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43)
암살검가 로이넨-43화(43/258)
제43화. 카포티니로 가는 길 (2)
“이, 이… 쥐새끼, 뭔 짓을 한 거냐!”
데커스가 소리치며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기 위한 으름장이었지만 사실 달라질 건 없었다. 벌벌 떨리는 온몸이 이를 방증했다.
단 한순간이었다. 그 한순간에 벌어진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따라 다섯 명의 부하들이 모조리 한쪽 발을 잃었다.
검술명가의 자제인가? 아니면 마법학교의 생도? 제기랄! 잘못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렸구나.
“여기가 네놈들 소굴이냐?”
루빈은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굴을 살펴보니 오합지졸이라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도적단에도 급이 있기 마련. 명문가의 기사단을 위협할 만큼의 도적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작은 동네의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 놈들도 있었다. 이놈들은 당연히 후자였다.
“여기서 사람을 죽였나?”
의도하지 않은 살상의 흔적이 있었다. 놈들의 범죄로 보건대 인질 협상 중에 일이 틀어진 거겠지. 루빈은 이 엉성한 놈들이 이곳에서 아이들을 두엇쯤 죽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걸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냐?”
루빈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기척을 죽이며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데커스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굴복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는 고작 열 살 언저리의 꼬마. 아무리 날고 기어도 오러를 운용하는 자신과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좀 전에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데커스가 들고 있는 장검에 반투명의 겹이 씌워졌다.
“건방은 거기까지다, 꼬마야.”
“오러?”
“오랜만에 돈 좀 만져보나 싶었더니. 일이… 틀어졌군. 너, 너 때문에 다, 다섯 놈이나…….”
“왜 그렇게 헐떡거리지? 똥 마렵나?”
“뭐, 뭐라고!”
루빈의 조롱에 데커스는 발끈했다. 데커스는 발현된 오러를 감당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었다. 들지 못할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배배 꼬고, 가서 그냥 싸고 와. 기다려 줄게.”
데커스는 눈을 부릅뜨며 뒤뚱거렸다. 그 순간, 잡아내지 못할 움직임으로 데커스를 지나쳐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루빈.
“아, 그냥 내가 나가지. 해결되면 나와라.”
“이, 이 새끼가!”
결국 데커스는 당장 이 상황을 매듭지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는 루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러가 담긴 검을 있는 힘껏 내리그으면서.
콰쾅.
“어?”
진동음이 울리면서 먼지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끄아아악!”
데커스가 검을 내리친 자리엔 그의 부하들이 쓰러져 있었다. 다섯 부하 모두 피를 토해내며 절명하고 말았다.
“씨발! 오러가, 오러가…….”
공격 한 번에 탈진해 버린 데커스는, 오러와 함께 죽어버린 부하들이 먼지처럼 사그라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운용할 수 없는 오러는 그저 눈먼 공성무기나 다름없다는 걸, 녀석은 모르는 듯했다.
“몇 가지만 물어볼게.”
벽을 이루듯 떠다니는 먼지 속, 루빈의 인영이 비쳤다. 그 인영의 팔 끝으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서, 설마?”
단검에 떠도는 형형한 빛. 그건 분명 오러였다. 데커스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은 아닌가 싶었다.
많이 쳐줘 봐야 열세 살이 될까 말까 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오러를 발현할 줄 안다고?
먼지를 뚫고 들어오며 아이가 가볍게 팔을 내저었다. 자신과 다르게 아이는 오러를 안정적으로 발현시킬 뿐만 아니라, 휘두르면서도 그 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데커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루빈이 나직하게 물었다.
“어느 가문 출신이지?”
미약하게라도 오러를 발현시킬 수 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오러의 발현은 도적 두목이 되기 전, 검술가문이나 기사단에 속했었다는 걸 뜻하니까.
“아, 생각해 보니 아무 의미 없겠구나.”
“…뭐?”
제명되었을 게 빤하다. 재능이 없으면 가차 없이 내다 버리는 게 대다수 검술가의 방식이니까.
지긋한 나이에 아직도 오러를 겨우 발현하는 것에 그친다면, 휘하에 남겨둘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루빈은 질문을 바꿨다.
“마을에도 너를 돕는 놈들이 있나?”
“…….”
“아님, 마을 사람들 전부가 너희 패거리야?”
“…….”
데커스는 장검을 쥐어보았지만 오러가 다시 발현될 리 없었다. 검 자체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게다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숨통이 틀어 막히고 있었다. 데커스로서는 이해 못 할 기운이 서서히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뭔가에 붙들린 것처럼 데커스는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루빈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뭐.”
루빈은 오러로 가득 찬 단검을 내려다봤다. 이따위 불량배를 죽이는 데는 오러조차 아까웠다.
오러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데커스를 서서히 짓누르던 암연도 함께 거둬냈다.
그러자 마치 자신을 담가놓은 물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은 데커스.
그는 이때다 싶었다. 반격할 기회는 지금뿐.
스윽.
하지만 힘을 쥐어짜 검을 쥐기도 전에, 루빈의 단검이 번뜩이며 그의 목젖을 지났다.
“커, 커헉…….”
루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깨끗이 정리된 도적들의 사체를 둘러보았다.
-오러 운용법은 다음에 적당한 때를 찾아야겠군.
모든 상황을 지켜본 하네케가 나서서 말했다.
루빈은 이미 오러의 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 다음 차례는 오러를 운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필히 실전을 통해서만 길러야 하는 감각이었다.
‘다음 기회가 있겠죠. 아쉽지만.’
루빈은 마을 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물었다.
‘하네케, 저 도적이 쓴 오러를 알아보겠어요?’
모든 오러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루빈의 뿌리가 브리온인 것처럼, 저 도적 두목도 뿌리가 있을 것이다.
