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60)
암살검가 로이넨-60화(60/258)
제60화. 목걸이 속 존재 (1)
냐아아오옹.
클로이와 셀레스네가 투명막 바로 앞으로 다가서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심해의 마나석을 두고 정신을 집중하려는 두 사람 쪽으로, 고양이가 낭랑하게 울어대며 다가왔다.
클로이가 눈을 뜨고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우와, 지금 안아 달라는 거야?”
고양이는 클로이의 발목에 자기 귀를 연거푸 비벼댔다.
“그런 것 같네.”
루빈은 모르는 척 넌지시 말했다. 클로이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고, 이내 고양이는 클로이의 품에 안겨들었다.
“사나운 줄 알았는데 귀염댕이였구나, 너!”
한편 루빈, 쿠제, 티나. 세 명의 암살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 똑같이 감지한 것이다.
‘어쩌면.’
악토니아와 마주했을 때 증폭했던 음습한 기운은 이제는 대놓고 일정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 귀여워!”
“아가씨, 병균이 있을지도 몰라요.”
클로이는 골골대는 고양이 털 속에 얼굴을 파묻으며 웃었고, 그에 셀레스네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아가씨를 말렸다.
“아무래도 목걸이를 탐내는 것 같은데?”
루빈이 한마디 던졌다. 그 말은 하나의 신호였다. 티나에게 목걸이를 좀 더 살펴보라는 신호.
이전까지 목걸이에는 신경 쓰지 않던 티나는 그제야 발톱을 세워 목걸이와 줄이 연결된 부위를 만지작댔다.
“정말이네! 이걸 가지고 놀고 싶은 건가?”
냐아아용.
“풋, 이거 먹는 거 아니야.”
음습한 기운의 진원지. 루빈의 암연이 위험을 감지한 건 클로이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목걸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루빈의 본능이 계속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싸거나 귀중한 목걸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티나가 발톱으로 여러 번 긁어대도 클로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냐아아용.
티나 또한 민트색 눈동자를 빛내며 목걸이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루빈에게 전음을 보냈다.
-루빈, 이걸 의심하는 거지?
-아직 장담은 못 해. 하지만 당장은 제일 유력해.
아직까지는 추측뿐. 확실히 알아내려면 목걸이를 빼내어 관찰해야 했다. 저 안에 어떤 힘이 담겼는지, 대체 뭐길래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날뛰는 건지.
“클로이, 그거 혹시 귀중한 거야?”
“이 목걸이? 톨로이스 경매장을 처음 경험하는 거라 내 마음대로 사본 거야. 비싼 것도 아니야 2천만 릴크였나.”
2천만 릴크가 비싸지 않다니. 위더스푼가 기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말이었다.
‘그런데 톨로이스 경매장에서 얻었다고?’
문득 화운석에 대한 거래를 마친 뒤 킹븐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거…….
루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 만져봐도 돼?”
“물론이지. 자, 여기.”
클로이가 고양이를 안고 있지 않은 손으로 목걸이를 끌렀다.
서슴없이 건네는 그 태도가 인상 깊었다. 공짜로 받은 목걸이라고 했지만, 어지간히 비싼 목걸이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제국귀족 신분의 영애라기엔 참 특이하단 말이지. 게다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위더스푼 출신인데.
“치, 진짜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네. 너도 악토니아랑 똑같구나.”
목걸이를 루빈에게 건네는 순간, 고양이의 관심사도 곧장 목걸이 쪽으로 옮겨갔다. 그걸 보고 클로이는 볼을 빵빵하게 모으며 아쉬워했다.
“아가씨, 그런 건 고양이한테 줘버리고 얼른 이리로 오세요. 심해 마나석에 집중하세요. 마나응집력을 높이는 수련을 이어가 보죠.”
때마침 셀레스네가 클로이를 이끌어 투명막 너머에 집중하도록 했다. 심해의 마나석을 가까이 마주하는 건 귀중한 경험이었기에, 셀레스네는 억척스러운 엄마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알겠어, 알겠다고요.”
