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32)
암살검가 로이넨-32화(32/258)
제32화. 몽환숲의 시험 (1)
“끄아아아아악!”
누가 질렀는지 모를 비명과 함께 참가자들이 연못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발로 딛고 있던 바닥이 일순간 사라지면서 사방이 어둠에 휩싸였다. 숨결을 틀어쥐는 듯한 어둠이었다.
무력한 상태로 숨이 막히자 일부 참가자들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둠 속에서 가라앉는 건 멈출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고통 속에 입만 달싹이며 질러대는 모든 말들은 몽환거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징징거리는 소리하고는! 시끄럽군.”
몽환거미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눈알을 쿤에게로 가져갔다. 허우적대며 자신의 목을 쥐어뜯는 쿤의 모습이 그대로 눈알에 비쳤다.
“흐음. 나를 찢어발기겠다는 그 말은 기억해 두지.”
입술을 들썩이며 눈알을 부라리는 쿤의 반응을 읽은 것이다.
“앞으로 다른 이들의 죽음을 쌓아갈 예비 암살자들. 시험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건 그냥 시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일 뿐이지.”
이 고통이 끝나려면 조금 더 남았다.
그러다 몽환거미는 유일하게 발버둥을 치지 않는 참가자를 발견했다.
“기절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수심 깊숙이 끌려들어 가고 있지만, 루빈은 그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윽고 감았던 눈을 뜨고 몽환거미를 노려봤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이제 그만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루빈의 생각은 그대로 몽환거미에게 전달되었다.
“가끔 그렇게 호기를 부리는 놈들이 있지.”
몽환거미의 다리 하나가 루빈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참가자 하나 죽인다고, 네놈들 가주가 한마디 항의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몽환거미와 암살검가는 상하 관계가 아닌 일종의 계약 관계. 그걸 모르지 않는 루빈이었다.
‘계약이 파기된다면 이 숲의 존재도 세상에 드러나겠지.’
몽환거미의 눈알이 한순간 색깔을 바꿨다.
“아, 로이넨가의 참가자였나. 제 어미를 닮아 오만한 건 어쩔 수 없군. 익사의 고통 속에서도 뻗대기는.”
그 말에 루빈이 팔짱을 풀었다.
‘익사? 이봐, 난 안 속아. 처음부터 줄곧 연못 위에 서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
“흐음, 별난 놈이군. 시험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는지 지켜보지.”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을 감싸고 있던 깊고 깊은 어둠이 끝이 났다.
주변이 다시 뒤바뀌었다. 연못 밑으로 끌려들어 가던 아이들은 어느 틈에 연못 위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루빈과 쿤을 뺀 다른 아이들 모두 중심을 못 잡고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하아아…. 하아…….”
“끄으으윽.”
아이들은 숨을 몰아쉬었다. 목을 만지작대며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으, 내가 아는 거랑 너무 다른데요.”
하밀이 힘겹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그녀 또한 사전 정보를 통해 몽환거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놈이 몽환을 펼쳐 현혹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든 몽환을 깨부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다들 준비해.”
지금까지는 몽환거미의 장난이었을 뿐.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였다.
루빈의 말에, 바닥을 짚고 있던 하밀이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루빈 양옆에 있는 쿤과 블라네 또한 마찬가지.
루빈도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때.
‘시작됐다.’
일순간 참가자들이 서 있던 연못이 다시 사라졌다. 휙, 하는 짤막한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여기는.’
루빈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이제 어느 건물의 복도에 서 있었다. 널찍하고 깔끔한 복도였다.
눈 아플 정도로 조그마한 체크 문양이 가득 채워져 있는 바닥. 바닥을 내려다보는 참가자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가 어디지?”
“으, 바닥 좀 봐. 어지러워.”
난데없이 복도가 나타나자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별다른 위험은 없는 것 같았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주변을 경계하는 하밀과 아직도 몽환거미에게 분이 풀리지 않는지 몸을 들썩이는 쿤.
