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그쪽 놈들 냄새가 나는데?
피부가 따갑게 느껴진다. 민감한 감각이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그렇게 인식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한번 제대로 하네.’
지금 내가 짊어진 것은 천하십검, 천의무봉이라 불리는 장문경 선배의 간판이다.
이전에도 주목받았던 일들이야 있었지만, 이번 것은 좀 특별했다.
[그래 봐야 십 년 내외로 네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허허! 네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일지도 모르지.] [어떠냐? 짊어진 것의 무게는?]“제가 짊어질 건 더 커야죠.”
[좋아! 아주 좋아! 정신은 똑바로 박혔군!] [허허허!]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사부님들의 웃음소리가 기껍다.
그런 사부님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흠칫!
다만, 일부는 그 웃음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는지 흠칫 몸을 떨며 경계를 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홍무문 문주 홍문강이었다.
“도와주지 않겠나?”
“비겁한 놈!”
종인걸이 기함했다.
“결국, 모든 원흉은 종인걸 저자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 여기 대치 중인 세 세력 중 가장 열세인 곳이 홍무문이다.
그런 사람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잘 안다.
“홍무문과 손잡을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박 터지게 싸우기나 하시죠. 홍무문이든, 중신상회든 살아남은 쪽을 조질 테니까요.”
대놓고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선언했다.
둘 다 부숴버린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홍무문이 중신상회와 끝을 볼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약 홍무문이 겁을 먹고 발을 뺀다면 오히려 중신상회와 홍무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흐흐흐,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홍문강은 도리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것참 명안이군. 직접적인 원수인 우리나, 간접적인 원수인 저놈이나 싹 다 잡아 죽이겠다? 좋아, 아주 좋아. 어찌 되었건 중신상회는 오늘로 끝이겠구나! 하하하하하!”
다른 홍무문 문도들 역시 비슷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홍무문의 분노와 증오는 무저갱처럼 깊었다.
“미친놈들…….”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당황하는 쪽은 중신상회였다.
뒤가 없는 홍무문이 동귀어진하겠다며 달려들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멀쩡하게 힘을 비축하고 있는 명운표국과 싸운다?
하물며 그 명운표국에는 천하십검의 일좌에 있는 장문경이 있는데?
중신상회 입장에서는 절대로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이거 이야기가 이상해지는군.”
무엇보다 중신상회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덕풍 윤가가 이를 바라지 않았다.
덕풍 윤가에서 온 노인의 얼굴에 갈등이 어렸다. 다른 덕풍 윤가 무인들 역시 비슷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문경 선배가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부터 그랬지.’
굳이 원한도 없는데 천하십검과 싸워야 할 이유는 없다. 잠시 염치를 잊고 발을 빼더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종인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물러날 생각 마시오! 우리가 무너지면 덕풍 윤가 역시 무사하기 힘들 것이오!”
“지금 협박하는 건가, 종인걸? 감히 나 윤지승을?”
‘윤지승?’
덕풍 윤가쯤 되면 근방에 명성이 자자한 고수 정도는 당연히 있다.
윤지승이라면 그 필두로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다.
파산권(破山拳) 윤지승. 젊은 시절부터 패도적인 권세로 이름을 날린 그의 무공은 산을 부술 정도로 강맹하다 알려져 있다.
충분히 자기 이름 석 자에 자부심을 누릴 만한 인물이다.
허나 그런 위명도 종인걸의 다급함을 누르진 못했다.
“근 십 년 사이 덕풍 윤가에서 저지르던 수상한 짓거리들을 내 모를 줄 아는가!”
‘수상한 짓거리?’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저 말을 듣자마자 윤지승의 늙은 노안에 주름이 깊어졌다. 정곡을 찔린 윤지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았으니 입 다물…….”
따앙!
종인걸을 다독이던 윤지승의 손이 갑작스럽게 날아든 검격을 쳐냈다.
파산권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강맹한 일격을 선보인 윤지승이 눈살을 찌푸린다.
“격식이 없구나.”
“그런 거 따질 자리가 아닐 텐데?”
기습을 가한 홍문강이 으르렁거렸다.
“종인걸의 말을 들었을 때 반응을 보니 알겠더군. 네놈들은 저 간악한 자를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지지부진하게 말을 섞은 이유는 그나마 덕풍 윤가가 물러날 수도 있을 거라 여겼던 모양이다.
허나 그것이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더 이상 참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니 참지 않는다.
“죽을 거다. 네놈들 모두!”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왔을 줄 알았나?”
홍문강의 각오가 남다르다. 지켜보고 있는 내게도 분명하게 보인다.
“걸어 다니는 시체들이군.”
“목이나 내놔라, 늙은이.”
홍문강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이번에는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다 죽여!”
“와아아아아아아!!”
홍무문 문도들도 검을 빼 들고 일거에 달려들었다.
“허어!”
죽을 것이 뻔히 보이는 자리를 향해 달려드는 홍무문의 행보에 윤지승은 짙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역량만 따진다면 파산권이 더 강하겠지만…….’
기세는 홍무문이 더 강하다.
호북은 남존 무당파의 텃밭이다. 때문에 전체적인 무림인들의 기량이 여느 지역보다 높다.
홍무문은 그런 호북에서 한 지역을 주름잡던 강자다. 홍무문의 문주 홍문강의 기량은 결코 얕잡아볼 수 없다.
하물며 덕풍 윤가는 종인걸이라는 짐덩이까지 있다. 수적 열세에, 기세에서 밀리고, 귀찮은 짐덩이까지 있으니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뚫어져라 보네.’
