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오해하지 않겠지?
[카카카카카카카!]손오공은 내 머리가 울릴 정도로 시원스레 웃었다.
다행히 서유기에 나오는 것만큼 성격이 폭급하진 않았다.
[소설 속 이야기가 다 진실이면 지금 내가 천상에 있겠냐?]사실도 있고, 거짓도 있고.
은근슬쩍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뭔가 대단히 편의주의적인 것 같은데요.”
깊이 생각하면 머리 아프니 관두자.
[그게 좋은 거야. 어차피 내 짝도 그런 거 신경 안 쓰더라. 카카카카!]갑자기 자랑질이다.
천상에서도 연애를 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화타 선생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독각룡이 바람피우다 옆구리를 찔렸다던가 어쨌다던가?’
[저 돌원숭이의 짝은 너도 만나 본 적 있는 녀석이다.]“어? 네?”
천상에 내가 만나 본 적 있는 존재라면?
“설마 숭산에서의……?”
그 압도적으로 떡 벌어진 어깨가 인상적이던 금색 털의 성성이?
[걔 맞다.]뭔가 굉장히 당황스럽다.
[너도 봤다시피 걔 털이 무척 아름답거든. 카카카카!]“……참 대비되는 짝이네요.”
머릿속으로 무척 유해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안 된다 이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생각 돌리기 딱 좋을 만큼 공격적인 내용으로.
“근데, 불가(佛家)에 귀의하신 분이 연애질해도 됩니까?”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버려야겠지. 카카카카카! 감정은 존재를 불안정하게 만드니.]“감정이 존재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저 높은 천상에 있는 존재들에게도 아직 더 나아갈 경지가 있다는 것인가?
[카카카. 감정이 있으면 생각이 생긴다. 생각이 생기면 자아가 생기고, 자아가 생기면 사고를 하게 되지. 카카카카. 사고는 편견을 만들고, 마침내 존재를 규정하여 못 박아 버린다.]“그게 나쁩니까?”
[구도자라는 족속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나를 잊고 생각을 지워라. 가장 위대한 것은 자연이니 그를 닮아라. 카카카카! 길거리의 돌덩어리가 되란 소리 아닌가!]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말이겠지만, 손오공 저 양반을 통해 들은 말들은 어딘가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라…….’
[감정이란 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한다! 완전해지기 위해서 나를 버린다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카카카! 이 몸은 생각 따윈 할 필요 없는 자연물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그따위로 살 거면 이 투전승불은 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카카카카!]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주먹이 쥐어지게 만드는 열변을 토해냈다.
나도 그 열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잠시 뒤 냉정함을 되찾자 뭔가 이상했다.
“……결국,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연애는 하시겠다는 거네요?”
[카카카카카!]“뭐야! 내 감동 돌려줘요!”
천상의 위대한 존재인 손오공의 말이라고 하기엔 뭔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사소한 것에 목을 매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잠깐은.
‘아니지. 그게 아니야. 결국, 저 말이 맞아.’
생각해보면 나도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사소하고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것에 목을 맨다. 그게 존재(存在)라는 거겠지. 저 양반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천상에 오르는 대가가 설아 누나를 버려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안 오르고 만다.
땅 위에 하찮은 존재로 남을지언정 사랑을 위해 살겠다.
뭐, 저런 양반도 오르는 천상이니까 방법은 있을 것이다.
“떠날 채비나 갖춰 볼까.”
대략 이야기를 들어보니, 손오공 저 양반이 지상에 남겨 둔 것을 거두는 일인 것 같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 혼자 훌쩍 갔다 오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도 적절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제물……이 아니라, 나 대신 명운표국을 관리하면서 저 감당 안 되는 양반들을 다독일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지.’
이리저리 고민해봤지만, 백무호가 딱이다.
명운표국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으며, 신승 어르신이나 장문경 선배와도 안면이 있다.
필요하다면 저 대책 없는 양반들의 장난감(?)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백무호도 얻는 것이(?) 많을 거다.