루빈은 다른 참가자 하나를 관찰했다. 바로 레인크로키 가문의 참가자였다.
‘첫 번째 순서가 레인크로키라는 건 회귀 전과 똑같아.’
루빈의 기억에 따르면, 여긴 레인크로키가의 저택이었다. 물론 실제는 아니었다. 몽환거미가 레인크로키의 정신을 꿰뚫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2차 선택은 몽환의 시험이라더니.”
하밀의 말에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는 두려움의 시험이라고 부르지.”
각 참가자의 팔목에 팔찌처럼 둘려 있던 거미의 실. 그 팔찌가 참가자의 내면을 헤집고, 그 안에 어떤 두려움이 담겨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시험장.
“으으으.”
뒤바뀐 장소에 레인크로키가 유난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세 살쯤, 체크 무늬가 도드라지는 방 안에서 짓궂은 친형들의 장난감이 된 적 있는 레인크로키.
기억은 선명하지 않지만, 그 두려움만은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건 실제보다 커져, 아주 기괴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가위, 가위가 내 손가락을 잘랐어!”
“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
쿤은 레인크로키의 중얼거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쿤이 더욱더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저건 뭐야, 시발!”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날카로운 가위 하나가 다리를 벌린 채 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기습적이긴 해도 위협은 되지 못했다. 쿤은 몸을 틀어 간단히 가위를 피해 버렸다.
“쳇, 시시하네.”
뒤이어 다른 참가자들 쪽으로도 날카로운 가위들이 날아들었다. 루빈도 쏟아지는 가위를 유유히 피해냈다.
“으으으으.”
레인크로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가위만이 아니었지.’
루빈의 기억대로라면, 이때의 레인크로키의 두려움은 기괴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형들이 세 살짜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레인크로키에게 잠재된 두려움은 이 세상에 없는 생물체를 탄생시켰다.
끼리리릭, 끼리리리릭.
복도 저편. 어두컴컴한 곳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괴한 모양의 가위가, 날을 챙챙 부딪치며 공포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진짜 문제는, 사람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가 아니란 것이다.
성견 정도의 크기랄까. 허공에 둥둥 뜬 커다란 가위가 미친 듯이 날을 부딪치며 이쪽을 향했다.
그 수는 수십 개.
곧 가위들이 들개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첫 번째 순서는 금방 끝날 거야. 레인크로키가 견디지 못할 테니까.’
두려움의 주인이 극복하지 못하고 한계를 허용해 버리면, 그 순서는 끝이 난다. 이게 이 시험의 규칙이었다.
루빈은 아직 여유로웠다. 이제 곧 레인크로키는 무너진다. 마음이 약한 그는 회귀 전에도 채 5분을 버티지 못했다.
“살려, 살려줘!”
결국 레인크로키가 미친 듯 소리쳤다. 이어서 커다란 가위에 온몸이 베이고 잘려 나갔다.
“으아아아아악!”
단말마 비명을 끝으로, 순식간에 주변이 다시 바뀌었다. 휙, 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그들이 있던 복도가 사라진 것이다.
“……?”
어느새 아이들은 검은 연못 위로 되돌아와 있었다. 정신없이 가위를 피하던 아이들은 갑자기 바뀐 풍경에 다들 어정쩡한 자세였다.
“찌질한 놈이 탈락했나 보군.”
쿤의 말대로 검은 연못 위에 참가자는 한 명 줄어든 상태.
조금 전까지 소리치던 레인크로키는 아마 거미줄 실타래 속에 갇힌 채 가주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죽었을까?”
하밀이 긴장한 채로 물었다. 커다란 가위에 온몸이 잘려 나가는 걸 눈앞에서 보았다. 사방에 튀는 피는 현실처럼 선명했다.
