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46)
암살검가 로이넨-246화(246/258)
제246화. 돌격과 암살
“(수인들이다! 수인들이 몰려온다!)”
오크 병사의 외침에 일대가 술렁였다.
주둔지 북서쪽. 정말로 지평선을 빼곡하게 덮으며 돌진해오는 수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꽤 많은데.)”
“(유인하려는 게 아닌가.)”
“(일단 방어에 집중하라!)”
무기를 움켜쥔 오크들이 수인들의 접근을 기다렸다. 앞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인들이 모습이 드러내며 유인 전술을 펼쳤기에, 이번에도 그런 건지 헷갈렸다.
이번에는 규모가 커서 심상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출격하여 싸울 수도 없었다.
남동쪽을 살피러 간 칼란타가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세 부대장의 지배력이 오크들을 붙들고 있지만, 그다지 안정적이진 않았다.
벌써부터 칼란타와 거리가 가장 먼 쪽의 오크들부터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우르르르르르.
눈을 번뜩이며 네 발로 내달리는 표범 수인들. 그 뒤를 따르는 우람한 캥거루 수인들.
그 숫자가 수백에 이르는 쿤달리트 돌격대는 오크 군단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멈춰 섰다.
“다들 집중해! 이번엔 진짜로 오크들과 맞설 거야.”
쿤달리트가 도열한 수인들 앞을 오가며 외쳤다. 지금까진 놈들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쪽의 방어선을 허물 만큼 깊고 강하게 돌격하는 것이다. 루빈이 칼란타를 상대하는 동안 흐트러지기 시작한, 북서쪽의 오크들에게 말이다.
“이번엔… 진짜 전투다. 사상자도 나오겠지.”
부정적인 예견을 내놓았지만, 수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도 전쟁을 경험해본 적 없었으나, 그들에겐 수인의 본능이 있었으니까.
초원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온몸을 내던지는 수인의 본능. 쿤달리트는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그래,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야. 일단, 지금 저놈들 주둔지는 방책도 없어. 초원을 정벌하겠다면서, 차마 자기들이 공격당할 걸 생각 못 한 거지.”
오크 병사들을 겹겹이 배치해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낸 게 전부였다.
“그리고 우리가 방어선을 뚫어내도 저놈들은 그쪽으로 부대를 집결시키지 않을 거야. 왜냐, 지금 저쪽엔 모든 걸 결정할 장군이 없거든.”
잠시, 하늘을 살피는 쿤달리트. 하늘엔 독수리 수인에 올라타 있는 흑표 이마카룸이 있었다. 이윽고 그를 향한 눈길을 알아챘는지 이마카룸이 두툼한 앞발 휙휙 내저었다.
까아아악. 까아아악.
그 옆에는 커다란 까마귀에 올라타 있는 블라네가 있다. 블라네는 자신의 ‘암연뢰’를 들어 올려 가늠좌를 확인해보면서 출격을 기다리는 중이다.
쿤달리트 돌격대가 방어선을 흩뜨리는 동안, 이마카룸과 블라네는 그대로 주둔지의 중심에 침투한다. 루빈이 지시한 대로 적 부대장을 처리하는 것. 그게 그들의 임무였다.
칼란타가 없는 지금, 부대장 중 하나라도 제거되면 그놈이 담당하고 있던 3천 오크는 지배에서 풀려난다. 그다음은 오크의 본성에 맡기면 된다. 돌격대가 만들어낸 피비린내가 놈들을 미치게 만들겠지.
“날이 저물 때까지 싸운다!”
크게 울부짖은 쿤달리트가 앞다리를 바닥에 붙인 채 돌격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다른 표범 수인들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르.
수인들의 낮은 울음이 잠시 땅을 두드린다. 마침내 돌격의 뿔나팔을 대신하는 쿤달리트의 외침이 허공을 찢었다.
크르르카아!
표범 수인과 캥거루 수인이 일제히 뛰쳐나갔다. 전속력으로 끌어올린 수인들이 얼마나 빠른지, 오크들은 순식간에 눈앞에 도달한 적을 마주해야 했다.
창이 튀어나오고 검이 휘둘러졌지만, 표범 수인들의 발톱이 거기에 맞섰다. 파열음과 괴성이 들끓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이마카룸과 블라네는 상공으로 치솟으면서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주둔지 중심부의 상공.
“자, ‘투흔의 바람’이 나가신다!”
둘은 오크 부대장을 제거하기 위해 오크들의 머리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 * *
칼란타의 천막 안.
“흐음… 흠…….”
네르하임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계속 맴돌았다. 불안함이 더해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힘주어 깨무는데도 미처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크르르르르.
내리깔리는 울음소리.
네르하임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그녀를 감시하는 오크 부대장이 서슬 퍼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색대의 흔적을 살피기 위해 칼란타가 출격하고, 그때부터 일정 시간을 두고 부대장들이 돌아가며 네르하임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트롤처럼 커다란 오크였고, 지금은 오크치곤 깡마른 놈이다.
