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74)
암살검가 로이넨-74화(74/258)
제74화. 노년의 암살자 (3)
흑색구역의 술집은 푸줏간과 세공사의 집 사이의 골목 끝에 있었다. 여기도 중심부에 속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인적이 드물었다.
저벅저벅.
진창길 끝, 사내 하나가 엎드린 채 너부러져 있는 게 보였다. 죽었나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던 사내는 루빈과 쿠제가 가까이 다가가자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술집에 들어가려고?”
평범한 거지처럼 보였지만, 그 몰골은 이 무법지대에서도 유난히 처참했다.
동공이 있어야 할 곳은 파헤쳐져 공동뿐이었고, 코는 아무렇게나 뭉텅 잘렸다. 왼팔은 통째로 잃은 상태에다,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도 검지와 중지뿐이었다.
그래도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입장표를 내야겠지?”
문지기 사내는 오른손을 뻗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입장권을 꽂아 넣으라는 의미 같았다.
“아, 잠깐만.”
루빈이 입장권을 꽂아 넣으려는데, 문지기 사내가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그러더니 잘린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찍찍찍!
사내가 두 개뿐인 손가락으로 낚아챈 건 옆에서 돌아다니던 쥐였다.
사내는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그걸 단숨에 입에 넣었다.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눈동자가 없는 눈을 길게 찢으며, 와그작와그작 쥐를 씹어댔다.
“다시 입장표를 꽂아주겠나?”
두 장의 입장표가 두 손가락 사이에 꽂히자, 사내는 그걸 코에 갖다 댔다. 그리고 또 그걸 뺨에 쓱쓱 문질렀다. 눈이 없는 그만의 감별 방식인 것 같았다.
“세공사한테 받아 온 입장표군.”
“맞아.”
“음, 확실하군. 문을 열어드리지.”
사내는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옆에 드리워져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줄과 연결되어 있던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흑색탑에 들어가려는 거겠지?”
“응. 그런데?”
“오늘은 지원자들이 꽤 많은데… 내일 다시 오는 걸 추천하지. 너희까지 열 명이나 되거든.”
“그래? 잘됐네.”
루빈과 쿠제는 문지기의 조언을 무시하고 걸어 들어갔다. 루빈이 지나가자, 문지기는 남은 손가락으로 이를 쑤시며 하찮게 웃었다.
지원자가 열 명이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루빈도 모르지 않았다. 세공사의 설명 덕분에, 지원자 숫자에 따라 진입 시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고 있었다.
‘열 명 이상부터는 난투라고 했지. 차라리 그게 낫다.’
숫자가 적을 때는 무작위 일대일 토너먼트 방식으로 가려낸다고 했다. 쿠제와 붙지 않으려면 난투 방식이 나았다.
난투든 일대일 대결이든, 패배한다고 돌아서서 술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술집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을 뜻했다.
술집의 실내는 적막하며 괴괴했다. 가구나 소품이랄 건 없었다. 다만 사방의 선반 위에 여러 괴수들의 각종 부위가 담긴 술병이 진열되어 있었다. 오크 눈알, 트롤 발톱, 오우거 혀 등등.
“골렘이 있을 거라는 말이 맞았네요.”
그리고 실내 한가운데 골렘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보던 쿠제는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좀 이상한 골렘이긴 하지만.”
정상적으로 조립된 골렘이 아니었다. 보통 골렘은 마나가 고갈된 마나석을 심장 삼아 작동하는데, 이 골렘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마나석의 문제인지, 이걸 조립한 마법사의 실력 문제인지. 아니면 제작자의 악취미인지.
금속으로 된 신체가 절반을 이루고, 나머지 절반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살덩어리. 마치 괴수들의 여러 부위를 아무렇게나 찢어 붙인 모습이었다.
이렇게라도 작동하는 게 신기했지만.
쿠르르끼이… 쿠르르르끼이…….
괴상한 울림과 함께 골렘이 팔로 추정되는 신체를 움직였다. 그리고 바닥에 툭 튀어나와 있던 투툼한 고리에 손가락 하나를 턱 걸었다.
쿠우우우우.
고리를 들어 올리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에서 서늘하고 둔중한 바람 소리가 휭휭 올라왔다.
“이 아래부터가 흑색탑이라는 거군요.”
