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50)
암살검가 로이넨-250화(250/258)
제250화. 신념과 열등감
‘하네케…. 분명 하네케가 확실해.’
수염을 흩날리며 바닥에 착지하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레먼리브는 그가 바로 전대 대장군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직감이었다. 머리로는 확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앞서는 직감이 있었다. 브리온 오러의 향과 색이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강대함이 느껴졌으니까.
흉내 내는 것이 불가능한 강대함이었다. 7성의 무인만이 뿜어낼 수 있는, 평생을 검을 쥐었던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강대함.
그 순간, 레먼리브의 머릿속에는 해묵은 장면들이 연쇄적으로 펼쳐졌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방심이란 건 안다. 더군다나 하네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적개심으로 보자면 더더욱.
그러나 레먼리브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하네케는 그만큼의 인물이었으니까.
‘내가 네 전사(戰死) 통지서에 서명할게. 너는 내 거에다가 서명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장면. 장교로 막 임관했던, 이른바 핏덩이 시절이었다.
아마 눈앞에 하네케가 등장하면서 ‘전사 통지서’를 운운했기 때문이리라. 잊은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오래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입 장교 시절, 둘은 같은 부대에 배속됐다. 오래지 않아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둘 다 군인 가문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당시 제국군의 군례에 따르면, 전사한 군인의 통지서에는 직속상관과 가장 절친한 동료의 서명이 들어갔다.
전사 통지서를 들고 유족들을 찾아가 전해주는 것도 절친한 동료의 의무였다.
하네케와 레먼리브는 괴수 토벌 작전에 처음으로 투입됐던 그날, 각자의 전사 통지서 서명을 기약했다.
그 뒤로 수십 년이 흐르면서 그 약속을 까맣게 잊은 줄 알았건만. 그도, 하네케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임 시절을 같은 부대에서 보낸 두 사람. 이후로는 같이 근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둘 다 군인 사회에서 자주 언급될 정도로 유능한 장교로 성장했으니까. 그리고 유능한 장교 둘을 한 부대에 두기엔 대륙은 너무도 넓었다.
하네케가 북부에 있을 때 레먼리브는 남부에 있었고, 하네케가 오크를 섬멸할 때 레먼리브는 괴수를 토벌했다.
둘은 빠르게 진급해나갔다.
브리온 가문과 카이트 가문. 둘 다 군인 가문으로는 뼈대가 굵었지만, 그렇다고 선조 중에 군단장까지 올랐던 이는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두고 각 가문의 이름을 그 어느 때보다 빛낼 거라는 평가가 퍼져나갔다. 대장군까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군단장에는 오를 재목이라고.
‘죄다 씁쓸한 장면들뿐이군.’
환절기처럼 찾아드는 열패감. 처음에는 훈훈했던 장면들이 빠르게 잿빛으로 젖어들었다.
2, 3년에 한 번씩 장교들에게 주어졌던 휴가 기간. 이를 맞아 제도로 돌아올 때마다, 레먼리브는 하네케와의 격차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격차였다. 남들에겐 그저 똑같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러나 같은 길 위에 서 있으면 너무도 확연하게 보이는 법이었다. 레먼리브가 보게 되는 건 언제나 앞서나가고 있는 하네케의 등이었다.
무위에 있어서 늘 한 발짝 더 강해져 있었던 하네케. 그뿐만 아니라, 황실이 마련한 공훈 수여식에서도 하네케는 언제나 그보다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네케도 나도 장군으로 진급하기 직전이었지.’
괴수 범람지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레먼리브의 부대가 괴수들에 포위된 적이 있었다. 기존 상급 부대는 모두 전멸했고, 레먼리브가 이끄는 예하 부대만 생존한 상황.
‘그날… 팔이 잘려 나가고,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그 앞에 나타난 건 하네케였다. 방금 이마카룸을 구해낸 것처럼 말이다. 구출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자신의 팔을 물어뜯는 괴수를, 그가 보는 앞에서 직접 처단하던 하네케. 그러나 고마움을 느끼기에는 레먼리브의 열패감은 너무 짙었다.
