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33)
암살검가 로이넨-33화(33/258)
제33화. 몽환숲의 시험 (2)
험준한 암석들이 어지럽게 솟은 지형. 발을 잘못 딛는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남은 참가자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민첩함을 지닌 예비 암살자들이었다.
안정적이면서 재빠른 움직임으로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타닥. 타닥.
“이번 순서는 누구인지 고백할 사람?”
움직이는 와중에 하밀이 힘껏 소리쳤다. 그 소리침이 곧장 메아리쳐 돌아왔지만, 거기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유롭게 대화나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서로 거리를 벌리며 세 방향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그런 참가자들을 사냥감 쫓듯이 뒤따르는 몽환괴수.
‘돌연변이 오크. 그렇다면 이번 순서는 블라네인가?’
회귀 전에 치렀던 ‘2차 선택’에는 이런 괴수가 나오지 않았다. 과거와 달라진 흐름. 그렇다면 가장 먼저 의심이 드는 건 블라네였다.
“블라네! 네 두려움이야?”
마침 루빈과 블라네는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출발지점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뒤에는 피에 굶주려 양손에 든 장창을 미친 듯 휘둘러대는 변종 오크가 쫓아오고 있었다.
그르르르르륵크!
상반신은 오크였지만, 하반신은 그렇지 않은 생물체. 늑대의 하체를 꿰매어 붙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적갈색 나무껍질 같은 피부를 팽창시키는 오크는 양손에 든 장창을 위협적으로 휘저었다.
그래도 루빈과 블라네를 쫓기에는 속도가 한참 모자랐다.
변종 오크가 네 개의 늑대 다리로 바위 사이를 뛰어넘고 있어도, 한참 앞서 나가는 루빈과 블라네였다.
“전, 아닙니다.”
“정말이야?”
“정말, 이라고요.”
블라네의 속도가 서서히 뒤처지고 있었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루빈은 뒤를 돌아보며 변종 오크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이대로라면 블라네는 금방 따라잡히고 만다.
“하밀인가? 아니면 쿤? 모르겠네.”
“제 생각에는, 본도그나 스토네 가문 참가자들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대답하는 블라네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왼쪽 어깨 쪽으로 이어지는 화상 자국을 감추기 위해 길렀던 갈색의 긴 머리칼.
루빈은 머리칼이 거칠게 흩날리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블라네의 말을 이해했다. 늑대의 하반신을 이어받은 저 생물체는 대륙 남부의 항구도시 ‘크룰티’에서 개량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종이었다.
검술명가나 무도명가의 수련용으로 쓰일 목적으로 조합됐지만, 수련에 걸맞지 않게 너무 잔학하고 통제가 되지 않아 결국 크룰티 인근 노예상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본도그나 스토네 가문의 근거지가 크룰티 인근이었으니, 둘 중 누군가 어렸을 때 변종 오크를 보았을 확률이 있었다.
“저 오크 이름이 크룰티 오크였지.”
“진짜 크룰티 오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블라네가 힘겨워하며 말했다.
뒤처진 블라네가 크룰티 오크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크룰티 오크는 먹잇감이 가까워지자 흥분 가득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르르르르륵카아!
크룰티 오크가 오른손에 든 장창을 휘둘렀다.
자신의 탈락을 예감한 걸까. 앞서가는 루빈을 바라보는 블라네의 눈이 커졌다. 그녀 귓가에 장창이 매섭게 쇄도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
속도를 늦춘 루빈이 몸을 뒤쪽으로 돌려 한 손으로 블라네를 낚아챘다.
블라네를 노리고 쇄도하던 장창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슈우웅
그르르르르륵카아아!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인 루빈과 달리, 크룰티 오크는 그러지 못했다. 루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짖어대던 오크는 제어할 수 없는 속도에 그대로 바위와 충돌했다.
“왜 저를, 살려주시는 거죠?”
블라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참가자를 살려주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루빈은 크룰티 오크 쪽으로 다가갔다.
“나한테 이 시험은 일종의 수련이야.”
“예? 수련이요?”
“모두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수련.”
크룰티 오크는 두 개의 장창 중 하나를 놓친 상태였다. 그 장창 중 하나는 지금 루빈 손에 쥐어져 있었다.
“모두를, 성장시킨다고요?”
루빈은 망설이지 않았다. 크룰티 오크의 장창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쿵!
