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58)
암살검가 로이넨-58화(58/258)
제58화. 위더스푼가의 막내딸 (4)
객실 안.
“후…. 힘들어 죽겠네.”
고양이는 액체형 동물이라는 우스갯소리에 걸맞게, 티나는 함선용 침대 모서리에서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살짝 빼문 혀, 힘을 잃은 듯 노곤한 눈동자.
루빈은 그런 티나의 심정에 공감했다. 쉬지 않고 말하는 제국귀족 영애를 상대했더니 그 역시 귀가 아픈 느낌이었다.
심지어 쿠제는 옆에 서서 듣고 있다가, 얼음 같은 시녀의 요리를 거들겠다며 필사적으로 자리를 피했을 정도였다.
“요리실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면 덜 시달렸을 텐데…….”
당연히도 쿠제는 요리실 출입 허락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요리만큼은 엄청났어. 너희 둘 다 인정하지? 그 아가씨 때문에 귀가 멍해졌는데, 그걸 모두 씻어주는 느낌이랄까.”
셀레스네가 선보인 요리를 다시 떠올리는지 티나는 고양이 눈웃음을 보여주며 혀를 날름거렸다.
블루캣호에서의 첫 식사는 티나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아늑과 와락은 블루캣호를 오래 운항했지만 이런 식사는 처음이라며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말이 많아 걱정했던 클로이의 성격 또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클로이 덕분에 이것저것 알 수 있었고.’
루빈은 클로이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클로이는 위더스푼 가문의 막내딸이었다. 아메릭마나 마법학교를 놔두고 카포티니의 마법생도가 되려는 이유는, 마법학교 사이의 교류 때문이라고 했다.
‘교류’라고 표현했지만 숨겨진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교류라는 명분으로 아메릭마나가 카포티니를 자기 영향권에 집어넣으려는 걸지도.
물론 그런 건 루빈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저들은 필리몬드에서 환승한다고 했으니.”
루빈이 거혈인 남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기착지로 정했던 필리몬드.
그 도시에 도착하면, 클로이는 블루캣호에서 내려 포니아크호로 갈아탈 거라고 했다.
애초부터 카포티니 마법생도 전용함인 포니아크호에 탑승했어야 하는 클로이였다. 그런데 그 유명한 블루캣 호에 오래전부터 타보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일정을 바꿔 버렸다.
그들의 일정만 바뀐 게 아니었다.
“저 수다쟁이 여자애의 고집 때문에 그 거대한 포니아크호가 필리몬드에 정박해야 하다니.”
“그만큼 위더스푼 가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만하죠.”
어쨌거나 필리몬드에서 헤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루빈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저들한테 우리 최종 목적지가 카포티니라는 걸 들키지 않도록 해. 이미 와락과 아늑한테는 말해두었어.”
“고귀한 영애께서 우리한테 말할 틈을 준다면 모를까, 들킬 일도 없을걸.”
그때, 쿠제가 뜸을 들이며 대화 흐름을 바꿨다.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저, 그런데 말이죠…….”
루빈은 쿠제가 뭘 말하려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클로이에게서 뭔가가 느껴졌다고?”
“역시 도련님도 느꼈죠?”
“나도 느꼈거든!”
루빈, 티나, 쿠제. 세 사람 모두 4성 이상의 암연을 지닌 암살자들이었다. 그런 셋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
“근데 그게 뭐랄까… 표현할 수 없군요.”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형언할 수는 없다.
루빈은 클로이의 맞은편에 앉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지식 자랑을 들어주며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시도했었다. 겉으로는 잠잠한 상태지만 내부에서는 요동치는 것 같은 무언가.
하지만 소용없었다. 암살자들의 암연에 감지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가문의 마법 같은 거 아닐까요?”
“방어마법 같은, 뭐 그런 거?”
그럴 수도 있었다. 암살자들로서는 마법사들의 능력을 모두 파악할 수 없으니까. 마법사들이 결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클로이를 보호하는 어떤 장치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러기에는 너무 음습한 기운이었다.
