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91)
암살검가 로이넨-91화(91/258)
제91화. 카포티니 정착 (1)
마법도시 카포티니의 후미진 골목 술집.
이 술집에는 카포티니 시민들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지하에 칙명부의 비밀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흐음…….”
왁자지껄한 술집 한쪽에서 조그맣게 침음을 내뱉는 남자. 담뱃대를 물고 있다가, 이윽고 술을 홀짝였다.
로젠탈러. 칙명부의 관리요원이자, 한때는 칙명부의 신진기예로 통했던 남자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칙명부의 요직에 올랐어야 했다. 그런 그가 카포티니로 내동댕이쳐진 건 황궁의 정치 여파 때문이었다.
“로젠탈러, 카포티니로 가라.”
“갑자기 카포티니라뇨? 이번엔 제가 희생양인 겁니까?”
로젠탈러의 머릿속에 칙명부 수장 룰포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룰포의 충직한 개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카포티니 발령 조치를 꼬리 자르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네 앞날을 다져주는 걸로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네?”
“5년 안에 마법사 사회가 크게 요동칠 일이 벌어질 거다. 바로 카포티니에서 말이지. 네가 할 일은, 우리 칙명부 손으로 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다른 부서보다 앞서서.”
칙명부는 황제의 직속 기관이자, 황궁의 은밀한 정치 세력이었다. 하지만 칙명부가 그 위력을 발휘하려면 꼭 필요한 연계 조직이 있었다. 바로 비밀 속에 감춰져 있는 암살검가.
“일단 대외적으로 너는 직책이 강등될 거다. 말단 관리요원으로 말이야.”
“예?”
“너무 고위급이면 운신이 힘든 법이지. 네가 관리요원 정도로 내려앉아야 루빈을 전담할 수 있다.”
“루빈이라면…….”
“암살검가 가주의 막내아들이다. 이번에 카포티니를 위장별채로 삼은 놈이지.”
프스슷.
거기까지 떠올린 로젠탈러는 담배를 꺼버렸다. 그의 한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칙명부 통신석의 전달 사항이 옮겨 적힌 종이였다.
암레트의 반란 모의가 정리된 필리몬드. 종이에는 이제 도시의 축제가 끝났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그와 함께, 로젠탈러가 담당하게 될 암살검가 자제가 오늘 오전에 카포티니로 출발했다는 사실도.
“흐음…….”
로젠탈러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밖 날씨가 좋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 카포티니의 전경이 보였다. 특히, 카포티니 마법학교가 자리 잡은 ‘마탑지구’가 그 어느 때보다 훤히 보였다.
* * *
일주일간의 축제가 끝나고, 필리몬드가 다시 얌전한 백색도시의 분위기로 돌아갔을 때.
가주의 명에 따라 축제 기간을 모두 지킨 루빈은 카포티니로 향하는 뱃길에 올랐다.
쁘후우우우.
출항을 알리는 블루캣호의 뿔나팔 소리와 함께 5일간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서쪽 항로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잔잔하기로 유명한 해역인 데다, 기착지를 들를 필요가 없을 만큼 식량이 풍부하기도 했다.
블루캣호는 쾌속선의 면모를 보여주며 밤낮없이 나아갔다.
“루든 도련님, 잠시 후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객실 밖에서 울리는 와락의 목소리.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와락이 알려주기 전부터 카포티니가 가까워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세 번째 환에 담긴 마나가 카포티니의 거대 마나석에 조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나를 이루는 작은 알갱이들이 산발적으로 늘어났고, 몸 상태가 한결 가뿐해졌다.
“왜 그래, 와락?”
루빈이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와락이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아, 지금 보니 도련님의 키가 부쩍 커진 것 같아서요. 안 그런가요, 쿠제 님?”
옆에 서 있다 질문을 받은 쿠제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성장기이시니, 그런 거겠지?”
“아, 성장기…….”
“너희가 맛보게 해준 생선 요리가 아주 일품이기도 했고 말이야.”
“…이제는 그런 요리를 해드릴 수 없다니, 아쉽네요.”
쿠제가 둘러대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와락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말했다. 헤어진다는 아쉬움. 그건 와락뿐만이 아니었다. 복도 끝에 서 있는 아늑의 표정도 어두웠다.
블루캣호에 대한 권리를 보전시켜 준 은인이자, 거혈인이 누려보기 힘든 필리몬드의 축제를 경험케 해준 귀족.
거혈인 남매에게 루빈 일행이 각별한 건 당연했다.