시녀의 재촉에 클로이는 도리질을 쳤지만, 결국 눈을 감고 마나 운용에 전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루빈은 이 목걸이가 뿜어내던 기운이 팍 사그라지는 걸 느꼈다. 클로이가 마나를 운용했기 때문인가?
아니었다. 클로이가 벗어버렸기 때문에 목걸이가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마치 조금 전만 해도 클로이한테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던 것처럼.
‘역시 이 목걸이가 문제인가?’
확신을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했다.
루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정도 마기라면, 그에 반응하는 생물체가 있을 테니까.
클로이와 셀레스네가 나란히 서 있는 벽면의 맞은편.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투명막이 창문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그쪽에는 갖가지 심해어들이 나돌고 있었다. 루빈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자 심해어들이 괴상한 모습을 투명막 가까이 갖다 댔다.
프스스스스.
“…….”
투명막에 가까이 대자 목걸이에서는 조그만 마찰음이 울렸다. 수룡의 비늘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심해어들에게는 달랐다.
루빈을 보고 몰려들었던 심해어들이 일순간 달아났다.
아니, 반만 달아났다. 그만한 여력이 없는 심해어들은 그대로 몸을 감싼 비늘을 소소소 일으키더니 몸을 뒤집으며 죽어버렸다.
-으웩, 이거 도대체 뭐야?
루빈 품에 안긴 티나가 으레 고양이들의 취향에 어긋난 음식에 입을 댄 것처럼 혀를 빼물었다.
-역시 목걸이였어.
-이거 갖다 버려야 하는 거 아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로 그러는 건 위험해.
폭발의 기운. 클로이가 착용하고 있었을 때 명확하게 감지했던 기운이었다. 지금은 감쪽같이 숨은 상태지만, 이 목걸이가 지닌 힘일 수도 있었다.
-지금 우리는 심해 속 한복판에 있어. 이 배는 정박해 있는 상태지.
목걸이를 블루캣호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 전에 폭발이라도 한다면… 위더스푼 가문이든, 암살검가든, 거혈족이든, 수룡의 비늘이든 간에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아늑, 이대로 얼마나 정박해 있는 거야?”
루빈의 질문에 아늑이 고개를 돌려 바다를 살폈다.
“지금은 잿빛해협이 가장 난폭할 때이니 이대로 정박 상태로 있다가,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운항을 재개할 겁니다. 잠수 상태로 말이죠.”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라. 한 열두 시간 정도 심해의 이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덕분에 엄청난 걸 구경했어, 고마워.”
“아,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응, 좀 쉬어야겠어. 고양이도 이젠 지루해하는 것 같고.”
루빈 곁으로 다가온 쿠제가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루빈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투명막 앞에 서서 마나를 운용하고 있던 클로이가 말을 걸었다. 눈을 감은 상태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어디 아픈 거야?”
“아냐. 좀 졸려서 그래.”
“그렇구나. 혹시 몸에 이상이 있으면 말해줄 거지? 내가 알고 있는 치유 마법이 꽤 많거든.”
“그래. 아프면 찾아갈게.”
“이 정도 심해라면, 아무리 수룡의 비늘이라 해도 일반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인체연구학’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아가씨, 집중하세요!”
셀레스네가 다그치자 클로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클로이에게 다시 인사를 건넨 루빈, 서둘러서 선실로 향했다. 쿠제와 함께 객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확실히 잠겼는지 재차 확인까지 했다.
“도중에 누가 들어오면 안 돼.”
“도련님. 어쩌시려는 거죠?”
목걸이를 객실용 탁자 가운데에 놔두고, 턱을 매만졌다. 이윽고 그 손이 목걸이의 장식을 감싸 쥐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티나도 궁금해했다. 방법이라. 목걸이를 쥐고 느껴보았지만, 어느새 음습한 기운이 미미해져 있었다.
그 기운이 사라지거나 약해진 게 아니다. 음습한 기운은 위협을 느끼고 전략적으로 숨어든 상태였다. 마치 폭풍이 지나가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처럼.
