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44)
암살검가 로이넨-44화(44/258)
제44화. 카포티니로 가는 길 (3)
“봤죠! 여기 루든 도련님은 말짱히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관심 끄는 걸로 하죠? 네?”
“…….”
티나의 큰소리에 맨커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없으니 일단은 몸을 사려야 했다.
게다가 루빈의 시선을 받아내느라 자기도 모르게 등줄기를 땀으로 적시는 맨커스였다.
“이런,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맨커스가 허둥대며 주점을 나가 버렸다.
그가 자리를 빠져나가는 순간, 루빈은 빠르게 주변을 관찰했다. 창가로 다가가 근처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파악했다.
뛰어나가는 맨커스 뒤로 어설픈 부하 하나가 달라붙었지만, 그뿐이었다.
‘동굴 놈들과 관련이 있는 건, 저놈하고 부하 하나뿐인가.’
예상대로 마을 사람들은 데커스 무리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일을 더 키울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물러난 놈은 내일 다시 접근해 오겠지. 그때가 되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부, 나는 먼저 올라가 있을 테니까, 10분 안에 선생님 모시고 와. 할 말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이후 다시 숙소에서 모인 세 사람.
달팽이 경주 내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티나였다.
마침 변신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에 티나는 다시 고양이 모습으로 바꿨다.
냐옹.
달팽이 따위에 언제 집착했냐는 듯 나른한 자태로 침대 위에서 몸을 데구루루 구르는 그녀의 모습에, 쿠제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도련님, 마실은 어떠셨습니까?”
“음, 그러니까……”
루빈은 동굴에서 일어난 일을 짤막하게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워낙 간단했기에 정리할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실속 없는 놈들이었어.”
루빈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데커스 일당을 파악하고 있었다. 흔적도 제대로 숨기지 못한 채, 루빈을 노렸던 시선들.
그래서 주점에 들어가자마자 쿠제와 티나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신경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티나는 그 지시를 옳다구나 받아들였지만 쿠제는 로이넨서로서 도련님과 떨어질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었다.
“이 마부께선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내 옆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더라고. 어떤 달팽이가 1등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니까?”
“아니, 티나 님. 그건 티나 님이 계속 돈을 잃으시니까…….”
“뭐? 내가 돈을 잃어? 내가 그깟 돈 따려고 거기 둘러앉아서 내기한 줄 알아? 그저 스포츠를 즐겼을 뿐이라고!”
“…그러시겠죠.”
티나는 기다란 꼬리로 벽을 연달아 탁탁 쳐내며 하악 소리를 내었다.
“루빈. 이쯤에서 쿠제한테 네가 얼마나 센 놈인지 보여주면 안 될까? 앞으로 너 혼자 나다닐 때마다 날 얼마나 들볶겠냐. 아니면 얘를 데리고 다니든지.”
“쿠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보단 너 같은데.”
하악-!
그러자 티나는 실제 고양이가 등허리를 삐죽 세우며 화를 내듯이 루빈을 향해 날카롭게 울어댔다.
“너, 사람 무시하는 게 취미냐?”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어도 루빈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생명을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성정을 지닌 환혈족이다. 아무리 암연을 지닌 데다 무결점 변신이 가능하더라도, 티나 혼자 있는 건 위험했다. 공식적으로 티나는, 황제의 추격을 받는 몸이니.
루빈은 내일 벌어질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아까 그놈도 한패야. 지금쯤 소굴에서 시체를 발견했을 거야.”
“어쩐지 옆에서 앵앵대더니. 난 또 내 돈을 뜯어먹으려는 사기꾼인지 알았지.”
“시체를 보면 곧바로 우리를 공격해 오지 않을까요?”
루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닐 거야. 나를 보호하는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겠지.”
“그럼 우린 놈들을 무시하면 되는 거야?”
“그렇다고 놈들이 나를 그대로 보내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건 내일 정리하면 돼.”
잔당은 내일 다시 올 거다. 숨이 멎기 전 데커스가 어떤 사실을 실토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
확실한 건 분명 루빈을 제거하려 할 거라는 점이다. 갖은 이유를 대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루빈 일행을 끌어낼 게 틀림없다.
