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26)
암살검가 로이넨-26화(26/258)
제26화. 길리필드 영감의 수목원 (3)
로이네크로우들의 제왕이 되는 법은 간단하다. 제왕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신성한 경주’ 의식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겠지만.
루빈의 설명을 들은 티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그 뭐시기 하는 경주에서 우승하면 제왕이 될 수 있다?”
“그래. 맞아.”
다른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는 환혈족.
환혈족에겐 단순한 변신 능력만 있는 건 아니었다. 환혈족은 각 개체마다 고유한 특성을 하나 지녔는데, 그걸 변신한 생명체에게도 적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빈은 티나의 특성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티나. 너는 환혈족 중에서도 ‘속력’ 분야에선 따라올 자가 없잖아? 맞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눈치가 빠른 편이라.”
타고난 속력. 즉 티나는 변신한 생명체가 무엇이든 극강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그게 랭 척살조의 추격에도 쉽사리 잡히지 않았던 이유였다.
“역시 이거 때문에 날 이리로 데려왔구나. 꼼짝없이 여기서 꼭두각시 제왕 노릇 하고 있으라고. 후…. 그래도 누굴 죽이는 것보다야 까마귀 제왕이 낫긴 하지만.”
임무를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루빈이 살려준 목숨이라는 걸 티나는 모르지 않았다.
결국은 해야 할 일이었다.
피이이이잉.
티나가 소녀의 몸에서 다시 로이네크로우로 변신했다. 짙은 검은색의 커다란 몸체. 날카로운 부리를 휘저으며 허공을 찔러보았다.
로이네크로우로 변한 티나의 민트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길리필드 영감이 코웃음을 쳤다.
“자신 있는 거냐? ‘신성한 경주’는 그냥 단순한 비행 시합이 아니야. 다치거나 죽는 녀석들도 많다고. 그중에서 1등 하기가 쉬운 줄 아는 거냐?”
“영감탱이는 조용하시지? 뭐가 됐든 경주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700년 넘게 까마귀를 연구해 왔던 그들 가문이라 해도, 윙크를 날리며 사람을 말을 하는 까마귀를 언제 보겠는가. 퓌닉은 그녀가 뭐라 하든 입을 벌리며 티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길리필드는 낙관하지 않았다.
“흥, 건방지군. 네가 아무리 빨라 봤자지. 로이네크로우들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티나가 또 뭐라 대꾸하기 전에 루빈이 먼저 끼어들었다.
“길리필드. 어쨌든 티나는 참여할 거예요. 못 미덥더라도 지켜봐 주세요. 티나가 참고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제왕이 될 재목이 사라진 이후부터, 아주 난폭하고 거친 무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그중 대장 놈이 까마귀 왕이 될 확률이 높아. 분명 폭군이 될 녀석이라고.”
“오호, 스토리 좋고! 그럼 난 마왕 때려잡는 용사 역할인가?”
티나는 로이네크로우 모습으로 까악까악 웃어댔고, 그 광경에 영감은 다시 인상을 팍 구겼다.
“잘도 농담하는군. 놈에겐 부하가 많아. 앞서 나가더라도 분명 방해하려 들 테니 포위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뭐, 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영감의 목소리는 한결 더 진지해졌다.
까마귀들의 경주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거야말로 고목지기들이 루빈이 아닌 세이렌의 방문을 고대했던 이유.
“누가 1등이 되건 사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 정말 심각한 건 따로 있지.”
“엥, 내가 1등 하냐 못 하냐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제왕을 가리는 비행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막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면?”
“선택받은 자가 ‘안개의 고목’ 정상으로 올라가서 출발 신호를 내려야 해. 그래야만 고목 상층부에 내리깔린 독안개가 걷히지. 그게 바로 ‘신성한 경주’의 시작 신호야.”
“선택받은 자? 상당히 거슬리는 표현이네.”
“그렇겠지. 너, 환혈족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니까.”
길리필드 영감의 눈길이 그대로 루빈에게로 향했다. 경주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 그리고 선택받은 자.
오직 로이넨 혈통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암연의 기원을 품은 로이넨가. 그 혈통은 순결한 암연을 지녔고, 그것만이 안개의 고목을 정화하여 재생시킬 수 있다.