루빈과 쿠제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축축한 열기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거대한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계단의 끝, 선명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광장이 나왔다. 그 허름한 술집 아래 이런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다른 지원자들인가.’
원형극장처럼 가운데가 쑥 들어간 형태의 광장. 관객석으로 둘러싸인 검투 경기장과 흡사했다.
경기장 한가운데, 공터엔 여덟 명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앉아 있었다.
“…….”
참가자들은 공터로 걸어 내려오는 두 사람을 슬쩍 쳐다봤다.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그중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아침에 봤던 놈도 있네요.”
“아, 그 도끼 던진 놈?”
신입 사냥질을 하던 바로 그 사내였다. 놈도 루빈을 알아봤는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흑색구역에 들어온 지 3년째.
그동안 살아남았다는 건 앞으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지만, 도끼 사내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지상에서 개처럼 기어 다니며 살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드디어 오늘, 흑색탑에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사내는 큭큭큭,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아무래도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네.”
오늘 흑색구역에 들어온 비둘기 두 마리를 또 보게 되다니. 이는 보통 행운이 아니다.
“그새 비둘기 옷은 어디다 팔아먹었지?”
루빈이 무시하자 더욱 비아냥댔다.
“잘한 결정이야. 어차피 피범벅 될 거, 걸레로라도 쓰이면 다행이지.”
그때였다. 얼큰하게 날 선 목소리가 도끼 사내를 막아섰다.
“닥쳐. 종알대지 마.”
거친 음성은 루빈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나왔다.
도끼 사내가 낄낄 웃었다. 도끼를 머리 위로 휙휙 던지고 받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짐짓 여유로운 척을 했다.
“넌 뭐냐? 왜 얼굴을 가려? 얼굴에 종기라도 났냐?”
그 말처럼 사자 머리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건 모형으로 만든 가면이 아닌 진짜 사자였다. 마치 투구처럼 사자의 아가리를 벌려 시야만 확보한 모양새였다.
“사자 대가리는 어디서 난 거야? 누가 보면 진짠 줄 알겠네. 지리겠어, 아주.”
“거참, 어차피 10분 뒤면 대가리가 잘려 바닥을 기게 될 텐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지?”
그러면서 사자머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과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유롭게 근육을 풀었다.
벌컥벌컥.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통을 집어 들어 사자 아가리 속으로 들이붓듯 마셨다. 물인지 술인지 모를 것을 한참 마셔대곤, 참가자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시선은 루빈에게서 멈추었다. 목울대를 넘어오는 트림과 함께.
“끄허어어. 어이, 꼬맹이!”
“…….”
“저 도끼 새끼는 내 거니까, 탐내지 마라.”
사자머리의 호기로운 선언에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사자머리도 결국 루빈이나 쿠제 손에 죽게 될 테니.
‘열 명이 지원했을 때는 두 명만 살아서 흑색탑에 들어간다고 했지.’
그 두 명이 바로 루빈과 쿠제가 될 것이다.
쿠쿠쿠쿠쿵.
지원자들이 있는 땅이 흔들리며 움직였다. 원형 바닥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후! 시작됐군.”
도끼 사내가 과장되게 소리쳤다. 앉아 있던 다른 지원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무기를 쥐었다.
쿠우우우.
‘나선의 기둥이 있고, 바닥이 위아래를 오가도록 설계됐다. 거기에 두꺼운 방어 마법도 설치되어 있어.’
루빈은 고개를 들어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머무르던 지상을 바라봤다. 원형 바닥이 내려가면서 폭발적으로 방출된 마나가, 돔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와와와와와!”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서서히 드러나는 흑색탑의 진면목. 루빈은 천천히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쿠제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며 그 뒤에서 섰다.
“이, 이게 무슨…….”
비록 하늘도, 구름도, 태양도 없는 곳이지만 이곳은 거대도시나 다름없었다.
지하에 자리한 드넓은 도시. 수백 채의 집과 골목들. 그리고 갖가지 짐승들. 지상, 필리몬드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필리몬드보다 나았다. 온통 새하얀 필리몬드에 비해, 이곳은 다채로운 색깔이 넘쳐났으니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지하에 이런 도시가 있었다고? 어째서 9년 뒤에는 없었던 거지?’