그런 다음, 본색을 드러내겠지.
“카포티니로 가려면 3주는 더 걸릴 텐데, 벌써 날파리들이 꼬이네요.”
“별수 있겠냐?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 가면서 사뿐사뿐 나아가야지.”
티나는 자신이 한 말을 몸소 보여주려는지 침대 위에서 가볍고 경쾌하게 네 발로 움직였다.
‘날파리들만 꼬인다면 괜찮은데, 그 이상은 곤란해.’
마차 하나로 대륙을 횡단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건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의 규모가 커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때가 될 때까지는 암살검가의 존재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최단경로를 찾아봐야겠군.’
한편, 주점을 빠져나간 맨커스는 루빈의 예상에 맞게 움직였다.
우선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부하를 데리고 데커스가 아이를 납치해 두고 있기로 했던 소굴로 향했다.
손에 든 등불을 내뻗으며 걸어 들어간 소굴.
그가 발견한 건 동생 데커스를 포함한 여섯 구의 시체였다.
그중 다섯은 데커스가 감당할 수 없는 오러를 쓰느라 자기편을 살해한 것이었지만, 맨커스가 그걸 알 리 없었다.
“꼬마한테 호위가신이 있었나?”
맨커스는 동생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제길,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데! 데커스가 어디까지 분 거지?”
죽은 동생에 대한 슬픔 따윈 없었다.
함께 플로니카 기사단에서 성장했지만, 둘 사이에 형제애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일시적인 ‘사업 파트너’였을 뿐.
한참 생각을 정리한 맨커스는 등잔불을 들고 동굴을 나섰다.
“어떻게 하죠?”
시체에 충격받은 부하가 벌벌 떨며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그놈들이 마을을 나서면 그때 다시 접근한다.”
그리고 다음 날.
티나와 쿠제가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루빈이 올라타면서 다시 여정이 시작되었다.
‘따라오고 있군.’
세 사람 모두 감지하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그들 마차를 따라오는 두 사내.
넓게 펼친 암연 위에서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선명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난 마차는 울퉁불퉁한 흙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10분을 더 달렸을까.
“저놈들, 언제쯤 올까요?”
“이제 곧.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나를 호위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도 녀석들은 데커스를 죽인 게 루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저들로서는 상식 밖이었으니까. 차라리 도적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나 불상사가 발생했으리라는 게 더 상식적이었다.
“아, 저기 있네요. 도련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데커스 일당의 소굴이 있는 숲도 지나, 이제는 완전히 마을에서 벗어난 시점.
지름길로 루빈 일행을 앞지른 맨커스가 나타났다. 그는 작은 하천 위에 놓인 돌다리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처럼 한쪽 발을 절뚝이고 있지만 전부 거짓말. 루빈 일행을 멈춰 세우려는 얕은 수였다.
“저, 저기요! 잠시만 도와주세요.”
마차가 멈추었다. 그 순간 루빈은 뒤쪽 수풀에서 맨커스의 마지막 부하가 움직이는 걸 감지했다.
루빈뿐만이 아니었다. 큼큼, 헛기침을 하는 쿠제와 루빈 옆에서 냐옹 소리를 내는 티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제가 마부석에서 맨커스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어제 그분들이시군요! 제가 일을 나서다가 그만 다리를 다쳤습니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이유로 거짓 연기를 이어나갔다. 호위가신이 보이지 않으니, 마부 따위는 간단히 죽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마부는 바로 4성 경지에 돌입한 암살자 쿠제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맨커스가 검을 빼기도 전에 그를 죽여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막 그러려는 찰나.
“쿠제, 그만.”
갑자기 마차 안에서 루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도 쿠제라는 본명을 그대로 부르면서. 쿠제는 숨겨놓은 단검을 쥐려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예, 도련님.”
“기다려 봐.”
루빈은 마차 문을 열고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온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냐.”
“예?”
냐옹?