마법사들을 마주한 경험이 적다고 할 수 없는 루빈이었다. 회귀 전에도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인 적도 있었고, 어떤 마법사와는 호의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났던 마법사들을 모두 떠올려 봐도 클로이에게서 느껴졌던 음습한 기운과 비슷할 만한 건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것 같던데.”
클로이나 셀레스네 둘 다 알아차리지 못했다. 셀레스네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공녀의 경호를 단독으로 맡을 정도면 분명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5성, 어쩌면 6성의 경지일 터. 그런 셀레스네도 클로이에게서 풍기는 음습한 기운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위더스푼 가문의 방어마법인 건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이 음습한 기운이 점점 더 몸집을 키워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달까. 하지만 이런 불길한 예감은 루빈만이 갖고 있을 뿐, 쿠제나 티나는 그 정도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더 친한 척을 해야겠군.’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클로이를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마침 루빈에게는 적당한 기회가 찾아왔다.
* * *
“여러분, 이제 잿빛해협에 도달합니다.”
아늑이 객실로 찾아와 공지해 주었다. 광포하기로 유명한 잿빛해협이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새벽까지는 파도가 사나울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새벽까지 잿빛해협의 초입에서 머무르려고 합니다.”
아늑의 면모는 항구에서 보던 것과 딴판이었다. 승선하기 전, 배의 소유권을 두고 동생과 필사의 전투를 벌이던 그녀. 지금은 승객을 안심시키고, 책임감 있게 함선을 다루는 노련한 선원이었다.
아늑은 스리슬쩍 다가와 물었다.
“루든 도련님, 저희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시겠습니까? 저희 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경하고 싶어 하거든요.”
자부심이 물씬 느껴지는 얼굴이다.
루빈 역시 바라던 바였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클로이도 나올 게 분명하니.
“보여준다면, 고맙지.”
“따라오시죠.”
“저도 가봐도 되겠습니까?”
쿠제가 고양이를 가슴팍에 앉은 상태로 물었다. 물론 그들의 목적 또한 블루캣호의 작업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클로이에게서 감지된 그 음습한 기운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었다.
“당연하죠. 루든 공자님 일행이시니 마음껏 구경하세요. 그런데 고양이도……?”
“냐아아아용.”
“고양이가 무서워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워낙 겁이 없는 녀석이라 괜찮을 겁니다. 신기해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작업 중에 저나 와락에게 달려들지 않도록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까 보니 좀 사나운 것 같더라’ 하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루빈과 쿠제는 피식 웃으며, 아늑의 안내를 받아 객실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의 끝, 이전까지는 폐쇄되어 있던 문이 열려 있었다. 배의 밑바닥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거대화 상태의 거혈인에 맞게 건조됐는지, 계단 한 칸 한 칸의 높이가 상당했다. 매 칸마다 거의 착지하다시피 하면서 내려오자,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클로이와 셀레스네가 보였다.
“루든, 빨리 와!”
잔뜩 흥분한 클로이. 곁으로 다가가자 셀레스네가 고개를 까딱였다.
“와락은? 어디에 있지?”
와락이 보이지 않았다. 아늑은 지상칸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지하칸 전용 방향타를 꽉 쥐고, 배의 움직임을 다스리고 있는데.
“저기 있잖아. 보여? 저 커다란 거.”
클로이가 가리킨 쪽은 지하칸의 후미였다. 거기에는 두꺼운 철로 조립된 형태의 거신이 있었다.
그걸 처음 보고 골렘을 떠올렸지만, 자세히 보니 골렘이 아니었다. 생긴 모습은 골렘과 비슷하지만 가슴팍에 커다란 빈 공간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거대화된 거혈족이나 들어가 앉을 만한 크기. 그곳에 와락이 질겅질겅 뭔가를 씹으며 앉아 있었다.
“배 밑바닥에 저런 게 왜 있는 거지?”
“그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도련님. 아무 승객에게나 보여주는 게 아니거든요.”
장난스러우면서 호기롭게 말하는 와락. 한두 번 해본 레퍼토리가 아니겠지.
