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66)
암살검가 로이넨-66화(66/258)
제66화. 필리몬드로 가는 길 (3)
“클로이, 나한테도 마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나를 증진시키는 방법을 알려주…….”
“정말? 나한테서 마법을 배우고 싶은 거야?”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반응. 클로이는 루빈의 말을 도중에 딱 끊어내면서 힘차게 고개부터 끄덕였다.
“그러면 나, 선생님이 되는 건가?”
클로이는 쾌활하게 웃었지만, 식사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식탁을 둘러앉은 사람들 전부 순식간에 분위기가 경직되는 걸 느꼈다. 바닥에 엎드려 살코기를 야금야금 먹던 고양이까지도.
그들이 눈치를 보는 건 셀레스네였다.
“…….”
“셀레스네, 내가 직접 루든한테 마법 가르쳐 주면 안 돼?”
자기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오던 셀레스네. 그녀는 식탁 위에 접시를 내려놓고, 심각해진 얼굴로 클로이를 쳐다봤다.
“아가씨. 아가씨는 당연히 가문에서 배운 그대로 루든 도련님께 가르쳐 주시겠죠?”
“그러면… 안 되나?”
셀레스네의 두 눈썹 사이로 주름이 새겨졌지만, 입술만은 힘겹게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으…럼요, 안 되고말고요. 아가씨가 일상적으로 받아왔던 가르침은 제국, 아니 대륙 전역에서 파헤치고 싶어 하는 비전인걸요.”
그러면서 셀레스네의 시선이 날카롭게 루빈한테로 향했다. 어째서 이런 무도한 일을 벌이냐는 의미가 담긴 눈빛.
“흠, 클로이 공녀님께서 마음껏 지식을 전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우라고 하셨던 분이 셀레스네 님 아니었던가요?”
틈을 파고들며 나선 건 쿠제였다. 사실 그는 무척 놀랐지만, 차마 놀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빈 도련님이 마나를 지녔다니!
대신 빠르게 상황부터 판단한 것이다. 도련님의 의도가 무엇이고, 그걸 도우려면 뭐부터 해야 할지.
하지만 셀레스네는 쿠제를 흘깃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쪽으로 돌렸다.
“쿠제 님이 나설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최근에 셀레스네 님께서 저한테 너무 날카로우신 건 아닌가 싶은데…….”
“날카롭다니요! 그리고 설마 잊으신 건가요? 그때 드린 제 ‘경고’를.”
‘경고’라고? 쿠제는 억울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대체 티나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이제 셀레스네 눈빛에 노기마저 떠올랐다. 갑자기 불똥이 자기한테 튀자, 쿠제는 쥐고 있던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와중에, 고양이는 살코기를 입에 물고 슬금슬금 바깥으로 나갔다.
그때.
루빈의 눈앞에 마나선이 떠올랐다. 아직 마나선을 만들 수 없으니 당연히 루빈의 것은 아니었고.
-루든, 이거 보이지?
클로이였다. 그녀가 마나선으로 글자를 쓰고 있었다. 이전에 셀레스네와 밀담을 나누던 그 방식이었다.
다만 루빈과 클로이만 마나선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셀레스네 역시 허공을 휘젓는 마나선을 발견했고, 그래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어른들이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클로이의 장난스러운 한마디가 공중에 떠오르고.
“아가씨! 정말…….”
-근데 셀레스네도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은 거 알지, 루든? 네가 이해해. 쿠제한테도 꼭 말해주고.
루빈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허공 속에서 경쾌하고 산뜻하게 움직여 대는 클로이의 마나선을 관찰했다.
마나선을 그려내는 것은 마법 시전의 기초. 그렇다 해서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원휘의 마법사라면 마법 술식에 맞게 동그라미를 그려내는 것으로 마법은 시전된다.
그러나 문제는, 무인이 무기와 검식을 다루는 게 어렵듯, 마나선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점.
‘리본 다루듯이 마나선을 다루는 아이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나선을 감춰볼까?
그 말과 함께, 마나선이 루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마나선은 여전히 존재했다. 다만 클로이의 시야에만 있을 뿐.
‘마나선을 내면화하다니. 정말 열한 살이 맞나?’
초보 마법사는 마나선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그리고 적을 향해 어떤 마법을 시전할지를 들키고 만다.
따라서 마나선을 내면화할 줄 아는 것은 중급 마법사로서의 최소 조건이기도 했다.
