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31)
암살검가 로이넨-31화(31/258)
제31화. 검은 몽환숲 (4)
연회장 건물과 이어진 형태로, 참가자들을 위한 조그마한 건물이 있었다. 참가자들 전부 그곳에 들어가 초조하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졸린데. 잠은 재워주지 않을 것 같네.”
하밀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크큭, 잠 타령 하는 거 보니까 누가 가장 먼저 탈락할지 정해졌네.”
“내가 탈락하더라도 넌 무조건 데려가줄 테니까 걱정 마.”
하밀과 쿤이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다 쿤이 루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빈, 내가 추천 하나 해줄까? 너한테 적당한 로이넨서가 생각났거든.”
각 가문에서는 로이넨서 후보군을 파악해 놓은 상태. 그렇다면 각자 최우선적으로 노려야 할 로이넨서가 누구인지도 이미 결정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가문의 아주 괜찮은 가신 하나가 이번에 로이넨서 자격을 부여받았거든. 쿠제 마르틴이라고 하는 놈인데, 너한테 잘 어울릴 거야.”
그러면서 쿤은 낄낄거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닌, 반어법이었다. 쿠제 마르틴은 이번 로이넨서 후보군 중에서 선택받을 확률이 가장 적은 가신이었다.
쿤의 가문의 가신인 쿠제는, 최근 임무를 연달아 실패했다. 4성 이상의 실력을 지녔고, 로이넨서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어 로이넨서 자격을 부여받기는 했지만. 최근의 실패담이 겹쳐 크로키슨 가문에서는 이미 실패자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그리고 난 로이넨가의 비칸델을 데려오도록 하지. 아니면 트리캉과 부르소도 좋겠군.”
쿠제가 최하위 로이넨서 후보라면, 비칸델은 그 반대였다. 혁혁한 공을 세운 비칸델은 모든 가주들이 자식의 선생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는 가신이었다.
트리캉과 부르소 역시 로이넨가가 보유한 뛰어난 가신이었다.
‘비칸델은 모든 면에서 강점을 지닌 완성형 로이넨서. 트리캉은 은신에 특화되었고, 부르소는 추적에 특화되었지.’
“쿤, 인제 그만 좀 하지? 참다 참다 이젠 못 참겠네! 1차 선택 때 루빈 도련님한테 보기 좋게 깨진 거, 여기 다른 참가자들한테 들려줘 볼까?”
듣고 있던 하밀이 나섰다.
지난 시험에서 루빈이 쿤을 압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밀뿐. 다른 이들은 아직도 루빈이 운 좋게 우승을 차지한 줄 알고 있었다.
“닥쳐, 이 나약한 년아. 이번엔 다를 거니까 똑똑히 봐두라고. 루빈이나 너나 내가 똑같이 짓밟아줄 테니까!”
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려던 발걸음은, 루빈의 한마디 때문에 우뚝 멈추었다.
“네 조언, 진심으로 고민해 볼게.”
“뭐?”
“쿠제 마르틴을 내 로이넨서로 데려오는 거 말이야.”
“지금 나 놀리는 거냐?”
“어차피 이번에도 내가 1등할 거잖아. 네가 싫어하는 가신을 내가 데려가 줘야, 우리 실력차에 균형이 맞을 거 같은데.”
“더 나불거려, 이 새끼야!”
쿤은 몸을 틀어 쿵쿵거리며 루빈에게 다가갔다. 가주들이 연회장에 있는 지금,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하밀이 일어서서 쿤을 말리려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쿤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도련님, 그만하시지요. 시험 전에 문제를 일으켜서 좋을 게 없습니다.”
크로키슨 가문의 가신이자 최하위 로이넨서 후보로 판명 난 쿠제였다. 그 뒤로 루빈의 경호를 맡은 비칸델도 있었다.
“루빈 도련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괜찮아. 쿤이 겁을 먹은 것 같아서. 달래주고 있었어.”
“…새벽에 보자, 루빈.”
잔뜩 화가 난 쿤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쿠제가 뒤따르긴 했지만, 이윽고 쿤의 욕설이 들려왔다.
“꺼져! 이 실패자 새끼야.”
루빈은 그 광경을 지그시 지켜보았다.
날이 밝아오기 직전. 아홉 명의 참가자들이 어슴푸레한 숲길을 걸어 나갔다. 각 가주들은 참가자들과 떨어져 뒤를 따랐다.
숲의 더 깊은 지점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검은 몽환숲을 채운 암연이 강렬해졌다.
촘촘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두껍게 자리 잡은 안개. 이곳의 안개는 특이하게도 잿빛이었다. 하지만 길리필드 영감의 수목원이나 로이넨 저택의 안개와 달리 독성은 없었다.
참가자들의 뒤를 따르던 가주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어째서 이곳의 이름이 몽환숲인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레인크로키 가주였다. 그는 이어 말했다.
“우리는 여기까지다. 이제 참가자들끼리 나아가도록.”