어쩌면, 그가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기계수 이식을 선택했던 것도 하네케에 대한 열패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저자를 꼭 뛰어넘고 싶다는 열망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확실했다. ‘은벽의 기계수’라는 위명과 함께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니.
물론… 그 뒤로도 하네케의 그림자만 밟으면서 늙어가는 건 변함없었지만…….
“…….”
회상을 끝낸 레먼리브는 묵묵히 서 있는 하네케를 바라봤다. 그 옆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마카룸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네케, 나 정말 죽을 뻔했다고. 꼭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나타났어야 했냐?”
“둘 다, 은벽의 기계수를 상대로 잘 버텨냈다.”
“너, 저 골렘 팔 노친네 이길 수 있는 거 맞지?”
그 말에 하네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전투에 휩쓸리지 않도록 이마카룸과 블라네에게 손짓했다. 블라네에게는 따로 말을 덧붙였다.
“내가 위기에 처하더라도, 레먼리브를 저격하지는 마.”
“하지만…….”
“저자는, 평생을 제국을 위해 헌신한 군인이다. 그 충성심을 빛바래게 할 순 없지.”
“알겠습니다, 하네케.”
다음 순간, 하네케와 레먼리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하네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좀 당황스러울 거 안다, 레먼리브.”
“…….”
“간략히 설명을 하자면-”
그런데 레먼리브가 하네케의 말을 잘랐다.
“너를 위한 전사 통지서는 없었다, 하네케.”
“아, 아까 내가 했던 말 때문인가. 나는 그냥 우리가 젊을 때 했던 약속을 떠올렸을 뿐…….”
“일단, 넌 전사하지 않았지. 손자의 반역을 알아차리고, 놈을 죽인 다음 자결했으니까.”
“…….”
“넌 전투 중에 죽지도 않았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전사 통지서에 서명하지 않았을 거다. 반역자 혈통에 내 이름을 새기긴 싫거든.”
하네케는 도발에 발끈하지 않고 가벼운 침음을 흘렸다. 그는 잠시 검 끝을 땅 쪽으로 내렸다.
“내 시체를 보았나?”
“그때 난 제도방위단장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네 시체를 확인했지.”
“보아하니, 내가 하네케라는 걸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 내 시체를 똑똑히 보았다는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래, 넌 분명 죽었었는데 또 이렇게 살아있군. 흑마법인가? 아니면 투흔의 주술 같은 건가? 아니면… 가짜로 죽음을 꾸며냈던 거냐? 더 성공적인 반역을 위해서?”
죽음을 꾸며낸 건 아니었지만, 성공적인 반역을 노리고 있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죽기 전까지는 아니었으나, 이제 그는 정말로 반역을 꿈꾸니까. 그러니 공교롭게도 반역자의 혈통이라는 사실 또한 들어맞는 셈이었다.
“뭐가 됐든 설명이 무의미할 거 같군, 레먼리브.”
“뭐라?”
“너는 곧 죽을 텐데, 설명해봐야 내 입만 손해일 테니.”
위우우우웅.
하네케의 검이 다시 흑칠의 겹을 늘려갔다. 그는 단숨에 7성 오러를 발현시켰다. 레먼리브도 기계수를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렸다.
“네가 흑마법에 되살아난 상태든, 마령에게 지배를 당하는 상태든 간에 상관없다. 너와 이렇게 싸울 수 있어 만족하니까.”
“그거 다행이군.”
“그랑버드를 죽인 게 네 짓이냐?”
“그런 셈이지.”
“그런 셈이다? 그러면… 북부2군단장 덤프는 어찌 됐지?”
하네케는 어제 치렀던 대결을 떠올렸다. 6성의 덤프는 하네케를 상대로 꽤 버텨냈다.
하지만 그뿐.
하네케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려, 조그맣게 팬 흉터 두어 개를 보여주었다.
“녀석이 남긴 유언이다.”
