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69)
암살검가 로이넨-69화(69/258)
제69화. 백색도시의 흑색구역 (2)
쿵!
떠밀린 아이의 몸이 붕 뜨며 경계선 쪽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식당 테라스에서 느긋한 식사를 즐기던 사람들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어떤 사람은 끔찍한 상황에 입을 틀어막았다.
하필이면, 아이의 오른손이 경계선 안쪽으로 넘어갔다. 딱 손목까지만.
그러나 경계선에 넘어간 비율이 얼마큼 적은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넘어갔다는 사실 하나. 그게 모든 걸 판단하는 기준의 전부였다.
“에이, 씨발. 웬 애새끼가 걸리적거리게. 퉤!”
가로막는 아이를 떠밀며 들어갔던 범죄자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서둘러 흑색구역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했다.
모여드는 나약하고 추레한 범죄자들을 바라보며 칼을 빼 들고, 저리 꺼지라고 소리친다.
“엄마, 엄마!”
아이가 울부짖으며 엄마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어째선지 경계선 안쪽으로 넘어가 버린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순서는 하나.
스으으으응.
귀를 찌르는 울림과 함께 아이의 몸이 선 안쪽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아이는 발버둥을 쳤지만 흑색구역에 걸려 있는 마법을 깨부수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안 돼! 안 돼!”
아이 엄마가 달려와 아이의 발이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아이의 몸 전체는 흑색구역으로 넘어간 뒤였다.
엄마의 절규와 아이의 울먹임이 울려 퍼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입맛을 가시게 하는 끔찍한 상황에 고개를 돌렸다.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불상사.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운이 나쁘면 범죄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도 구역 안으로 떠밀려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이제 흑색구역의 일원으로 명명되며, 자유는 오직 그 구역 안에서만 허락된다.
“얘야. 거기 가만히 있어, 가만히!”
아이가 엄마 쪽으로 다가오려 했을 때, 엄마는 손을 다급히 내저으며 말렸다.
아이가 순간 움찔거렸다.
그 눈앞으로 아지랑이 같은 일렁임이 나타났다. 구역 안으로 들어갈 땐 아무 지장이 없지만 되돌아 나가려는 걸 방지하는 마법 장막이었다. 만약 그대로 통과하려 했다면, 아이 몸은 1초도 되지 않아 재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성벽 위에 버티고 섰던 골렘의 눈이 붉게 빛났다. 상체를 구부려 아이 쪽을 내려다보는 골렘. 그 손에는 거대한 장창이 들려 있었다.
만약 아이가 발 하나라도 내뻗는다면 그 장창이 아이를 꿰뚫을 것이다.
프스스스스.
동시에 아이의 머리 위로 마법 가루가 흩뿌려졌다. 잠자코 지켜보던 쿠제가 전음을 보냈다.
-표식 마법이군요.
흑색구역 출입자를 관리하기 위해 결계에 새겨진 마법이다. 아이는 자기한테 내려앉은 가루를 털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곧 아이의 목 뒷덜미에 일련번호와 같은 숫자가 새겨졌다.
-40201이라…. 그동안 저기 숨어든 범죄자 숫자가 그 정도일 줄이야. 놀랍네요.
-그중 지금까지 얼마나 살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절반? 어쩌면 1할?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티나 님 좀 말려야겠는데요.
그러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쿠제. 그는 난간에 들러붙어 있는 고양이를 덥석 안아 올렸다. 그러자 티나의 공격적인 전음이 쏟아졌다.
-놔! 놓으라고!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루빈, 쿠제!
-…….
쿠제에게 붙들린 티나가 발버둥 쳤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울어대는 고양이에 이쪽을 쳐다봤다.
루빈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따라 나오던 쿠제가 음식값을 치렀다.
-진정해, 티나.
나직하고 흔들림 없는 루빈의 전음. 티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부조리한 상황조차도, 제국이 고안한 초법적인 권위 그 자체였으니까.
-범죄자 새끼들이 저 애를 노리고 모여들 거야!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야. 우리 힘으로 어쩔 방법도 없고. 저 애가 당장 걱정해야 할 것도 틀렸어. 네가 말하는 범죄자들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루빈과 일행은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 광장으로 나왔다.
