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55)
암살검가 로이넨-55화(55/258)
제55화. 잿빛항구의 남매 (3)
거혈족.
그들은 환혈족과 수혈족 같은 대륙의 소수혈족 중 하나다.
환혈족은 다른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고, 수혈족은 짐승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면, 거혈족은 의지에 따라 신체를 거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단순히 육체의 크기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거대화된 육체가 지닌 가공할 만한 힘과 속도. 골격과 근육의 증폭은 그들이 지닌 육체적 능력의 극대화로 이어졌다.
릴리크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뒤, 환혈족은 멸족한 반면, 수혈족과 거혈족은 제국에 편입됐다. 그중 일부는 제국군의 특수여단으로 배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군이든 아니든 거혈족에게 주어지는 자유란 없었다. 제국군에 속하지 않은 모든 거혈족은 법령에 따라, 오직 제국직할령에서만 삶의 터전을 꾸려야 했으니.
또 그들은 제국의 부속품과 같은 신세라는 걸 증표로 드러내야 했다.
‘71023, 71024.’
루빈은 두 거혈족 남매의 왼편 어깨에 새겨진 일련번호를 보았다. 나열된 번호였으니 두 사람이 가족인 건 확실해 보였다.
‘평범한 거혈족은 아닌데.’
방금 보았던 그 격돌을 떠올렸다.
대개 거혈족은 그 자체만으로 대량살상 무기와 같은 능력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거혈족의 수준이 비슷한 건 아니었다.
루빈이 두 눈으로 본 그 움직임과 힘은 일반적인 거혈족의 수준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어쩌면 거혈족으로 구성된 제국여단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상위권에 들지도.
“야, 야, 꼬마야. 저리 가렴!”
햇볕에 그을린 피부. 그리고 곱슬곱슬한 머리가 풍성하게 부풀려진 머리. 둘 중 누나로 보이는 거혈족 여자가 루빈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루빈은 계속 다가갔다. 그러자 남동생이 조금 전까지 유지하던 전투 자세를 풀었다. 한 손은 허리에 올린 채, 다른 손으로는 짧게 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에이, 오늘도 승부가 안 났네. 웬 관중 난입이야.”
그러자 누나도 목을 양쪽으로 까딱였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너야말로.”
“너? 너어어? 진짜 이게, 누나한테!”
“그럼 누나답게 멋지게 양보하시든가!”
남매 사이의 일상적인 다툼처럼 들리는 대화. 하지만 온몸에 불거진 근육과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사투를 벌이는 야생 거인으로 보이게 했다.
“어이, 꼬마야. 너 혹시 우리 말 못 알아듣니?”
“조심해. 애 다칠라.”
루빈이 두 사람이 드리운 거신(巨身)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 거혈인은 육체의 거대화를 해제했다.
스스스스.
빠르게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두 남매는 이제 평범한 뱃사람으로 보였다.
“너희 언제까지 이 난리를 피울 거지? 지금 이거 안 보여?”
루빈의 뒤편으로 중개인이 신경질을 부리며 다가왔다. 거혈인 남매는 잿빛항구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답게 이곳 중개인들과 적당한 교류가 있는 것 같았다.
중개인 말처럼 지금 거혈인 남매가 서 있는 공터는 초토화된 상태였다. 공터의 원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잔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아늑, 와락. 인제 그만 싸우고 화해하지?”
아늑과 와락. 거혈족만의 이름 방식이었다. 루빈은 아늑이 누나고, 와락이 동생일 거라고 예상했다.
아늑은 곱슬곱슬 두툼한 머리를 매만지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과격하긴 해도,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닌 모양인지.
“와락 이놈이 포기를 해야 말이죠.”
“저의 하나뿐인 누님인 아늑 님께서 얼마나 고집불통이신지.”
그러면서 아늑과 와락은 다시 루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아저씨, 이 꼬마애는 뭔가요?”
“어허, 예의를 갖춰 말해야 한다. 제국통행증을 소지하신 분이니까. 성함이…….”
“나는 루든 포이넨. 그리고 저쪽은 쿠제.”
제국통행증을 소지했다는 말에 아늑과 와락의 태도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몰라뵀네요. 그런데 무슨 이유로 갑자기 싸움에 끼어든 건데요?”
