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65)
암살검가 로이넨-65화(65/258)
제65화. 필리몬드로 가는 길 (2)
“…….”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게 맞겠지?”
요리실 뒤편에 있는 널찍한 창고.
셀레스네가 자리를 비운 가운데, 루빈은 클로이에게서 모든 설명을 들었다. 티나가 어떤 짓을 벌였는지, 그래서 왜 셀레스네가 쿠제에게 저토록 차가운지.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닌 것 같네.”
쿠제에게는 미안했지만, 루빈이 나설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셀레스네를 놀려대는 클로이처럼 할 수도 없었고.
“냐옹? 냐옹?”
루빈은 눈에 힘을 주고 티나를 노려봤다. 고양이는 문을 열고 싶어서 손잡이를 향해 뛰어올랐지만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똑똑똑.
이윽고 티나를 도와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루빈의 마나 감응력을 파악해 줄 마도구를 찾아보겠다며 자리를 비웠던 셀레스네가 돌아온 것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복도로 나가는 티나.
“이걸 여기서 꺼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셀레스네 손에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찾아낸, 손바닥 크기만 한 모래시계가 하나 들려 있었다.
“루든, 이건 우리 가문에서 만든 마도구인데, 새로운 가신을 들일 때마다 감별용으로 쓰는 거야.”
모래시계 안을 채운 건 연푸른색의 모래였다. 마나석을 갈았으리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그랬다.
“이 안에 있는 마나석 가루가 너를 파악하게 도와줄 거야.”
루빈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클로이와 셀레스네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셀레스네가 감별 방식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마나를 이용한 마법 시전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선을 그리는 방식에 따라 각각 원휘, 삼휘, 모휘라고 했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아메릭마나의 마법사들, 즉 위더스푼 가문이 배출해 내는 마법사들의 휘식은 원형이었다.
반면 카포티니 출신 마법사들의 휘식은 삼각형이었고. 대륙 남부 지방에는 사각형-모휘를 휘식으로 하는 마법학교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래시계가 내 휘식을 알려준다는 거야?”
“응. 모래시계의 상층부로 모래가 떠오르면 삼휘를 부여받은 거고, 하층부로 모래가 내려앉으면 모휘라는 뜻이야. 그리고 가운데 병목 부분에서 모래가 멈춘다면, 그건 원휘라는 뜻이고.”
클로이는 간단한 염동 주문을 외워, 바닥에 놓인 모래시계를 공중에 띄웠다.
시범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모래시계가 클로이의 허리 쪽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모래시계 안에 있던 마나석 가루가 가운데 병목에 집결했다.
위더스푼 가문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거겠지만, 클로이가 부여받은 휘식이 원휘라는 뜻이었다.
스샤아아아아.
그런데 한순간.
모래시계 내부에 바람소리가 퍼지더니 가루 색깔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많은 양의 백색 가루가 더 뒤섞인 것처럼.
“클로이, 가루 색깔이 변했는데.”
“루든 도련님, 그건 클로이 아가씨께서 지니고 있는 마나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미미하다는 뜻이고, 흰색에 가까울수록 강력하다는 걸 의미하죠.”
기준점인 연푸른색에서 더 밝아졌으니, 클로이의 마나가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는 뜻이 된다.
“참고로, 클로이 아가씨께서는 태어나셨을 때부터 마나가 연푸른색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온 단련도 단련이겠지만, 애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제 도련님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시작해 줘.”
모래시계가 루빈 쪽으로 날아왔다. 왼쪽 허리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잠깐 흔들리는 모래시계.
‘셀레스네가 궁금한 건 휘식이 아니야. 가루의 색깔이지.’
셀레스네는 자기가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저 마나에 감응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인지.
스스스스스.
잠시 후, 중력에 따라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래시계 가루에 변화가 생겼다.
작은 알갱이 하나가 살짝 떠올랐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알갱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이윽고 모든 알갱이들이 일제히 병목으로 향했다.
‘원휘인가?’
그런데 가루는 병목에서 멈추지 않았다. 병목을 지나쳐 상층부 윗면에 모두 달라붙었다.
삼휘였다. 삼각형의 휘식에 따라 마법을 시전하는 부류.
“흠…….”
셀레스네가 가벼운 침음을 흘렸다. 가루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모래시계 안으로 바람소리가 퍼졌다. 다음 순간, 모래는 기준 색깔이었던 연푸른빛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
검은색. 측정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치. 셀레스네로서는 만족스러운 결론이었다.
“루든, 마나 감응력을 후천적으로 보유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삼휘를 부여받아. 그게 카포티니의 마법생도가 여러 신분으로 이루어진 이유야.”
측정 결과가 낮아 루빈이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클로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사실 삼휘는 열등함의 증거였다.
일반적으로 마법명가 사람은 천성적으로 마나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은 시종이나 시녀를 들일 때도 선천적인 마나나 그에 준하는 자들만을 원했다.
일종의 순혈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루든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나를 후천적으로 얻은 자들. 그들 대부분은 삼휘를 부여받았다.
삼휘는 후천적 마나의 상징이었고, 그렇다 보니 대륙 안에서 삼휘의 마법사들은 그 위상이나 대우가 좋을 수 없었다.
“이제 된 거야?”