명운표국 사람들이 이를 갈며 그 혈전을 노려보고 있다.
중신상회와 그를 비호해 온 덕풍 윤가. 그리고 홍무문. 저기서 피를 보고 있는 자들 모두가 명운표국의 원수들이다.
그 원수들이 벼랑 끝에 몰려 서로를 상잔하고 있다. 눈을 뗄 수 있을 리가 없다.
‘손을 쓰려면 지금.’
모두의 이목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이화.”
“예.”
“종인걸 저 늙은이가 입 터는 걸 보니 중신상회에서 덕풍 윤가에 불리한 증거들을 모아 놨을 것 같다. 그걸 내게 가져와.”
“예.”
아주 쉬운 일이라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한 이화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언제 봐도 신기한 술수다.
‘주술 쪽도 한번 배워 볼까? 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힘이라면 나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갈게요.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그런데 갑자기 장소월 소저도 움직였다.
제지할 틈도 없이 움직인 장소월 소저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볍게 장원 담장을 뛰어넘었다.
갑자기 이화와 장소월 소저를 붙여 놓은 꼴이 됐다.
‘괜찮으려나?’
뭔가 걱정되는 조합이다.
하지만 나는 걱정을 계속할 수 없었다.
‘어, 이건?’
갑자기 내 모든 신경을 확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읍!!”
“응? 뭐야?”
갑자기 내 입에서 나온 신음 소리에 백무호가 놀라 물었다.
그만큼 이질적이었다는 의미일 거다.
“별거 아니야. 그냥 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냄새는 무슨. 뭐, 쓰레기들이라면 저기서 잘 타고 있긴 하다만.”
“그러네.”
교전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죽어 나가는 자들이 나왔다.
홍무문 무인 셋이 죽는 사이 덕풍 윤가 무인 하나도 목이 꿰뚫렸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근원 모를 역겨움을 느꼈다.
‘이건 심리적인 게 아니야.’
뭔가 다른 것이다.
좀 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역겨움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 번 이 역겨움을 느껴 본 적이 있는 듯했다.
‘……화산파! 고독?!’
워낙 기억에 남는 일이라 그런지 금방 떠올랐다.
고독의 존재를 감지하고 역겨움을 느꼈던 것을 천마 사부는 사이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멸이라 하셨다.
‘그때보다…… 더 심해…….’
게다가 이번 것은 고독과는 관련이 없다는 느낌이다.
화산파 때와 같이 고독이 원인이었다면 바로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덕풍 윤가가?’
윤시후의 본가이고 중신상회와 손잡은 세력이니 한번 손봐주겠다고 벼르긴 했지만, 그들이 정파에 속해 있음을 의심한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이 역겨움은 정파 사람들이 가질 것이 아니다.
‘화산파 상우경처럼 덕풍 윤가에 마교가 간자를 심어 두기라도 한 것인가?’
갑자기 이화를 괜히 보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화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후회가 머리를 스칠 때쯤이었다.
“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 윤지승의 노안이 기괴하게 변했다. 목의 힘줄과 핏줄이 꿀럭거리며 부풀어 오르는 광경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버러지들이!”
“큭!”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인지 홍문강은 몸을 살짝 빼며 뻗어오는 공격을 흘리려 했다.
몸을 물리며 비스듬히 비껴내는 것으로 힘을 해소하려는데,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쩌엉! 콰득!
“커헉!”
힘을 비껴내는 검을 부수고, 왼쪽 가슴을 으깨 버렸다.
고수의 내력이 가득 담긴 검을 뭉개 버리고서도 여력이 남은 권격이라니!!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힘이다.
‘짙어졌어…….’
무엇보다 윤지승이 저 힘을 드러내는 순간 역겨움은 더욱 짙어졌다.
빠각!
왼쪽 가슴이 꿰뚫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홍문강의 머리를 윤지승은 단번에 깨부쉈다.
“문주님!”
“이 노괴가!”
머리를 잃고 무너져 내리는 홍문강의 모습에 분노한 홍무문 무인들이 달려들었지만, 범의 발톱처럼 세운 조공(爪功)을 휘두르자 간단하게 쪼개졌다.
곧이어 이어진 것은 토끼떼 사이로 몸을 날린 범이었다.
콰아아아아!!
홍무문 무인들이 순식간에 찢겨졌다.
윤지승이 죽은 홍무문 무인들을 발길질하며 그 시체를 짓이겼다.
“버러지가! 쓰레기가!”
전투에 대한 흥분으로 성격이 폭급해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경험이 적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나 나타나는 일이다.
갑자기 돌변하기라도 한 듯한 윤지승의 모습은 정상이라 볼 수 없었다.
마치 극악한 마공을 익힌 마인이 폭주하는 듯한 모습이다.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모골이 서늘해지게 하는 광경이다.
도를 넘는 잔혹함에 우 부인은 현기증이 나는지 몸을 비틀거렸다. 성정이 꿋꿋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을 거다.
실제로 주변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토악질을 하는 자들투성이였다.
“미친 늙은이다!”
“중신상회가 미친 살인마를 기르고 있었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도망쳤다.
나는 윤지승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저런 무공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우리 일행 중에서 가장 최근의 무림에 대해 해박한 인물.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윤지승을 바라보던 장문경 선배가 입을 열었다.
“없다. 적어도 정파 쪽의 무공에서는.”
“그 말씀은…….”
“혈교……. 그쪽 놈들 냄새가 나는데.”
장문경 선배의 입을 빌어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는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