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51)
암살검가 로이넨-251화(251/258)
제251화. 출력 100퍼센트
결계가 붕괴되기 전.
칼란타는 솟아난 바위 위에서 두 노장의 사투를 지켜보던 중이었다. 쥐고 있는 망원경이 부르르 떨릴 만큼, 지휘관 오크가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함께 태어날 예정이었던 오크왕을 죽인 대장군 레먼리브. 그를 향한 복수심이 들끓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뿜어내고 있는 압도적인 무위에는 경외감 또한 저절로 생겨났다.
“칼란타, 일단 저 좀 빼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바위 아래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네르하임의 목소리. 그녀는 오크 뼈로 만든 케이지에 여전히 갇혀 있었다.
“그게 장군의 신상에도 좋을 거 같아서 해드리는 조언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대장군이 왜 직접 나섰겠습니까.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칼란타 장군을 돕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대장군이 움직였다면, 그건 곧 제국군의 뜻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황명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칼란타는 바위 위에서 훌쩍 내려와 네르하임을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네르하임은 대장군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야만 했다. 현재 억압된 그녀의 자세로는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테니까.
“대장군이 온 걸 알고 있군.”
틀림없이 수혈인의 능력을 통해 보았겠지. 그걸 방지하고자 틈이 나는 대로 기절을 시켰던 건데, 긴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틈을 허용하고 말았다.
“설마 또 저를 기절시키려는 건 아니죠?”
“저쪽의 싸움을 얼마큼 봤지, 네르하임?”
“어떤 노인이 난입한 직후까지…. 그때부턴 제가 부리는 짐승들도 접근하지 못했거든요.”
흘러나오는 엄청난 위압에 따라, 그녀의 짐승들은 두려움에 빠졌던 터. 강제로 집어넣을 순 있겠지만, 전장의 열기에 곧바로 불탔을 것이다.
“그럼 너도 저 노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거군.”
“예,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가 누구든 간에, 대장군이 곧 종결시킬 거 아닙니까.”
과연 그럴까? 네르하임은 모르고 있지만, 칼란타는 사투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싸웠을 때와는 다르게 전력을 다하고 있는 레먼리브. 그런 그마저도 의문의 노인을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레먼리브가 오크 군단을 도와주러 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
몇 시간 전까지, 칼란타는 제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오크만의 요새를 짓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괴수들이 나타나 진격해왔던 것이다.
“저 결계를 보세요, 칼란타.”
“…….”
네르하임은 어떻게든 케이지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지껄였다.
“저 정도 결계라면 3일은 거뜬히 괴수들을 막아줄 겁니다. 그사이에 군단을 움직여서 주변의 수인들을 다 섬멸하십시오.”
그 말처럼, 결계는 견고해 보였다. 결계의 재질에 괴수들을 압박하는 특성이라도 있는 것인지, 괴수들 대부분이 달려들지조차 못하는 중이다.
칼란타는 주변을 쓱 둘러봤다.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수많은 수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 수는 족히 수만은 되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초원의 투흔들이 모두 집결한 것 같았다.
코뿔소, 독수리, 악어, 캥거루 그리고 표범의 수인들. 저들은 오크와 괴수를 가운데 두고, 빙 포위한 채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크와 괴수가 충돌하면, 그때 몰아쳐 남은 병력을 섬멸하겠다는 전략이었던 것 같았다.
“수인들 숫자가 많지만, 저들의 포위망이 견고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확인하셨잖아요? 주둔지를 습격했던 수인들 수준 말입니다. 장군의 오크들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흐음…….”
맞는 말이었다.
어제, 의문의 인간에게 자신이 붙들려 있던 사이.
그때를 노리고 수인들이 주둔지를 습격했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수인 개개인은 강할지 몰라도, 군단 단위로는 수년째 훈련을 해온 오크가 몇 수는 위였다.
더군다나 이번엔 칼란타가 직접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포위한 수인들을 하나씩 섬멸해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결계만 온전하다면… 그렇다면 부대를 움직여 수인들부터 처리하는 게 맞아. 이틀 안에 놈들을 섬멸하든, 놈들한테서 항복을 받아내든. 그다음에 괴수를 처리한다면.’
칼란타는 냉철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의 유일한 변수는 레먼리브의 패배뿐인데, 그것도 자신이 원군을 보내면 해결이 가능해 보였다.
“…결정을 내린 겁니까?”
괴수와 대치 중이던 8천 오크가 네 개 군단으로 분할되는 모습에, 네르하임이 말했다.
지휘관 오크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병력은 우르르르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빠르게 재편됐다.
“하나는 레먼리브를 도우러 갈 것이고, 둘은 투흔 놈들을 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대기한다.”
“적절한 결정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제국과도 굳이 척을 질 필요도 없는 거고요.”
“물론, 그렇다 해서 널 부관으로 복귀시키겠다는 뜻은 아니야.”
그렇게 칼란타는 부대를 각 방향으로 진군시키려 했다. 그와 동시에, 케이지의 뼈 사이로 손을 뻗어 네르하임의 목을 움켜쥐려고 했는데.
