.”
휘이이이익!
칼란타가 내던진 해머가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였지만, 루빈은 유려하게 피해냈다.
지상에 착지하자, 등 뒤로 시체 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발목에 닿는 죽은 오크의 팔. 그걸 밀어내며 루빈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공격에 병사들 시체가 훼손되고 말았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지휘관 오크에겐 언제나 종이 개체보다 중요하겠지. 대기하고 있는 5백 병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크라는 종족은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고등한 직위로 태어날수록, 종의 차원에서 구심점이 될 수 있다니.
‘지휘관 오크가 저 정도니까, 제국이 미리 오크 왕을 없앤 거겠지.’
루빈은 핏빛서리와 비검을 움켜쥐었다. 전투 의지를 읽어낸 칼란타도 도끼의 머리를 뱅그르르 돌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광기가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해.’
칼란타가 광기에 빠진다면, 주둔지는 아수라장이 될 터. 이 또한 전쟁의 관점에선 좋은 시나리오인 건 사실이었지만, 루빈으로선 최선의 수라고 할 순 없었다.
광기에 빠지는 건 하네케와의 협공이 시작된 이후여야 한다. 괴수들이 들이닥치는 그때에 광기가 발현되어야, 오크도 괴수도 한꺼번에 궤멸시킬 수 있으니.
광기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것. 그게 루빈의 우선적인 전략이었다. 오래 붙들수록, 주둔지에 침투한 블라네와 이마카룸이 수월해질 거였다.
물론, 이 싸움에서 목숨을 끊어낼 만한 기회가 온다면, 그땐 주저할 필요가 없겠지만.
“……!”
다음 공격은 루빈 차례였다. 루빈은 놈을 향해 쇄도했다.
챙! 챙! 챙!
망치를 내던진 뒤라 손에는 도끼뿐이었지만, 그게 칼란타의 약점이 되는 건 아니었다.
도끼 한 자루만으로도 역동적인 반격이 이어졌다. 오히려 루빈을 당황하게 할 만한 위력이었다.
“……!”
휘이이이이이, 콰쾅!
내려찍히는 도끼날은 막아냈지만, 칼란타의 발이 그대로 복부를 가격하는 것은 허용하고 말았다.
뒤로 튕겨 나간 루빈은, 그대로 기암지대 아래 계곡까지 굴렀다.
졸졸졸졸.
어두컴컴한 계곡 안으로 칼란타가 따라 들어왔다. 어느새 그 손에는 내던졌던 해머도 들려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싸워봤자 너한테 좋을 게 없을 텐데?”
반대쪽의 출구가 있는데도 루빈이 그쪽으로 나가지 않자, 칼란타가 으름장을 놓았다.
“어차피 날이 어두워지고 있잖아. 게다가 어둠 속에선 내가 너보다 유리할 것 같거든.”
“우리 종족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고등한 오크일수록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냐는 투였다.
루빈은 피식 웃었다. 정작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쪽은 칼란타였다. 루빈은 내면에 존재하는 암연을 만지작거렸다.
우우웅.
암연을 일제히 방출시키면서 온몸의 감각을 일으켜 세운다. 어둠 속의 몸놀림과 힘은 잔뜩 벼려져 있기에,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물론, 공격을 막아내는 칼란타야말로 그걸 여실히 깨닫는 중이었지만.
‘다르다. 확실히 달라졌다.’
둘 다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기에, 총 네 개의 무기가 허공을 휘저었다. 격돌할 때마다 계곡 곳곳으로 쩌렁쩌렁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독특하구나, 너는.”
어느덧 완전히 어둠에 잠긴 두 사람. 잠시 떨어져 숨을 골랐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독특하다. 칼란타로서는 그 표현이 적절했다. 육박해오는 오러에 맞부딪쳐본 결과, 저 검은 눈의 인간은 오러를 쓰는 무인이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특이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칼란타의 머리와 몸에 입력되어 있던 인간들의 오러와는 달랐다.
‘아니, 이건 오러의 차이가 아니다.’
오러가 아닌 무언가. 전투의 찰나마다 저 인간의 육체에 막대한 변화를 주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당연히 칼란타는 암연이라는 존재를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오크가 지닌 본능이 기이한 힘의 윤곽만큼은 더듬고 있었던 것이다.
“자, 또 시작해볼까. 오크 군단장.”
어둠 속에 루빈의 눈이 번뜩였다. 이번엔 칼란타가 공격을 시도했다.
챙! 챙!
루빈의 단검들이 해머와 도끼를 막아냈다. 정면으로 막아내기도, 변칙적으로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첨벙첨벙.
루빈은 계속해서 뒷걸음치며 의도적으로 전투 현장을 바꿔가는 중이었다. 처음엔 얕은 계곡물이었지만, 어느새 그들의 허벅지까지 잠긴 상태.
계곡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움직인 만큼, 어느새 칼란타의 위치는 주둔지로부터 보다 멀어졌다.
‘설마!’
끊임없이 이어지던 칼란타의 공격이 순간적으로 멎은 건 그때였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뒤를 돌아봤다.