쿠제와 티나의 암연에는 감지되지 않을 만큼의 저 너머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한 무리가 있었다.
이윽고 쿠제의 반경 안으로도 들어오면서 그 역시 그들을 알아차렸다. 다가오는 속력으로 미루어보아, 기수들 같았다. 전부 품종 좋은 말을 타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루빈과 쿠제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맨커스가 우물거릴 때였다.
무리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우람한 전투마 위에 올라탄 자들.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맨커스였다.
“어… 어!”
맨커스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탈출구를 찾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맨커스를 발견한 기사단이 속력을 높여 순식간에 마차를 에워쌌다.
그러자 곧바로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맨커스.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거의 동시에, 위기감을 느낀 쿠제는 루빈을 보호하기 위해 마차의 입구 쪽으로 등을 갖다 댔다.
“도련님. 아무래도 근처 가문의 기사단인 것 같습니다.”
‘귀찮게 됐군.’
마차를 둘러싸고 있는 건 모두 일곱.
전부 최소 2성 이상으로 이루어진 정예들이다.
개중 루빈의 주의를 끈 건, 정예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한 젊은 기사였다.
‘어쩌면 4성 이상인가?’
기사단을 이끌고 있거나, 가문의 자제일 것 같은 그자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명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때 나이 지긋한 남자가 말했다.
“플로니카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쥐새끼들! 이제야 찾았네.”
“다, 단장님! 살려만 주십시오.”
“네 동생 놈은 어디에 있느냐?”
“동생은… 죽었습니다.”
“이놈이 아직도 거짓을 늘어놓아?”
단장이 검을 빼 들어 맨커스에게 겨누었을 때.
“실로스, 그만.”
단장 실로스를 제지하고 나선 건 루빈이 가장 강할 거라고 예상한 바로 그 청년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을 앞두었을까. 앳된 청년이 말을 몰아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명예를 더럽힌 놈을 벌하기 전에 지금 이 자리부터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실로스는 도련님의 말뜻을 이해했다. 마차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그쪽과 먼저 이야기부터 해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플로니카 가문의 기사들이오.”
실로스가 말에서 내려와 쿠제에게 다가갔다. 그 태도는 정중했고 위엄이 느껴졌다.
“가문의 자제이신 얀 도련님을 모시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놈들을 뒤쫓고 있었소.”
그 한마디뿐이었지만.
‘그 두 놈이 이 가문의 소속 기사들이었군.’
마차 안에서 듣고 있던 루빈은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다.
데커스는 미약하게나마 오러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건 검술가문의 기사단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놈과 그 동생은 한때 기사단의 일원이었으나, 퇴출당한 뒤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었소. 그걸 정리하고자 나선 것이오.”
그때 루빈은 마차 입구를 방어하고 있는 쿠제에게 말했다.
“쿠제. 내가 응대하겠다.”
쿠제가 몸을 비켜서자, 루빈이 마차 바깥으로 나왔다.
“아, 공자님이 계셨군?”
루빈은 실로스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그를 지나쳐 뒤편에 있는 얀을 바라보았다.
루빈의 등장에 얀도 호기심 섞인 눈빛을 드러냈다.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은 이윽고 적당한 예를 표했다.
“저는 루든 포이넨이라고 합니다.”
“플로니카 가문의 얀입니다.”
루빈은 흠칫 놀랐다.
얀? 얀이라면…….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회귀 전,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어봤던 이름이었으니까.
‘내가 알기로 얀은 플로니카 가문이 아닌 세빌론 가문이었는데.’
회귀 전에 루빈은 얀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얀의 생김새는 너무나 유명하고 세세했기에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목에 가로로 그어져 있는 선명한 상처, 거기에 은빛 머리칼에 자주색 눈동자.
가장 확실한 건 이름이나 외형이 아닌, 얀이 드러내는 그 경지에 있었다. 루빈은 얀의 경지에 몸 곳곳이 저절로 반응하는 걸 느꼈다.
‘분명해. 은발의 반란자, 얀 세빌론. 회귀 전, 황제에게 정면으로 대적했던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