우뚝.
손길이 도중에 멈춘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뭔가가 있다.’
그는 자신이 분할시킨 군단을 내려다봤다.
각각 1천, 1천, 3천, 3천의 군단들. 이 중 1천 오크는 레먼리브를 도와 의문의 노인을 제압하는 데 쓰일 것이고, 또 다른 1천 오크는 요새화에 들어간 현 지점을 방위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묘한 찝찝함은 뭘까. 분명 모든 오크들이 자신의 통제 안에 있는데.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계획대로 행할 때였다.
‘진군하라.’
지휘관 오크의 능력이 발현됨에 따라, 오크들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각 부대장들이 선봉에 서고, 인간 귀에는 괴상하기 그지없는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힘주어 발소리를 만들어내면서 각 방향으로 흩어지는 오크들.
이제, 결계 앞이 깨끗이 비워졌다.
그런데.
“……!”
모든 병력이 빠진 자리에 중갑의 오크 하나가 고요히 서 있는 게 보였다.
‘지배되지 않는 놈이 있어?’
중갑 오크는 손을 들어 결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신을 놔두고 흩어지는 오크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마치 적당히 흩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칼란타는 지배력을 펼쳐 그놈을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놈, 오크가 아냐.”
휙, 놈을 통과하면서 흩어지는 그의 지배력. 마치 칼란타의 능력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놈이 이쪽을 바라봤다. 중갑 투구와 얼굴을 가린 철갑으로 인해 그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오크가 아니라뇨?”
“설마……!”
“왜 그럽니까, 칼란타.”
칼란타는 각 방향으로 진군시키던 군단을 멈춰 세웠다. 그런 다음 등에 메고 있던 해머와 도끼를 꺼내 들며, 직접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쿵! 쿵! 쿵!
놈을 향해 달려드는 칼란타.
저놈은 오크가 아닐뿐더러, 아주 위험한 적이었다. 저놈이 각 양손 쥔 무기를 칼란타는 알아보았다. 하나는 자신의 뒷목을 갈랐던 그 날아다니는 단검이었고, 나머지는 순간적으로 계곡물을 얼렸던 그 신비로운 단검이었으니까.
놈에게 빠르게 접근하기 위해, 칼란타는 지휘관 오크에게만 존재하는 특수한 근육을 사용했다.
꿀럭꿀럭.
그의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이 뒤틀렸다. 그대로 칼란타는 바닥을 박차며 올랐다. 상식을 뛰어넘은 수준의 엄청난 도약. 그는 허공을 가르며 놈에게 다가들었다.
‘제기랄!’
그러나 이미 늦었다. 결계를 향해 돌아선 놈은, 두 단검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칼란타는 두 단검을 휘감는 흑칠의 오러를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단검에서 뿜어지는 혹한의 서리까지.
콰지지직!
서리를 뿜어내는 단검이 결계에 박혀 들어갔다. 결계에 균열이 인다. 또 하나의 단검마저 박혀 들어가는 순간, 쩌쩌저저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우우우웅.
결계의 틈이 벌어지면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계에 가로막힌 괴수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울음소리를 높였다.
크르르르카아!
괴수들의 울음소리에다가, 칼란타의 분노에 찬 외침이 한데 섞인다. 한 번 더 높이 뛰어오른 칼란타는, 온 힘을 담아 도끼를 내던졌다.
부우우웅.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도끼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고 말았다.
‘……!’
‘그림자 역장’. 루빈은 반구형의 암연을 퍼뜨리면서 날아드는 도끼를 무중력 안에 가둬버렸다.
슬쩍 뒤를 돌아본 루빈은, 자신을 저지하려 달려드는 칼란타를 서늘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다음, 비검과 핏빛서리로 다시 한번 결계를 내리친다.
쩌저저저적.
단 두 번의 공격이면 충분했다. 이미 결계의 취약점을 노린 일격이었으니.
쿠우우웅!
콰콰콰쾅!
루빈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결계의 붕괴. 대지를 뒤흔드는 충격에 루빈조차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시커먼 흙먼지가 일대를 뒤덮었다.
그 속에서 루빈은, 분노로 가득 찬 괴수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크르르르. 괴수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오크들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 * *
우르르르르.
귀를 따갑게 하는 울림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가던 세 오크 군단은, 진군의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그들은 갑옷을 들썩거리며 루빈 쪽으로 몰려들었다.
한편, 괴수들 또한 개미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효과적인 충돌을 위해 하네케가 인위적으로 대열을 형성했었지만, 결계로 인해 흐트러진 것이다.
‘이제 나는 칼란타만 맡으면 되겠군.’
루빈은 매캐한 먼지 속에서도 형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오크를 바라봤다. 거대한 해머에서 오크의 오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네케…….’
대장군 레먼리브의 등장으로 판도가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때맞춰 하네케가 나서서 다행이었다.
현시점, 초원에 들어선 모든 존재 중 가장 강력한 자는 단연 하네케였다.