아늑의 질문은 중개인한테 향했지만, 그 질문을 가로채 대답한 건 루빈이었다.
루빈은 저극적이었다. 거혈인들의 배. 그게 루빈이 목표로 했던 배, 블루캣호였다.
“우린 배가 필요해. 카포티니로 우리를 데려다줄 배. 저기 정박해 있는 커다란 배, 너희들이 운항할 수 있는 건가?”
“오호! 잘 보셨네요. 배의 정확한 이름은 ‘블루캣호’입니다. 파란 고양이라는 뜻이죠.”
“파란 고양이? 잘됐네. 우리한테 아주 앙증맞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거든. 블루캣호는 잿빛해협도 안심하고 건널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거야?”
“잿빛해협? 그딴 건 블루캣한테는 나른한 낮잠 같은 거죠.”
“좋아. 뱃삯은?”
그러자 아늑과 와락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로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쿠제가 한마디 거들었다.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뱃삯은 넘치도록 드릴 수 있습니다. 배에 장착할 수 있는 별도의 무기도 맞춰드릴 수 있고요.”
“아, 그런 건 필요 없어요. 그냥 저 혼자만도 해저괴수 따윈 얼씬도 못 하게 할 수 있으니까.”
“진심이야, 아늑? 너 주제에?”
“너? 지금 나한테 너라고 했냐? 이 자식이!”
다시 서로 달려들려는 둘을 겨우 뜯어말렸다. 거혈인 남매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 어쨌든 항해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저 미적지근한 표정은 뭔지.
“그래서, 뱃삯이 얼마라는 거지?”
“그게…….”
이후로 남매는 더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블루캣호는 운항할 수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요.”
“이유는?”
“이유라…….”
말을 흐리며 아늑이 자신의 동생을 째려봤다. 와락도 질세라 누나를 째려봤고.
하지만 두 사람이 일련번호가 새겨진 거혈족인 이상, 제국통행증을 가진 자에게 거짓을 말할 순 없었다.
아늑은 순순히 블루캣호를 운항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게, 문제가 좀 있어서요.”
간단히 말해, 두 남매는 지금 블루캣호의 소유권을 두고 다툼 중이었다. 이외에도 대화를 통해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다툼이 끝날 때까지는 블루캣호는 바다로 나갈 수 없다는 것.
이곳에서 소유권을 두고 싸움을 벌인 지 벌써 100일째라는 것 등.
원래 블루캣호는 선주인 아버지와 선원인 아늑과 와락만으로 운항되던 소형 쾌속선이었다. 이 배만의 특수한 운항 방식 덕에 적은 인원으로도 장거리 운항이 가능했다.
듣고 있던 쿠제가 궁금증을 드러냈다.
“특수한 운항 방식이라면?”
“그게 말로는 좀 복잡한데요…….”
“어쨌든, 지금 너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블루캣의 소유권을 두고 결판을 내는 중이라는 거지? 그 대결이 끝나기 전까지는 운항할 수 없다는 거고.”
루빈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둘의 힘이 너무 비등비등해서, 전력으로 싸워도 100일 동안이나 결판이 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공자님. 죄송하지만 다른 배를 찾으셔야겠습니다.”
‘거혈족의 전통이라…….’
루빈은 빠르게 기억을 헤집었다. 분명 거혈인 남매를 설득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루빈이 떠올리려 애쓰는 기억은 어떤 책의 내용이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대륙의 소수민족에 관한 책이었다.
‘그 책 제목이 뭐였더라?’
하네케와의 검술 수련을 위해 저택 서고에 틀어박혀 있던 시절.
수련하는 틈틈이 잡다한 책을 탐독했다. 특히 티나가 길리필드 수목원에 있었던 2년 동안, 루빈은 의도적으로 대륙의 소수민족에 관한 책들을 읽기도 했다.
티나가 동료가 되었던 것처럼, 훗날 그들을 회유하기 위함이었다. 텔마흐를 본격적으로 상대하기 전에, 제국에서 탄압받는 소수혈족에 대한 이해도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루빈은, 거혈족의 거대화가 3단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나, 수혈족 중 몇몇은 짐승뿐만이 아닌 괴수에게까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련님, 다른 배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쿠제가 다가와 물었다. 그렇게 말은 했어도 그 역시 더 이상 남은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루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거혈인 남매에게 다가갔다.