“블루캣호 선장은 아직 안 정해진 거야?”
“잿빛항구로 가면서 붙으려고요.”
“이번엔 해상전이죠.”
헤어진다는 아쉬움도 잠시, 와락과 아늑 사이에 도전적인 눈빛이 오갔다. 한 번도 승부를 가려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두 남매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패배한 사람은 깨끗하게 거혈족여단에 입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저는 누나를 제 배의 선원으로 쓰려 했는데 말이죠. 누나가 먼저 그렇게 제안하더군요.”
“거혈족여단이라.”
“루든 도련님께서는 편안히 귀족의 삶을 누리십시오. 여기 아늑 누나가 제국의 안위를 지킬 테니까요.”
“후… 제가 할 소리를 와락이 하네요. 동생이 수월하게 입대하려면 일단 글자부터 알려줘야 할 텐데.”
두 거혈인의 무투 실력이라면 거혈족여단에 입대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터. 둘 중 하나를 적으로 마주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도 있을 수 있었다.
황제와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면, 그 전장엔 거혈족여단이 빠지진 않을 테니까.
‘언젠가 바로잡아야겠군. 당장 급한 일은 아니야.’
그때였다.
쁘후우우우우.
바깥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블루캣호가 한 차례 뒤뚱거리는가 싶더니, 항속에 변화가 생겼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카포티니의 부두에서 저희 배를 끌어당기는 거니까요.”
“카포티니는 마법사들의 도시잖아요. 그래서 부둣가에서 방향타를 놔두면, 마법으로 저희를 끌어당기는 겁니다.”
남매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그들은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 말대로, 작동을 멈춘 블루캣호가 저절로 카포티니의 부둣가로 다가서고 있었다.
“3등귀족, 루든 포이넨과 그 하인 쿠제?”
루빈이 블루캣호에서 막 내려왔을 때였다. 누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구에다 날카로운 눈매, 눈이 충혈된 게 특징인 남자. 그 옆에는 키가 조그맣고 뚱뚱한 남자.
루빈은 이들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칙명부의 관리요원들.’
암살검가와 연결되어 있는 칙명부. 그중 관리요원들은 도시에서 활동하는 암살자들에게 칙명을 전하거나 그들의 위장 신분을 마련해 주는 말단직이었다.
위장별채에서 살아가는 암살검가 자제들을 관리하는 것도 그들의 역할.
“나는 로젠탈러라고 한다. 그리고 이쪽은 날 보조하기 위해 따라온 키슬링.”
간략하게 자신들을 소개한 로젠탈러는 블루캣호를 가리켰다.
“우리끼리 이야기하기 전에, 저 배부터 돌려보내야겠는데.”
이미 칙명부 선에서 지시가 내려져 있던 것인지, 로젠탈러의 말이 있자마자 블루캣호의 선미가 방향을 바꾸었다.
거혈인의 배는 승객 없이는 바다로 나갈 수 없는 법. 그래서 인근 항구도시에 들러 잿빛항구로 가는 승객을 태워 가기로 한 것이다.
쁘후우우우우.
부둣가에 뿔나팔 소리가 다시 울리며 블루캣호가 서서히 멀어졌다.
루빈과 쿠제가 멀어지는 거혈인 남매를 바라봤다. 갑판 위에 머쓱하게 서 있던 둘은 이대로 작별한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일단 우리를 따라오도록.”
로젠탈러가 고갯짓을 하면서 말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도시 검문소를 거쳐 가는 겁니까?”
“명색이 본가의 도련님이라시는데, 그런 수고는 건너뛰게 해줘야지.”
“…….”
쿠제는 로젠탈러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크로키슨 가문의 가신으로서 여러 임무를 치렀던 쿠제였기에 칙명부 관리요원을 마주한 경험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리 칙명부라 할지라도, 암살검가의 암살자를 저리 하대할 수는 없는 것인데. 더구나 루빈이 암살검가 도련님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루빈의 생각은 달랐다.
‘이 정도면 칙명부 내부에서 영향력 좀 있던 자일 거야.’
옆에 따라나선 보조요원 키슬링은 신출내기가 맞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만 대동한 놈이겠지.
그러나 로젠탈러는 달랐다. 최소 간부급.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인의 풍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관리요원의 수준이 1성에 불과하다면, 이자는 최소한 4성.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자는 아니었다.
“물의 색깔이 영롱하네요.”
부둣가를 따라 걷던 중, 쿠제가 감탄에 로젠탈러가 피식 웃었다.
“카포티니엔 처음인가?”
“처음입니다.”