무려 천마 사부가 지상에 있었다면 반드시 제자 삼았을 거라는 재능의 소유자다.
‘게다가 이번 일의 주체는 천상이라 동행이 있으면 신경 쓰인단 말이지.’
비겁한 변명이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잘근잘근 씹히고, 뜯기게 될 백무호의 미래에 명복을 빌며 옆을 돌아봤다.
“같이 갈 거지? 내 옆에 있어야 불의 신력이 안정된다고 했으니까.”
“예.”
언제 왔는지 이화는 벌써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역시나 떼어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럼, 조용히 튀는 거다?”
이화와 재빨리 채비를 꾸리고 떠났다.
***
“청운이 이 망할 놈! 나를 버려두고 혼자 튀다니!!”
백무호는 이를 갈며 연청운을 씹었다.
“솔직히 불어라. 청운이 이놈 어디로 튀었느냐?”
“밥값을 하라며 떠밀었으면서, 정작 주인이 사라지다니. 참으로 독특한 경험이군.”
신승과 장문경의 압박은 무시무시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아니, 알았으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따라가서 그 자식을 조져 놓지!!”
방구석에 몰린 백무호가 열심히 혐의를 부정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거물들이 나선 상황이라 지켜만 보고 있을 뿐, 장소월과 당사연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분노를 씹어 삼키는 표정이었다.
그나마 종극이라는 노인이 여유를 부리며 한발 물러서 있기에 다행이랄까?
그렇게 달아오른 열기가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
갑자기 겨울이라도 온 듯 방안의 열기가 차갑게 식었다.
콰앙!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늘한 냉기가 몰아쳤다.
무림의 존장과 대선배가 있는 자리에서 보여선 안 될 무례였지만, 누구도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새하얀 백설아가 자박자박 안으로 들어섰다.
신승과 장문경이 헛기침을 하며 물러나자, 백무호의 안색이 더욱 파리해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신승과 장문경은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백설아의 새하얀 섬섬옥수가 백무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바람? 불륜? 도피? 아니겠지? 응? 무호야, 아니지? 응?”
“그럼요, 누님! 절대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백무호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동생의 모습에도, 백설아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너.는.여.기.있.는.걸.까? 도.둑.고.양.이.는.따.라.갔.는.데? 응?”
“누님! 살려 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누님!! 누니이이임!!”
백무호가 필사적으로 빌었다.
백설아의 얼굴에 감정 없는 미소가 걸렸다.
“사람 살려어어어어어어어어!!”
***
이화와 함께하는 여행길이 시작되자, 천상에 계신 분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땐 말조심을 해야 했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은 이화뿐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듣게 된 서왕모 님의 선물은 그야말로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것이었다.
“반도라면, 그 천상의 보물이라는 그거 맞죠? 한 알만 먹어도 불로장생한다는 그거?”
[카카카! 꿈 깨라, 인간아. 지상에서 자란 놈에게 그런 효용이 있겠냐? 카카카카!]“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설아 누나를 치료할 수 있는 걸로 충분한걸요.”
[카카! 반도원에서 자란 놈은 아니지만, 천상의 힘이 남아 있다면 나무의 신력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목극수(木剋水), 목기는 수기를 제압하니 그 백설아라는 계집아이의 힘도 억누를 수 있겠지. 카카카! 게다가 땅의 용맥 중심이면서도 수기가 강한 곳에 심었으니 잘하면 열매를 얻을 수도 있겠지. 카카카카!]요 며칠 지내면서 느낀 거지만, 세상 참 편하게 사는 양반이다.
적어도 괜한 고민으로 머리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
백무호가 강화된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백무호가 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뭐,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쪽이니까.’
나무의 신력을 얻을 수 있다면, 설아 누나의 증상을 치료하는 데 큰 힘이 된다. 게다가 잘만 하면 반도를 통해 물의 신력도 얻을 수 있다. 정말 내게 딱 필요한 것들만 모여 있는 것이다.
서왕모 님이 내 상황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준비한 선물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자 궁금한 점이 생겼다.