“네, 됐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뭘 걱정했는지는 안다. 아메릭마나를 이끄는 위더스푼 가문은 황제가 인정하는 마법명가였지만,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같은 원휘를 쓰는 마법사들에게도 질투를 받아왔는데, 다른 휘식을 쓰는 자들에게는 오죽할까.
‘나는 마법사로 분류할 정도도 아니라는 거군.’
애초에 마법에 대한 욕심을 지녀본 적 없는 루빈이었다. 상할 자존심 같은 것도 없었다. 오히려 셀레스네의 경계심이 누그러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둥둥둥.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셀레스네는 염동력으로 모래시계를 띄운 채, 창고 문을 열었다.
* * *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에요?”
-당연히 진심일세.
스응!
하네케가 뻗은 검이 루빈의 귀를 닿을 듯이 스쳐 지나갔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루빈은 빠르게 하네케와 거리를 두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변칙적인 공격이 인상적이었지만, 지금 루빈의 눈이 커진 이유는 공격 때문이 아니라 하네케가 해준 조언 때문이었다.
“마법을 배우라니.”
-마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네.
“클로이한테 가서 마나 감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으라는 게, 그런 뜻 아니에요?”
-잘 생각해 보게, 루빈. ‘빛과 반역의 탑’에서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루빈도 하네케도 한차례 죽고 나서 마나에 더 섬세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걸 확인했던 계기가 하네케 말처럼 ‘빛과 반역의 탑’이었고.
다만, 그때는 탑 내부에 설치된 마법여단의 방어마법의 영향 탓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자네가 상대해야 할 적에 마법여단이 없을 것 같나?
하네케는 자기 물음에 대답하듯 스스로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내젓자마자 루빈을 향해 한차례 공격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슉! 슈욱! 슉!
-게다가 카포티니는 거대 마나석 위에 세워진 도시라네.
루빈은 하네케의 왼편 허벅지에 틈이 생긴 걸 노리고 빠르게 공격을 감행했다.
암연을 쓰지 않고 치러지는 검투여서 흐름상으로는 루빈이 밀리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번 공격도 실패에 그쳤다.
“거대 마나석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암연의 경지가 2성 이상만 돼도, 그 영향은 받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미 4성에 도달한 루빈이 걱정할 건 없었다.
‘지금이다!’
루빈은 다시 한번 공격을 시도했다. 이번엔 브리온 검법 6식의 마지막 순서에 로이넨 검법 2식의 첫 순서를 가미한 방식이었다.
캉!
하네케의 검이 루빈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하네케의 잘려 나간 하얀 머리칼 몇 가닥이 두 사람 눈앞에서 너풀거렸다.
루빈은 하네케로부터 훌쩍 뒤로 물러났다. 하네케는 대화에 집중하려는 듯, 검을 잠시 내려놓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법여단이든, 거대 마나석이든. 이미 마나 감응력을 확인한 이상, 적어도 그 능력이 최소한 도움이 될 정도로 향상시킬 필요가 있긴 했다.
-게다가 세상엔 마나를 지녀야만 쓸 수 있는 무구들도 많다네.
루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지만, 다룰 수 없었던 무구들. 회귀 전에는 능력이 되지 않아 포기했었으나 이번에는 조건이 달랐다.
“…….”
루빈이 진지하게 자신의 조언을 고민하자, 하네케는 땅에 검을 꽂아 넣고 잠자코 기다렸다.
하네케 역시 암살검가가 마나나 마법사에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거부감은 비단 암살검가만 가진 게 아니었다
같은 조직 안에 속했을지라도, 마법사에게 동지애나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여느 무인이나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
모든 명문가 중에서도 마법사 가문은 좀 남달랐다. 그들에게 마나의 능력은 인위적인 게 아닌 대지의 선물이었고, 마법사가 된다는 건 대지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네케가 루빈에게 마나 운용을 권유하는 이유. 마나에 대한 적응력이나, 무구를 취할 수 있다는 이점은 사실 부차적이었다.
하네케는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다. 브리온 검법을 전수하고, 그게 루빈의 손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그였으니까.
루빈은 암연이라는 고유한 능력에 만족하지 않고, 오러라는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했다.
무(武)의 지대에서 그는 유례없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마나까지 더해진다면 어디까지 성장하게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렇게 말한 루빈은 하네케의 표정에 만족감이 떠오르는 걸 보았다.
뭘 기대하고 있는지는 알지만.
하네케의 바람처럼 마나를 이용한 무의 극대화에는 관심이 없는 루빈이었다. 그가 마나를 기르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마법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면.’
곧 조우할 그자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루빈이 카포티니로 향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텔마흐에게 복수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
지금으로부터 2년 뒤,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생도로 나타날 소년이니까.
모든 마법사가 클로이처럼 쾌활하거나 선량하지는 않으니, 최소한 마법이라도 알아두어야 했다. 그자와 같은 삼휘를 사용한다면, 경계심을 더 무너뜨릴 수도 있을 테고.
-클로이는 분명 자네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걸세. 부탁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기쁘게 선생님을 자처할 것 같군.
아니, 한마디가 다 떨어지기도 전에 루빈을 붙잡고 마나에 대한 지식을 뽐내려 하겠지.
“흠, 클로이를 찾아가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