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뜻밖의 재회
예정 외의 사건으로 며칠 가량을 악서에서 소모한 창천 상단은 예정보다 늦게 나루터에 도착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남궁세가 소속 선원들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좀 늦었네.”
“아닙니다. 내륙 쪽 거래에서 일정이 변동되는 것이야 부지기수인데요.”
선박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던 남궁세가 무사 남궁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보였다.
안휘는 좋은 차(茶)가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차의 산지가 강과 거리가 있는 산지와 구릉이라는 점이다.
고급 차는 부가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남궁세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물품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마차를 몰고 내륙을 다니며 거래를 하는 것이다.
남궁조가 한숨을 쉬며 뒤를 흘겼다.
“한이가 좀 날뛴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남궁한이 목을 움츠렸다.
“하하! 도련님 성격이 좀 활달하긴 하시죠.”
“그렇게 넘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간단히 받아넘기는 남궁태와는 달리 남궁조는 쉬이 넘어가기 어려웠다.
“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수신제 같은 걸 지낼 시기는 아닌 거로 아네만.”
그러다 나루터 부근이 평상시보다 시끄러운 것을 눈치챘다.
확실히 나루터 부근에는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거나하게 차린 제사상과 그 앞에서 공양하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얼마 전 수룡채 놈들이 이쪽 구역을 기웃거렸나 봅니다.”
“수룡채가?”
남궁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슬슬 긁어 보겠다는 것이군, 수적 놈들.”
남궁한의 일 역시 장강수로십팔채의 짓이라 추정했기에 남궁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장강의 용왕이 현신해서 수적들을 쓸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무림인이겠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뭐, 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용왕이 현신했다는 말이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더군요. 물 위를 달리고, 해적선을 일거에 뒤집어버린 다음, 용오름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하늘에 닿았다고 하니까요.”
어느 정도 과장이 들어갔다고 해도 상당한 고수다. 등평도수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그 정도면 일반인들에게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로 보일 법하다.
“허허! 과연 무림에는 인재가 모래알처럼 많구나.”
남궁조는 문득 남궁한을 구해 주고 자취를 감춘 개방의 고수가 떠올랐다.
“그만한 고수라면 주시해 두는 것도 좋을 텐데……. 행적이나 인적에 대한 정보는 없던가?”
“안 그래도 알아보긴 했습니다만, 갑자기 자취를 감춰 소득은 없습니다.”
“하기야, 그것도 그렇군. 행적이 남아 있다면 용왕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겠지.”
남궁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남궁태가 뭔가 머뭇거리더니 말려있는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이걸 보여도 될지…….”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사뭇 묘했다.
“용(龍)이군. 그리고 그 옆에 미인은…… 무녀(巫女)인가?”
용의 머리를 한 반인반룡의 존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늘하늘한 무복 차림의 아름다운 소녀가 시중을 들고 있다.
남궁조는 헛웃음을 흘렸다. 왜 남궁태가 머뭇거렸는지 알겠다.
잘 그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한 각색이 들어간 그림이다. 이런 걸 증거랍시고 내놓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배에 탄 사람 중에 화공이 있었답니다. 그 화공이 그린 그림인데…….”
“얼굴을 보았다면 용모파기도 그릴 수 있겠군?”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적당히 돈을 쥐여 주고 용모파기를 그려 보라 제안해 보게. 다만, 이런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아 신심이 깊은 사람 같으니 거절할 수도 있을 걸세. 그럴 땐 억지로 강요하지는 말게. 남궁세가의 위명을 떨어트릴뿐더러, 괜히 소문이 나면 정체 모를 고수에게 뒤를 캔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어. 남궁세가가 그런 것을 두려워할 곳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오해로 피해를 입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남궁조는 세밀하게 범위를 정해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
“와! 예쁜데요?”
남궁조의 뒤편에서 빼꼼 고개를 든 남궁한이 그림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저게 용왕의 무녀래요? 그럼 저 낭자만 꼬시면 장강을 다스린다는 용왕도 우리 편이 되는 건가?”
“…….”
남궁조의 시선이 차게 식었다.
깊숙이 쌓여 있던 짜증과 함께 남궁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짜악!!
“가주 형님의 직계라는 녀석이!”
“악!”
남궁세가의 절기 천뢰삼장이 남궁한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철 좀 들어라, 이 녀석아!”
“저 같은 놈은 철들면 오래 못 살아요, 숙부.”
거듭되는 남궁조의 타박에도 남궁한의 시선은 그림 속 무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장강을 넘은 이후의 여정은 다행스럽게도 순탄했다.
안휘를 넘어 강소 남부에 도달하자, 물의 도시라 불리는 소주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많네요.”
[예로부터 물산 하나는 좋은 곳이었으니 말이다.]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릴 만큼 땅은 기름지고, 물길을 통한 상업이 발달한 도시다.
면직물로도 유명해 소주에서 생산된 최고급 비단의 경우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할 정도다.
활발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흐름을 느끼는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치안 하나는 확실하네.”
돈 있고 힘 있는 권력가들이 은퇴 후 여생을 보내는 곳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 소주와 항주라고 한다.
잘 정비되어 있는 도시를 보니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생각보다 무인이 많네요.”
게다가 곳곳에 순찰을 도는 관병들뿐만이 아니라, 무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배를 띄운 물가에서 어딘가를 주시하며 서성이는 자도 그렇고, 거리 사이사이에서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는 눈길도 느껴졌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에게 적이 많은 거야 흔한 일이지.]수요자가 있으니 공급자가 있다는 의미다.
