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83)
암살검가 로이넨-83화(83/258)
제83화. 사형수 추첨 (3)
사삿.
루빈의 몸이 곧바로 튀어 나갔다. 마법사와의 싸움에서 시간을 끄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프킨처럼 공격 술식에 능한 마법사가 상대라면 더더욱.
쿠쿠쿠쿵.
그 순간, 쇄도하는 루빈 앞으로 빙벽이 나타났다. 이번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는 건 ‘빙벽’의 역순 휘식도 가능하다는 뜻.
‘역시 4성 이상이라는 거군.’
생각 이상이다. 단순히 글레이튼의 팔찌 하나로 흑색탑에 있던 마법사들을 섬멸한 게 아니라는 건가.
쿠쿠쿠쿵. 쿠쿠쿠쿵. 쿠쿠쿠쿠쿵.
프킨이 빠르게 휘식을 이어나가자, 빙벽이 연달아 솟구쳐 올랐다. 루빈을 가운데 두고, 빙벽은 순식간에 사방형을 구획했다.
쿠쿠쿠쿵.
마지막 빙벽이 허공을 찢고 떨어지면서, 마치 뚜껑처럼 위쪽을 틀어막았다.
애초부터 치밀하게 구상된 전략. 프킨은 태연하게 팔짱을 꼈다. 그리고 빙벽 안에 갇혀 있는 루빈과 눈을 맞추며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게 놀아볼까?”
그때부터 프킨의 연쇄공격이 시작됐다.
처음은 가장 기초적인 빙격살.
스스스스스.
얼음의 내벽이 일그러지면서 얼음화살이 수십 발 생성됐다. 그것들은 일제히 루빈을 향해 날아갔다.
피융!
“흐으으음.”
프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벽에 갇혀 있던 루빈이 빙격살의 절반은 쳐냈고, 절반은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공격은 빙벽창.
빙격살의 상위 술식이자 빙벽의 호환 술식. 내벽이 일그러지면서 단단하고 곧은 선이 중앙을 향해 솟아나는 식이었다.
빙벽으로 적을 가둬놓는 데 성공한다면 당연히 시전해야 하는 술식이었다.
빙벽창은 화살처럼 쳐내는 것으로는 방어할 수 없었다. 쳐내도 쳐내도 계속 새롭게 솟아났으니까.
파박. 파박. 파박!
“제길.”
루빈은 빙벽창이 솟아나는 진원지를 찾아내 깨부쉈다. 빙벽의 일부가 헐려 나가자, 더는 얼음창이 솟아나지 않았다.
“쥐새끼, 빙벽창의 시작점을 어떻게 알았지?”
빙벽창의 시작점은 오직 시전 마법사가 정하는 것이다. 시전 마법사가 아닌데 그걸 알아낸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핏빛서리가 아니었다면.’
루빈은 검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가 프킨의 공격들을 상쇄할 수 있는 이유. 단순히 암연으로 적의 공격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던 게 아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미리 예측하는 것과는 달랐다
정확한 예측. 핏빛서리의 특수한 능력 때문이었다.
빙벽 내부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루빈의 목숨을 노릴 때마다 핏빛서리는 루빈에게 다음 순서를 알려주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프킨의 진을 빼볼까.’
이후로 프킨의 공격 술식이 연거푸 이어졌다. 프킨은 점점 공격 술식의 등위를 높여갔다.
빙격살에서 시작했던 공격 술식이 어느덧 중위마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루빈을 뚫어내는 데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지쳤군.’
루빈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프킨의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반복되는 공격 술식과 빠른 체력 저하.
아마 프킨은 삼휘의 마법사일 터. 루빈은 그렇게 예상했다.
삼휘의 마법사는 공격 술식에 특화된 자들이었고, 모휘나 원휘 마법사들보다 마법 시전의 속도가 빠르기도 했다.
그러나 단점도 확실했다. 상대적으로 마나의 환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마나는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빙벽으로 가두는 방식까지는 주효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며 공격 술식을 한 단계씩 높이는 건 실수.
루빈을 가두자마자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술식을 펼쳤어야 했다.
피이이이이이.
프킨의 머리칼이 후두둑 떠올랐다.
“이걸 너 같은 꼬마한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쿠쿠쿠쿠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루빈을 가둔 빙벽이 서서히 변형되기 시작했다.
‘빙벽압’. 빙벽을 펼친 뒤 이어나가는 호환 술식 중에서는 최고의 마법.
또, 지금으로서 프킨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빙벽을 변형시켜 압축시키는 것이었다.
“나를 터뜨려 죽이겠다는 거군.”
사방의 빙벽이 빠르게 밀려 들어왔다. 특별관람석의 땅이 뜯기고, 사방형이었던 빙벽은 이제 구형으로 바뀌었다.
쿠쿠쿠쿠.
구형의 얼음이 공중에 떠올랐다.
프킨의 두 손이 점점 모인다. 그와 동시에, 구형에 갇힌 루빈의 공간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는 끝이다, 이 쥐새끼야!”
빠르게 소진된 마나 때문에 그의 두 눈은 순식간에 충혈됐고, 입술은 심하게 떨렸다.
그렇게 프킨의 두 손이 맞잡으려는 찰나.
“……!”
쩌어억.
계속 작아지던 구형의 얼음이 갑자기 압축을 멈추었다. 그리고 안쪽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다음 순간, 맞잡기 직전이었던 프킨의 두 손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면서 허공에 떠올랐던 구형의 얼음도 산산조각 났다.
“하아, 하아.”
바닥에 쓰러진 프킨이 몸을 들썩였다. 그런 그의 맞은편에, 얼음을 깨고 나온 루빈이 서 있었다.
