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wordsman’s Stream RAW novel - Chapter (1)
검술 고인물의 게임방송-1화(1/431)
프롤로그
가끔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원치도 않은데 말이다.
“아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소매에 붉은 꽃이 수 놓인 도포가 눈에 들어왔다.
도포는 하늘거리지만 정갈했고 중년인의 미소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장난기가 가득했다.
야밤의 고요 속.
중년인이 사슬에 묶인 아이를 향해 다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이는 바닥을 짚으며 뒤로 주춤거렸다.
손바닥에 맞닿는 거친 돌바닥은 차가웠다.
만월에만 열리는 암시장.
그 속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위치에 있는 상품이 바로 아이였다.
“하하하. 걱정 말거라. 나는 너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왔단다.”
중년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은 채로 느긋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그의 앞에 서 있는 자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중년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를 본 중년인은 연속된 매질 때문에 눈을 피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돌려 싸늘한 주검이 된 암상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중년인에게는 흐릿하게만 보였던 눈동자는 손 너머의 다른 것을 선명히 담고 있었다.
뻗은 손도 인자한 미소도 붉은 매화도 아닌 중년인의 허리춤에 달린 검.
아이는 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가 검을 바라보는 그 아이였음을 자각한 순간.
서준은 잠에서 깼다.
“아…….”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오만상이 자연스레 지어진다.
비단 아침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꿈에 나오는 건 오랜만인가.”
진서준.
그는 왜, 그리고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나가던 도사에게 구원받은 신동의 과거를, 촉망받고 시샘 받는 후기지수의 노력을, 정파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의 책임을 엿본 것이다.
그리고 전생의 그는.
검신(劍神).
그렇게 불렸다.
“전생이 검신이면 뭐하냐고.”
서준은 피식 웃으며 커튼을 걷고 침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물세 살의 가을.
평소와 같은 일상의 시작이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띠링.
한 문자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1화
전생을 기억하는 건 딱히 좋은 일은 아니다.
“야, 강의 끝나고 캡슐방 갈래?”
“오늘도? 어제도 가놓고?”
“응. 그래서 대답은?”
“당연히 가야지. 뭘 묻냐.”
전생을 기억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인 서준은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속삭이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강의가 끝났다.
언제나 그렇듯 학생들이 가방 싸매고 일어나는 소리에 교수님의 뒷말이 묻혔다.
서준도 느긋하게 짐을 정리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야야. 늦으면 캡슐 자리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무슨 중고등학생이냐? 학교 끝나고 늦으면 자리 없게.”
“그러면?”
“여기서 자리는 빨리 가든 늦게 가든 항상 없거든. 그러니 여유를 가져.”
그렇게 인기가 많나.
하긴.
서준은 7년 전을 생각하면서 수긍했다.
그때도 캡슐방 자리잡는 건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캡슐의 인기는 매년 높아지고 있으니……. 아니다.’
서준은 관심을 끄고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자 그의 동거인이자 사실상 유일한 친구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야, 왔냐? 이거 올스타전인데 같이 볼래?”
이름은 김태우.
서준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평균 시청자 1만 명대를 유지하는 7년 차 베테랑 스트리머기도 했다.
태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자고 집에 가서 방송하는 생활을 했었다.
그 덕에 시험 기간만 되면 집에서 쫓겨났고, 서준의 방에서 신세를 졌던 걸 계기로 졸업하고 서준도 독립하게 되면서 같이 살게 되었다.
“됐어. 너 혼자 봐라. 그거 재미없어.”
서준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재미? 니가 재미를 아냐?”
“뭐 뻔한 거 아니겠냐.”
“그래. 뻔하지. 해보면 사실 가상현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낄 수도 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말이야 서준아.”
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너 캡슐 안 해봤잖아. 이 새끼야. 같이 하자고 한 번만이라도 들어오기만이라도 해보라고 해도 계속 내빼던 놈이!”
가상현실이란 다른 세계로 전신이 빠질 수 있는 기기.
캡슐.
세상은 몇 년째 이 캡슐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캡슐은 현실의 명소를 구현해 여유가 안 나는 바쁜 현대인들의 여행 욕구를 채워주고.
쇼핑, 교육, 의료와 자동차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 가상현실을 접목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분야가 따로 있었으니 역시나 오락거리, 즉 게임이었다.