은퇴한 권력자와 부자들이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위해 신변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니, 몸에 익힌 것이라고는 무공뿐인 무부(武夫)들에게 좋은 취직처가 되어 주는 것이다.
[뒈지고 나면 다 제 놈 족쇄로 돌아올 것이거늘.]장삼풍 사부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같잖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풍요로워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어딘가 불편해하시는 느낌이다.
하기야, 생전에도 납탑도인이라 불리며 살아오신 분이시다.
“재물이 있는 이들에겐 천국인 도시인가.”
어째 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면, 죽기 전에 즐기는 마지막 사치인 것 같지만.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 이 부근은 바다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못 보던 먹거리도 많을 텐데.”
“……바다.”
대륙만큼이나 거대한 물이 모여 있다는 곳.
흥미가 생기는지 이화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이런 반응은 또 알기 쉽네.’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생각보다 이화는 알기 쉬운 구석도 있는 것 같다.
‘드물게 본 반응인데, 이런 기대감이라면 채워 줘야지.’
그동안 이화가 나를 위해 해 준 일들이 얼만데. 한나절 정도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줄 수 있다.
돈이라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소주 제일의 맛집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
은퇴한 고관대작들이 자리를 잡은 도시답게 먹거리도 훌륭했다.
사람들이 흔히 원하는 삶의 낙 중에는 먹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돌아다니며 가장 맛있는 요리를 파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튀어나오는 맛집들 이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것들 중 바다에서 난 식재료로 이름이 높은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은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맛으로 나와 이화의 입맛을 만족시켜 줬다.
그 과정에서 소주의 어두운 면도 발견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소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굳이 곱씹어보게 되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카카! 소주에 도착한 거냐?]개차반 부처 손오공님이시다.
“어째 오랜만에 오신 것 같네요.”
[카카! 내가 보모도 아니고, 하루 종일 너만 지켜볼 수는 없지 않느냐. 카카카카.]“그건 그렇죠.”
장강을 건넌 다음부터는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쭉 달리기만 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꽤나 심심했을 것이다.
그간 쭉 함께해 주신 사부님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손오공은 소주의 풍경을 보며 무척 흥미로워했다.
유쾌하게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저놈의 ‘카카!’ 거리는 게 숨소린지 웃음소린지 구분이 안 가서 그런가.’
분명한 것은 투전승불 역시 천상의 존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이니만큼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아니, 대부분 변해 버렸구나. 카카카.]“그렇군요.”
그럴 것이다. 이곳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이고,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인다.
무너지고 지어지고를 반복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기억이 날 때까지 좀 돌아다녀 볼까요?”
[아니. 이미 찾았다. 카카카. 쥐꼬리만큼이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어. 카카!]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손오공이 기억나는 거라면 분명 오래된 것일 텐데.
수백 년이 되었을 법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찰나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손오공이 뭘 두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한때 저 나무 아래에서 독한 술과 함께 떨어지는 낙엽을 즐겼었지. 카카카카.]태호의 거대한 호수로 이어지는 물길, 사람들이 뱃놀이를 하고 있는 물길 사이로 누운 듯 가지를 뻗은 고목(古木) 하나가 있었다.
뻗어낸 가지들이 잎새를 피워냈다면 분명 장관일 것이겠으나, 오랜 세월 탓인지 잎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 나무 아래로 뻗어 있는 물길을 따라가면서 신력을 끌어올려 봐라. 카카. 그럼 분명 호응이 있을 거다. 카카카.]천상의 도화를 찾는데 왜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사소한 의문을 떠올리는 와중에 문득 저 개차반 부처의 말에서 신경 쓰이는 구절이 귓가에 박혔다.
‘따라가면서?’
“저기요?”
[카카?]“따라가면서라는 건…….”
[카카! 말 그대로인데?]“…….”
갑자기 오늘 먹은 음식 중 바다의 별미랍시고 나왔던 것 중 하나가 떠올랐다.
‘……누굴 수중 호흡이 가능한 붕어로 아나!’
하지만 결국 아쉬운 사람은 나였고, 까야 할 사람도 나였다.
“물배깨나 채우겠네. 염병!”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던 물의 도시가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
낮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밤이 되길 기다렸다.
확실히 밤이 되니, 사람들의 활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다른 쪽으로 활기가 띠니 문제지. 씁!”
다만, 유흥으로 이름 높은 도시답게 밤의 활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밤중에 뱃놀이는 왜 하고 지랄인데.”
밤에 촛불 켜놓고 배 띄워 놓으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기는 모양이다.
[카카! 귀 좀 기울여 보면 뭔가 들릴지도 모르지.]“닥쳐요, 쫌!”
아무래도 한밤중에도 맘 놓긴 어려울 것 같다.
“이화야.”
“예.”
“나 따라서 물속에 들어오면 혼난다.”
“…….”
“대답.”
“예에…….”
확답을 받았으니 따라오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무서울 정도로 과한 충성심을 지녔지만, 어쨌거나 지시한 내용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 아이다.
그렇게 혹 하나를 떼고 한밤중 뭐가 있을지 모르는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큭!”
누군가의 짧은 신음이 들렸다.
손에 뭔가 유해한 것이라도 묻었는지 물가로 다가와 급하게 손을 씻어내려 했다.
달이 밝은 밤이라 그런지 내 눈에는 그 씻어내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였다.
“흑기(黑氣)?”
중신상회에서 보았던 그것이다.
게다가 그 기운을 몸에 달고 있는 자도 초면이 아니다.
“관중연?”
얼마 전 안면을 익혔던 용린대 갑조 조장이라는 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