“…….”
쿠제도 티나도 잠자코 기다렸다.
수면에서는 잿빛해협이 매서운 파도를 일으키는 중이었지만, 심해에 정박해 있는 블루캣호에는 가벼운 흔들림만 있을 뿐이었다.
쿵, 쿵, 쿵.
지하칸에 머무르고 있는 거혈인들이 작업하는 소리가 울렸다.
“루빈?”
“도련님?”
루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종적을 감춘 음습한 기운을 잡아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한마디 던졌다.
“아무래도 우리 셋이 전담해야 할 것 같아.”
* * *
“자, 지켜보십시오.”
쿠제가 두 손바닥을 펼친 뒤 탁자 위에 드리운다. 그의 양손 끝에서 암연이 방출되기 시작한다.
우우웅.
암연의 양이나 기세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일정한 밀도를 유지한 채 탁자 위로 암연이 얇게 고인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돔 형태를 이루며 탁자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천이 바위를 감싸듯 완벽하게.
“쿠제… 너, 이게…….”
신기한 눈으로 쿠제를 바라보는 티나. 그녀는 숨김없이 감탄하는 중이었다.
“와! 재주 좋다, 너?”
티나는 환혈족이자, 후천적 암연을 이식받은 엄연한 암살자다. 그녀로서는 암연 활용법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실험 단계일 뿐이에요.”
쿠제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루빈, 너 이래서 쿠제를 로이넨서로 뽑았던 거구나! 역시 엉큼한 건 알아준다니까.”
루빈은 반구형의 암연을 지켜보았다.
스으으으응.
그 속에 놓인 목걸이는 아주 미세한 높이로 떠오른 상태였다. 저 안은 완벽한 무중력의 상태일 것이다. 이미 이 암연 활용법에 대해 알고 있던 루빈이 보기에도 더없이 안정적이었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어?”
“지금 이대로라면 큰 무리는 없습니다. 서너 시간 정도?”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었지만, 이게 얼마나 높은 밀도의 힘을 요구하는지 루빈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자, 그럼.”
루빈은 서슴없이 암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물속에 담근 손처럼 부유감이 느껴졌다. 루빈은 무중력을 헤치며 목걸이를 쥐었다.
“뭘 어쩔 셈이야, 너?”
“이 목걸이에 내 암연을 주입할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물건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아무것도 없는 물건이라면?
루빈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 목걸이 속에는 무언가가 있고, 그러므로 암연을 주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확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하나야.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뭔데?”
“마령.”
“마령?”
티나도 쿠제도 마령들의 세계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있었다. 그 원리가 소환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세계의 다른 층인, 마령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마령들은 층을 벗어나 마령술사를 복종시켜 현실세계로 틈입한다는 것도.
그러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은 달랐다. 세 사람 다 마령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 마령이 이 목걸이에 깃들어 있다는 거야?”
“아마도.”
“검혼과 비슷한 거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는 좀 다르다.
검혼은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검격이 남기는 상흔이었다. 혹자는 ‘무인의 저주’라고 하지만, 그건 악의적인 해석일 뿐. 오히려 ‘무인의 순수한 흔적’에 가깝다. 하네케만 봐도 알 수 있지.
반면 마령은 사악함 그 자체다.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존재. 이 목걸이에 깃든 이유도 오직 인간세계에서의 생존을 위한 것뿐이다.
“도련님, 만약 마령이 있는 게 확실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마령이 나한테 침투하려 들 거야. 원래 클로이한테 하려던 것처럼. 인간을 잠식시키는 것, 그게 마령들의 본능이라고 하니까.”
암연에 조응한 마령은 마치 원하던 물살을 만난 것처럼 더 빠르게 루빈에게 틈입할 것이다.
“뭐야, 그럼? 너, 마령의 꼭두각시가 되겠다는 뜻이야?”
루빈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티나가 놀라 되물었다. 루빈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렇게 놔두지는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