압도적인 현실감에 화려한 스킬이 첨가된 게임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캡슐 게임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지금 태우가 보는 올스타전도 유명 가상현실 게임 ‘더 리그’의 이벤트 매치였다.
“옛날에 캡슐 게임 해봤다니깐 그러네.”
“그럼, 지금은 왜 안 하는데.”
“가상현실 위험하잖아.”
“뭐가 위험해. 지금까지 캡슐에서 쓰러진 사람이 딱 한 명이래. 전 세계에서 딱 한 명!”
그 말을 들은 서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냐? 그건 그렇고. 이따가 저녁 먹으러 가자. 엄마가 갈비찜 하셨대.”
“갈비찜은 못 참지.”
태우가 헤벌쭉 웃었다.
단순한 친구다.
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 * *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서준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 검색창을 클릭했다.
태우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캡슐, 가상현실, 사고.
서준은 세 개의 단어를 조합해 인터넷을 뒤졌고.
‘진짜 하나였네.’
7년 전, 16살의 학생이 캡슐을 하다 쓰러졌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내용을 굳이 클릭해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
에휴.
한숨을 내쉰 서준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게임을 왜 했더라?’
그러니깐.
전생을 기억하는 건 딱히 좋은 게 아니다.
전생이 저기 태평성대에 태어나서 벼를 추수하며 산 농민이었다면 모를까.
길 가다 무도회장의 남녀처럼 눈만 맞아도 바로 불같은 칼춤을 추는 야만인들이 사는 곳, 그 중심이라 불릴만한 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야만스러웠지.’
전생의 삶에서 죽음은 그림자보다도 가까이 있었고.
상실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조약돌보다도 흔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는 기억의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게 아니란 증거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 16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가상현실에 첫발을 디뎠고 그 안에서 검을 쥐었다.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색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손의 감촉.
동작.
검로.
뇌리에서 계속해서 맴돌던 움직임을 따라 검을 휘둘렀고.
그날 기억이 허구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가상현실 게임은 꽤나 즐겁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가상현실을 즐기던 서준은 채 1년도 하지 못하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캡슐 안에서 말이다.
원인은 선천적으로 낮은 동화율.
동화율은 가상현실 세계를 얼마나 현실과 같이 인지하는가에 대한 수치인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가상현실에 적응을 더 잘하며, 피로도가 낮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서준 님의 동화율이 너무 낮아서 링크가 불안정해요.’
서준이 연구소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뒤 들은 말이었다.
‘얼마나 낮나요?’
‘10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이 어지러웠을 텐데 이런 상태로 어떻게 게임을 하셨는지…….’
동화율 10.
평균이 60인 점과 그를 제외한 가장 낮은 수치는 42인 점을 고려할 때 서준의 동화율은 지극히 낮은 수치였다.
‘앞으로 가상현실에 더 들어가신다면 아마…… 뇌가 위험할 거예요. 충전기와 전자 기기의 전압이 안 맞으면 기기의 회로가 손상되듯이, 서준 님 뇌가 가상현실이랑 잘 안 맞기 때문에 심각한 손상이 갈 수가 있어요…….’
특이하게 전생을 기억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체질이 별난 것일까.
그렇게 서준은 전 세계에서 캡슐에서 쓰러진 단 한 명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는 서준 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상현실 서비스 제공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쓰러진 경우도, 서비스 중지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당연한 결정이었고 서준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게임 못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금 드는 이 감정은.
아쉬움일까.
아니면.
“……모르겠네.”
서준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컴퓨터를 끄는 순간.
띠링.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고 이를 확인한 서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
[서준 님 안녕하세요. Surface 코리아 R&D센터 소장 오지혜입니다. 혹시 시간 날 때 오랜만에 저희 연구소에 한 번 방문해 주시겠어요?]* * *
다음 날.
지이잉.
캡슐의 덮개가 올라가고 서준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가상현실에서 몸을 풀어보니깐 어땠어요?”
가상현실에서 막 나온 탓에 약간은 어지러운 서준에게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왔다.
오지혜.
과거 서준을 검사하며 인연을 쌓은 연구소장이었다.
서준은 잠시 손을 쥐락펴락한 뒤 그녀에게 감상을 말해줬다.