원래 이 식사의 목적은 흑색구역의 외부를 관찰하는 것. 장벽 위에서 구역을 경계하는 병력의 수준과 숫자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걸 확인했으니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쿠제 품에 꼼짝없이 안긴 티나만 힘겹게 발버둥 쳤다. 그런 그녀에게, 루빈은 육성으로 말했다.
“눈이 내리고 있어.”
광장에 있는 사람들 시선이 하늘에 꽂혀 있었다. 그 말처럼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눈이 내리는 계절이 아니다. 그러나 어둑한 구름이 하늘에 떠다니며 매서운 눈발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다는 건, 오늘이 추첨일이라는 뜻이지.”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추첨일. ‘범죄자 인도계약’에 따라, 신성한 심판대 위로 흑색구역의 구성원 한 명을 제출하는 날.
추첨이 있을 때마다 흑색구역에는 눈이 내렸다. 오직 흑색구역에만 내리는 눈이었다. 정확히는, 그곳에만 눈이 내리도록 한 조치였다. 자연현상이 아닌 마법. 필리몬드 시장의 지시에 따라 고위 마법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눈발이었다.
눈발은 한여름에도 내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눈이 내렸고, 그때마다 운이 나쁜 범죄자는 백색도시의 처형장으로 보내졌다.
“방금 들어간 저 꼬마애가 운 나쁘게 추첨이 될 수도 있겠군요.”
광장을 빠져나가기 전, 쿠제가 짚었다. 비극적인 상상이 떠올랐는지 고양이가 또다시 울어댔지만, 쿠제가 힘주어 붙들었기 때문에 어쩌지는 못했다.
아직도 입구 앞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와 아이. 서로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두 사람.
루빈은 무정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울먹이는 아이의 몸 위로 눈이 푹푹 쌓이고 있었지만, 그 맞은편에 있는 엄마에겐 그저 한 폭의 비극적인 그림일 뿐이다.
루빈은 애써 시선을 거뒀다.
“서두르자. 티나의 변신이 풀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 *
다음 날. 루빈은 오전부터 거혈인 남매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필리몬드에 있는 온갖 법과 관련된 건물만 열 번 넘게 들락날락했다. 제국법에서부터 거혈인 규약, 여행선 관련법과 각국 왕국의 하위 법규까지.
블루캣호는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여행선임에도 불구하고, 선주가 거혈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소유권을 쉽사리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위더스푼이라는 제국귀족이 몇 마디 해준 덕분에 간소해진 게 이 정도라니. 만약 3등귀족 신분인 루빈 혼자서 처리하려 했다면 며칠은 걸렸을 일이었다.
‘그래도 점점 표정이 밝아지는군.’
여행선을 운항하면서도 이제껏 기착지였던 도시들을 제대로 돌아다녀 본 적이 없던 와락과 아늑. 거혈인 신분으로 인해, 그들이 운항하는 배의 정박 기점을 기준으로 반경 킬로미터 제한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법과 관련한 증명 절차가 필요했기에, 예외적으로 필리몬드 곳곳을 누벼볼 수 있었다.
“누나, 누나, 이것 봐!”
“야! 그거 내려놔.”
“저거 설마 먹는 건가?”
“제발 촌스럽게 그러지 말라고. 와락!”
필리몬드에 온 뒤로, 처음엔 움츠러들었던 두 거혈인은 서서히 왁자지껄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오전과 오후에 걸쳐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건물 하나를 들락거릴 때마다 거혈인 남매는 잊지 않고 루빈에게 감사를 표했다.
일이 마무리될 때쯤. 루빈과 거혈인 남매는 쉬어갈 겸, 목을 축일 수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각자의 음료를 마시던 와중, 루빈은 거혈인 남매가 오늘도 숱하게 드러내야 했던 그들의 왼편 어깨를 바라봤다. 거기엔 71023과 71024이라는 각각의 거혈인 일련번호가 적혀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흑색구역이 있는 방향을 내다봤다. 거기엔 어제부로 40201이라는 흑색구역민 일련번호를 부여받은 불행한 아이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제국이 만든 기괴한 체계였다.
