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50)
암살검가 로이넨-50화(50/258)
제50화. 톨로이스 경매장 (3)
“뭐? 킹븐이 직접 입찰장에 갔어?”
경매장 내부자들만 기거하는 구역. 경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때 아닌 외침이 울려 퍼졌다.
게다가 입장객을 가리킬 때는 인명 대신, 입장 번호를 써야 한다는 경매장 원칙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거리낌이 없었다. 원칙 따윈 머릿속에 두지 않는지, 또다시 인명을 입에 올렸으니까.
“제길! 킹븐이 들어왔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래서 거기가 어디지?”
사내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 앞으로, 스무 명의 경매장 하인이 도열해 있었다. 물범 가죽을 눌러쓴 채로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동쪽구역 122번 입찰장입니다, 카포네 님.”
카포네는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오늘 배부된 정리표를 펼쳐보았다. 손가락 하나를 펼쳐 122번 입찰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그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화운석? 이건 또 뭐야!”
카포네의 고함에도 하인들에겐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봤을 때도 정리표에는 ‘화운석’에 관한 설명이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감별사가 어떤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다면, 그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정말로 볼품없는 물건일 경우.
또는, 하급 감별사 따위에겐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귀품일 경우.
“이 족제비 같은 놈이 또 뭘 노리는 거지?”
카포네.
그는 톨로이스 경매장의 다섯 간부 중 하나였다. 경매장의 중요한 축이었고, 그의 반응 하나하나가 하인들에게는 남다른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 그가 좀처럼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킹븐과 화운석 때문에.
“그 화운석인가 뭔가 하는 거, 입찰은 언제 시작하지?”
“삼십 분 뒤에 시작합니다, 카포네 님.”
“일단 가봐야겠군. 한 명만 따라오고, 나머진 흩어져.”
그 말에 물범가죽을 철썩거리며 흩어지는 하인들. 창백한 얼굴에 황망한 몸짓들이 볼만했다. 경매장 입장객들이라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일 터.
헐레벌떡 움직이는 하인들 사이로, 카포네가 지나쳐갔다. 다른 하인들과 달리 그는 물범 가죽을 쓰지 않는다.
입장객들 사이에 섞여들어, 경매장에 돌아가는 상황과 요주의 인물들을 파악해두는 것. 그게 간부의 주요 업무였던 것이다.
‘킹븐…….’
걸어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엔 티스 킹븐의 얼굴이 떠올랐다. 족제비 같은 그 얼굴. 오만하면서 능청맞은 태도. 카포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다.
지금은 그 처지가 달라졌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티스 킹븐은 그가 관리하는 하인 중 하나였다.
그것도 꽤 괜찮은 하인 놈이었지. 그가 모든 신뢰를 깨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래 톨로이스 경매장의 하인들은 죄인, 도망자, 부랑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거두어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직업을 주는 것. 그게 톨로이스의 방식이었으니까.
티스 킹븐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는데, 다만 놈은 의뢰인들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놈의 직무는 다름 아닌 감별사였다.
‘처음엔 하급 식별안(識別眼)을 지닌 줄 알았건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도 한참이나.
하급 감별사로 있던 그놈은 어느 날 뜬금없이 경매장을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제법 똘똘하고 처세에 능한 놈이어서 내보내긴 아쉬웠지만, 정당한 절차를 치르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는 것도 이곳의 규칙.
마침 의무 근무 기간을 모두 채웠던 터라 붙잡아둘 수도 없었고, 어쨌거나 고작 하급 감별사일 뿐이었다.
그래서 당시 카포네는 하급 감별사 빈자리 하나만 늘어나는 거라 생각했었다.
‘경매장을 나간 놈들은 십중팔구 다시 돌아오겠다고 애걸복걸하지.’
킹븐 역시 그리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놈은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 특히나 가까이서 그를 관리하던 카포네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내갈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매장을 나간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킹븐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킹븐이 하급은커녕 이제껏 그 어떤 감별사보다도 뛰어난 눈을 지녔다는 게 곧 밝혀졌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능력인지, 경매장에서 얻은 능력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킹븐은 그 능력으로 사업가가 되었고, 당연하게도 돈을 쓸어 담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숨긴 의문의 사업가였지만 카포네만큼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경매장에 타격을 입히는 족제비 새끼.’
무슨 원한이 남았는지, 킹븐이 경매장에 해를 끼치는 방법은 한둘이 아니었다.
왕족들에게 접근하여 경매장을 통하지 않는 보구의 거래를 중개하는 방식도 그중 하나.