“괜찮네요. 확실히 옛날에 했을 때보단 덜 어지러운 것 같아요.”
그녀가 서준을 연구소에 초대한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서준이 뇌에 손상이 없이 가상현실에 다이브를 할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려 7년 만에!
“후후. 그렇죠? 방금 들어갔던 신형 캡슐은 낮은 동화율을 가진 사람들은 최대한 이질감 없게. 높은 동화율을 가진 사람들은 최대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만들어진 모델이에요!”
“그렇군요.”
“네. 이쪽으로 와 주시겠어요?”
그녀는 본인의 책상 쪽으로 서준을 데려갔다.
그리고 서준을 옆자리에 앉혔다.
“여기 이 그래프를 보시면…….”
뭐 그래프를 봐도 이해는 못 하지만, 그녀의 설명은 이러했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 넘지 않는다면 캡슐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
하지만 조건이 제한 시간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안타깝게도 이번에 나오는 신형 캡슐만 안전할 거예요. 특별히 가격은 고려도 안 하고 오로지 성능만 미친 듯이 끌어올린 물건이라서요.”
그렇게 만든 물건이어야 겨우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서준은 씁쓸히 웃으며 가격을 물었다.
“얼마인가요?”
가격은 고려도 하지 않았단 그녀의 말이 신경 쓰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캡슐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게 말이죠……. 1억이에요. 하하, 역시 가격이 좀 높죠?”
높다.
저가형 모델은 수백만 원이면 사고 고급 모델도 3천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1억이라.’
전문가용 물건, 이를테면 0.1초에 승패가 갈리는 프로 선수들이라면 이만한 투자 가치가 있겠지만.
“어떻게 하시겠어요?”
고작해야 취미를 위해 지불하기에는 비싸다고 서준은 생각했다.
역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하려는 순간 오지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억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금액이긴 하죠. 그래서 말인데, 혹시 트래블에서 열리는 더 리그 대회를 아시나요?”
리그 오브 스트리밍.
줄여서 리오스.
스트리머들이 더 리그라는 게임에서 경쟁하는 사실상 프로리그를 제외한 대회 중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대회다.
서준은 태우 덕분에 얕게는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이번에 서피스가 후원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승 상품에 이번 신형 캡슐이 추가되었고요.”
“아…….”
“만약 서준 님이 대회에 참가하신다고 하면 특별히 대회가 끝날 때까지 캡슐을 무료로 대여해드릴게요.”
서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따고 갚으라는 거잖아?
스트리머.
당장 이 직업을 가진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직업이었다.
“대신 프로 게이머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프로는 밥만 먹고 캡슐에서 살다시피 해서 매달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죠. 만약 서준 님이 그런 직업을 갖게 된다면 뇌가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이것보다 성능이 좋은 캡슐이 나오더라도요.”
그런 건가.
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웃으며 가장 무난한 대답을 골랐다.
“감사합니다. 생각해볼게요.”
* * *
“소장님 왜 그러신 거예요.”
서준이 떠나고 남은 연구실.
뒤에서 서준과 오지혜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일반 연구원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오지혜는 일단 모른 체를 했지만.
“무료 대여요. 거기다가 스트리머 대회요? 왜 그런 소릴 한 거예요? 저 학생이 뭐라고. 특이한 케이스인 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야, 인마. 우리 서피스는 고객 하나도 놓치지 않는 법이야.”
“검사받으러 오는 프로 선수가 조금만 짜증 나게 굴어도 위험성을 핑계로 서비스 중지하겠다고 배 째라고 하시는 분이 무슨.”
연구원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고 오지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넘겼다.
“뭐, 내가 재능이 낭비되는 걸 싫어해서 말이야.”
“예? 아니 근데 그런 혜택 준다고 저 학생이 리그 오브 스트리밍에서 우승, 아니 참가나 할 수 있겠어요?”
오지혜는 연구원의 말에 7년 전, 처음 서준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대단했던 유저의 동화율이 기껏해야 10밖에 안 되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지금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오지혜의 눈이 옆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오늘 측정한 서준의 자료가 나타나 있었다.
서준의 신체 반응들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서 치른 간단한, 아니 간단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명확한 테스트들의 결과도.
“솔직히 참가는 어려울 수도 있지.”
스트리머로서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필요하니깐.
하지만 참가만 한다면.
“우승, 가능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