부대장들 중에선 가장 약해 보이는 놈이었지만, 어쨌든 이놈 역시 3천 오크에 대한 지배력을 갖춘 지휘관 오크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거지? 그래, 그렇게 할게.”
뒤이은 부대장 오크의 턱짓에 네르하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의자에 앉았지만, 당연하게도 마음이 편해질 리는 없었다.
칼란타의 출격을 막았어야 했나?
하지만 불신과 분노로 점철된 그 오크의 심리를 어찌 다스릴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 중에는 그녀 본인조차 내막을 모르는 것들뿐인데.
다만, 실수 하나만은 확실해 보였다.
‘중간 거점까지는 움직였어야 했어. 여기서 이렇게 멈춰 있을 게 아니라.’
중간 거점. 원래대로라면 투흔의 부족 둘을 섬멸한 뒤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장소였다.
언덕진 곳에 괴석들이 산을 이루는 곳. 평지가 대부분인 초원에서 그나마 주둔지로 적당한 지형이었다.
그곳만을 염두에 둔 터라, 현재 오크 군단엔 방책으로 세울 만한 건축재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근처에 베어낼 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
그 순간, 네르하임은 주둔지 북서쪽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알아차렸다. 비록 천막에 감금됐지만, 곳곳에 짐승들을 퍼뜨려 놓은 터였다.
“이봐, 너도 느꼈지?”
“안다. 그쪽 병사들이 수인들 막아내고 있다.”
부대장은 칼란타보다는 어눌하게 인간 언어를 구사했다.
“막아낸다고? 그러기엔 좀 불리한 거 같은데. 그쪽으로 병력을 증원해야 해.”
“그곳은 내 관할 아니다. 칼란타 님의 통제를 벗어나선 안 된다.”
네르하임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예상된 대답이어서 더 답답했다.
“그럼 빨리 칼란타 장군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모든 건 그분의 뜻이다, 인간.”
“답답하네, 진짜.”
그렇게 말할 때였다.
차랑!
갑자기 부대장 오크가 눈을 부릅뜨면서 제 무기를 빼 들었다. 네르하임은 저놈이 칼란타의 지령에 따라 자신을 제거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네르하임의 등 뒤, 천막을 뚫고 날아온 탄환이 부대장 오크의 어깨에 박혔으니까.
부대장 오크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목에 박혔을 테지만, 먼저 움직이면서 그 정도로 피해를 줄인 것이다.
크르르카아!
신기하게도, 방금 전의 탄환은 네르하임을 앞에 두고 휘어지면서 오크의 어깨에 박혀 들어갔다. 일반적인 탄환 무기로는 절대 불가능한 경지였다.
물론, 네르하임의 눈으로는 탄환의 기이한 궤적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뭐, 뭐야!”
어깨를 감싼 갑옷이 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최대한 몸을 낮춘 네르하임의 머리 위로 두 발의 탄환이 더 날아든다. 한 발은 빗나가지만, 한 발은 또다시 어깨의 같은 자리에 박혀 들어간다.
장군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지휘부 암살이라니.
‘가만, 저 오크가 지금 죽어버리면? 3천 오크가 지배에서 벗어나잖아!’
수많은 씨종이 섞여 있다. 한쪽에선 돌격대와 맞서며 피비린내를 뿌리고 있고. 분명 아비규환이 펼쳐질 터였다.
‘어떻게든 살려야 해.’
네르하임은 주둔지 동쪽에 배치해둔 거대한 뱀, 페니악을 불렀다. 페니악 뿐만 아니라, 일군의 오크 병사들도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아마 이 부대장이 다스리는 병사들일 것이다.
“이봐, 괜찮나?”
크르르르르.
왼쪽 어깨가 함몰된 채로 오크는 땅에 박아 넣은 검에 지탱했다.
“그래도 탄환 공격은 끝난 것 같군. 엎드려 있어. 병사들이 올 테니까. 네가 죽으면 큰일 나는 거 알지?”
크르르르.
그러나 오크는 그대로였다. 그제야 네르하임은 오크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부대장을 노리는 암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2차 공격은, 천막의 지붕이 찢기면서 시작됐다. 날카로운 발톱을 내뻗으면서 떨어지는 암살자. 오크는 검을 들어 첫 공격만은 막아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흑표는 다시 달려들었고, 부상당한 오크의 상체에 올라타며 연속 공격을 펼쳤다.
‘제기랄, 끝났잖아.’
부대장 오크는 무력했다. 이미 부상당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과연 저 표범 수인을 막아낼 수 있었을지.
크르, 크르르…….
발톱이 지나갈 때마다 오크의 피가 흩뿌려졌다. 오크의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흑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실했다.
