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41)
암살검가 로이넨-41화(41/258)
제41화. 우승자의 선택 (3)
카포티니로 가겠다는 루빈의 결정이 밝혀진 이후. 다른 사람들은 본가의 자제가 또다시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능을 낭비하는군.’
‘쯧쯧, 예측 불허의 면모도 정도껏이지.’
‘로이넨 가주의 명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들을 더 혹독하게 길러내려는?’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주들의 어두운 속내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걸 정확하게 추측하고 있던 루빈이었다.
‘바보 같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겠지. 저들한테 나는 이제 막 암연을 개화한 꼬마 정도로만 보일 테니까.’
평균적으로 암살검가 자제들이 암연을 개화하는 시기는 열한 살 전후. 대부분은 열한 살을 기점으로, 환에 뿌리내린 암연을 느끼고 서서히 성장시켜 나간다.
저택을 떠나 본격적인 암살자 수업에 임하는 시기가 열한 살에 맞춰져 있는 것도, 암연 운용에 최대한의 성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시기다. 이땐, 갓난아이 다루듯 섬세하게 암연을 키워내야 한다.
그런데, 카포티니라니? 모두가 놀랄 만했다.
‘암연과는 상극인, 거대 마나석이 매장된 곳이니까.’
거대 마나석.
카포티니처럼 마법사들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곳들은 거대 마나석이 매립된 땅 위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뿜어내는 막대한 양의 마나는, 암연의 성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마법사들의 도시에서 자유롭게 나다니기 위해서는 암연이 최소한 2성은 갖춰져야 했다. 그마저도 충분히 숙련된 형태가 아니고서는 힘들었다. 농도짙은 마나가 암연을 끊임없이 방해하니까.
칙명부에서도 마법사들의 도시에 있는 표적을 제거할 땐 수준급의 암살자에게만 임무를 부여했다.
‘뭐, 어머니나 다른 참가자들은 나를 좀 다르게 바라보겠지만.’
다른 가주들은 루빈의 암연이 벌써 2성을 넘어섰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그게 당연했다.
단, 세이렌은 달랐다.
2년 전 길리필드 영감의 수목원에서 발생했던 ‘안개의 고목’ 사건. 그걸 해결한 사람이 바로 루빈이었다.
순결한 암연으로 안개의 고목을 정화시킨 그 사건으로 인해 루빈의 경지를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빈에 대한 호기심으로 맡겼던 일이었지만, 그 정도 일을 해냈다는 건, 루빈의 암연이 적어도 2성 이상이라는 걸 뜻했다.
루빈과 직접 겨뤄본 하밀, 블라네, 쿤 역시 마찬가지. 그들도 루빈의 경지가 가주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걸 몸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빈의 선택은 무모했다.
도대체 왜?
거기서 얻을 게 뭐가 있기에?
“다시 묻겠다, 루빈. 여긴 제국의 내로라하는 마법학교가 뻗대고 있는, 그런 마법도시다. 정말 괜찮겠느냐?”
룰포가 재차 루빈의 의지를 확인했다. 연회 내내 보이지 않던 룰포의 진지함이 처음으로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취기는 사라진 지 오래. 의자에서 일어선 룰포는 술잔까지 한쪽에 치워놓은 상태였다.
“괜찮습니다. 카포티니로 결정했습니다.”
루빈은 흔들림이 없었다.
마법학교? 거대 마나석? 성장의 방해 요소?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그곳에 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무조건 가야 한다.’
루빈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남자의 잔영만이 떠올라 있었다.
텔마흐는 아니다. 그에게 복수하는 게 회귀로 얻은 삶의 최종 목표지만, 그걸 이뤄내기 전에는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동료를 구하고, 무구를 얻고,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는 것.
그리고 이번엔.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일.’
훗날, 암살검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루빈이 카포티니를 선택한 이유였다.
* * *
“자, 보자.”
룰포는 아이들의 선택을 표시하기 위해 커다란 제국 지도에 각기 다른 색깔의 표식들을 박아 넣었다.
그는 입에 술을 머금은 상태로 클클 웃으며 술잔을 치켜세웠다.
“올해는 다양한 도시로 퍼져 나가니 흡족하군.”