“잠깐만.”
거혈인 남매는 주변을 정리하며 옷가지를 챙기는 중이었다.
“두 사람, 집은 어디야?”
“저희요? 저희 집은…….”
대답은 와락이 하고, 손을 들어 부두 쪽을 가리킨 건 아늑이었다.
“블루캣호가 너희 집이야?”
“그렇습니다, 공자님.”
“블루캣호가 출발하려면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와락이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다섯 시간 정도 정비만 하면, 바로 출발할 수는 있습니다만, 공자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지금…….”
“탑승객 받지 않는다는 거 알아.”
루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물러났다. 블루캣호를 이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인 것처럼.
‘적어도 지금 당장은.’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돌아서며 건넨 한마디에 아늑과 와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매는 언제 싸웠냐는 듯, 딱 붙어서 블루캣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루빈과 쿠제는 전음을 주고받았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 책만 찾아서 오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응. 내 기억대로면 거기에 우리 배표가 있을 거야.
중개인에게는 오늘 저녁 무렵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오늘 저녁쯤이요?”
저녁이라면 고작 서너 시간 뒤였다. 루빈 일행이 제국군함이나 마법생도 전용 함선에 탑승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무의미한 만남이었다.
“어쨌든 잿빛항구에서 승선하려면 중개인의 서명도 필요하니까.”
“어느 배로 결정하셨나요? 제국군함? 포니아크호?”
“블루캣호.”
“예?”
“그럼 저녁에 다시 찾아가도록 하지.”
중개인에게 상황을 설명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빈과 쿠제는 부둣가를 나섰다.
숙소와 도서관의 갈림길에서 루빈은 숙소로, 쿠제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두 시간 뒤.
“…….”
지루하고 답답해 죽겠다며 고양이 모습으로 커튼을 기어오르는 티나를 지켜보면서, ‘커튼 값을 물어줘야겠군’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쿠제가 숙소로 돌아왔다.
“도련님, 책 가져왔습니다.”
쿠제가 도서관에서 빼내온 책 ‘제국의 소수민족에 관하여’를 펼쳤다. 루빈은 곧장 법규에 관한 챕터를 찾았다.
기억은 확실했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게 필요했다.
그리고 이윽고.
‘찾았다.’
* * *
붉은 달.
저녁이 되면서 붉게 물든 달이 떠올랐다. 붉은 달이 떠오르는 동안에는 바다가 거칠었다.
항구 저편, 견고하게 구축된 방파제. 돌진하는 파도들이 파아아아 부서지는 소리가 부둣가까지 전해졌다.
“야, 음치! 노래 안 그칠래?”
갑판으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리면서 신경질적인 외침이 튀어나왔다.
입이 이끄는 대로 노랫말을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와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 밑에 내려가 있든가. 왜 올라와 있는 건데?”
“파도 소리 들으려고 올라온 거란 말이야! 네 트롤 멱따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있어야지.”
“파도 소리? 누나, 예전에 바다 한복판에서 지겨워 미치겠다고 욕하던 그 파도 소리?”
아늑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갑판 위에 드러누워 있는 와락을 내려다봤다.
날카로운 그 눈빛에 재빨리 몸뚱이를 오므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와락. 그러나 아늑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옆자리에 풀썩 앉을 뿐이었다.
“때리는 줄 알았네.”
“눈치는 빨라가지고. 아무튼 동생아, 내일은 좀 끝내자? 이제 진짜 항해해야지.”
“내가 할 말이야. 누나도 이제 못 견디겠지? 그럼 그냥 포기해. 누나만 포기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배 띄울 수 있으니까.”
아늑은 동생 옆으로 똑같이 드러누웠다. 두 팔을 포갠 다음, 머리 뒤를 받쳤다.
무수한 별과 강렬한 붉은 달이 떠 있는 하늘. 몰아치는 거친 물결에 배가 크게 출렁였다. 가끔 난간을 뛰어넘은 바닷물이 흘러 들어와 둘의 발을 적셨고.