암석에 부딪혀 허우적대던 크룰티 오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장창이 크룰티 오크의 목을 뚫고 들어가 바위에 박혔다. 오크의 피가 장창을 타고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모두가 강해져야 하니까.”
루빈은 바위에 박아 넣은 장창을 빼냈다. 죽은 크룰티 오크의 손에 쥐어져 있는 나머지 장창도 집어 들었다.
자신의 키보다 큰 장창 두 개를 들고, 블라네를 향해 돌아섰다.
“결국은 내가 우승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모두를 위한 수련인 거지.”
이 시험의 흐름을 자기 의지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인가? 자신만만한 루빈의 태도에 블라네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도 있는데, 왜 나는 이깟 화상에 얽매이고 있는 거지?’
“가자. 다른 두 마리도 얼른 없애야지. 그래야 다음 순서로 넘어갈 거 아냐?”
네 번째 순서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크룰티 오크는 총 세 마리였다. 그에 따라 여섯 명의 생존 참가자들은 각각 세 무리로 나뉘어 흩어졌다.
루빈과 블라네.
스토네와 본도그.
그리고 하밀과 쿤.
루빈이 크룰티 오크 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하밀과 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랑 붙어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거 같냐?”
“아니, 널 죽일 틈을 엿보고 있으니까 방심 풀지 마.”
두 사람은 서로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자신들을 쫓았던 크룰티 오크 한 마리를 처치한 뒤였다.
쿤은 크룰티 오크의 장창을 그대로 손으로 맞받아쳤고, 그때 생긴 틈을 놓치지 않은 하밀은 단검으로 크룰티 오크의 목을 그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그냥 내 눈앞에 나타나면 좋겠네. 다 찢어버릴 텐데.”
쿤이 이를 갈며 말했다.
“한 마리겠지. 루빈 도련님이라면 지금쯤 충분히 처치했을 테니까.”
“시발, 아주 로이넨 추종자 납셨군.”
“쿤, 내기할까?”
“꺼져라.”
받아들이기 싫어도 쿤 또한 알고 있었다. 루빈이라면 이 정도쯤은 이미 처치했을 거라는 걸.
“본도그나 스토네 새끼들이나 마주치면 좋겠네. 둘 다 당장 탈락시켜서 얼른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어, 야. 네 말대로 됐다.”
“뭐?”
“저기 앞에 뛰어오는 둘, 안 보여?”
몽환 상태가 되면, 그 공간은 4킬로미터 둘레의 구형으로 변한다.
그랬기에 어느 방향으로든 계속 직진하다 보면 본래의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마련.
한참 직진하던 쿤과 하밀 앞으로 크룰티 오크로부터 도망치는 스토네와 본도그 참가자들이 나타났다.
“저 새끼들 아직도 오크 못 잡았네.”
쿤은 바위에 몸을 갖다 대며 숨었다.
“난 저 새끼들 떨어트릴 거다, 하밀. 내 쪽으로 접근하면 너도 공격할 거니까 멀리 꺼져 있어.”
쿤의 선언에 하밀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든지. 난 멀리서 구경하고 있을게.”
“크큭, 역시 겁먹었군.”
하밀은 쿤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쿤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자리로 몸을 옮겼다.
그사이 쿤은 단검을 빼 들었다. 케르기티의 단검. 독이 서려 있는 이 전설의 무기는 쿤이 ‘1차 선택’에서 보상으로 얻어낸 것이었다.
이 단검으로 본도그와 스토네를 찌른다면, 몽환 상태에서 탈락하기 전까지 그 둘은 실제와 똑같은 독에 시달릴 것이다.
독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죽어갈 두 참가자를 떠올리는지 쿤이 비릿하게 웃는다.
스토네와 본도그 참가자는 자신들의 미래를 모른 채 계속 내달렸다. 크룰티 오크와 간격을 벌리며 뛰어가는 그때.
“이렇게 찾아와 주네!”
“……!”
두 참가자 앞으로 쿤이 난입했다. 단숨에 뛰어든 쿤은 단검을 휘둘렀다. 암연으로 배가된 공격 속도.
그 공격은 스토네나 본도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으윽!”
1차 시험에서 쿤에게 치욕적으로 당한 스토네와 본도그였다. 그래서 쿤에게 복수하는 순간만을 기다려 왔는데.
두 사람이 복수를 성공시키기에는 쿤이 지나치게 강했다. 쿤의 기습공격에 본도그는 그대로 목이 잘려 나갔다. 고통조차 느낄 틈도 없이.