“아뇨. 안 죽었어요. 여긴 몽환숲이니까요. 물론 온몸이 잘려 나가는 고통은 진짜였겠지만.”
이렇게 대답한 건 내내 침묵하고 있던 블라네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쪽 어깨에 손을 갖다 댔다. 화상이 가장 깊게 배어 있는 부위였다.
“이건 두려움을, 내면 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을 확인하는 시험이에요.”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보다못한 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야, 너! 조금 전 그 새끼처럼 질질 짤 생각이면, 뒤로 빠져. 시끄러우니까.”
“다들 방심하지 마. 바로 다음 순서가 시작될 테니까.”
아이들을 다독이는 건 하밀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슬쩍 루빈을 관찰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혼란스러운데, 루빈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해 보였다.
‘두려움에 맞서는 시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두려움을 마주하여 살아남고 이겨내는 것. 자신의 두려움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이것만으로도 암살자로서의 자질을 알아낼 수 있다.
두려워하는지, 도망치려 하는지. 아니면 맞서 싸워 이겨내려 하는지.
몽환거미는 계약에 따라 아이들을 시험하고 걸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그건 몽환거미의 입장이고.’
루빈도 이 시험을 통해 얻어낼 게 따로 있었다. 하밀, 쿤, 블라네. 시험에 든 세 명의 아이들. 저 중에서…….
그때 주변을 바꾸는 짤막한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휙.
드넓은 초원. 푸르른 대지. 따스한 햇살. 풍경만 보면 도시락을 싸 들고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첫 번째 시험을 극복해 낸 아이들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곧 닥칠 위험이 무엇일지만 생각했다. 루빈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붙잡았다.
‘여긴 칼크리드의 두려움이야.’
칼크리드는 유모의 실수로 두 살 때 말발굽에 밟힌 적이 있었다. 다행히 수준 높은 치유 마법 덕분에 신체의 손상만은 막아냈지만, 그때의 두려움은 깊숙이 각인되었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말발굽들. 칼크리드의 왜곡된 두려움이 실체화되어 모두를 덮쳤다.
쿵! 쿵! 쿵!
푸른 초원에 있던 참가자들은 난데없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말발굽에 온몸을 던져 피해야 했다.
쿵! 쿵! 쿵!
“쳇, 성가시잖아!”
이번 순서를 끝낸 건 다름 아닌 쿤이었다. 쿤은 이번 순서가 칼크리드의 두려움이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허억! 이게 무슨 짓이야?”
하늘에서 쏟아지는 말발굽을 힘껏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던 칼크리드는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있었다.
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칼크리드에게 달려들어 그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런 다음, 칼크리드를 거대한 말발굽이 떨어지는 쪽으로 내던졌다.
“무슨 짓이긴. 내가 우승하는 방식이지!”
공중에 던져진 칼크리드는 말발굽에 밟혔고, 그대로 땅속에 박혀 버렸다.
상처는 남지 않겠지만, 고통은 생생히 전해질 터. 그는 몸이 으깨지는 고통과 함께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말발굽들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들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서둘러서 끝내줬잖아.”
쿤이 으스대며 다른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하밀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쿤이 칼크리드를 내던지는 건 회귀 전과 다를 바 없네.’
두 번째 시험은 이른 시간에 종료됐지만, 아이들 사이의 분위기는 어딘가 묘해졌다. 쿤이 몸소 보여준 ‘새로운 타개책’을 다들 깨달은 것이다.
‘두려움의 주인을 찾아 제거하면 된다.’
지금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참가자들 사이에 남아 있던 한 줌의 동료의식마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몽환의 괴수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똑같은 적으로 간주해야 했다.
그렇게 다시 검은 연못 위로 돌아온 아이들. 이젠 세 번째 순서가 시작될 참이었다.
그새 살아남는 방법을 깨달은 아이들은, 경계하듯 서로를 살폈다. 다음은 누굴까, 은근한 적의를 드러내면서.