“저 배들은 좋겠다.”
아늑은 고개를 돌려 부둣가에 나란히 정박해 있는 배들을 쳐다보았다.
제국군함과 엘프 순항선 그리고 마법생도 전용 함선이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세 척의 거대함선은 붉은 달이 동반하는 거친 물결에도 끄떡없었다.
승선해 있는 사람들이 가끔 갑판 위로 나와 떠들거나 수평선을 감상 중인 것 같았다.
“뭐라고 했어?”
흥얼거리던 와락이 물었다.
“저 배들은 좋겠다고. 내일 출항한다고 했잖아?”
“그러게. 저 사람들, 내일 밤에는 바다 위에 있겠네.”
“야, 우리 잿빛항구에서만 며칠째지?”
누나의 물음에 와락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블루캣호의 소유권을 놓고 싸움을 시작한 건 100일째였지만, 잿빛항구에 입항한 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160일 정도 되었다.
“아마 반년은 됐겠는데? 여기 입항하자마자 아버지 병을 알게 됐으니까.”
둘의 아버지는 불치병을 숨겨오다, 마지막 운항을 위해 잿빛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불치병에 관해 고백했다.
부유하고 고결한 귀족이어도 손쓸 수 없었으니, 거혈인으로서는 그저 죽음을 앞당기는 수밖에 없었다.
“반년? 이젠 진짜로 승부 내야겠다.”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블루캣호의 선원으로 살아왔던 두 남매였다. 이토록 육지에 오래 붙어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늑이 씁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배를 썩히는 거냐면서 성내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그 말에 큭큭, 와락이 가볍게 웃었다.
“그치? 나도 누가 내 이름 부르는 것 같기도 해. 그게 아버진가 봐.”
다시 눈을 감은 와락. 또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치라며 질색하는 누나를 배려해 허밍으로만 이어나갔다.
바다 위에서 보냈던 항해의 나날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보냈던 나날들.
폭풍우 속에 무시무시하게 돌진해 오는 해일.
어쩔 땐 너무 쨍쨍한 햇볕이 해수면을 뜨겁게 달구며 두 남매를 헥헥거리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해저괴수를 물리치고 크게 웃어댔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떠올랐다.
와락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
“야, 야, 와락! 일어나 봐.”
옆에 누워 있던 아늑이 다급하게 와락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 감은 눈 위로 뭔가가 드리워지는 게 느껴졌는데.
“흐으으익! 뭐야, 시발!”
자기도 모르게 욕부터 튀어나왔다. 눈을 뜨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수라도 본 것처럼 놀랐지만 다행히 괴수는 아니었다. 멀뚱멀뚱 내려다보는 그 얼굴, 낮에 보았던 공자님이었다.
“놀랠 의도는 없었는데, 미안.”
“허헉, 공자님?”
“배 밑에서 너희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그냥 올라와 봤어.”
그제야 아버지의 환청처럼 들렸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루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자기도 모르게 상스러운 욕을 내뱉었다는 걸 깨달은 와락이 후딱 몸을 일으켜 예를 표했다.
거혈인 주제에 귀족 가문 자제에게 욕이라니. 이런 건 팔모가지 하나 날아가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큰 사고였다.
“루든 공자님! 동생이 무례하게 굴어 정말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공자님.”
루빈은 개의치 않았다. 거혈인 남매가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저나 블루캣호, 정말 튼튼한 배구나.”
루빈은 배 위를 찬찬히 걸으면서 감탄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배에 관해 잘 몰랐지만, 블루캣호가 일반적인 배의 구조에서 한참 벗어나게 설계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튼튼한데다가 특이하기까지 해.”
갑판은 양 끝으로 굴곡을 이루며 타원형을 이루었고, 그 면면은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져 물방울 하나조차 스밀 수 없었다.
‘여기에 거혈족만의 운항 방식까지 있다고 했지. 대체 뭘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지금 당장 알아볼 수는 없었다.
“저희를 찾아와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루빈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배, 출항하려면 네다섯 시간 정도 정비해야 한다고 했었지?”
“네, 제가 그렇게 말했었죠.”
“그럼 다행이네. 제때 도착할 수 있겠어.”
“제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