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34)
암살검가 로이넨-34화(34/258)
제34화. 몽환숲의 시험 (3)
“오는군요.”
“네 번째 탈락자인가.”
두꺼운 잿빛 안개 속. 탈락자가 담긴 실타래가 안개를 헤치며 가주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밀려왔다.
이번에도 탈락자 확인에 나선 건 레인크로키 가주였다. 최초 탈락자로 자신의 아들을 확인한 그는 참담한 마음으로 다른 가주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었다.
“이번엔 크기가 좀 큰데?”
레인크로키의 단검이 실타래 상단에 박혀 들어갔다.
잠자코 있던 크로키슨 가주가 실타래의 크기가 크다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참가자들 중 신장이 가장 큰 것은 쿤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벌써? 아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크로키슨 가주는 자신의 아들이 지닌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승을 기대했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지금 탈락한다는 건 실망을 넘어서 치욕적이었다.
“아, 이런.”
박아 넣은 단검이 죽 그어졌다.
탈락자를 확인한 레인크로키 가주에게서 탄성이 나왔고, 옆에서 지켜보던 크로키슨 가주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군. 그래서 부피가 큰 거였어.”
실타래에 담긴 건 스토네 가문과 본도그 가문의 참가자였다. 입술이 시퍼렇게 변색된 두 탈락자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본도그와 스토네 가주가 묵묵히 걸어와 실타래 안에 담긴 아들들을 빼내었다. 그들의 얼굴엔 실망감이 역력했다.
이번 순서에 두 명의 탈락자가 나왔으니, 이제 남은 참가자는 네 명. 각각 로이넨, 크로키슨, 쿠니틀리, 크리거가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서 있는 세이렌.
‘루빈, 너의 두려움은 무엇이더냐.’
그녀는 알고 싶었다. 아들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들이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그러나 시험을 책임지는 몽환거미와의 계약에 따라, 검은 연못에서 발생하는 모든 시험 내용은 참가자들만의 비밀이었다.
암살검가의 가주들이라 할지라도 자식들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몽환괴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루빈 도련님도 아직까지 생존해 있으시군요. 역시 대단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다가오는 자는 크리거 가주였다.
‘네스 크리거. 이자의 딸 이름이 블라네라 했었나?’
크리거 가주라면 크로키슨 못지않은 야심가였다.
블라네 위로 있는 두 오빠는 이미 암살검가 내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중인데, 그 밑바탕에는 크리거 가주의 혹독한 육성이 있었다. 그리고 세이렌은 그런 육성 방식을 존중했다.
“블라네의 잠재력도 대단해 보이더군요.”
세이렌은 적당히 대꾸했다.
“그래 봤자 아직 암연을 개화하지 못한 아이입니다. 오빠들보다 한참 모자란 아이이지요.”
“크리거 가주께서 잘못 판단한 모양이네요.”
“네? 그게 무슨…….”
“제가 느끼기엔 블라네는 이미 암연을 개화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크리거 가주는 세이렌이 착각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본가의 주인. 여느 가주들과는 차원이 다른, 까마득한 경지에 오른 자다. 가볍게 내뱉은 말일 리 없으리라.
“다만.”
“…다만?”
“무언가에 막혀 그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이번 시험이 그 아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말뜻을 찬찬히 곱씹는 크리거 가주의 얼굴을 세이렌은 슬쩍 바라보았다.
‘의심하고 있군.’
세이렌을 향한 경외심 뒤엔 분명 의심이 숨어 있었다. 어째서 이런 사실을 경쟁자인 자신에게 순순히 알려주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피라미조차 나를 경계하는 건가.’
모든 암살검가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는 건 모든 암살자의 정점에 올라선 세이렌의 진심 어린 바람이었다.
그녀는 암살검가 내부의 상대가 아닌 외부를 경계했다. 수많은 마법명가, 검술명가, 제국군의 중책들.
물론 이런 생각은, 내부에는 더 이상 위협이 될 만한 상대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블라네 크리거. 더 좋은 가주 밑에 있었다면 더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
물론 크리거 가문의 가주, 네스 크리거도 한때는 딸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블라네가 1차 선택에서 허무하게 탈락하던 날,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날의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시험에서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한들,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는 건 아니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러기엔 다른 가문의 경쟁자들이 너무도 강력하니까.