“로이넨 혈통의 출발 신호. 그게 있어야 ‘신성한 경주’가 시작되는 거야.”
“하겠습니다. 그걸 하기 위해 제가 여기 온 거니까요.”
루빈의 말에 길리필드 영감과 퓌닉 둘 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홉 살 도련님의 패기는 훌륭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다.
“세이렌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해내겠지만 다른 로이넨 혈통이라면 어림도 없어. 특히 너 같은 꼬마한테는!”
고목의 정상부는 그야말로 탑이나 다름없었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줄기를 기어 올라가야 했다. 단순한 절벽이라면 어찌어찌 가능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독안개. 로이넨 저택을 성벽처럼 둘러싼 그 안개보다도 무서운 맹독이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부는 칼바람은 어떤가. 고목을 오르는 자를 당장이라도 찢어낼 것처럼 잔혹했다.
퓌닉이 걱정스레 말했다.
“도련님, 아무래도 무리예요. 가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 내가 직접 올라갈 거야.”
단호한 루빈의 말에 길리필드 영감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렸다.
“어림도 없는 소리! 일을 모두 망칠 셈인가? 자네가 도중에 실패하면 안개의 고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로이네크로우들이 어떻게 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된단 말이야!”
“도련님, 저희가 여기 전문가라고요. 저희 말을 따르셔야 해요! 할아버지 말씀처럼 도중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러나 루빈은 덤덤했다.
“길리필드, 퓌닉. 당신들의 말도 맞지만, 이 문제는 우리 로이넨가, 아니 모든 암살검가들의 문제이기도 해요.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적절한 때 로이네크로우를 제공받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제가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저리 당당하게 나오는지, 고목지기들은 알 수 없었다.
“올라가서 뭘 해야 하는 진 아나?”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순결한 암연을 주입한다. 그래야만 티나의 경주가 시작될 수 있다. 아닌가요?”
“말이야 쉽지!”
영감의 불평으로 들렸지만, 루빈은 그게 허락의 의미임을 깨달았다.
루빈은 흔들림 없었다.
티나 또한 덤덤하긴 마찬가지. 걱정은커녕 오히려 신난다는 투였다. 그녀는 검은 날개를 펼치며 탁자를 뛰어넘었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아. 꼬맹이, 제대로 할 수 있지?”
그녀는 지난번 그로칼 랭과의 일을 떠올렸다. 두 고목지기는 루빈을 그저 아홉 살 꼬마로 보고 있지만, 티나는 알고 있다. 루빈은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꼬맹이라는 걸.
루빈이 티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비행이나 잘해. 한눈팔지 말고.”
날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어둠이 한결 옅어졌다. 하지만 ‘안개의 고목’은 한낮에도 그늘이 지는 곳. 스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집을 나온 길리필드 영감과 퓌닉은 몸에 스미는 독안개를 중화시켜 주는 약초를 열심히 씹어대며 상층부로 들어섰다.
그들의 등장을 알아차린 수천 마리의 로이네크로우들이 각각의 다채로운 빛깔을 품은 눈동자로 두 사람을 관찰했다.
적대감은 없었다. 오래전부터 ‘안개의 고목’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녀석들도 알고 있군.”
“알고 있다니요? 뭘요?”
“지금 루빈이 고목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다는 걸 말이다. 고목과 까마귀들이 서로 암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또한 로이네크로우들은 안다. 지금 고목을 오르는 자가 강한 자인지, 아니면 보잘것없는 녀석인지.
“녀석들, 반신반의하고 있군.”
당연했다. 암살검가 가주 세이렌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꼬마 아이. 그 아이가 정상에 올라 고목을 재생시켜 새로운 제왕을 위한 경주를 시작하겠다고?
예상대로 까마귀들 중 일부는 의심 섞인 자세로 경주를 준비했지만, 대부분은 흥미조차 갖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보며, 길리필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 낭비만 아니길.”
한편.
‘루빈, 이 꼬맹아. 빨리 좀 도착해라. 이러다 변신 풀리면 진짜 난처해진단 말이야.’
