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48)
암살검가 로이넨-48화(48/258)
제48화. 톨로이스 경매장 (1)
“도련님! 다 확인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쿠제가 기분 좋게 소리쳤다. 그 손에는 가죽주머니가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방금 전까지 열심히 사냥한 트롤의 피가 가득 채워졌다.
“톨로이스 경매장 입장권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군요. 더군다나 핀 트롤의 피까지 얻어냈으니.”
핀 트롤, 즉 트롤의 돌연변이종이었다. 일반적인 트롤이 거구인 것에 반해, 핀 트롤은 성인보다도 체구가 작았다.
핀 트롤은 태어날 때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태어나는데, 작은 체구의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다섯 마리가 긴밀한 조직체처럼 활동한다.
그 피가 일반적인 트롤과는 다른지, 톨로이스 입장권으로는 더 쳐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가자, 쿠제.”
루빈은 죽은 트롤의 몸에 단검에 묻은 피를 쓱쓱 닦으며 말했다. 그런 루빈을 인상적으로 바라보는 쿠제였다.
아무리 이곳 트롤의 개체 수가 많지 않다고 해도, 어찌 저리 덤덤할 수 있는지.
더군다나 본가의 자제라면 이제껏 실전 경험은커녕 괴수를 보는 경험도 드물었을 텐데.
그러기엔 루빈의 전투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2차 선택’에서 우승했던 게 우연이 아닌 게 확실했다.
시험 중에 어떤 상황들이 펼쳐졌는지는 몰라도, 저만한 경지라면 모든 걸 간단히 해냈을 터였다.
‘사실 이런 의문들은 도련님의 목표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지.’
지난밤의 대화.
릴리크 제국과 암살검가 사이의 끈을 끊어내겠다는 루빈의 목표를 들은 뒤, 쿠제는 그 어떤 말을 듣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도련님, 모레 낮에 톨로이스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마차로 돌아온 뒤.
마차 지붕 위에 트롤의 피가 담긴 가죽주머니들을 쌓아 올린 쿠제가 말했다.
마부석에 앉은 쿠제가 다시 말을 출발시켰다. 말은 지붕에 얹어진 트롤의 피로 인해 괜히 흥분해서는 이전보다도 더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낮에 도착이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는 셈이군.’
톨로이스 경매장의 입장 시간은 해가 떨어진 직후였다. 정확한 시각이 아니라, 일몰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톨로이스 경매장에 가본 적이 있나, 루빈?
하네케의 물음에, 루빈은 지난 생을 떠올려봤다. 임무 차 톨로이스를 경유하면서 경매장에도 가본 적이 있긴 했었다. 그 며칠간 경매장의 구조와 방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칠십 넘게 살면서도 거길 가본 적이 없었네. 그리도 유명한 곳이었는데 말이야.
‘아무리 유명한 곳이어도, 이름난 귀족들이 출입할 만한 경매장은 아니긴 하죠. 제도(帝都)에 더 유명한 경매장이 많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하네케가 특이한 부류인 건 맞았다. 톨로이스 경매장의 명성은 제도의 그 어떤 경매장에도 뒤지지 않았다.
군인 출신 귀족으로 유서가 깊은 브리온가 혈통의 하네케다. 그가 그런 데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귀족들은 달랐다.
1등귀족뿐만 아니라 왕족보다도 더 고귀하다는 ‘제국귀족’들조차 유흥을 위해 이따금 찾는 곳이 바로 톨로이스 경매장이었다.
귀족들이 맘껏 출입할 수 있었던 건, 애초부터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그곳을 출입하는 자들은, 이름이나 신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그 존재를 보증받았다.
‘여하튼, 하네케도 이번 기회에 처음 톨로이스 경매장을 체험하게 되겠네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몹시 기대 중이라네.
‘틀림없이 만족하실 겁니다.’
루빈의 마차는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면서 꾸준히 나아갔다.
톨로이스 시(市)는 리혼 왕국의 북쪽 국경에 접해 있었다. 리혼 왕국에 속해 있다지만, 사실상 제국이 자치도시로 내어준 거나 다름없었다.
‘톨로이스에서 서쪽으로 이틀만 가면 ‘잿빛항구’가 나온다.’
루빈은 앞으로의 여정을 정리해보았다.
만약 그가 의도한 대로 흘러간다면, 톨로이스 경매장에서의 일은 일주일 안에 매듭지을 수 있을 터.
그다음 순서도 정해놓은 루빈이었다.
‘잿빛항구.’
애초부터 ‘은발의 반란자’ 얀이나 톨로이스 경매장은 계획에 없던 사건들이지만, 잿빛항구라면 그렇지 않았다.