설사 이번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더라도 막혔던 성장의 길이 이번을 계기로 뚫릴 것 같지도 않았고.
네스 크리거는 화제를 돌렸다.
“제 딸, 블라네의 두려움이라야 빤할 겁니다.”
“예상되는 바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알아보셨겠지만, 저 아이에겐 흉한 화상 자국이 있지요.”
“봤습니다. 1차 선택 땐 없던 상처더군요.”
“제깟 것이 부린 과욕 때문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강해져 보겠다고 일을 꾸몄던 모양인데, 무리였지요. 그날, 그 아이 때문에 저택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그게 그 일이었군.”
세이렌은 기억을 더듬었다. 1년 전쯤이던가. 직속 가신을 통해 그런 보고를 들은 적이 있었다.
프뢴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크리거 가문의 저택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는 보고였다.
방계 가문이라고는 해도, 네스 크리거는 엄연히 암살검가 가주였다. 그런 자가 머무는 저택이 화염에 휩싸였다는 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저택의 일부분도 아닌 전체를 뒤덮은 화재.
‘그 당시 블라네가 벌인 짓이라는 건…….’
세이렌이 지난날의 보고를 떠올리려 할 때, 네스 크리거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갈았다. 그날의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주제를 모르는 한심한 아이입니다. 크리거 혈통답지 않게 겁도 많고요. 만약 그 아이의 순서가 된다면, 시험장은 분명히 불바다가 되어 있겠지요. 장담합니다.”
* * *
네스 크리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크룰티 오크 세 마리가 나타났던 하밀의 순서 다음은 블라네 크리거의 두려움이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순서가 시작되었을 때, 살아남은 네 명의 참가자 앞으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모두들 얼굴을 감싸 쥐려는데 갑자기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콰콰콰콰쾅!
‘저택이 불타 무너지고 있어.’
저택이 누구의 것인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순서가 시작되자마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지금 이대로 탈락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루빈은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처박은 블라네에게 다가갔다.
“정신 차려, 블라네!”
이대로 두면 블라네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이다. 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루빈은 블라네를 둘러메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일단 저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다들 서둘러!”
하밀과 쿤에게 소리쳤다. 하밀은 순순히 루빈을 따라나섰지만, 쿤은 그럴 리 없었다. 쿤은 루빈의 말을 무시하고, 불타는 저택 앞에 머물렀다.
언덕 위에 도착한 루빈은 안전한 곳에 블라네를 내려놓았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염으로 뒤덮인 저택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쿠쿠쿠쿵.
저택에서 시작된 불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저택 앞 정원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것도 시간문제. 그럼 이 언덕도 안전할 수 없다.
“시험장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 둘레가 4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으니까. 얼마 안 가 모든 곳이 불에 타버릴 거야.”
“그럼 어떡할까요?”
“블라네의 두려움을 찾아내야지.”
“…혹시 저 불일까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으니까, 저 불만 끄면…….”
그때였다. 저택 한가운데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오오오오오!
귀가 찢겨 나갈 정도의 괴성. 블라네 크리거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녀는 이미 패닉 상태였다.
저택과 블라네를 번갈아 쳐다본 하밀은 멋쩍은 얼굴이 되었다.
“역시 평범한 불은 아닌 거 같죠?”
무너진 저택 한가운데, 거대한 불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저택을 집어삼킨 화염의 근원이.
쿵…….
쿵…….
불기둥인 줄만 알았던 그것이 지축을 흔들며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몸체.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화염 기둥.
“도련님, 저거… 골렘인 것 같은데요?”
하밀의 말이 맞았다. 마나석이 심장이 되어 움직이는 철공의 괴수. 골렘은 천연의 생물체가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괴수였다.
대지에 매장되었던 마나석이 채굴되고, 그 마나석에 담겨 있던 마나마저 모두 고갈된다면, 마나석의 쓰임새는 단 하나. 골렘의 심장뿐이었다.
“블라네, 누가 저걸 만든 거야?”
“…….”
루빈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자, 이번에는 하밀이 나섰다. 하밀은 블라네와 눈을 똑똑히 마주치며 물었다.
“우리 전부 탈락 없이 다음 단계로 가려면 알려줘야 해, 블라네.”
“…저요. 저예요.”
“뭐? 너라고?”
“…2년 전, 1차 선택을 끝내고 프뢴 지방에 있는 마법사에게… 제가 의뢰했어요.”