날개를 펼쳐놓고 부리를 하늘로 향하는 것이 경주 태세. 그 까마귀들 중에는 티나도 있었다.
그녀는 민트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까아아악, 울음을 내는 중이었다. 경주를 준비하는 로이네크로우의 울음 방식이었다.
그르르륵.
그르르르르.
티나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한 무리의 로이네크로우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길리필드 영감탱이가 경고했던,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그 패거리.
‘건방지게 째려본다 이거지? 내가 왕 되면 너네부터 혼내줄 거니까 기대해.’
티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녀석들이 머리를 흔들며 사납게 울어댔다. 그중 부리에 흉터가 난 커다란 녀석이 위협하듯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부리 끝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흠흠.’
티나는 못 본 척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로이네크로우들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훨씬 더 높은 위치. ‘안개의 고목’ 중간쯤엔 루빈이 칼바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휘이이잉.
찌르는 창칼처럼 바람이 날카로웠다. 몰아치는 바람의 흔적에 따라 거대한 나무줄기 곳곳이 패어 있었다.
“하아… 하아…….”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줄기 군데군데 단검을 꽂아 넣었음에도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두꺼운 로브로 감싼 몸도 어느새 로브 곳곳이 날카로운 바람에 잘려 나가 있었다.
-내가 자네 덕분에 별 희한한 구경을 다 해보는군.
하네케의 소신 발언이었다. 제국군을 통솔하는 정점의 자리에 있던 하네케. 그조차도 이런 환경은 익숙지 않았다. 거기에 ‘안개의 고목’이나 ‘신성한 경주’라니.
암살검가의 존재나 그 가문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나무, 신비한 까마귀. 이런 재밌는 걸 알게 됐으니 죽기를 잘했다고 해야 하나.
‘…기대하시죠. 재밌는 거,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요.’
발을 짚을 만한 자리가 나왔다. 루빈은 쥐고 있던 두 개의 단검을 나란히 붙여 꽂아 넣은 다음, 그 위에 자신의 가벼운 몸을 앉혔다.
“후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두꺼워지는 안개. 이제는 사방으로 잿빛 벽이 둘러쳐진 느낌이었다. 이제 슬슬 독안개의 영역이 나타날 것이다.
“텔마흐가 가장 먼저 공격한 곳이 바로 여기예요.”
회귀 전. 황제 텔마흐는 암살검가의 존재를 세상에 밝히기 직전에, 이곳 ‘안개의 고목’에 제국군을 출진시켰다.
거혈족 여단과 마법사 여단, 그리고 수만 명 규모의 제국군 군단으로 이루어진 대대적인 공격.
지금 루빈이 몸을 지탱하고 있는 안개의 고목의 거대한 몸체가 잘려 나가고, 주인과 맺어지지 않은 야생 로이네크로우 수천 마리가 죽어버렸다. 부화를 기다리던 알들은 무참히 짓이겨졌고.
-그랬군…….
화염으로 뒤덮였던 안개의 고목. 그 처참한 광경을 떠올리던 루빈은 이를 갈았다.
‘살아 있던 모든 게 불타 버렸죠. 수백 년을 살아온 고목도, 수천 마리 로이네크로우도. 그리고 길리필드 영감과 퓌닉도.’
그러나 이번 생은 다를 것이다.
불에 타고 무너지는 것은 안개의 고목이 아니라, 텔마흐의 황궁이 될 테니까.
그러려면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루빈은 꼭대기를 바라보도록 다시 몸을 돌렸다.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쥐고 줄기를 올라갔다.
휘이이잉.
“크으윽.”
순간 포탄에라도 맞은 것처럼 루빈의 몸이 한순간 펄럭거렸다. 줄기에 꽂아 넣은 단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루빈은 있는 힘을 다했다.
‘암연, 암연을 써야 해.’
루빈은 암연을 팔에 응집시켰다. 그러자 팔에 미묘한 열기가 배어들며 안정감이 생겨났다.
“여기서 떨어질 순 없지.”