“거기 도련님도?”
루빈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회귀 전에 잠깐 들러봤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정말로 처음인 건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의 도시, 카포티니.
대륙에는 거대 마나석 지대에 세워진 마법도시가 여럿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 곳은 당연히 ‘창공의 섬’이라 불리는 아메릭마나. 바로 위더스푼 가문의 영지였다.
아메릭마나가 초대형 마법도시라면, 카포티니는 중소형 마법도시였다.
‘그래도 유명세만 보자면 여기도 아메릭마나 못지않지.’
도시가 품은 독특한 정경 때문이었다.
“올라타.”
발걸음을 멈춘 로젠탈러가 고갯짓으로 가리킨 건 조그마한 곤돌라였다. 이는 수상도시 카포티니의 이동수단으로 유명했다.
카포티니 마법학교에서 특수 제작한 곤돌라는, 인력이 아닌 마법에 의해 움직였다. 곤돌라 후미에 마나석 일부가 내장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카포티니에는 뱃사공이 없었다.
도로에서 마차를 구경할 수 없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도시 구석구석 이동하는 데엔 마법 곤돌라와 두 다리면 충분했다. 그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스슷, 스슷, 스슷.
루빈과 쿠제, 로젠탈러와 키슬링 전부 올라타자, 안정적인 속도로 나아가는 곤돌라. 이윽고 단색이었던 수로에 영롱하고 다채로운 빛깔이 드러나며, 물결을 따라 풀려 나갔다.
“저기가 뭔지 알아? 바로 마탑지구라고 하는 곳이다.”
로젠탈러는 카포티니 중심부를 가리켰다. 마탑지구, 말 그대로 마탑들이 기둥들처럼 줄줄이 세워져 있는 구역이었다.
카포티니의 모든 수로는 그곳을 중심으로 해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마탑들끼리는 공중다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가본 적은 없어. 왜 그런지 아나?”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마나가 있어야 하는 건 기본. 거기에 카포티니 마법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만이 마탑에 출입할 수 있거든.”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탑지구는 도시의 행정적인 시설이 모두 모인 곳이었고, 카포티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삼휘 마법 계열에 관한 유산이 총망라한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칙명부에는 카포티니 내부 정보에 구멍이 많은 게 현실이지.”
대화 주제가 조금씩 긴밀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쿠제가 주변을 돌아보아도 이쪽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제야 쿠제는 곤돌라에 방음 마법이 설계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칙명부는 뭔가를 바라고 있어. 그것도 나를 통해서 실현시키려는 무언가가.’
루빈은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래서 용건이 정확히 뭐지?”
그러자 로젠탈러는 흥미로워하며 웃었다.
“흠, 아무래도 임무라고 해야겠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로젠탈러. 저와 도련님은 가문의 방식에 따라 교육을 위해 이 도시를 선택했습니다. 임무는 독립 이후에나 할 수 있고요.”
“자네들 입장이야 나도 잘 알아, 로이넨서 양반. 하지만 우리 입장도 있지. 우리가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 저기 마법학교 안에 있다는 게 문제야.”
“그러면 어디 마법가문 자제나 섭외하십…….”
그때, 루빈이 손을 내저어 쿠제의 말을 멈췄다.
“계속 말해봐. 로젠탈러.”
“물론 우리도 마법가문 자제를 섭외하고 싶지만, 그 애들은 누군가를 속이거나 위기 상황을 능동적으로 벗어나는 재능은 한참 부족하거든. 하지만 암살검가 자제라면 또 다르지.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치른 도련님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결론은, 나보고 마법학교에 들어가라는 뜻인가?”
로젠탈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좀 무리가 되려나?”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오히려 루빈으로서도 바라던 일이었으니까.
애초에 페르 로렌치니를 제거하기 위해 마법학교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루빈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칙명부의 존재였다.
칙명부에겐 마법학교에 들어가려는 암살검가 자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터. 그런데 이렇게 칙명부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오다니.
그들이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든 간에 아무 상관 없다. 그건 그저 명분일 뿐, 루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러고 싶어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마법생도로 입학하기 위한 필수 조건. 그게 충족하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도 입학은커녕 잠입조차 할 수 없을 거다. 그러자, 로제탈러가 씩 웃었다.
”바로 그거 때문에 키슬링을 데려온 거야.”
그때, 그들이 타고 있는 곤돌라가 스르륵 멈추었다. 로젠탈러는 내리라는 의미로 고갯짓을 했다.
골목 안쪽으로, 그들이 들르게 될 위장별채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