마법사의 도시를 선택한 루빈이 별종처럼 보였지만, 룰포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루빈이 마나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든, 암연 개화에 실패하든 말이다.
근래 들어 카포티니 인근 지역에 대한 제국의 정보망이 헐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니 칙명부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룰포 개인으로서도 세이렌의 위세가 거슬렸던 차에, 그 아들이 이런 만용을 보여주어 반가울 지경이었다.
“자, 이제부턴 마음껏 즐기면 되겠어.”
이후, 연회는 시끄러운 룰포가 곯아떨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날이 저무는 대로 곧장 각자의 저택으로 흩어지기로 되어 있는 암살검가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누렸다.
그렇게 창밖으로 어스름이 깔리고.
칙명부 수장이 잔뜩 취해 퇴장한 연회장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암살검가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쿠제의 수다를 들어주고 있던 루빈 앞으로, 블라네 크리거가 다가왔다. 작별 인사를 남기려는 것이다.
“루빈 도련님.”
“블라네.”
루빈은 블라네의 달라진 면모를 살폈다.
시험을 끝내고, 그 짧은 며칠 사이. 블라네는 절도를 갖춘 한 명의 암살자가 되어 있었다.
움츠러들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군인 같은 패기마저 엿보였다. 룰포의 말처럼, 화상 자국이 명예로운 훈장으로 보일 만큼의 패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도련님이 해주셨던 말씀, 좀 더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했었지?”
“몽환세계 안에서 제게 조언을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암연을 길고 곧게 조형하는 방식으로 원거리 암살의 최강자로 올라선 사람이 있었다고요. 저도 그 방식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원거리 공격 방식을 단련해 보겠다는 뜻이야?”
블라네는 결의가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블라네의 이 결연한 모습은, 생전에도 늘 그녀가 유지하던 전투 자세였다. 단 하나의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몇 시간째 은신하는 암살자의 자세 말이다.
바뀐 미래로 인해, 화상 자국을 얻고 자존감을 잃었던 그녀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한 현재, 전생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루빈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엿들어서 미안. 그러니까 활을 써보겠다, 이런 말로 들리는데. 맞니?”
이렇게 물으며 다가오는 건 하밀이었다.
하밀은 장난스럽고 친근하게 블라네 앞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발랄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몸짓이었지만, 블라네는 짧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이만. 전 가보겠습니다.”
블라네가 건조한 인사를 남기며 가장 먼저 출발했다. 곧 블라네와 크리거 가주의 마차가 연회장을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루빈 도련님, 궁금한 게 있…….”
하밀이 루빈에게 물으려 할 때, 그들 사이로 쿤이 비집고 들어왔다. 쿤은 하밀의 말을 잘라내며 루빈을 불렀다.
“루빈.”
시험이 끝난 뒤로 쿤은, 루빈에게 시비는커녕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다. 몽환세계 안에서 겪은 참패가 그만한 여파를 남겼던 것이다.
‘그래 봤자지. 얼마 안 가서 그 잔학하고 오만한 성격이 돌아올 거야.’
그 예상은 빗나갔다. 쿤은 전에 보지 못한 진지한 태도로, 나지막이 말했다.
“카포티니를 선택할 줄은 몰랐는데. 마법이라도 배울 셈이냐?”
“그러는 넌, 해적들 퇴치해서 제국의 예쁨이라도 받으려는 거야?”
“강해질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거다. 루빈, 난 더 강해질 거야. 지금보다 훨씬 더.”
집념 어린 한마디에 루빈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만, 네 길이 내 앞을 막아서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루빈은 쿤을 적도 아군도 아닌, 회색지대에 올려놓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번의 굴욕적인 패배, 다음에 갚아주지. 반드시.”
그때 하밀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다시 끼어들었다.
“풉! 꼴이 좋아? 얌전해진 것 보니까 안쓰러워서 그래. 근데, 그 전에 일단 나부터 이겨야 하는 거 알지?”
“…놀릴 수 있을 때 실컷 놀려둬라. 지금 너한테 당한 이 수모도 언젠가 꼭 갚아주지. 뼈를 발라낸 다음, 거기다가 지금 네가 했던 그 같잖은 말을 새기는 것도 괜찮겠어.”