“너희 가주님이 허락했던 거야?”
블라네가 고개를 저었다. 엄격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아버지가 골렘 제작을 허락할 리 없었다. 대신 그녀를 도운 건 두 오빠였다.
다른 도시에서 암살자로 살아가던 두 오빠는 블라네의 훈련용 골렘을 위해 재료를 구했고, 자금을 댔다. 1차 시험에서 맥없이 탈락한 게 그 이유였다. 블라네는 강해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특별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골렘의 심장으로 넣은 마나석에 뭔가 문제가 있었나 봐요. 골렘이 통제를 잃고 폭주했어요. 그래서 저택이 전부…….”
지하 창고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하려던 계획이 틀어졌을 뿐 아니라, 골렘의 난동에 가문의 역사가 송두리째 잘려 나갔다.
수 대에 걸쳐 이어져 온 크리거 가문의 유산이 한 줌 재가 되기까지는 고작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저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아버지가 골렘을 처리하는 동안 도망만 다녔다고요……!”
블라네가 울부짖었다.
네스 크리거가 골렘의 가슴팍에 있는 마나석을 깨트린 다음에야, 골렘의 난동은 끝났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 속. 블라네의 몸에 들러붙은 불길이 목과 팔 쪽으로 번져갔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건져낸 것도 가주이자 아버지인 네스 크리거였다.
“나를 벌레 쳐다보듯… 아버지의 그 눈빛을… 나는, 나는 도저히…….”
아버지의 멸시 가득한 눈빛을 블라네는 결코 잊지 못했다. 늘 아버지의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던 두 오빠와는 달리, 실망만 안겨주는 못난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이해해, 블라네. 강해지고, 인정받고 싶은 네 마음. 나도 마찬가지야. 너도 봤듯이 나도 크룰티 오크로 수련하려다가 일을 망쳤으니까.”
하밀은 블라네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블라네를 위로하는 게 정답일까? 루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낱 위로 따위로 극복할 수 있다면, 그건 두려움이 아니다.
“지금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어. 어서 골렘을 처리해야만 해. 쿤 혼자서는 힘겨울 거야.”
“차라리 나를 탈락시키는 게…….”
이 말은 회귀 전에도 들었다. 임무의 중요한 기점에서 망설이는 블라네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과거, 그녀가 6성에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그녀의 말대로 재능 있는 두 오빠 밑에서 평생 받았던 설움과 압박. 그로 인해 형성된 낮은 자존감.
‘그 탓에 꽃피우지 못한 재능이었지.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것이다. 이미 새겨진 화상은 지울 수 없겠지만, 네 미래는 얼마든지 바꿔볼 수 있지.
루빈은 블라네를 일으켜 세웠다.
“블라네, 내가 모두를 성장시킬 거라고 했잖아. 저 골렘이 바로 그 성장의 발판이 될 거야. 네가 저놈을 처리해야 해.”
맞서야 한다. 또다시 온몸이 불타더라도, 정면으로 맞서 깨부숴야 한다. 그래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루빈의 눈을 피해 버리는 블라네.
지금, 골렘은 거대한 두 팔을 휘두르며 쿤과 대치하고 있었다. 쿤이 빠르게 움직이며 골렘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긴 했지만, 주변을 에워싸는 불길에 발 디딜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가자, 하밀!”
루빈과 하밀은 다시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언덕 위에 홀로 우두커니 남은 블라네는 몸을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 사이로 루빈과 하밀이 골렘의 공격 반경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들은 쿤에게 집중됐던 골렘의 공격을 분산시켰다. 끊임없이 위치를 바꿔가며 골렘의 주의를 끌면서… 그녀가 만들어낸 두려움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제길! 차라리 그년을 탈락시키는 게 빠르겠군!”
쿤이 소리쳤다.
블라네의 두려움인 이 골렘을 깨부수는 게 더 쉬울 거라고 예상했던 쿤이었다. 골렘을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골렘은 인공적으로 탄생했기에 일정한 표준이란 게 없는 괴수.
심장으로 쓰이는 마나석을 제거하면 움직임을 멈춘다는 원리는 유효하지만, 문제는 마나석의 위치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기계 팔을 잘라낼지라도, 온몸을 난도질하더라도, 마나석 심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골렘은 멈추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지금 이건 블라네의 두려움으로 변형된 골렘이야! 일반적인 골렘처럼 생각하면 안 돼!”