두 앞발을 오크의 목에 박아 넣더니, 다음 순간 그대로 들어 올려 머리통을 뜯어냈다.
데구르르르.
오크의 머리통은 네르하임 쪽으로 굴러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네르하임은 애벌레처럼 움직이며 뒤쪽으로 몸을 뺐다.
“네가 네르하임이구나, 맞지?”
“……!”
이마카룸은 오크 머리통에 발을 올리더니, 네르하임 쪽으로 쓰윽 얼굴을 가져다 댔다. 흰자와 검은자가 뒤바뀐 두 눈을 부릅뜨면서.
“우리 투흔마를 제국의 똥구멍에 갖다 바치는 구린내 나는 수혈인.”
“아니, 그게-”
“널 죽이고 싶다만, 정말 이 오크 새끼처럼 머리통을 뜯어버리고 싶다만-”
그때였다. 천막 한쪽을 들어 올리며 암살자의 또 다른 일행이 나타났다. 검은 복면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암살자였다.
“너, 별명이 ‘오크사냥꾼’이었다면서! 네가 똑바로 맞혔으면 내가 땀 안 빼도 됐잖아. 그렇게 자신하더니.”
흑표가 으스대면서 발로 오크 머리통을 툭 찼다. 복면의 암살자는 이런 그를 그저 무시할 뿐이다.
‘방금 전 탄환의 주인인가?’
한 손에는 단검이, 한 손에는 독특한 모양의 탄환 무기가 들려 있었다.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 바로 빠져나가야 돼.”
놀랍게도 앳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네르하임에게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
이윽고 블라네의 눈이 네르하임에게 내리꽂혔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봐, 오크사냥꾼. 그냥 저 수혈인, 여기서 죽이면 안 되냐? 그래도 부관이라고 했으니까 죽이면 좋을 거 같은데.”
이마카룸이 블라네에게 물었다. 블라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그분’의 지시가 있었잖아. 이 수혈인은 칼란타의 의심을 받고 있어. 살려놔야 칼란타를 더 흔들 수 있어.”
“그래, ‘그분’의 지시라 이거지. 내가 그놈한테 지지만 않았어도…….”
“오크 병사들이 오고 있으니까, 그놈들만 처리하고 가자, 이마카룸.”
흑표의 이름이 이마카룸이라는 게 밝혀지자, 네르하임이 움찔거렸다. 제국의 1급 감옥에 있어야 할 ‘투흔의 바람’이 왜 여기에?
“야, 너는 정체를 숨기면서 내 이름은 밝히냐?”
“어차피 이 여잔 너에 대해 말 못해. 칼란타한테 의심만 살 테니까… 온다!”
블라네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천막이 찢기면서 오크 병사들이 몰아쳤다.
그러나.
혹시나 기대했던 네르하임이 결국 확인하게 된 건, 두 암살자의 완벽한 호흡밖에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훈련해온 것 같았다. 블라네가 역동적이 움직임과 함께 탄환을 쏘아 오크들의 중심을 무너뜨리면, 이마카룸은 발톱을 휘두르며 목을 끊어냈다.
투앙, 푸슉! 투앙, 푸슉!
서로 등을 붙인 채 오크들을 죽이면서도, 각자 몸을 발판 삼아 도약하거나 피해냈기도 했다.
음률처럼 유려한 움직임. 파도처럼 밀려들었던 오크들은 붉은 포말만 남긴 채 속절없이 쓰러졌다.
“왔다, 이마카룸!”
하늘에 나타난 독수리 수인과 로이네크로우 오호스.
블라네의 외침에 이마카룸이 앞발을 포갰다. 그 위로 블라네가 발을 디디는 순간, 이마카룸이 팔을 힘껏 들어 올려 블라네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처억.
오호스 등에 안착한 블라네. 암연뢰를 쏘면서 이마카룸을 엄호했다. 이윽고, 바닥을 박차며 도약한 이마카룸도 자신이 탈 독수리 수인을 붙잡았다.
“이게 도대체…….”
네르하임은 멀어지는 두 암살자를 우두커니 바라만 봤다.
그러나 참사는 이제부터였다. 부대장 오크가 죽으면서 지배력에서 벗어난 3천 오크. 주둔지에 가득 퍼져나간 피비린내에 젖어들었다.
그중 더 나약한 놈들부터 ‘광기’에 빠졌고, 그놈들은 주변 오크를 공격했다. 특히 쿤달리트 돌격대가 접전을 벌이던 북서쪽 오크들의 후방을 노렸다.
목적한 바를 이룬 쿤달리트 돌격대는 유유히 후퇴하고…….
그로부터 30분.
부상당한 칼란타가 주둔지로 복귀하면서, 다시 지배력을 갖추고 오크들을 통제했지만, 그 30분 사이에 벌어진 참사는 너무도 막대했다.
무려 2천이었다. 1만 오크 중 2천이나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제부터 시작될 일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