“도련님, 카포티니로 언제쯤 출발하실 예정입니까?”
컵 안에 담긴 음료를 벌컥벌컥 마신 와락이 루빈의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마침 너희에게 부탁할 게 있어.”
“여행 일정에 변동이 생기는 건가요?”
“응. 여기에 며칠 더 머물러야겠는데.”
그러면서 루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음료를 들이켜는 척 시선을 돌려, 빠르게 카페 내부를 확인했다.
이곳에 상주하는 암살자들을 의식하여 암연은 일정 수준을 가장한 상태였다. 암살검가 내부적으로 알려져 있는 루빈 로이넨의 경지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회귀 전부터 쌓아온 순수한 관찰력은 암연에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암연을 이용한다면 그 관찰력과 그에 동반되는 감각이 배가되겠지만, 지금은 본연의 관찰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군.’
지금 앉아 있는 카페에 들어오기까지, 일부러 몇몇 상점들과 조형물 앞을 구경하는 척 들렀다. 그렇게 필리몬드 내에 거점이라 할 만한 곳들을 골랐다. 또 눈에 띄게끔 머리칼은 흑발을 유지했다.
암살검가 가신들의 눈과 칙명부의 눈에 모두 보일 수 있도록.
그 결과, 루빈은 지금 카페 내부와 외부를 통틀어 수많은 인파 속 곳곳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자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군.’
어쩌면 그중에는 순수한 관찰력에 걸리지 않는, 암연을 퍼뜨려야만 찾아낼 수 있는 대상도 있으리라.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자리에서 공격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암살검가 암살자들과 칙명부…. 거기에 시장의 직속 하수인들까지.’
모두 적의 없는 자들이었다.
지금껏 루빈은 잔잔한 연못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필리몬드 안에 의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도심을 돌아다니는 중간중간 일부러 암연을 뻗었다가 재빨리 거두는 식으로, 서로 흩어져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 중인 가신들의 이목까지 집중시켰다.
피아식별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거미줄과 같은 상황. 이게 루빈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필리몬드 내부에서 교차하는 정보망을 뒤흔들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것.
존재감을 부각하면 할수록.
‘그가 더 빨리 연락을 해오겠지.’
루빈이 기다리는 건 필리몬드 시장의 접촉이었다. 그와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필리몬드에 더 머물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였으니까.
“며칠쯤이야 저희는 괜찮습니다, 도련님. 저희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씨익 웃는 아늑의 팔뚝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미안. 오늘 이후부터는 블루캣호에서만 지내야 할 텐데.”
“저희는 배가 더 편합니다! 오늘 필리몬드도 지겹도록 구경했고요.”
오늘 이후로 법적인 절차가 마무리되면, 거혈인 남매는 다시 거혈인의 원칙에 따라야 했다.
날이 저문 뒤에는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없으며, 무조건 그들 배 안에서만 밤을 보내야 한다는 법령.
“카포티니로 안전하게 모실 테니, 출발 준비가 되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손님!”
와락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이후 루빈과 거혈인 남매는 숙소로 돌아갔다. 맞은편 숙소를 쓰고 있던 거혈인 남매는 짐을 챙겨, 나루에 정박해 있는 블루캣호로 돌아가 대기했다. 블루캣호의 법적인 문제도 해결됐으니,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루빈은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도록 책을 읽어나갔다. 시장의 하수인이 오늘 안에 찾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똑똑똑.
자정쯤,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쿠제가 몸을 일으켰다.
-아냐, 쿠제. 내가 나갈게.
-도련님?
-날 찾아온 거야.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걱정 마. 시장의 하수인이 날 데리러 온 거니까. 어차피 저쪽에서도 나만 찾을 거야.
시장이란 말에, 쿠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시장이라면… 황제가 직접 권력을 하사한, 이 거대도시의 지배자가 아닌가.
-…시장이요? 필리몬드의?
제국 본토에 거대도시가 여럿 있으니 시장이라는 직책이 유일무이하지는 않았지만, 필리몬드의 시장은 좀 더 특별했다.
아니, 굉장히 특별했다.
특히, 루빈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그래, 시장. 그 전에, 황제의 숙부이기도 한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