물론, 루빈 또한 레먼리브의 기계수 출력이 미증유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루빈의 암연에 공명을 일으킬 정도로 그 힘이 증폭되고 있었으니까. 그건 루빈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네케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레먼리브는 스스로 불타버리겠지. 나는 칼란타에게만 집중하면 돼.’
루빈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였다.
루빈은 칼란타를 죽이고, 하네케는 레먼리브를 죽이는 것. 저녁이 오면, ‘투흔의 해일’이 남아있던 모든 침입자를 죽이는 것까지.
그렇게 제국의 ‘일몰 작전’은 해가 뜨기 전에 완전히 침몰하게 되는 것이다.
채앵!
루빈은 달려드는 칼란타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뒤이어 몰려든 오크 전사들이 루빈을 에워쌌다. 모두 칼란타의 의지일 것이다.
칼란타 역시 루빈부터 제거하는 게 괴수와의 전투를 더 수월하게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휘이이이이.
핏빛서리에서 뿜어져 나온 혹한의 서리가 일대를 얼어붙게 했다. 근접해 있는 오크들의 하반신이 무력하게 얼어붙었고, 루빈의 비검이 휙 날아들며 얼어붙은 다리들을 그대로 깨트려버렸다.
퍼서서서.
끄아아아악!
제아무리 지배당하는 오크들일지라도 고통은 느끼는지라, 울부짖음마저 참아낼 순 없었다.
“이제 곧 괴수랑 싸워야 할 텐데. 전사들을 아끼는 게 낫지 않겠어?”
루빈이 칼란타를 향해 소리쳤다. 칼란타는 무시한 채 공격을 이어왔다. 밀려드는 오크들 사이로 칼란타의 해머가 매섭게 쏟아졌다.
텅! 터억! 부우웅!
그런데 그때.
‘……!’
루빈의 눈이 부릅떠졌다.
루빈은 눈앞 오크 전사의 목울대에 단검을 꽂아 넣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하네케가 있는 전장이었다.
이럴 수가.
심각함을 감지한 루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네케의 패배? 죽음?
아니다.
피이이이잉.
선명한 울림이 퍼졌다. 이건 루빈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동시에 중갑으로 가려진 루빈의 왼쪽 팔목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역시 루빈에게만 보이는 빛이었다.
‘1급 마적석.’
레먼리브의 기계수 안에 1급 마적석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숨겨져 있었다. 이전에 그를 봤을 때는 루빈의 ‘릴리크 팔찌’가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원래는 1급 마적석이 아니었던 것이,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서 1급 마적석으로 변모한 것이다.
‘레먼리브에게서 느껴지던 증폭의 기운이 멈췄다. 최대치에 다다른 건가?’
아마 그게 1급 마적석의 조건일 거였다. 레먼리브가 최대치의 힘을 개방하는 것. 하지만 진짜 문제는-
‘1급 마적석이 왜 저기에? 설마…….’
지금은 칼란타와 대결할 때가 아니었다.
루빈은 방향을 완전히 틀어 레먼리브를 향해 헤처나가기 시작했다. 루빈의 앞을 막아서는 오크들은 그대로 목이 잘리며 쓰러져 나갔다.
루빈은 깨달았다. 기계수 속에 숨겨져 있는 1급 마적석은, 레먼리브를 더 강하게 하는 목적이 아님을.
저건…….
‘절멸.’
오직 절멸만을 위해 작동하도록 설계된 마적석이었다.
‘암레트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 발현되도록 설계됐던 폭발마법처럼.’
지난날, 필리몬드의 백색탑 정상에서 어머니가 염동괴제 암레트의 심장을 두고 펼쳤던 검격이 떠올랐다.
그때 심장에 설계되어 있었던 폭발마법은 도시 하나를 없애버릴 만한 규모였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순간 폭발의 기운이 한층 강해졌지만, 이건 오직 루빈만이 느낄 수 있었다. 황족의 피를 지닌 그는 1급 마적석의 주인이기도 했으니까.
‘위험하다.’
당장 그 주변에 있는 하네케와 블라네, 이마카룸의 안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막지 못하면, 멀리서 대기 중인 모든 수인들이 폭발에 휩싸인다.
아니, 그 영향력은 상공까지 뻗어나가 라유비아의 적운까지 뒤흔들 것이다.
‘텔마흐…. 이런 상황까지 생각해두고 대장군을 보낸 거냐.’
루빈은 속력을 냈다. 그를 둘러싼 혹한의 서리가 제약 없이 퍼져나갔다. 서리가 달려드는 오크 놈들을 죄다 얼려버리고, 뒤이은 검격이 놈들을 산산조각 낸다.
푸슉! 푸슉!
우르르르르르.
그러나 수천 오크들이 계속해서 루빈의 앞을 막아섰다. 칼란타는 오로지 루빈 하나만을 노리고 오크들을 계속해서 보내는 중이었다.
‘젠장!’
서둘러야 했다.
1급 마적석에 내재된 폭발을 멈출 수 있는 건, 오로지 루빈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