루빈이 소리쳤다.
실제로 몽환이 만들어낸 골렘은 일반적인 골렘으로서는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암살검가 사람 같았다. 위협적이었고, 변칙적이었다.
게다가…….
‘마나석 심장이 보이지 않아.’
화염을 분출시키는 거대한 팔이 루빈을 향해 내리꽂혔다.
쾅!
루빈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철강으로 된 팔이 둔중한 울림과 함께 바닥을 내리쳤다.
“이 불덩이를 해치울 좋은 생각 있는 사람, 있나요?”
하밀이 소리쳤다.
좋은 생각이라.
“그냥 모든 관절을 다 잘라 버려!”
이렇게 대답한 건 쿤이었다. 쿤다운 대답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생각인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생각이다.
“쿤, 너 생각하고 말 안 할래?”
“아냐, 하밀. 일단 그렇게 해보자. 한꺼번에 달려들어 골렘의 골격을 분해해 보는 거야.”
“도련님, 그래 봤자 마나석을 제거하지 않으면…….”
“온몸을 분해하면 마나석도 나올 테니까. 일단 해보자.”
수가 보이지 않는 복잡한 상황에선 오히려 정면돌파가 좋은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내가 신호하면 동시에 시작하는 거야.”
루빈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쿤에게 눈짓했다. 루빈의 지시를 따르는 것 같아 못마땅한 쿤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임시적인 결탁이 이뤄지고, 협공이 시작됐다.
루빈이 골렘의 정면을 맡았고, 쿤과 하밀이 각각 양옆을 맡았다.
지금 골렘을 이룬 강철 몸은 불에 달구어진 상태. 뼈마디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저 지독히 뜨거운 몸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긴 몽환세계. 열기와 화염에 상처를 입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음 순서로 넘어가면 신체적 손상은 복구되니까.
파파파파박!
트드득!
‘역시 둘 다 일반적인 수준 따윈 간단히 뛰어넘었군.’
루빈은 골렘의 목을 그어 연결된 쇠관을 끊어버리면서 생각했다. 쿤과 하밀, 두 사람도 무사히 팔을 떼어내고 가슴팍을 헤집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쿠쿠쿠쿵.
연결 부위에 있는 쇠관을 모두 끊어버리자, 골렘은 뼈가 발린 짐승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어라?”
땀을 닦아내던 하밀의 눈동자가 빛났다.
“뭐야. 이 골렘, 마나석이 없잖아?”
“이 머저리들. 내가 블라네 그년을 처리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 이것 봐, 다시 재생되고 있잖아.”
쿤의 말대로, 분해됐던 골렘의 신체가 느릿하게 모여들고 있었다. 다행히 다시 들러붙는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다시 시도해 볼까요? 놈을 분해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마나석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 보는 거예요.”
하밀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결정적으로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웃기고 있네. 저길 보라고.”
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몽환세계의 경계선이 있었다.
“여기가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아? 아마 5분도 안 돼서 소멸해 버릴걸? 저 괴물이랑 블라네, 둘 중 하나를 조지기 전까진 절대 안 멈출 거라고!”
점점 좁아지는 몽환세계. 제한시간 내에 끝내지 않으면 모두 다 탈락하고 만다. 이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이제 어떡할 거냐? 블라네 목 치는 데 아무도 불만 없겠지?”
쿤의 으름장에 하밀도 선뜻 반대하지 못했다. 지금까진 루빈의 말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탈락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루빈 도련님, 죄송해요. 방법이 없을 거 같네요.”
하밀과 쿤이 언덕 위로 막 달려가려는 찰나.
“잠깐.”
루빈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찾은 것 같아, 이 골렘을 없애는 방법.”
“뭐?”
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마나석도 없는 이 괴상한 골렘을 없앨 수 있다고? 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요? 시간이 없어요, 도련님!”
루빈은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단검을 겨냥했다.
분해된 골렘의 한가운데, 스멀스멀 합쳐지는 쇳물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찐득하게 녹은 젤리처럼 시커멓고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마나석은 없어. 골렘을 없애려면 저걸 노려야 해.”
“…저게 뭔데요?”
뭐긴. 골렘을 지배하는 힘이자, 이번 시험을 끝낼 수 있는 해답이지.
“두려움. 블라네의 두려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