-글쎄. 너무 미약해서 말이야. 알아볼 수 없었네만.
수십 년간 제국 대장군을 지내면서 이름난 검술가문들의 오러는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도적의 오러는 당최 알기가 힘들었다.
‘오러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색깔이라든지 형태라든지.’
-그렇지. 하나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네.
오러란, 그 토대를 이룬 검식에 최적화된 힘. 검법에 담긴 철학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하네케는 거대한 낫의 형상을 한 오러도, 양 갈래로 날카롭게 가지를 뻗친 형태의 오러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적 두목이 보여준 오러는 워낙 불안정해서 그만한 파악도 불가능했다. 근본도 추적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오러라니.
-한 가지는 확실하군.
‘그게 뭐죠?’
-어차피 명줄이 길지 않은 녀석이었어. 자네가 죽이지 않았어도 곧 죽을 놈이었단 뜻일세.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는 곧 검술가의 근본이자 명예였다. 비록 뿌리를 알 수조차 없을 만큼 형편없는 놈이지만, 저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저자를 내쫓은 기사단에서도 뭔가 조치를 했을 게 틀림없었다.
‘명예는 칭송하고 불명예는 처단한다.’
대개 이것이 검술가를 이루는 신념이니.
루빈은 나무 위로 펄쩍 뛰어올라 마을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제는 속력을 내어 주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 * *
‘데커스 녀석, 잘하고 있겠지?’
맨커스는 주점 한쪽 구석에 앉아 유리잔을 만지작댔다. 그의 눈길은 매대 앞을 차지하고 있는 여인과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중년의 여인과 그보다 살짝 어린 나이대의 사내. 평범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이 작은 마을 네키아빌에서는 그조차도 특이했다.
네키아빌은 근처에 주요 도시나 명소가 없는 구석 중의 구석이었다.
왕국의 관리조차 드물게 방문하는 이곳에서,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저 두 사람을 하인으로 두는 귀족 자제까지 있었다.
‘돈벌이가 될 만해. 확실히.’
맨커스가 이 주점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즉, 데커스의 부하들이 다녀갔다는 뜻.
열 살 또래의 아이를 꾀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신기해 보이는 물건이나 얕은 거짓말에도 곧잘 넘어오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 건드렸다간, 벌집을 쑤신 것처럼 크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투명가나 검술명가의 자제들은 평범한 성인 따위는 가볍게 짓밟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저들의 마차에는 가문의 문양 같은 건 없었다. 일부러 숨겼거나, 부유한 평민이란 뜻이겠지.
‘모양내기에 불과하더라도 데커스는 오러라는 걸 발현할 수 있는 놈이니까. 어지간한 건 알아서 처리하겠지.’
맨커스는 때가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주점을 지켰다. 두 눈은 여전히 달팽이 경주에 정신이 팔린 여인과 그녀에게 쩔쩔매는 사내에게 고정해 놓은 채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소란이 일었다.
“이건 사기야! 말도 안 돼! 왜 내가 고르기만 하면 잘 기어가다가 뚝 멈춰 버리는 거야?”
“그러게 아까 그만두셨으면 좋았잖아요.”
“야, 마부! 너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뭐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무튼, 이 달팽이 경주, 냄새가 나. 꼬릿꼬릿한 악취가 나는 게, 뭔가가 느껴진단 말이지. 내가 고른 놈만 꼴찌 하는 게 말이 돼?”
“이제 그만하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마부가 난처한 얼굴로 여인을 붙들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이거 내 돈으로 하는 거라니까? 루… 아, 루든 도련님한테 허락받은 거야.”
이 대화를 통해 맨커스는 아이의 이름이 ‘루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됐다, 이 정도면.
더는 기다리기 어려웠다.
‘이제 슬슬 나서볼까.’
원래 데커스와 맨커스 형제는 인근에서 위세를 떨치는 플로니카 가문의 초급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충성심으로 가문에 봉사했지만, 초급기사 딱지를 떼지 못했다. 1성에 올라서지도 못하자, 가문은 이 두 형제에게 아무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데커스가 오러를 발현하긴 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었고, 맨커스는 그마저도 이뤄내지 못했다.
결국 플로니카 가문에서 내쫓긴 그들은 작은 마을 네키아빌에서 일을 벌였다. 한 사람이 아이를 납치하고, 다른 사람이 그 아이를 구해내는 인질극.
납치범을 무찌르고 아이를 구해내면서 돈을 얻어내는 역할은 맨커스의 몫이었다. 그가 데커스보다는 훨씬 말끔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맨커스는 둘에게 얌전히 다가가 물었다.
“저, 부인?”
“음, 무슨 일이시죠?”
“조금 전까지 아이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개인교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있어야 할 도련님이 보이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두 사람의 반응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화장실에 가셨나 보죠, 뭐. 오지랖 그만 부리고 좀 가줄래요? 내기에 집중 좀 하게.”
그러고는 여인은 돌아서서 새로운 달팽이를 고르기 위해 골몰했다.
이상한 사람들이군. 깍듯이 모시는 귀족 자제가 아니었나?
“최근에 이 근처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거참, 귀찮게 하시네!”
그렇게 티나가 돌아서서 맨커스를 째려보았을 때. 그들 앞으로 꼬마가 나타났다.
지금쯤 사라졌어야 할 바로 그 꼬마였다.
“아직도 달팽이 경주에 빠져 있던 거야?”
루빈은 태연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쳐 비어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데커스 놈들이 아이를 납치한 지 이제 고작 30분. 이럴 리가 없었다. 어째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당혹스러워 주춤거리는 맨커스는 순간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꼈다.
꼬마의 눈길이었다. 눈길에 그대로 응한 맨커스는 이윽고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꼬마에게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으…….’
본능 깊숙이 울려대는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