꼭대기에 가까워지자 독안개가 짙어졌다. 그 독성이란, 회귀 전을 통틀어 이제껏 루빈이 겪었던 그 모든 걸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로이넨 저택을 에워싼 안개 덕분에 어느 정도의 내성은 있다 자신했지만, 고목을 지키는 독안개는 차원이 달랐다.
-루빈! 정신 차리게! 떨어지면 끝장이야!
-루빈! 거의 다 왔네!
하네케의 외침 속에서도 순간순간 의식을 놓쳤다. 그러나 두 손으로 꽉 쥔 단검만큼은 놓지 않았다. 루빈은 오로지 꼭대기만을 바라보았다. 황제를 향한 복수심을 칼날을 벼리는 것처럼 다시 빼 들었다.
“으아아아!”
의식이 끊어질 거 같을 때마다, 루빈은 꼭대기를 향해 힘껏 팔을 뻗치며 소리쳤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 시각. 로이네크로우들이 밀집한 아래쪽에서는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티나, 길리필드, 퓌닉은 각자의 위치에서 로이네크로우들이 크게 술렁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까아아아악.
까아악. 까악.
숲을 울리는 수천 마리의 울음소리.
루빈이 고목의 정상에 올라설지 의심하고 있던 대부분의 로이네크로우들까지 날개를 펼치고 부리를 꼭대기로 향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죠? 갑자기 로이네크로우들이……?”
길리필드는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그놈을 얕봤다는 건가? 잘 봐라, 퓌닉. 모든 로이네크로우들이 ‘신성한 경주’를 준비하고 있어. 세이렌의 아들이 꼭대기에 거의 도달했다는 뜻이지.”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기에 길리필드는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꼭대기에 도착하더라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으니까.
그때, 두 사람 곁으로 한 마리의 로이네크로우가 다가왔다. 민트색 눈동자를 지닌 로이네크로우, 티나였다. 티나도 로이네크로우의 본능에 따라 안개의 고목 꼭대기에 가까워진 루빈을 느끼는 중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로이네크로우로 변신한 몸이 들썩이며 이상한 진동이 온몸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영감탱이, 내가 말했지? 루빈은 그냥 꼬맹이가 아니라고.”
“건방 떨지 마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암연 주입 말하는 거지? 걱정하지 마. 저 꼬맹이, 저래 봬도 암연이 꽤 깊다고.”
“그래 봤자 세이렌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 루빈이 암연을 주입하다가 도중에 정신이라도 잃는다면… 그런 일은 상상도 하기 싫군.”
“정신 잃으면? 어떻게 되는데?”
“선택받은 자는 경주가 끝날 때까지 암연을 주입해야 돼. 도중에 끊긴다면… 경주에 참여한 로이네크로우들 중 상당수가 미쳐 버릴 거다. 생명이란 생명은 모조리 먹어치우는 미치광이 까마귀들이 될 거야.”
“미, 미친!”
무의식중에 섬뜩한 상상을 해버린 티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푸드득 날개를 털었다.
“그러니까 네가 됐든 다른 까마귀가 됐든, 루빈이 쓰러지기 전에 경주를 끝내야 하는 거다. 알겠느냐?”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 경주를 끝내는 것. 그게 더 큰 비극을 막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 할아버지! 안개가 옅어지고 있어요!”
퓌닉이 소리쳤다. 사실이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루빈이 꼭대기에 도착한 것이다.
“어서 준비해, 티나!”
“아, 알고 있어, 영감탱이야!”
티나는 다른 로이네크로우들처럼 날개를 펼쳐서 바닥에 닿게 했다. 부리는 고목 꼭대기를 향해 쳐올렸다.
까아아아악!
까아악!
까악. 까아아아악!
수많은 로이네크로우들이 일시에 내는 울음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안개의 고목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로이네크로우들이…! 루빈 도련님이 순결한 암연을 주입하고 있다는 뜻이죠, 할아버지?”
“그래. 결국 해냈나 보다.”
점점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모두 사라지고, 시야에 까마득한 꼭대기가 나타나면 경주는 시작된다.
그리고 몇 초 후.
까아아악!
까아아아악!
너무 멀어서 바늘의 끝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정상이 드러남과 동시에, 로이네크로우들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신성한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