본도그는 탈락하고, 스토네는 팔뚝에 상처를 입었다.
“걱정 마, 새끼야. 네 친구 실제로 죽은 거 아니니까. 같은 탈락자 신세로 숲 밖에서 만나라.”
스토네의 몸 안에 케르기티의 독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몸이 마비된 스토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도 또 쿤에게 당하다니!
“저 귀찮은 크룰티 오크는 네놈의 두려움이겠지? 널 죽이면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군.”
쿤은 그대로 단검을 휘둘러 무력한 스토네를 탈락시켰다.
스토네의 탈락까지 확인한 쿤이 단검을 집어넣는 그때.
쿤의 암연의 반경 속으로 공격성 가득한 움직임이 들어왔다.
“하밀, 이 교활한 년! 또 날 속여?”
쿤은 곧바로 몸을 틀었다. 바닥을 차오르며 하밀의 단검을 가까스로 피했다. 옷깃이 잘려 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제길!”
공격에 실패한 하밀이 아쉬움에 소리쳤다.
사실 크룰티 오크의 두려움은 바로 하밀의 것.
1차 시험이 끝나고,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난 하밀은 가주에게 부탁하여 크룰티 오크를 구했다. 여느 검술명가나 마도명가가 그랬듯 크룰티 오크를 상대 삼아 수련하기 위하여.
그러던 어느 날, 통제되지 않는 크룰티 오크 수십 마리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맞이했다. 가주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때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을 줄은.’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쿤을 제거하려던 계획이 틀어졌으니 이제는 저 괴물 같은 쿤과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이번 순서가 너였냐? 하…….”
쿤은 집어넣었던 단검을 빼 들었다.
“이게 몽환 속이 아니라면 좋겠네. 네년을 실제로 죽이고 싶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이 건방진 들개 자식아.”
“그 잘난 혀, 내가 뽑아주지!”
쿤의 공격이 시작됐다. 하밀은 일단 방어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루빈과 블라네는 걸어가던 중에 마지막 남은 크룰티 오크를 발견했다. 클루티 오크는 양손에 든 장창으로 막 누군가를 공격할 참이었다.
“저 둘은…….”
“쿤과 하밀이야. 아무래도 본도그나 스토네는 탈락한 것 같아.”
“그렇다면 크룰티 오크는 저 두 사람 중 하나의 두려움이겠네요.”
마지막 크룰티 오크가 장창을 휘둘러 댔다. 오크의 가세에 싸움은 삼파전이 되었다. 쿤과 하밀과 오크.
일대일의 싸움이라면 오크 따위는 가볍게 처리했겠지만, 쿤과 하밀은 서로에게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지켜보실 건가요?”
“아니. 일단은 싸움을 말려야지.”
루빈은 들고 왔던 장창을 각각 오른손과 왼손으로 나누어 쥐었다. 그 상태로 싸움이 한창인 쿤과 하밀 쪽으로 암연을 길게 늘여놓았다.
“블라네.”
“예?”
“네가 무슨 이유로 그토록 불안하게 움츠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들어.”
루빈은 장창을 쥐고 있는 양손을 어깨 뒤로 뻗었다. 그걸 곧장 저쪽으로 던져 버릴 작정이었다.
“암연을 길게 조형하면 조준력을 높일 수 있어. 나한테 그 비법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거든. 원거리 암살의 최강자였지.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표적을 제거했어. 단 한 방에.”
장창을 던지기 직전, 루빈은 블라네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루빈이 기억하는 원거리 암살의 최강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 되어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너라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루빈이 힘껏 어깨를 앞쪽으로 끌어당겼다.
루빈의 손을 떠난 두 자루의 장창이 가공할 속도로 쿤과 하밀에게 날아갔다.
쿤과 하밀의 싸움의 양상은 사실상 쿤이 우위에 서 있는 상태였다.
난데없이 오크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쿤은 일부러 오크를 죽이지 않았다. 오크를 먼저 죽이면 하밀을 탈락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말 꺼져라!”
하밀을 탈락시킬 공격이 이루어지려는 그때.
단검을 내리꽂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두 자루의 장창이 날아왔다.
크르르르르꿰으에억!
장창 하나는 두 사람 사이에 엉겨 붙어 있던 크룰티 오크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씨발!”
막 하밀에게 단검을 내리꽂으려는 쿤의 앞쪽에 박혔다. 덕분에 쿤의 공격은 장창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휙.
마지막 크룰티 오크가 죽으면서 네 번째 순서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