“수렴동으로 가라면서 화과산이 아니라는 건 또 이상하네요.”
강소성 련운항(連雲港) 화과산 수렴동.
손오공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 향하는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화과산도 수기가 괜찮은 곳이긴 하지만, 거기의 영천(灵泉)은 동해의 용궁과 이어져 있거든. 천상의 권속이 뻔히 지켜보는 곳에 천상에서 빼돌린 보물을 뒀겠냐? 카카카카!]“그럼 왜 수렴동이라고…….”
[내가 거하는 곳이 수렴동이니까. 카카카카카카카!!]‘제멋대로네, 진짜.’
그러고 보니 수렴동이라는 동굴만 서너 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다 이 양반이 지상에 있을 무렵 싸돌아다니며 기거한 곳이 아닐까?
[카카! 아무튼, 얼른 태호(太湖)로 가자! 천상의 도화나무가 어떻게 피었는지 봐야겠다! 카카카!]문제는 이거다.
이 양반이 천상도화의 씨앗을 심은 곳이 태호라고 한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抗),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소주의 절경에 절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태호라는 거대한 호수라고 보면 된다.
‘왜 하필 거기냐고…….’
사람들이 왜 소주와 항주를 칭송할까?
물론 절경이 아름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가 바뀌었다. 그곳에 모인 화려한 유흥가 때문이다.
즉, 남들이 볼 때 나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유흥의 도시로 몸을 던지는 허랑방탕(虛浪放蕩)한(미친) 놈이라는 이야기다.
세상에!
‘절대 사고 치지 말자. 아무도 모르게 볼일만 보고 돌아가는 거야.’
‘족’마고우인 백무호도 내팽개치고 유흥으로 유명한 도시를 다녀갔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어째 목이 시릴 것 같다.
그럼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한 백무호의 곡소리가 내 곡소리로 바뀌겠지.
뭣보다.
“으음…….”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 뭐랄까…….”
생각해보니 연인끼리 뱃놀이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다.
단둘이서!
“……오해하지 않겠지?”
물론 이화는 어린 소녀고 연애 대상으로 볼 수 없는 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인 게 아닐까?
자꾸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정말로, 정말로 조용히 갔다 와야 할 것 같다.
***
호북에서 강소까지는 꽤 먼 길이다.
하지만 서둘러 움직이다 보니 대부분의 숙식이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노숙을 밥 먹듯 했다는 의미다.
덕분에 안휘 경계까지 다다랐을 즘에는 심각한 몰골이 되었다.
“으아! 씻어야겠다. 사람 꼴이 아니네, 이거.”
개방에서 입문을 권해 볼 정도로 엉망이라는 의미다.
여행이라는 것이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땀이 흐르고, 흙먼지가 묻는 외부에서 몇 날 며칠을 지새우다 보면 더러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꼬르륵!
“…….”
그리고 당연히 배도 고프다.
한동안 건량으로만 배를 채우다 보니 이화도 배가 좀 고픈 것 같다.
드물게 얼굴이 붉어진 이화에게 물었다.
“밥부터 먹을까?”
“……예.”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꼴도 엉망이고 해서 사람이 적은 이 층으로 올라 자리를 잡았다.
“뭐 먹을래?”
“오리탕……입니다.”
어색한지 머뭇거리는 이화를 보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오리탕? 오리 좋아했었어?”
“그건…… 옛날에 몰래 보던 무림 이야기책들에 그걸 시키는 경우들이 많아서……요.”
마교에서도 그런 책을 보나?
마교의 신녀이면서도 그런 것을 읽었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시선을 피했다.
뭔가 평상시와 다른 모습이 무척 귀엽다.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생체 반응에 얼른 점소이를 불러 주문을 했다.
추가로 하루 머물 곳과 목욕을 위한 뜨거운 물을 부탁하며 전냥을 쥐여 주자 점소이는 얼굴이 활짝 펴져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잘 나오던데?”
점소이의 반응을 보다 문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먹을 걸 시키고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콰장창!
“……객잔이 박살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