또 하나는, 차양층 아래 톨로이스 시(市)에 머물면서 경매장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 가치 높은 물건들을 선취하는 방법도 있었다.
‘바보 같은 놈들은 경매를 거쳤으면 1억 릴크에 팔 수 있는 걸, 고작 1천만 릴크에 헤헤 거리며 넘기지.’
물론, 그런 짓거리는 최근 경매장 측에서 확실히 손을 써둔 덕분에 원천 차단된 상태였지만.
‘가장 화가 나는 건…….’
경매장의 시스템을 비웃는 짓거리.
하급 감별사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물건을, 그놈이 직접 입찰자로 나서서 채가는 것이었다.
그놈의 경이로운 눈썰미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채간 물건들 중 상당수가 ‘특매 주간’에 오를 만한 것들일 것이다.
여기가 어디던가.
대륙에서도 내로라하는 귀빈들과 물품들이 모여드는, ‘톨로이스 경매장’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킹븐에게 당하는 건, 단순히 금전적 손해만 끼치는 게 아니었다.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것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냐, 킹븐.’
카포네가 마지막까지 파악하기로, 킹븐은 최근까지 뭔가를 찾아 대륙을 떠도는 중이라고 했었다.
영혼무구? 보구?
뭐가 됐든, 인생 전체를 걸어볼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라고 했다던데.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그 빌어먹을 킹븐이 나타난 것이다.
마침내 122번 입찰장에 도착한 카포네. 경매에 참여하기로 한 41명이 모두 입장했으므로, 그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문이 닫힌 뒤로는 입찰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게 원칙이었지만, 카포네는 간부답게 그냥 문을 열어버렸다.
어두컴컴한 내부.
‘저게 화운석인가?’
앞쪽의 단상 위.
경매 물품 ‘화운석’이 유리에 담긴 채로 빛을 받고 있었다. 마침 입찰을 막 시작하려는 때였다.
그의 귓가로 경매사의 말이 들려왔다.
“의뢰자께서 원하신 시작 금액은…….”
* * *
122번 입찰장.
루빈과 쿠제는 입찰장의 한쪽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입찰 희망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공간.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입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네요, 도련님.”
덤덤한 루빈에 비해 쿠제야말로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3천만 릴크를 버린다고 체념했던 게 고작 하루 전이었는데.
41명의 입찰 희망자들이 모두 착석한 걸 보자, 전부 진짜였다는 생각과 함께 어쩔 수 없는 희망이 솟아났다.
이윽고, 경매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 의뢰 물건이 감별사에게 별다른 코멘트를 받지 못했던 점, 참고 바랍니다. 입찰 시작에 앞서 관련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 ‘화운석’에 관해 질문하실 분 있습니까?”
진행자가 정해진 절차대로 경매를 이끌었다.
질문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지, 어두컴컴한 좌석들 사이에서 불빛이 하나 번쩍거렸다. 질문을 희망한다는 뜻이었다.
“…예, 7670님, 질문하시죠.”
“물건의 이름, ‘화운석’은 의뢰자가 붙인 겁니까?”
“음, 이건 의뢰자께서도 밝혀도 된다 말한 부분이군요. 그렇습니다, 의뢰자가 붙이신 겁니다.”
이어 다른 쪽에서도 한 번의 번쩍임이 일었다.
그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 한데 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진행자는 미소 속에 이런 의문을 숨기는 중이었다.
“예, 0529님.”
“제가 찾는 물건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은데, 가까이에서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진행자는 즉답을 내리지 않았다. 진행자는 의뢰자가 앉아있는 특수 공간 쪽을 바라봤다. 이건 사전에 협의가 안 됐던 거여서, 의뢰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어쩌죠, 도련님?”
“그러라고 해.”
쿠제가 긍정을 의미하는 빛 물질을 일으켰다.
“예, 가능하겠군요. 각자 한 분씩 단상에 올라와 물건의 상태를 확인해 보십시오.”
그러자 순서대로 입찰 희망자들이 한 명씩 단상으로 올라왔다. 한 명도 빠짐없이 얼굴을 가릴 가면을 착용한 상태.
물론,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입찰장에선 얼굴을 드러내놓는 일이 더 드무니까.
그들을 지켜보던 루빈이 소리 없이 웃었다.
“……?”
왜 웃으시는 거지?
쿠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질문을 해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입찰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더 이상 질문이 없는 관계로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의뢰자께서 원하신 시작 금액은…….”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입찰장에 잠깐 외부의 조명이 들어왔다. 간부 카포네가 킹븐을 확인하기 위해 막 들어선 게 바로 그 시점이었다.