‘얼음이라고 모두 같은 얼음이 아니지.’
좁혀오는 프킨의 얼음 안에서 루빈이 했던 대처는 하나밖에 없었다. 흑칠의 오러가 발현하는 핏빛서리. 그것을 구형의 내부에 꽂았던 것.
얼음과 얼음의 격돌로 보이겠지만, 전혀 달랐다. 그중 하나가 만 년 동안 깨지지 않은 얼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스스스스스.
잠잠해지는 핏빛서리의 얼음 조각. 루빈은 눈이 충혈됐을 뿐만 아니라 입술까지 시퍼레진 프킨을 바라봤다.
‘전략을 바꿨군.’
프킨의 새로운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승리를 위한 마법은 아니다. 일단 시간을 벌고 마나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공격 술식의 대부분은 얼음계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던 프킨이었다. 그래서 마법학교에 있을 때부터 기암괴석을 이용한 방어 술식을 하나 터득해 놓았다.
크드득. 크드득. 크드득.
마법이 펼쳐지면서 프킨의 심장 부근에서부터 돌덩이가 하나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기암갑(奇巖鉀)’. 루빈도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방어 마법이 서려 있는 바위가 갑옷처럼 몸을 감싸는 방어 술식. 핏빛서리를 버텨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기암갑이 완성되면 루빈으로서도 껄끄러워진다. 여기에서 더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프킨을 당황시킬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상대방이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면 이쪽에서도 변칙적인 전략을 내세우는 것이다.
“……!”
프킨의 눈이 커다래졌다.
“너… 너! 설마 마법사였다고?”
프킨이 놀라 소리쳤다. 그 말처럼, 지금 루빈의 얼굴 앞쪽으로 마나선이 나타나더니 휘식이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저 휘식…….
글레이튼 팔찌의 권능으로 보이는 건가? 아니면 저 꼬마 놈이 휘식을 내면화하지 못할 정도로 수준 이하라는 건가?
프킨은 두 가지 경우에서 어느 쪽으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휘식이지?’
휘식에 관한 지식만큼은 사전을 통째로 복사했다 할 정도로 자신 있는 그였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헤집어도 처음 보는 휘식이었다.
“원휘… 네가 정말 원휘의 마법사란 말이냐!”
프킨이 루빈이 만들어낸 휘식을 해독하느라 망설이는 그 찰나, 빠르게 프킨의 몸을 에워싸던 기암갑도 잠시 멈추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루빈은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다만, 마법에 의한 공격은 아니었다.
움직임이 얼마나 빨랐는지. 루빈이 그었던 마나선이 아직도 허공에 머무를 정도. 몸의 잔상을 남기며 프킨에게 다가들었다.
“크헉!”
프킨은 신음과 함께 자신의 왼팔이 잘려 나가는 고통에 빠졌다.
“나, 마법사 아닌데?”
프킨의 잘린 왼팔을 태연하게 받아 든 루빈.
휘식이 아니었다. 마나선으로 무언가를 그리긴 했지만, 그저 간단한 눈속임을 위한 것이었을 뿐.
사실, 마법을 발동시키는 휘식은 알맞은 도형을 그려 넣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도형을 그리는 마나선에 마나 주입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마법이 시전되는 것이다.
클로이가 마나와의 조화를 도와준 덕분에 마나선을 그리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현재의 루빈으로서는 마법 시전이 불가능했다.
‘글레이튼의 팔찌에 대한 과신.’
팔찌만 있으면 어떤 마법사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프킨이었으니까. 그 신념을 역이용했던 것이다.
“팔찌까지 갑옷 안으로 숨어버리면 내가 곤란하지.”
“그, 글레이튼의 팔찌를 아, 알고 있었어?”
루빈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 팔찌는 네가 지니고 있기엔 아까워.”
한쪽 팔이 잘린 채로, 프킨은 루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 도망쳐야 돼!’
움직일수록 잘려 나간 부위가 뜨거워지면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내렸다.
시전자가 흔들리면서 기암갑도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프킨은 남은 마나를 동원해 빙벽을 세우려고 했지만.
뒤편에 있을 줄 알았던 루빈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푸슉!
마지막은 간결했다. 루빈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프킨의 심장에 박혀 들어갔다.
스스스스스.
프킨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몸을 뚫고 들어온 검신에서 서리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전해지는 괴이한 느낌.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느낌.
착각인가?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가슴팍의 핏줄을 타고 올라간 결빙은 이윽고 프킨의 눈동자마저 투명하게 얼려 버렸다.
“후우.”
검을 빼낸 뒤 루빈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얼어붙은 프킨을 밀자, 뒤로 기울어진 마법사는 와장창 깨져 버렸다.
얼음의 마법사다운 최후라고 해야 하나.
프킨을 죽인 뒤, 루빈은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음화된 마나가 분출되고 있었다. 한곳에 결집된 채로 통제되고 있던 것이 풀려 나온 것이다.
‘요릭이 죽었다는 뜻이겠지.’
루빈은 북쪽을 바라봤다. 요릭의 저택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요릭이 만들었던 인공의 태양이 사라져, 이제는 정말 지하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북쪽에서부터 밀려오는 어둠.
어둠이 파도처럼 지나갈 때마다 흑색탑의 건물들이 빠르게 쇠락해 갔다.
건물만이 아니었다. 루빈이 시야에는 혼란 속에 골목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마저 어둠의 영향에 들어가는 게 보였다.
“끄어어억!”
이성을 지닌 한 명의 주민이었으나,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흑색탑 주민의 10분의 9는 실제 사람이 아니었다. 요릭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영술. 죽은 자를 되살리고 거기에 집어넣었던 음화된 영혼.
주인이 죽으면서, 그것들이 이제 괴수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