이윽고 그 몸이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몸에 열기가 감돌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프스스스스스.
거혈족의 거대화를 처음 보는지, 클로이가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는 셀레스네였다.
“아가씨,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빠집니다.”
와락이 타고 있는 거신 앞, 배 밑바닥의 후미 벽면. 거기에는 미세한 틈이 있었고,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구조상 내부로 들어온 바닷물은 곧장 돌아 나가 빠지도록 되어 있었지만,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그 물살에 휘말려 배 밖으로 떠밀려 나갈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루든, 저길 봐봐!”
클로이가 가리킨 건 지하칸 벽면이었다. 처음엔 전부 나무로 되어 있던 벽면 중간중간이 갑자기 투명한 막으로 변했다.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우와! 신기해!”
클로이가 감탄하는 걸 보니 마법은 아닌 것 같고. 마치 바닷속을 내다볼 수 있는 유리창 같았다. 하지만 분명 유리는 아니다. 유리라기엔 너무 얇고 유연했다. 차라리 투명한 천에 가까웠다.
“팽창하고 있는 거 보여?”
클로이는 루빈을 잡아끌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투명한 막은 수압을 완벽하게 견뎌내는 중이었다. 외부에서 물이 한 방울도 틈입하지 않도록 견뎌내다니. 이런 재질은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다. 난생처음 보는 현상.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만 느껴졌다.
‘설마 이거…….’
“저거? 수룡의 비늘이야. 수룡이 뭔지는 알겠지? 심해에 레어를 만든 고룡 말이야.”
클로이가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다.
“‘제국함선열람서’에 쓰여 있었어. 수룡의 비늘은 블루캣호에만 있는 특별한 보구라고.”
“거혈인들이 어떻게 수룡의 비늘로 배를 만든 거지?”
순수한 궁금증. 기갑 거신을 보면, 이 배를 운항할 수 있는 건 거혈인밖에 없다. 그런데 이 배의 독특한 구조를 보면, 거혈인 이상의 존재가 관여됐을 게 분명했다.
클로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러 이론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아늑이랑 와락도 모르겠대.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룡이 선물로 주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긴,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겠군.
루빈은 투명한 막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배의 하층 부분이 반쯤 잠겨 있으니, 막 너머로 바라보는 광경은 영락없는 바닷속이었다.
물고기 수백 마리가 한데 모여 헤엄쳐 지나갔다. 제법 커다란 범고래도 루빈과 클로이가 신기한지 주둥이를 갖다 댔다.
“우와! 역시 블루캣호를 타길 잘했어.”
이런 경험은 위더스푼 가문의 막내딸한테도 귀한가 보다. 클로이는 투명막 앞을 떠나지 못한 채 연신 탄성을 질렀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가씨.”
“아늑, 어디 가려고?”
“갑판 위로 올라가 나머지 작업을 하려고요.”
거대화 상태의 아늑이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아늑과 눈을 맞추기 위해 클로이는 최대한 목을 뒤로 젖혀야 했다.
“구경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클로이가 열성적으로 잡아끄는 바람에 루빈도 따라나섰다. 루빈의 뒤로 쿠제와 티나도 따랐고, 당연히 셀레스네도 있었다.
갑판 위에 올라간 뒤, 아늑은 크게 숨부터 골랐다. 뭘 하려는 거지?
곧 그녀는 돛대에 매달려 있는 넓은 돛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끌려 내려오는 돛을 바라보던 루빈은 그게 햇빛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것도 수룡의 비늘이야?”
“네, 도련님. 이제 이걸 활짝 펼칠 겁니다. 이불처럼요.”
이불처럼 펼친다고? 돛은 여러 번 겹쳐진 형태였고, 그걸 얇게 펼친다면 충분히 블루캣호 전체를 덮을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야 그렇긴 한데…….
“배 위를 덮겠다는 거야?”
“그래야 완벽한 방수가 되니까요.”
지금보다 더 들뜰 수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순간 클로이는 한 뼘 더 흥분한 것 같았다. 금빛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잠수하려는 거지? 드디어!”