지휘관의 권역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그 반경은 3킬로미터였다. 계곡에 들어온 이래, 싸움이 지속되면서 고작 몇 십 미터 더 나아갔을 뿐이지만, 의외로 그 영향은 막대했다.
권역 끄트머리에 속해 있던 주둔지 일부가 완전히 바깥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제기랄!)”
그는 지배 능력에 집중했다. 그제야 권역 끄트머리에 발생한 일대 소란이 밀려들 듯 느껴졌다. 대체 무슨 소란이지?
‘권역이 이동된 것 때문만이 아니야. 누군가… 또 다른 적이 주둔지를 습격하고 있다!’
칼란타의 직감이었다.
“너… 나를 붙잡아 두려는 거냐?”
싸움도 싸움이지만, 권역을 정돈하는 것부터가 우선이었다.
루빈과 한 발짝 떨어진 칼란타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전에 도끼를 크게 휘두르고, 수면 위에 해머를 힘껏 내리쳤다.
파아아아아아…….
거리를 벌림으로써 싸움에서 일단 벗어나려는 것이었는데.
원하는 대로 해줄 리가 없는 루빈이었다. 칼란타의 공격을 피해낸 루빈의 도약. 몸을 활처럼 휘면서 다시 칼란타의 정면으로 내려섰다.
그와 동시에, 이제까지 칼란타가 보지 못한 핏빛서리의 능력을 드러냈다. 칼끝으로 수면을 쓱 그으면서 순식간에 계곡물을 얼려버린 것이다.
쩌저저저적.
“……!”
계곡물 전체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단순한 빙결이 아니었다. 얼음의 강도가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칼란타의 두 다리를 완전히 붙들어버렸으니까.
‘어쩌면 이대로 이놈을 끝낼 수도 있겠는데?’
지휘관으로서 제 군단을 신경 쓰느라 칼란타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욕심을 내볼 만했다.
루빈은 얼음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칼란타를 향해 연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챙!
핏빛서리의 공격은 막혔지만, 아직 비검이 남아있지. 루빈 손에서 벗어난 비검이 칼란타의 뒷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크악!
투두두둑, 쩍!
고통에 찬 소리침과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분명 루빈의 비검은 칼란타의 뒷목을 긋는 데 성공했다.
‘흠, 목숨을 끊어내진 못한 건가.’
피가 철철 쏟아졌다. 칼란타는 깨진 얼음 사이에서 기어 나와 물 밖으로 나왔다.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오크 병사들부터 불렀다.
우르르르르.
“하아… 하아…….”
“아쉽게 빗나갔네.”
오크 병사들이 장궁을 빼 들며 루빈을 겨눴다. 저만한 놈한테는 그 공격이 쓸모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칼란타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자신을 쫓지 못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런데.
“……!”
한순간, 루빈과 칼란타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1급 마적석.
비검이 뒷목을 베어내면서, 그 안에 매립되어 있던 1급 마적석이 함께 떨어진 것이다. 마적석보다는 칼란타의 목숨을 노렸던 공격이었지만.
루빈은 일단 마적석을 주워들었다.
“왜 내 몸속에 그게 있었던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칼란타가 물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궁금하면 네르하임한테 물어봐. 순순히 대답해줄진 모르겠지만.”
그게 칼란타를 향한 루빈의 마지막 말이었다.
오크들의 화살이 쏟아지기 직전, 그는 ‘연파공’으로 눈앞에 계곡물을 흩뿌렸다. 그러고는 핏빛서리로 일제히 얼림으로써 일시적인 빙벽을 만들어냈다.
촤라라락!
타타타닷.
화살들은 얼음 장벽을 꿰뚫지 못하고 그대로 박혔다. 루빈이 재차 손짓하자, 장벽이 무너지며, 박혀 있던 화살들을 뱉어냈다. 이를 본 오크들은 입을 깜짝 놀랐다.
“(마법사다!)”
“(얼음 마법이다!)”
동요하는 오크 병사들을 뒤로하고, 루빈은 다음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칼란타를 죽이는 건 실패했지만, 블라네와 이마카룸을 위한 시간은 충분히 마련됐다. 아마 지금쯤 주둔지에서는 부대장 제거가 이뤄지고 있을 터. 우선 그쪽으로 합류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스스스슥.
이내 루빈은 ‘그림자 장막’을 통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투웅, 투웅, 투웅!
뒤이어 다시금 화살이 쏟아졌지만, 재차 펼쳐진 빙벽을 넘진 못했다.
한편, 칼란타는 피가 쏟아지는 뒷목을 움켜쥐며 계곡 밖으로 나왔다. 병사들의 엄호가 이어지는 와중에, 서둘러 오크토프에 올라탔다.
“(서둘러라! 서둘러! 당장 주둔지로 돌아간다!)”
오크 병사 5백이 여러 겹으로 칼란타를 에워쌌고, 이윽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내내 피비린내가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름 아닌 칼란타가 흘린 피의 냄새였다.
일몰 작전이 시작된 이래, 이제 겨우 첫날이 지났을 뿐. 곧 두 번째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