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 투전승불
설아 누나와의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밤사이 뭔가 사달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해가 떠올랐다.
각자 서 있는 위치가 극명하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라 언제 뭐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나름 관계를 맺고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다.
“운이 좋았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이 없다며 한숨 쉬는 일이 태반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운이 좋아진 걸까?
사부님들과 만나고 난 이후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요 근래 좋은 일들 좀 했다고 운이 좋아졌나?”
[그걸 복(福)이라고 하지.]“어?”
장삼풍 사부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좋은 일을 하면 운(運)이…… 그러니까 복이 생겨요?”
[당연하지. 인과는 부정적인 것만을 따지지 않는다. 좋은 일, 긍정적인 일들도 사람의 발자취니까. 과거는 현재의 본체. 결국, 뿌린 대로 돌려받는다. 현생에 그것을 다 맞추지 못했다면 내세에서라도, 그 내세에서 다 해결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에라도 치르게 되지.]“전형적이네요.”
확실히 사부님들이 언급하셨던 적이 있었다.
하늘은 인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지상의 모든 것을 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그리한다고.
그 사실이 내세와 후세에까지 언급되는 것을 고려하면 꽤나 길게 봐주는 것처럼도 느껴지지만, 섬뜩하긴 매한가지다.
‘과거는 현재의 본체다. 그럼 내가 겪은 이 모든 일들도 전생의 업보라는 것일까?’
천상과 연결해 사부님들과 만나게 해준 자오경이라는 것은 천상에서도 규격 외의 물건이라던데, 과연 내 전생은 어떠했기에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응?”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서찰이 상념에서 날 끄집어냈다.
어지간하면 적당히 넘겼을 테지만, 이건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사천의 큰 곽 씨? 곽 씨면서 크다? 곽대평? 악사도왕?”
사천을 떠나며 더 이상 연이 없을 것이라 여긴 자의 서신이다. 마냥 무시하기엔 그가 남긴 기억은 너무도 강렬했다.
아무래도 집을 비운 사이 표국을 통해 들어온 모양이다.
“이 또라이가 뭔 생각으로…….”
내기의 결과가 제 목을 치는 것이라면 웃으며 제 목을 날려버릴 작자.
이런 또라이와는 가능한 한 얽히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얽혀야 한다면 면밀하게 살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봉인을 뜯어 내용을 살피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사파인 척하고 접근해 온 당가 놈이 취죽 선생을 주시하고 있다? 여차하면 제거할 생각도 가지고 있는 상황? 뭔 소리야, 이거?”
당가에서 왜?
당가의 행보를 생각하면 취죽 선생의 아군이 되었으면 되었지 적이 될 리 없다.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간계(離間計)인가?
“추신. 첫 번째는 누구 편을 들지, 두 번째는 죽일지 살릴지를 두고 주사위를 굴려보니 둘 다 댁만 좋게 나오더군. 언제 다시 한번 주사위나 당겨 봅시다? 이거 그 양반이 그 양반 했네.”
이것도 운이 좋아진 여파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사파거두 악사도왕은 믿을 수 없지만, 주사위를 굴린 곽대평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 서신이 사실이라는 건데…….”
당가 내부에 아직도 불온한 세력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삼양현도 아주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라고 봐야 하나?”
내부에 숨겨진 칼이 더 무서운 법이다.
경각심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삼양현에 깔린 분위기를 간과할 수는 없었다.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나 다름없는 균형 상태다. 여기에 대놓고 짱돌을 던질 용기는 없다.
설령 그것이 최약체(?)인 사천당가일지라도.
“이화.”
“예.”
“종 노인에게 전해. 한동안 당가를 주의 깊게 살펴 달라고. 수상한 행적이 보이면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예.”
연륜이 있는 분이니 알아서 잘 처신해 줄 것이다.
“취죽 선생과 관련된 일이니, 할아버지께도 보여 드려야겠지.”
이 서찰의 내용은 할아버지께도 유용한 정보다.
마침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계셨기에 금방 뵐 수 있었다.
“흐음…….”
서신을 받아 보신 할아버지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당가 내에 잡아내지 못한 불온 세력이 남아 있는 걸까요?”
“할애비가 봐도 그런 것 같구나.”
일단 내 판단과 같으신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사파인 척했다는 당가 인물은 악사도왕이란 자를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일단 그렇겠죠?”
“그렇다면 그곳을 통해 정보를 흘려 봐야겠구나. 정보에 색을 입혀 놓으면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살피고 그 근본을 헤아릴 수 있지.”
허나 해결법은 같지 않은 듯했다.
이번 일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벌써 대략적으로나마 계획을 세우신 것 같다.
“이 일은 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마.”
“예.”
다행히 다시 사천으로 뛰어가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번 일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할아버지는 만만치 않다.
***
뜬금없이 생겨 버린 짐을 할아버지에게 내려놓고,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고민했다.
“일단은 명운표국이지?”
흑살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하며 달려온 나와 달리, 백무호는 그 자리에 남아 뒷수습 중이란다.
고마운 일이다.
확실히 명운표국은 무척 중요한 시기다.
호시탐탐 뒤통수를 노리던 중신상회가 박살 났고, 직접적인 원수라 할 수 있는 홍무문까지 무너졌다.