“그래. 그렇게 천박한 말들이 나와줘야 쿤이지. 암암, 그렇고 말고.”
쿤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인사는 끝이라는 듯 등을 보이고 돌아선 쿤이 곧바로 연회장을 나갔다. 이윽고 크로키슨가의 마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둘이 남게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하밀이 루빈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도련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카포티니를 선택하신 거예요? 네?”
추궁을 하면서도 루빈의 숨은 뜻을 알아내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는 하밀이었다. 역시나, 루빈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레우레타는 위험한 곳이야, 하밀.”
“위험할수록 더 빨리 성장하겠죠. 도련님도 마법사들 한복판으로 가시잖아요? 저 역시 괴수들 처치하면서 한 계단씩 올라갈 겁니다.”
그래. 올라가라, 하밀.
너무나 일찍 꺾여 버렸던 지난 생의 하밀. 그녀가 죽지 않고 암살검가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다면, 제국군에게 골칫거리 하나를 안겼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조금이나마 미래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자, 받아.”
루빈은 하밀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웬 돌멩이 하나와 어떤 제조법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이거, ‘프로즌 스톤’ 아니에요?”
프로즌 스톤은 갖가지 물약의 주재료로 쓰이는 돌멩이였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고, 천연적으로 얻을 수도 있었다.
“그 제조법대로 물약을 만들어 먹어.”
“물약이요?”
“레우레타에서 필요할 거야. 네 성장에도 도움될 거고.”
물론 마지막 말은 즉흥적으로 꾸며낸 말이었다. 어딘가 수상쩍었는지 하밀이 빤히 쳐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독 안 탔으니까.”
“아니, 뭐. 전 그런 뜻이 아니라……!”
루빈이 써서 준 제조법은 10년 후에나 세상에 나오는 물약 제조법이었다. 독에 대한 총체적인 내성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는 영약.
독은 하밀의 약점이었다. 그리고 회귀 전,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원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이 프로즌 스톤은 루빈이 길리필드 영감과 퓌닉에게 부탁해 받아놓은 것으로, 안개의 고목 상층부, 그것도 이끼 틈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즉, 독성이 서린 안개가 길러낸 프로즌 스톤이라는 뜻이다. 안개의 고목이 직접 길러냈으니, 암연을 지닌 자에겐 그 효과가 더 특별할 수밖에.
“제, 제가 왜 도련님을 의심하겠어요. 전 그냥…….”
당황해 얼굴이 빨개지는 하밀의 어깨를 루빈은 말없이 툭툭 두드려 주었다. 거기엔 당장은 못 미덥겠지만, 결국엔 루빈의 말을 따라줄 거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고마웠어, 하밀. 다음에 또 보자.”
“…감사합니다, 도련님!”
선물을 받아 든 하밀이 밝게 웃었다. 그런 그녀 곁으로 로이넨서 트리캉이 다가왔다.
“하밀 님, 떠날 시간입니다.”
“루빈 님, 이제 저희도 떠나야 합니다.”
마침 쿠제도 다가왔다. 이제는 그들 모두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루빈은 쿠제를 따라, 하밀은 트리캉을 따라나섰다.
준비되어 있던 마차에 각자 오른 그들은 떠나기 전, 서로의 행운을 기원하는 짤막한 목례를 나눴다.
덜컹덜컹.
그렇게 각자의 목적지로 마차가 출발했다.
천천히 나아가는 마차 안에서, 루빈은 눈을 감고 이번 시험을 통해 얻은 걸 정리했다.
블라네로 하여금 다시 강자의 길을 걷도록 돌려세웠고, 하밀에게 죽음을 피할 방법을 알려줬다.
이 세계에서 하나뿐인 최고의 로이네크로우를 얻었으며, 독창적 암연 기술 창안자인 쿠제를 얻었다.
게다가 세 번째 환에 담긴, 오러의 발현까지.
몽환세계에서 처음 발현된 오러. 브리온 검식에 뿌리를 두었으니 브리온 오러라 불러야겠지.
대륙 서쪽에 있는 카포티니까지의 여정은 시일이 꽤 걸릴 것이다. 로이넨 저택에서 출발한다면 아마 4주 정도.
‘대략 한 달이군.’
오러를 연마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