루빈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클로이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참 아이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루빈의 웃음을 자기 능력에 대한 감탄으로 받아들였는지 클로이도 다시 활짝 웃었다.
둥둥둥.
“쿠제, 혹시 후추 필요해?”
이번엔 클로이가 마나선으로 염동 휘식을 그었나 보다. 후추통이 공중에 둥둥 뜨더니, 서로를 째려보고 있는 쿠제와 셀레스네 사이로 나아갔다.
그러자 셀레스네가 한숨을 쉬며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아가씨, 그럼 이렇게 하죠.”
“나, 루든한테 마법 알려줘도 돼?”
“일단 제 말을 들어보세요. 가문만의 비전 방식을 알려주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셀레스네는 공중에 떠 있는 후추통을 한 손으로 잡아챘다. 그걸 식탁에 놓인 요리 하나에 탁탁탁 털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고요. 아쉽지만, 이 배는 며칠 안에 필리몬드에 도착할 거예요. 지금 난이도 있는 학습을 한다면, 루든 도련님의 성장에 더 방해가 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셀레스네는 영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이렇게 제안했다.
“마법은 나중 문제고, 지금 루든 도련님에겐 기초 중의 기초가 필요해요. 마나와 조화부터 이룰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으름장을 놓듯이 말을 덧붙였다.
“마나 감응력이 어정쩡하면 오히려 몸과 정신을 해칠 거예요. 심하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고요.”
마나와의 조화라.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고, 그 역시 바라던 바였다.
암연의 경지가 충분하면 거대 마나석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지만,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점 역시 사실이었다. 매일 일정량의 암연을 마나에 대한 저항에 할애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마나와 조화를 이룰 줄 알면, 마나석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암연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뜻.
“그런데 셀레스네. 아버님께서는 제국귀족으로서 우리가 제국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잖아?”
“이것만으로도 루든 도련님으로선 두 번 없을 행운이랍니다, 아가씨.”
“치이. 루든, 그 정도로 괜찮아?”
“괜찮고말고. 그런데 며칠 안 남았는데 그 안에 가능할까?”
“바보야. 마나와 조화를 이루는 건 비스킷 부러뜨리는 것보다 쉬운 거야.”
갑자기 식탁 위에 놓인 비스킷 하나가 딱 소리를 내며 두 조각으로 부서졌다. 분명 클로이 짓일 거다.
그제야 어색하게 겉돌던 식탁 분위기가 다시금 부드럽게 흘러갔다. 셀레스네는 루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제가 곁에서 지켜보겠습니다. 괜찮겠죠, 도련님?”
“응. 얼마든지.”
“그리고 그 자리에 쿠제 님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약속도 지키지 않는 분이시니 제가 조금 불안하군요.”
“아니, 셀레스네 님! 지금 무슨 말을…….”
쿠제는 억울해했지만, 셀레스네는 자초지종을 밝히기보단 그냥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 일 자체가 자존심을 구긴다는 듯이 철저히.
클로이는 키득거렸고, 루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식사를 마저 했다.
* * *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 동안 루빈은 틈틈이 클로이와 어울리며 몸과 마나가 조화를 이루는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능력 전달에 가까웠지만.
쉴 새 없이 말을 하며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던 클로이. 그러다가 학생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을 땐, 엄한 표정과 함께 다가왔다.
그러고는 루빈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했는데, 마치 현악기를 조율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식으로 클로이가 직접 나설 때마다 루빈은 몸 안에서 공명의 균형이 맞춰지는 걸 느꼈다.
‘마나가 느껴져.’
심장 부근. 하네케의 오러가 담긴 세 번째 환에, 마나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러와 마나는 서로 섞일 듯 말 듯 경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좀 다른 점이라면 두 힘의 성질.
마나는, 오러의 묵직한 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오러가 밀도 높은 묵직한 쇳덩이라면, 마나는 증발하는 수증기와 같았다. 마치 수백만 개 알갱이의 집합체처럼 가벼웠다.
‘이게 마나의 특징이구나.’
아마 근처에 마나석이 풍부하다면, 이 알갱이들 하나하나가 무거워질 것이다. 그 반대라면 훨씬 더 가벼워질 터. 그 무게에 따라 마법의 위력이 달라질 것이었다.
“아가씨, 그렇게 하면 도련님이 수련하는 게 의미가 없을 텐데요.”
셀레스네가 이렇게 충고해도, 클로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직접 루빈의 마나를 짜 맞췄다.