“…덤프는 내가 아끼는 장군이었다. 지독한 골초라서 오래 살 운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전대 대장군한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면서도 레먼리브는, 하네케라면 덤프에게 군인의 예우를 다 해줬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하네케의 성격이었다.
“괴수와 오크를 맞붙게 만든 전략은 너다웠다, 하네케. 하지만 내가 마격포로 결계를 만들어 답답하겠군.”
둘은 잠시 고개를 돌려 오크와 괴수 사이에 나타난 견고한 결계를 바라봤다.
“네가 이 작전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네 뜻대로 되게 하진 않을 거다. 지금까지 벌인 짓만으로도 즉결처분은 온당하니 그리 알도록. 군법재판소에 회부되는 절차도 생략해주지.”
레먼리브는 다시 하네케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네케는 여전히 결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제국군이 아니다, 레먼리브. 그리고-”
“……?”
“저 결계는, 너와 내가 대결을 끝내기도 전에 파손될 거라 장담하지.”
“뭐?”
“마격탄으로 만들어낸 결계이니 꽤 견고하겠지? 하지만 저쪽에도 믿을 만한 아군이 있거든.”
흡족한 웃음. 여유로움을 넘어서는 시건방진 모습. 레먼리브는 곧바로 기계수로 세 갈래의 창 모양 오러를 발현시켰다. 믿을 만한 아군이라니…….
“…도대체 너는 투흔 놈들과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이냐!”
“죽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복수.”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그도 루빈도 한 번씩은 죽었던 자들이었으니까.
하네케는 검을 들어 눈앞의 상대를 겨눴다. 폭발적인 오러에 그를 중심으로 기압이 상승했다. 그건 레먼리브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게도 넌 내가 기억할 때보다 녹슨 것 같던데, 레먼리브.”
“그거 아나, 하네케? 네가 싸웠던 과거의 나는, 내 9할에 불과했다.”
“그런가? 네가 기억하는 내 모습이야말로 내 8할에 불과할 텐데.”
“날 바보로 아는군. 거만 떨지 마라, 하네케. 당시에 넌 전력을 다했었다.”
“전력을 다했지. 하지만, 누군가는 죽어서도 성장하는 법이라네.”
다음 순간, 레먼리브가 하네케를 향해 돌진했다.
이미 그의 기계수 출력은 90퍼센트. 하네케와의 첫 싸움 이후, 다시는 개방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치였다.
동시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수치이기도 했지만, 레먼리브는 처음부터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걸 잘 알았다.
두 노장의 무기가 격돌하는 최초의 순간, 그 파장은 일대로 뻗어나갔다. 심지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괴수들도 순간적으로 그 본능을 억누르며 움칫거릴 정도였다.
콰콰콰콰쾅!
‘허풍이 아니군.’
레먼리브는 오러의 형태를 화염거(火焰鋸)로 바꾸면서 생각했다.
하네케와 맞붙은 덤프가 고작 두 군데 상처를 만들어냈다 했던가. 그건 필시 하네케가 방심했거나, 일부러 공격을 허용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의 하네케는, 덤프가 어찌해볼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죽어서 성장한 것 같았다.
‘언뜻언뜻 엿보이는 기이한 움직임.’
그건 기존 하네케의 방식과 달랐다. 그 본연의 검은 살아있되, 못 본 사이에 뭔가를 새롭게 연마한 것이었다.
설마 8성에 접어들었나? 자연스레 그런 의문마저 떠오를 정도였지만, 엄밀히 말해 오러 자체가 더 강대해졌다고 볼 순 없었다. 그보다는 검식에 역동성과 폭발성이 늘어난 것에 가까웠다.
문득, 레먼리브의 머릿속으로 아까 맞붙었던 저격수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하네케에게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이 기이한 움직임과 분명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브리온 검술만 고집했던 네가… 뭘 받아들인 거냐. 무엇 때문에?’
하네케는 루빈에게 브리온 검술을 가르치기만 한 게 아니었다. 로이넨 검맥을 지닌 루빈이 브리온 검결을 융합한 것처럼, 그 역시 로이넨 검술을 받아들였다.