잠수라. 배가 잠수를 한다는 개념을 루빈은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클로이의 반응을 보면, 이거야말로 블루캣호만의 특별 운항기법인 것 같았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마치 어부가 어망을 내던지려는 것처럼 평범한 투였지만, 그녀는 거혈족이다.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촤라라라라락!
입을 앙다문 아늑이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키며 수룡의 비늘을 넓게 펼쳤다. 그 순간 구경하러 나온 모두의 눈앞으로, 투명한 비늘이 무지개처럼 활짝 펼쳐지며 하늘을 가렸다.
“우와아!”
쿠쿠쿵.
수룡의 비늘이 배 위로 떨어지며 선체를 짓누르는 소리였다. 그것도 잠시, 배의 갑판은 풍선처럼 되어버렸다. 수룡의 비늘이 빈틈없이 뒤덮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물은 안 새지만 공기는 통한답니다!”
와락의 외침이 지하칸에서부터 들려왔다. 감탄하는 승객들을 보며 아늑도 씩 웃었다.
“저는 내려가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오겠습니다. 이 비늘이 천장 역할을 할 테니 안심하시고 바깥을 구경하세요.”
아늑이 고개를 숙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지하칸으로 내려갔다. 앞쪽 방향타를 조정하는지, 배의 방향이 바뀌었다.
곧 지하칸 남매의 외침이 생생히 들려왔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두개골이 울릴 정도다.
“와락!”
“알았어!”
와락이 이마에 핏대를 세워가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거혈인이 탑승한 거신이 서서히 움직이며 엄청난 크기의 도르래를 풀었다. 이어서 거대한 닻이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소리.
촤라라라라락.
수룡의 비늘이 펼쳐졌을 때와 비슷하지만 살짝은 다른, 훨씬 둔중한 소리가 울리며 배가 무겁게 진동했다.
“내려갑니다!”
그 말대로, 블루캣호가 심해 깊숙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꺼지는 듯한 추락감. 마냥 즐거운 듯 클로이가 깡충깡충 뛰었다.
“내려간다아!”
블루캣호가 빠르게 내려가면서, 순식간에 하늘이 사라졌다. 햇빛도, 구름도, 전부 다. 대신 에메랄드빛 바닷속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일순간 느껴지는 공기의 압력이 달라졌다. 귀와 눈이 먹먹했다.
하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숨을 쉬는 것과 걸어 다니는 것,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 또한 수룡의 비늘이 선사하는 효과일 것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해저 풍경.
심해에만 존재하는 어종이 난데없는 침입자에 놀랐는지 멀리 달아났다. 반대로 가까이 다가오는 어종도 있었다. 장검만 한 이빨을 수백 개 박아넣은 거대한 어종은 투명한 막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랑하듯 이마에 붙은 구슬을 빛냈다.
“정말, 놀랍군요…….”
쿠제도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쿠제 품에 안긴 티나도, 루빈도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 30년을 살았고, 신비로움이라면 암살검가 안에서 충분히 겪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등줄기로 소름이 올라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옆에서 눈동자를 반짝이는 클로이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이러니까 이 거혈인들만 특별히 여행선 운항 자격을 받은 거구나.’
쿠쿠쿠쿠쿠쿠, 쿵.
몇 분이나 흘렀을까. 닻을 따라 가라앉던 블루캣호가 커다란 울림과 함께 하강을 멈췄다. 심해 바닥에 다다른 것이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심해 밑바닥. 완벽한 고요. 마치 우주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다. 적막을 깬 것은 역시나 클로이였다.
“다 기록해 놔야지!”
신이 난 클로이는 양피지 책을 펼쳐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을 빠르게 적어나갔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손을 쓰지 않았다. 마법을 이용해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다. 누가 마법명가 영애 아니랄까 봐.
루빈은 그 장면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아가씨, 저것 좀 보세요!”
신기한 광경이 아직도 남았던 건가. 셀레스네가 크게 소리치며 클로이를 불렀다. 탑승한 뒤로 저렇게 반응하는 모습의 셀레스네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