가주들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가주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과연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아이가 있을지.”
“기대해 봐야지요. 이번 참가자들 중에는 유독 뛰어난 아이가 많으니 말입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도록 의자가 준비됐지만, 대부분의 가주들은 서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2차 선택은 오래 걸리는 시험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가주들이 서 있는 이곳과, 검은 몽환숲 내부에는 시차가 존재했다. 무려 열 배의 차이다.
즉, 바깥에서 20분이라는 시간이 흐를 때, 내부에선 200분이 흘러간다.
어째서 이런 시차가 발생하는지는 암살검가의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벌써 2분이 지났군요. 이제 슬슬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올 때가 됐네요.”
지금 막 안개에 파묻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옵니다!”
가장 앞쪽에 서 있던 레인크로키 가주의 말에 흩어져 있던 가주들이 모여들었다.
쉬이이이이잉.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짙은 안개를 뚫고 다가오는 무언가. 이내 그 물체는 가주들 한가운데에 와서 멈추었다.
“누구지?”
가주들은 탈락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굵은 거미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겨, 마치 몸 크기의 항아리에 담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레인크로키 가주가 단검을 뽑아 들어 아이를 가둔 실타래에 박아 넣었다. 그대로 죽 긋자, 실타래가 투둑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제길!”
레인크로키 가주가 소리쳤다. 그가 나서서 확인한 게 하필 그의 아들이었다.
“두 번째 탈락자가 옵니다.”
가주들이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안개를 뚫으며 다가오는 실타래. 이번엔 좀 더 컸다. 가주들은 이번엔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 * *
레인크로키 가문의 참가자가 거미의 실타래에 갇혀서 바깥으로 운반되기 전.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르는 아이들은 두꺼운 잿빛 안개를 헤치며 계속 걸어가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바깥과 내부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걸 몰랐고, 그냥 시간이 한참 흘렀다고만 생각했다.
“춥지 않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반대였다.
“춥다고? 난 지금 너무 더운데.”
‘암연이 개화되지 않은 참가자들. 벌써 시작된 건가.’
루빈이나 쿤, 하밀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않는 반면 일반적인 참가자들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봤어?”
“뭘 말이야?”
“조금 전에 커다란 물체가 저 앞쪽에서…….”
“닥쳐, 이 새끼들아! 정말 못 봐주겠네!”
결국 소리치며 달려드는 쿤. 칼크리드와 레인크로키 가문의 참가자가 쿤의 몸에 부딪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재수 없는 하밀이 첫 번째로 탈락할 줄 알았는데, 더 나약한 새끼들이 있었네.”
쿤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경멸할 때, 하밀은 두 참가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아직 시험은 시작도 안 했어. 더 나아가야 돼.”
“헛것이 보이냐? 무서워? 그럼 당장 꺼져.”
쿤이 윽박질렀다. 그러나 검은 몽환숲 내부로 들어선 이상, 두 발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다 같이 나아가야 돼.”
지켜보던 루빈이 말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시험은 시작되지 않아. 모두 알고 있을 텐데?”
각자 가주들에게 비밀리에 설명을 들었을 테니까. 그러나 검은 몽환숲의 잔혹한 손아귀 안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은 개개인의 문제였다.
결국 칼크리드와 레인크로키 참가자는 쿤이 발길질을 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가던 중.
“연못이야.”
하밀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환각이 아닌 실제였다.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연못이 난데없이 나타나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연못을 빙 둘러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연못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때. 다족류의 무언가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울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산한 웃음소리.
“참가자들인가?”
웃음소리는 연못 한가운데에서 울리고 있었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여전하네.’
연못의 공중 위로 실을 타고 내려오는 거대한 거미 하나. 초청장 거미들의 여왕, 그리고 검은 몽환숲의 주인이었다.
“나는 이렇게 햇병아리 암살자들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진단 말야.”
몽환거미의 크기는 연못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거미는 하늘에서 내려온 거미실에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양쪽으로 움직여 댔다.
“띡똑띡똑. 자, 이제 너희들의 기억을 들여다볼 시간이야. 모두 연못 안으로 들어오렴.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수백 마리 거미들이 아이들 주변을 에워쌌다.
스샤사사아. 스샤사샤아.
거미들은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하나씩 떼어놓았다. 아이들은 거미들이 내모는 대로 각자 검은 연못의 가장자리로 걸어 나갔다. 모두 발목만 잠길 정도의 자리였다.
스샤사사아! 스샤사사아!
참가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자, 거미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수천 개의 알갱이가 수 놓인 듯한 거미들의 눈이 매끄럽게 빛났다.
“이제 시작해 볼까?”
몽환거미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거대한 몸체가 순식간에 연못 깊숙이 내리꽂혔다. 수면 위에 작은 일렁임조차 만들어내지 않는 기괴한 움직임.
비로소 ‘2차 선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으아아!”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던 아이들 모두, 한순간에 연못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