‘나도 이렇게까지 조율된 적은 없어. 근데 너는 정말 어쩔 수 없구나’ 하는 핀잔을 잊지 않고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편한 건 루빈 쪽이었다. 전략적으로 무지함을 드러내며 클로이의 성격을 이용했다. 그편이 성장에는 훨씬 유리했으니.
“후.”
고작 사흘 만에 수업이 끝났다. 목표했던 대로 루빈의 몸이 마나와 조화를 이룬 것이다.
“어떠신 것 같나요?”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
“흠, 아가씨가 좀 서두른 것 같지만, 어쨌든 제가 보기에도 몸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네요. 분명 이전보다 감응력도 좋아졌을 거고요.”
셀레스네는 루빈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은 상태로 몸 안에 흐르는 마나의 질감을 감지하며 말했다.
“내가 한 건 없어. 사실 클로이가 다 했지.”
“저도 압니다. 봤으니까요.”
셀레스네는 루빈과 눈을 마주치며 한결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루든 도련님. 엄청난 행운을 맞닥뜨린 기분이시겠죠? 있는지도 몰랐던 마나를 엄청나게 성장시켰으니까요. 그렇다고 혹시 마법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마법사? 난 그럴 생각 없는데.”
“그럼 다행이네요. 간혹 마법사들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있죠.”
“걱정하지 마. 나는 가업을 이어가야 하니까.”
“아베른 지방에서 서적 사업을 하신다고 하셨죠. 잊고 있었네요.”
아베른 지방을 중심으로 각종 출판 사업이 성공하면서 3등귀족에 오른 가문. 필리몬드에 가는 이유 또한 제국법과 관련해 사업상 심사를 받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까지.
전부 루빈과 쿠제가 만든 설정이었다.
“제가 드릴 조언은, 이번에 얻게 된 마나로 인해 과욕에 빠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는 겁니다. 뭐, 마나가 생겼으니 훗날 독립하시어 마나석 채굴 사업 같은 걸 도모해도 좋으실 겁니다. 단, 마법사가 되겠다거나 한다면…….”
셀레스네가 입을 앙다물었다. 어쨌든, 그녀가 말하거자 하는 핵심이 뭔진 충분히 알았다. 마법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말라는 것이다.
행간 너머 경고의 의미도 선명했다. 배에 동승하면서 생긴 인연으로, 클로이와 위더스푼 가문과 엮이려 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귀족가에서 자란 열한 살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챌 만한 경고였다. 루빈은 순순히 대답했다.
“관심 없어. 걱정 마.”
“그럼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되겠군요.”
셀레스네 말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지난 며칠간 제국귀족 가문의 시녀로서 드러냈던 날카로움은 많이 무뎌져 있었다. 루빈에게 했던 경고성 조언 이면에도 항해 내내 차곡차곡 쌓인 친숙함이 배어 있었다.
“흠…. 내일 오전에 필리몬드에 도착하는 건가?”
“와락이 말하더군요. 지금 이 배는 필리몬드 중심부로 통하는 강 초입에 있는데, 지금 대기 상태라고요.”
제국 본토의 핵심 도시로 들어가는 것이니 당연한 절차였다. 블루캣호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함선들 수십 척 또한 필리몬드강에 올라서는 승인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물론 위더스푼이라는 신분을 밝힌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럼 앞서 도착한 배들을 제치고 한 시간 안에 필리몬드 나루에 배를 댈 수 있겠지만, 클로이는 그러기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클로이는 루빈 일행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같았다.
“아가씨가 오시네요.”
저 멀리서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셀레스네 예상대로 클로이였다. 클로이는 루빈과 셀레스네를 발견하자 신이 난 듯 깡충대며 다가왔다.
“루든! 벌써 잘 거 아니지? 마지막 밤을 기념해서 다 같이 게임 할 거거든. 둘씩 편을 짜야 하니까, 셀레스네 너도 와.”
“네, 아가씨. 그럴게요.”
셀레스네가 클로이 뒤를 따랐다.
루빈도 복도를 걸어가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쩌면 카포티니에서도 인연이 이어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클로이의 엄청난 재능이 탐날 정도였지만, 동료가 되지는 않겠지. 오히려 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만약 카포티니에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저들을 이해시켜야 하나. 카포티니에서 벌어질 일들의 크기를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루빈은 갑판 위로 나가 저편을 내다봤다.
불을 밝힌 채 줄지어 선 수십 척의 배들.
그리고 그 너머.
필리몬드가 코앞이었다.
‘내일부터는 지겹도록 하얀색만 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