이곳에서 수년을 활동했다. 적어도 흑색구역에서는 그의 정보망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있었다면 루빈이 몰랐을 리 없다.
‘생각해 보면, 위에 있던 놈들 중에서도 내가 얼굴을 아는 자가 한 명도 없었어.’
특히 푸줏간 주인이나 세공사. 9년 뒤에도 동일한 역할을 하는 자들이 있긴 했지만, 분명 오늘 보았던 자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지금으로부터 9년 안에, 도시 자체가 갈아엎어진다는 뜻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요릭과 암레트가 죽은 이후에 붕괴된 건가? 지상 역시 전부 청소해 버리고?’
평범한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때 눈앞으로 텔마흐의 모습이 겹쳐졌다.
‘텔마흐라면…….’
쿠쿠쿠쿠쿠쿵.
돌면서 하강하던 원형 무대가 바닥에 다다랐다. 열 명의 지원자는 모두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그들은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네 개 층의 관중석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와아아아!”
일제히 환호성이 울렸다.
이곳은 말 그대로 완벽한 도시 그 자체. 지상의 흑색구역의 구성원은 남자가 9할 넘는 비율이었지만, 지하의 흑색탑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들도 남자들만큼이나 많아서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는 것 같았다.
“필리몬드의 시장도 이 지하도시를 알까요?”
쿠제의 물음에 루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레트는 모를 것이다. 알 리가 없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를 보내지 않았겠지.’
9년 안에 세상에서 사라질 도시. 자신들의 미래도 모른 채 몸이 쓰러질 듯 광란의 웃음을 짓는 주민들을 보니,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도련님, 저기 보세요!”
“요릭이군.”
쿠제가 가리킨 건 관람석 상층부의 한쪽이었다. 그곳에 거구의 노인이 해골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차고, 뼈 무더기로 만들어진 권좌에 앉아 있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저 노인이 요릭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7성의 염동괴제라는 칭호로 일컬어지는 암레트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음화된 마나’를 다스리는 자였다.
‘6성의 네크로맨서.’
병약한 암레트에게서는 느껴볼 수 없는 혈기로 가득한 자였다.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난간 너머로 몸을 내밀고, 상층부의 도시 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왕의 모습.
잠시 후, 그가 손을 내저어 일대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모처럼의 볼거리가 완성됐도다.”
증폭된 요릭의 목소리가 원형경기장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난투를 관람하는 건 3개월 만이군. 그간 잔챙이들 소꿉장난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귓가로 내려앉은 커다란 목소리. 모두가 요릭에게 집중하는 가운데, 루빈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관중석 곳곳을 훑어봤다.
‘킬리언. 어디에 있는 거지?’
흑색구역의 암살자는 분명 여기에 와 있을 것이다. 천여 명이 들어찬 원형경기장 안 어딘가에.
암연이 느껴졌다. 이건 루빈과 쿠제가 뿜어내는 암연이 아니었다.
그보다 견고하고 강한 암연. 공격성이 담겨 있지 않지만, 담는다면 루빈조차 몸의 중심을 잃을 정도의 위력이다.
킬리언은 분명, 의도적으로 암연을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 앉아 있는지 추적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암연은 온 사방에서 느껴졌다.
‘저긴가?’
루빈은 요릭 뒤편에서 그를 보좌하듯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중 맨 앞. 요릭이 만들어낸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가 보였다. 킬리언이 언데드란 소린 듣지 못했으니, 나머지 둘 중 하나겠지.
‘누굴까.’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 둘 중 하나일 텐데.
그때,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뭐라고?”
일장 연설을 이어가던 요릭이 대뜸 말을 멈추었다.
그제야 루빈은 요릭의 서늘한 시선이 지원자들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루빈 쪽은 아니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요릭의 물음이 향한 곳은 사자머리. 요릭이 손가락을 튕기자, 사자머리의 목소리도 크게 증폭되었다.
“제안할 게 있다고 했다!”
“허, 짐에게 제안을 하겠다고?”
관중들은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입을 다물었다. 경기장 한가운데서 요릭 쪽으로 몇 걸음 나아가는 사자머리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술이 담긴 수통을 사자 아가리 속에 퍼부을 뿐.
돌발 상황에 루빈과 쿠제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