“…1억 릴크입니다.”
진행자의 그 한마디에, 입찰장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카포네도 쿠제도 눈을 크게 떴다. 이 순간 여유로운 사람은 단 하나, 루빈 뿐이었다.
1억 릴크라니!
시작가에 아무도 응하지 않으면, 그 금액은 점점 낮아지게 되어 있었다.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시작가 계속 낮아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진행자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었다. 그는 눈을 몇 번 끔뻑이고는-
“호가(呼價) 나왔습니다! 0529님, 1억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호가.
술렁임이 배가됐다. 쿠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서, 앉은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놀라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뒤이어 또 다른 호가.
“7670님, 1억 1천!”
이건 호가 경주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0529와 7670. 경매 시작에 앞서 각각 질문을 던졌던 두 사람의 호가 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1억 2천, 나왔습니다.”
“1억 3천, 나왔습니다.”
그저 두 사람뿐이었다. 7670이 부르면 0529가 응하고, 또다시 7670이 달아난다.
“1억… 9천 나왔습니다! 7670님입니다.”
“아아, 이런 또 있군요. 이번에도 역시 0529님입니다!”
입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 카포네.
톨로이스의 간부로서 호가 2억은 그다지 큰 금액도 아니었다.
‘문제는, 저 둘 중 하나가 킹븐이라는 사실이지.’
카포네가 킹븐을 두고 족제비 새끼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놈은 절대 손해 보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킹븐은 절대 1억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물론, 현시점 그놈의 자산으로 보면 1억 릴크 따윈 아까운 돈도 아닌 게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놈은 항상 신중했고, 언제나 최대한의 이득만을 남겼다.
‘그런데 벌써 2억 5천까지 왔어…. 킹븐, 도대체 뭘 사려는 거지?’
한편, 루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호가 전쟁 중인 두 사람.
그중 하나는 틀림없이 그의 표적인 티스 킹븐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잘하고 있어. 좀만 더 달려보자고.
-오케이!
그건 루빈 눈에만 훤히 보이는 그의 로이네크로우, 티나였다.
쿠제는 티나가 배신했거나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며칠 전부터 티나는 톨로이스 경매장에 들어와 루빈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터였다.
‘그냥 냅다 호가를 달리라는 거지, 얼마까지?’
‘3억. 분명 거기까지 따라올 사람이 있을 거야.’
‘3…억 릴크? 근데 그러다가 우리가 낙찰되면 어쩌지? 우린 이미 보증금으로 전재산을 다 썼다며!’
‘걱정 마, 우리가 낙찰되더라도 상관없어. 결과가 어떻든 티스 킹븐이랑 만나게 될 테니까. 협상은 그때부터 시작인 거지.’
킹븐이 ‘화운석’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도록, 교묘하게 움직여왔던 루빈이었다.
킹븐이 톨로이스 경매장에 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 그자를 여기에 앉히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하급 홍보지를 돌리면서, 연이은 유찰을 통해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티스 킹븐 그 자신이 경매장에 없을지라도, 그가 부리는 정보원들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을 테니 정보는 분명 그의 귀로 흘러들어갈 터였다.
그리고 그 결과.
‘화운석의 가치를 알아본 킹븐은, 물건을 낙찰받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을 거다.’
물건이 왜 자꾸 유찰이 되는지 물어봤을 테고.
40명이 모여야 한다는 조건을 들었을 것이며.
경매 참가를 위해 39명의 사람들을 섭외해서, 입찰 희망자로 들여보냈을 거다.
루빈이 내건 조건, 40명에 딱 들어맞는 것만 봐도, 킹븐 짓이라는 건 확실했다.
‘킹븐은 여기서 결판을 안 낼 거야. 지금 킹븐이 사고 싶은 건 화운석이 아니니까. 화운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겠지.’
자신만이 그 가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면? 찬란한 줄만 알았던 미래에 곰팡이가 피는 기분일 것이다.
대처는 둘 중 하나일 터.
경쟁자가 될 만한 놈을 제거하거나, 포섭하는 것.
티나가 낙찰하든, 킹븐이 낙찰하든 간에 킹븐의 다음 행동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티나와 나를 찾아오겠지.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는 거야.’
바로 그때였다.
“도련님! 낙찰자가 정해졌습니다.”
더 이상의 호가는 없었다. 진행자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탕탕탕, 낙찰을 알리는 시원한 망치질과 함께.
“화운석 낙찰! 3억 릴크에, 입장번호 0529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