각자 품고 있는 검의 뿌리가 달랐기에 루빈과는 다른 결과물이었지만.
원래 브리온 검식은 12식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지금 레먼리브를 압박해가는 하네케의 검식은 13식이었다.
그 이름, ‘바람의 그림자’.
프스스슷.
사방에서 쏟아지는 ‘바람의 그림자’에, 레먼리브의 ‘화염거’가 균열을 일으켰다. 레먼리브는 뒤로 물러나 오러를 다시 응집시켰다.
그리고 직감했다. 지금의 90퍼센트 출력으로는 하네케를 상대할 수 없다.
‘내가… 기계수의 새로운 경지를 버틸 수 있을까.’
레먼리브는 뺨에 생긴 피를 쓱 닦아내며 생각했다. 그 몸은 들썩이고 있었다.
‘출력 92퍼센트… 93퍼센트.’
기계수의 출력을 늘려갔다. 9할 이상부터는 단숨에 증폭시킬 수 없었고, 오직 점진적인 개방만 가능했다.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는군.’
9할에 이르면 몰아(沒我), 즉 나를 잊는 단계가 시작되고 그 너머로 나아갈수록 의식조차 흐릿해진다. 뭔가에 자신이 집어삼켜질 것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흐으… 하악…….”
“레먼리브. 정말 그렇게까지 할 셈이냐?”
하네케 몸에선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 역시 역공에 허용하면서 얻은 피를 쓱 닦아냈다.
레먼리브의 상태가 위험을 향해 치닫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점점 육박해오는 강대함에 브리온 오러가 꿈틀거렸다.
“기억하나, 하네케? ‘군인은 신념의 포로다.’라는 제국군의 잠언.”
“기억하고 말고. 초임 장교가 되면, 잠꼬대같이 새겨야 하는 말이었지.”
“…그래, 군인의 모든 행동엔 신념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 당시 우리에겐 제국이 대륙을 안전하게 만든다는 신념이 있었고.”
“…….”
“그런데 대장군이 되어 지난날을 반추할 만한 시간이 잦아지다 보니, 나는 알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난 신념을 잃었던 거라고. 그저 너에 대한 열등감의 포로가 됐을 뿐이었지.”
레먼리브의 거구 곳곳에서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온 피가 기계수로 몰리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핏줄.
‘출력 94퍼센트…….’
여기서 1퍼센트가 더 개방되면, 그땐 자신의 의식이 아예 사라질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하네케에게 진솔한 말을 남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하네케. 크흑… 의식을 잃을 것 같군. 그저 지금으로선… 내가 다시 깨어나, 의식을 찾는 순간… 네가 내 발아래 짓이겨져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념의 포로가 아닌, 열등감의 포로였대도 상관없다. 그의 의식이 점멸한다. 어둠 속에 잠겼다가 되돌아오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와 동시에, 기계수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힘이 느껴졌다.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경지가 그 발아래에 있었다.
그때.
쿠우우웅!
콰콰콰쾅!
“……?”
이 굉음은 하네케와 레먼리브 사이에서 일어난 게 아니었다. 저 멀리서 울리는 굉음이었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이게 뭔 소리일까’ 생각했던 레먼리브는 곧바로 답을 찾았다.
‘아, 결계가 부서지는 소리로군.’
정말로 저쪽에도 하네케 진영의 누군가가 있는 것이고, 하네케가 호언했던 것처럼 그자는 제 몫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결계는 결코 무너지면 안 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군.’
그저 레먼리브는 일생의 호적수 하네케를 짓밟는 것만을 원했으니까.
오크 군단이 궤멸되든, 작전이 실패하든. 이젠 아무 상관없었다. 어차피 황궁으로 돌아가 봤자 소모품처럼 내버려질 걸 알고 있었다.
다음 순간-
피이이이이잉.
레먼리브가 눈을 부릅떴다. 그 눈에는 동공을 뒤엎는 빛이 서려 있었다. 입안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결국…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레먼리브.”
하네케는 숨을 들이켜며, 제 검을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