“이 시험의 순서는 두려움의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진행되게 되어 있어. 뒤로 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라는 뜻이지.”
하밀이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블라네를 쳐다보았다. 블라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각자 가주들에게 제공받은 정보와 일치했기에 하밀의 말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두려움 같은 거 없는데. 당연히 그냥 넘어가겠지?”
쿤이 으스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다른 아이들도 쿤의 두려움은 가장 후반부에 나올 것 같다는 걸 인정했지만, 쿤의 차례가 없을 거라는 말은 믿지 않았다.
하밀이 비아냥대는 투로 그 점을 꼬집었다.
“쿤,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어.”
“그건 두려움이 있는 애들이나 하는 말이지. 난 그딴 거 없다고, 겁쟁아.”
“두고 보면 알겠지. 네 차례 때 바지에 오줌이나 싸지 말라고.”
하밀의 도발에 쿤은 즉각 반응했다.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적어도 하밀, 넌 내 순서를 못 볼걸? 왠지 알아? 내가 틈날 때마다 널 공격할 테니까.”
하밀도 지지 않고 세게 맞받아쳤다.
“그래? 기대할게. 어쨌거나 네 두려움은 뭘까나? 어쩌면 루빈 도련님일지도 모르겠네.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하겠지. 2년 전에 루빈 도련님한테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으니.”
“뭐, 당해? 이 새끼가!”
루빈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처럼 쿤을 분노하게 하는 건 없었다. 참지 못한 쿤이 하밀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몽환 상태가 아닐 때 싸우는 건 엄격한 금지 사항. 그 규칙을 어기면 몽환거미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루빈이 두 사람을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밀! 쿤! 몽환 상태가 아닐 때 싸우면 동반 탈락하게 될 수도 있어. 미리 들어서 잘 알잖아.”
“쳇.”
“…죄송합니다, 루빈 도련님.”
아이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곧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검은 연못에 작은 파동이 생겼다. 세 번째 순서를 알리는 신호였다.
휙.
세 번째 순서는 갤리오트릭 가문 참가자의 두려움. 하지만 이번에도 시시하게 끝나는 순서였다.
번개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어 있던 갤리오트릭에 따라, 이번엔 내리치는 번개가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갤리오트릭은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데다가 움직임도 별로였다.
얼마 안 가 그는 내리꽂히는 벼락에 그대로 직격당해,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순서가 끝났다. 쿤이 움직일 필요도 없을 만큼 쉬운 순서였다.
“아직까지 자기 순서에서 살아남은 참가자가 없네.”
“왜냐하면, 앞에 세 놈은 죄다 찌질이들이었으니까. 안 그래, 루빈?”
루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다음이 내 차례야.’
회귀 전, 루빈이 간직한 두려움은 네 번째 순서였다. 그 말은 네 번째에 불과할 만큼 그 두려움의 크기나 성질이 형편없단 뜻이기도 했다.
루빈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을 멸시하는 두 형, 도리언과 매피스로 인한 두려움을.
‘고작 그따위 두려움에도 버텨내지 못했었나.’
그렇게 초라하게 탈락해서 얻은 성적은 6위. 괴물처럼 변한 두 형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때 작고 연약했던 루빈을 붙잡아 두 괴물한테 내던진 건 다름 아닌 쿤이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내 차례 때 뭐가 나올진 모르겠지만.’
그게 쿤이나 두 형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뭐가 됐든 손쉽게 극복해 낼 자신이 있었다.
루빈은 두 번째 인생을 얻은 회귀자.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30년의 전생 기억과 다시 태어나 겪은 새로운 경험들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미래는 조금씩 바뀌겠지.’
루빈의 예상대로였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순서. 그건 분명 루빈의 것이 아니었다.
마법처럼 홱홱 뒤바뀌는 풍경에, 쿤이 전에 없이 놀란 얼굴로 고함쳤다.
“에이 시발,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