카포티니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여정에 넣어두었던 지점이었다.
리혼 왕국의 서쪽 국경을 벗어나면 곧바로 나오는 잿빛항구. 제국직할령 중 하나였기에, 대륙 서부로 나아가는 여행선들의 주요 경유지였다.
‘운만 좋다면, 그 ‘블루캣 호’를 타볼 수 있겠군.’
함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블루캣 호다. 바로 그 배의 출발 항구도 바로 잿빛항구였다.
전생에서도 블루캣 호에 관심이 있던 루빈은 이번 여정을 통해 그 실물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도련님.”
마부석의 쿠제가 불렀다. 도착했음을 알아차린 루빈이 마차의 창문을 슬쩍 내려 보았다.
언덕 저 너머로 톨로이스의 윤곽이 보였다. 그때, 하네케의 탄성이 울렸다.
-저게 톨로이스인가? 어째 도시가 저렇게 ‘모자 쓴 사람 머리’처럼 생길 수 있지?
루빈은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전생에 처음으로 톨로이스에 왔던 때에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산. 그리고 그 산의 중턱엔 거대한 원판이 채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저 모자챙 같은 곳이 도시라고?
‘거긴 경매장이에요. 모자챙의 그늘이 드리워진 지상이 도시이고요.’
하네케의 너털웃음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어째서 ‘경매장의 도시’인지 이해한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지상보다 상층부, 즉 ‘차양층’이 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니까.
‘차양층에 비해 지상은 햇볕도 잘 받을 수 없는 곳이죠.’
-이거 재밌구만. 시민들보단 경매장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겐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경매장은 특별구역이어서, 그곳은 모든 왕국에 드리운 제국의 법망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오직 경매장의 법에만 따라야 한다.
“도련님. 곧바로 경매장으로 갈까요? 마침 시간도 맞아서 경매장으로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서두를수록 좋겠지.”
날이 저물고 있었다. 경매장에서는 지금쯤 표를 판매하고 있을 터였다.
* * *
톨로이스에서는 도시를 ‘지상층’, 경매장을 ‘차양층’이라 불렀다. 모자의 챙모양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지상의 도시는 따로 관문을 두지 않았는데, 출입의 개념 없이 언제나 개방되어 있었다.
반면 경매장은 달랐다. 경매장으로 가기 위해선 도시의 중앙대로를 통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지금, 중앙대로는 대륙 곳곳에서 모여든 마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도련님, 엄청난 인파입니다.”
루빈의 마차가 중앙대로에 섰을 땐, 이미 앞으로 수십 대의 마차가 경매장 진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슨 축제라도 열리는 겐가?
‘아뇨. 이게 일상입니다. 계절마다 특매 주간이 있긴 한데, 지금은 아니에요.’
엄청난 가치의 물품이 경매에 나올 땐, 경매장 측에서 알아서 그 물건의 경매 시기를 조정한다. 계절마다 있는 특매 주간에 내놓으려는 것이다.
평상시 인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게 바로 특매 주간이었다.
지금은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중앙대로를 가득 메우는 것에 그칠 뿐이지만, 그땐 도시 밖까지 기나긴 행렬을 이룬다.
게다가 각 왕궁에 경매 물품 정보가 배포되기 때문에, 그땐 왕족들의 얼굴도 구경할 수 있었다.
-저기 누군가 걸어오는군.
저 앞쪽에서부터 경매장의 하인들이 마차를 돌아다니면서 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하인들은 모두 다 물범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 또한 톨로이스 경매장의 상징이었다.
저벅저벅.
이 물범들에게 인사 생략은 기본이었다. 그들은 신분증이나 통행증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하인은 열려 있는 마차에 고개를 들이밀더니 이렇게 물을 뿐이다.
“누가 대표자입니까?”
“접니다.”
루빈이 손을 들었다.
“당신의 부여 번호는 6321입니다. 트롤의 피… 준비 됐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어느새 마차 지붕에서 트롤의 피가 담긴 가죽주머니를 풀어둔 쿠제였다. 한 손에는 일반 트롤의 피, 다른 손에는 핀 트롤의 피를 들고 있었다.
“확인해보죠.”
하인은 안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냈다. 그다음엔, 그 헝겊을 가죽주머니 안에 집어넣어 피에 적셨다.
치익- 화르륵!
막대로 헝겊을 감싼 뒤, 거기에 불을 붙여보는 하인. 트롤의 피는 초록빛 불꽃을 피워올리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는 것이다.
“호오.”
다만, 핀 트롤의 피는 좀 달랐다.