적어도 당장 날개를 펴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세력은 싹 쓸려나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쟁 업체 또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자화자찬에 취미는 없지만 근래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나, 백가표국의 후계자인 백무호, 여기에 천하십검의 일인인 장문경 선배가 뒷배가 된 것처럼 행동했으니 어지간한 곳은 찝쩍거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급한 일이 생겼다지만, 명운표국을 내팽개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외부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기왕 이목이 몰려 있는 지금,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 놓을 필요가 있다.
명운표국의 확고한 뒷배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문제없이 잘 돌아갈 거다.
“덕풍 윤가가 좀 걸리긴 하지만, 그쪽은 당분간 몸을 사려야 할 상황이고…….”
무려 혈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물론 그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한 것은 장문경 선배 정도지만,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덕풍 윤가 입장에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것이다.
“결정을 했으면 움직여야겠지?”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간 뭔가 복잡한 일에 휘말릴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 뒤를 따라왔던 범각 놈이 신승 어르신께 끌려갔다.
중토신공 문제도 그렇지만, 그 노인네라면 범각 녀석에게 가르친 대연기공에서 달마 사부 무공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될까?
‘날 조지겠지. 걸레 짜듯 쥐어짤 거야.’
달마 사부를 언급할 수 없으니 대연기공이 내 재능으로 만든 수련법이라 여길 것이고, 그럼 달마사부의 재림이니 어쩌니 하면서 쥐어짤 거다.
아니, 어쩌면 소림에 끌려가 머리카락이 잘릴 수도 있다.
장문경 선배야 옆에서 그걸 좋다고 훔쳐볼 테고.
이화와 종 노인은 감히 천마께 무례를 범하고 있다며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럼 전쟁이다.
세상에!
얼른 여길 벗어나지 않으면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명운표국으로 도피하는 것은 전략적 후퇴에…….’
[카카카카! 세상 복잡하게 사는 친구구만!]내 생각을 끊고 들어오는 머릿속의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사람과 다른 구조를 가진 짐승이 사람을 흉내 내는 것 같은 웃음소리다.
‘장삼풍 사부……는 아닌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
“사부님?”
장삼풍 사부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소개해 주셨다.
[투전승불이다. 불법에 귀의하기 전에는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자칭했었지. 손오공이란 이름을 아느냐?]“옛이야기에 나오는 그 돌원숭이요?”
[카카카카!]갑자기 웃음소리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왜?’
대차게 나가시는 장삼풍 사부시다.
의외로 돌원숭이는 화를 삭이는 모습이다.
분명 옥황상제에게 관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필마온(弼馬溫)이라는 관직 아니었나? 아, 거기서 짤렸던가?
그럼 선계 관직은 없는 것이 맞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보패 같은 걸 선물을 주신다는 게 아니었나? 설마 저 손오공이 썼다는 금고여의봉은 아니겠지?’
[이번 일이 잘 풀리면, 백설아라는 아이의 증상을 고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예?!”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지금의 내 기량으로는 절대 손댈 수 없는 영역이라 단정 지었던 사부가 설아 누나의 증상을 고칠 수 있을 거라 단언하다니!
‘이건 꼭 해야 한다.’
당장 명운표국에는 큰 문제가 없을 상황이니 어떻게든 일을 진행시키는 쪽으로 간다.
‘그나저나 손오공이라니.’
대체 서왕모 님이 생각하신 선물이란 게 뭘까?
손오공과 연관이 있을 물건.
기억을 더듬으며 손오공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려봤다.
그러다 불쑥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도술을 쓰실 때 털을 뽑아 사용하신다던데, 혹시 탈모가 오거나 하진 않나요?”
[……풉!] […….]갑자기 춥다.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추위였다.
***
어느 자연 동굴을 깎아 만든 곳.
천장에는 둥근 구멍이 하나 나 있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빛이 동굴의 한 자리를 밝게 비췄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흥미로운 웃음을 지었다.
“실패했다고?”
“신승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천의무봉도 비슷한 시기에 그곳을 방문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근래 당가까지도 터를 잡았다고 하는데…….”
“신승에 천의무봉이라……. 게다가 당가까지? 뭐 하는 곳이야 거기?”
언급된 둘만 해도 홀로 어지간한 대문파쯤은 쌈 싸 먹는 괴물들이다. 거기에 당가까지 껴 있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이게 밑바닥에 소문이 자자한 연자염의 영향력인가?”
사내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턱을 까딱거렸다.
잠시 고민을 하던 사내가 결정을 내렸다.
“손 떼.”
“괜찮을까요? 의뢰한 이들이…….”
“안 괜찮으면? 지들이 어쩔 건데?”
별일 아니라는 듯 이죽거리는 웃음의 끝자락이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내보이는 자.
흑살대의 일자살수.
그 중 첫 번째.
흑살 일호가 유쾌함을 머금은 기색으로 선언했다.
“딴 이야기 나오면 말해. 오랜만에 산책이나 나갔다 오지 뭐.”
“선전포고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거군요.”
“비아냥거리냐? 나가, 인마.”
농담처럼 툴툴거리는 축객령이었지만, 흑살 일호의 성정을 아는 흑살대의 인물은 재빨리 그 자리에서 몸을 뺐다.
홀로 남은 흑살 일호는 다시금 턱을 까닥거리며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연자염 그자가 인맥이 넓긴 하지만, 신승이나 천의무봉과 어울릴 만한 급은 없는 걸로 아는데……. 숨겨놓은 인맥이 있다는 의미이거나, 연자염의 영향력이 아니거나…….”
그 순간 근래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신성의 별호가 잠시 흑살 일호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