타오르는 불의 가운데가 초록인 건 똑같지만, 가장자리엔 노란빛을 띠는 것이다. 그걸 확인한 하인은 눈을 크게 뜨며 흡족해했다.
“모처럼의 핀 트롤이군요. 앞쪽 줄로 배치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하인은 어린 도련님이 어찌 이만한 걸 구해왔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수칙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륙의 해괴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경매장이었으니 이만한 것에 놀라면 일을 해나가기 힘들었다.
“정식 경매 절차는 차양층에 가면 진행될 겁니다. 마차는 어떻게 할 겁니까?”
“보관해 주십시오.”
경매장에서 몇 개월씩 머무는 사람들은 그 사이 마차의 처분을 맡기기도 했다. 루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쿠제. 지붕에 가죽주머니 하나는 남겨놔.”
“예, 도련님.”
티나 때문이었다. 그들보다 늦게 톨로이스에 도착할 그녀는 마차를 찾아낼 테고, 남겨진 트롤의 피로 입장권을 살 것이다.
“아, 트롤의 피를 남겨두시는 겁니까? 저 정도 양이면 차양층에서 사은품도 받아 가실 수 있을 텐데.”
“아뇨, 괜찮습니다.”
하인이 입맛을 다셨다.
“손등을 내미세요.”
이어지는 절차. 루빈과 쿠제가 하인을 향해 손등을 내밀었다. 하인은 손등에다가 형광색 물감을 묻혔다. 마법이 깃든 물감이었고, 이 표식이 경매장의 입장권이었다.
보기엔 간단한 것 같아도, 고차원 표식 마법이었다.
스스슷.
순간, 물감이 칠해진 부분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입장권이 재대로 부여된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안에서 사고 칠 생각이 있다면 접어두세요. 안에는 대단한 무위를 지닌 자들이 득실거리니까요.”
하인이 정해진 대본처럼 능숙하게 말했다.
루빈도 쿠제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경매장 안에서 무력충돌을 일으킬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이들 중에는.
* * *
“경매 의뢰자입니까? 입찰자입니까?”
접수원이 물었다. 그 역시 머리에 물범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경매 의뢰자입니다.”
“부여 번호는 6321이시고… 알겠습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접수원이 한 손을 들어 방향을 지시했다. 돌아보니 거기엔 문이 있었다. 바로 경매 의뢰자들을 위한 문이었다.
전생에서도 한 번 겪어본 바 있지만, 정말이지 기계적인 과정들. 접수인을 비롯한 경매장의 모든 하수인들은 마치 골렘이 일 처리를 하는 것처럼 경매장의 톱니바퀴를 돌렸다.
루빈은 접수원의 지시대로, 오른쪽 문으로 향했다. 다가가자 문이 스르륵 저절로 열렸다.
이내 드러나는 확 트인 전경.
여기가 산꼭대기라는 사실이 다시금 실감 났다.
“아찔한 높이네요.”
톨로이스 산. 지상에는 도시가 있고, ‘차양층’에는 경매장이 있다. 그리고 정상에는 접수대가 있었다.
지상에서 표를 부여받은 입장객들은 경매장의 협궤 열차를 타고 나선을 거슬러 올라 산꼭대기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다음에는 줄줄이 접수원을 대면하고, 방금 루빈이 겪었던 대로 경매 의뢰자와 입찰자가 나뉘는 식이었다.
저벅저벅.
넓은 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탁자와 의자. 다음 절차가 진행되려면 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루빈은 의자에 앉아 유리창 밖을 내다봤다.
“쿠제.”
“예, 도련님.”
“위장생활을 위해 받은 돈이 얼마지?”
“초기 자금은 3천만 릴크입니다.”
위장생활을 위해 본가에서 지급한 금액. 초기 자금인 만큼 추후에 더 요청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위장별채나 그 외 잡다한 과정들은 칙명부가 대행해주고 있으니 루빈의 자금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3천만 릴크라. 확실히 돈이 더 필요하겠어.”
루빈의 혼잣말에 쿠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3천만 릴크는 대단한 액수는 아니지만, 위장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정도. 그런데 그게 부족하다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도련님, 혹시 여기 오신 이유가……?”
“왜 왔겠어. 화운석 팔려고 왔지.”
사실, 쿠제로서는 루빈이 경매장에 온 목적이 ‘물건 판매’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간 로이넨가 저택에서만 지냈을 테니,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명소들 중 하나를 골라서 왔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경매장 방문 목적이 입찰자가 아닌 의뢰자였다니.
‘이 빨간 나무쪼가리가 이런 곳에서도 팔리나? 대체 얼마에 파시려고?’
쿠제는 불안감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막 루빈에게 질문을 하려던 그때, 경매 물품 감별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