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 아무래도 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오! 이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관중연이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여기 있을 리 없는 분이 보이는군요. 이게 주마등이라면 최악인데요.”
“뭔 개소리?”
“글쎄 말입니다. 이게 뭔 개소린지.”
어딘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웃으며 말을 하지만, 이마에 두른 두건은 흠뻑 젖어 있었다.
물이 튀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저게 전부 다 식은땀이라는 소리다.
“혹시 어디서 객사라도 하신 겁니까? 열심히 깝죽대시며 싸돌아다니시는 꼴이 오래 살긴 글렀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소협이나 저나 죽어서 천상에 온 거라면 말이 되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배경도 지상의 천상이라는 소주군요.”
“이보셔, 댁이 정말 천상에 갈 만큼 착하게 살았어?”
“맹점을 후벼 파시는군요. 할 말 없게시리. 확실히 그런 점은 그분이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많이 아픈가 보다. 카카카카.]저 흑기를 접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대충 관중연의 횡설수설이 이해되긴 했다.
흑기는 마치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다.
사람에게 옮겨붙어 생살을 태운다.
지금 관중연은 활활 불타오르는 불판 위에 팔을 올려놓고 있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란 소리다.
‘이 작자도 어지간히 독하네.’
산 채로 팔을 굽고 있는데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보통이라면 그대로 정신줄을 놔 버리거나, 고통으로 날뛰며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는 쪽이 맞다.
나야 저런 기운을 무위로 돌리는 신력이 있어 감당했지,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들 거다.
“……아무튼, 이게 현실이라면 제가 할 일은 하나군요.”
관중연이 손에 든 칼을 팔로 가져간다. 정확하게는 팔을 좀먹고 있는 흑기 인근을 칼날로 겨눴다.
더 옮겨붙기 전에 잘라 버린다.
확실히 유효한 대응책 중 하나이긴 하다.
“보훈(報勳) 처리가 되려나, 이거…….”
뜬금없이 튀어나와 사람에게 칼질을 하던 양반이 지나치게 관료적인 걱정이나 하며 현실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뭔가 어이가 가출하는 기분이다.
이질감이랄까. 여간 괴랄한 것이 아니다.
“흑기라…….”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관중연에게 다가갔다.
‘설아 누나는 손도 대지 못했었지만, 이 정도라면…….’
삼재일기공의 화후가 낮아 설아 누나에게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어떨까?
관중연에게 다가간 나는 신력을 끌어올리며 손을 뻗었다.
“자, 잠깐!”
관중연이 황급히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수단이 없었다.
한 손엔 위험한 흑기가 넘실거리고 있고, 다른 한 손엔 칼이 쥐어져 있다.
어느 쪽으로 막든 내가 다칠 수 있었기에 대응이 한 박자 늦었다.
“가만있어 봐.”
게다가 나 역시 그때보다 성장했다.
치이이이익!!
어렵지 않게 관중연의 팔을 잡고 끌어올린 신력을 밀어 넣자, 달궈진 쇠가 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크읍!?”
생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재치를 잃지 않던 관중연의 입에서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힘으로 상충되는 기운을 짓눌러 꺼트릴 때의 반발과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예제라 하겠다.
[이제 알겠냐? 네가 설아라는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진짜 엿 될 뻔했네요.’
고작 이 정도 기운을 잡는데도 이만한 반발이 일어났다.
‘설아 누나의 기운이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음? 어?”
다행히 관중연의 팔에서 맹렬히 타오르던 흑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아직 잔기(殘氣)가 남아 있긴 하지만, 느긋하게 반 시진 정도 시간을 들인다면 다 씻어낼 수 있을 듯하다.
“……이거 어떻게 한 겁니까?”
관중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당연히……!”
파앙!!
재촉하려던 관중연이 다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관중연의 너머 물가의 수면 위가 뭔가에 의해 튀어 올랐다.
달빛이 비치는 물 위로 스멀거리며 일어나는 흑기가 새벽안개의 끝자락처럼 아른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크크크. 고작 도망친 곳이 여기란 말이냐.”
적이 있다.
“다 죽이고 온 거 아니었어?”
“팔이 이 모양인데 뭘 다 죽입니까?”
내 비난에 관중연이 격하게 항의했다.
나랑 붙을 때는 인간 도살자 분위기가 가득하더니, 이런 놈들을 상대론 쥐약인가?
‘하긴, 특성 자체가 치사할 정도로 위험한 놈들이긴 하니까.’
일단 습격해 온 놈들부터 잡아야겠다.
“두 놈…….”
관중연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거라 판단했는지 방심하고 있다는 것이 겉으로 보일 정도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할 상황인데, 나야 고맙지.’
소주는 치안이 좋은 도시다. 순찰을 도는 포졸들도 많고, 주변에 돌아다니는 무림인들의 비중도 높다.
소란을 일으킬 경우 주변에서 눈치챌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화륵!
“……켁?! 케헥!”
빈틈을 노려 기습을 가하려는 찰나에 적 하나가 기침과 함께 불을 뿜었다.
이화가 먼저 움직였다.
“……크헥!!”
목에서 피 끓는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 배 속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무슨?!”
장소월 소저의 옆에 있을 때는 진정한 기량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화지만, 내 옆이라면 다르다.
사람 하나는 순식간에 태워버릴 수 있는 힘이다.
이화는 내가 구사하는 불의 신력의 근원이다.
그 힘의 깊이를 생각하면 제대로 신력을 구사하는 이화의 힘은 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갑작스럽게 불길을 토하며 무너져 내린 동료의 모습에, 당황한 적을 향해 곧바로 쇄도했다.
“큭! 이 자식이!”
적은 당황했음에도 흑기를 가득 일으킨 장법을 구사하며 맞섰다.
나 또한 장법으로 맞상대했다.
스스로의 무공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지 정면으로 달려드는 내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콰앙!
격돌하는 순간, 되돌아오는 반발력을 통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적의 눈이 커졌다.
내 손과 팔에 흑기가 옮겨붙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모습이지만, 중신상회 때와 마찬가지로 흑기는 내 몸을 침범하지 못했다.
‘역시나 상극이네.’
장삼풍 사부는 이 흑기가 음기를 악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라 평가하셨다.
그렇기 때문인지 유독 땅의 신력이나 불의 신력에 취약한 느낌이다.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다.”
받은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돌려주는 것이 예의이자 범절이다.
무당면장.
내가중수법은 내공으로 상대의 내부를 흔들어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무공이다.
무당면장은 그러한 내가중수법 중 최고라 불리는 무공 중 하나다.
과거 한 고수는 무당면장을 두고 ‘이렇게 잔인하고, 고상하며, 상냥한 무공은 처음 보았다.’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저 손을 대는 것만으로 상대의 오장육부를 찢어버리는 잔인한 무공이지만, 겉은 상처 하나 없어 보여 고상하고,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버리니 상냥하다는 의미다.
흑기가 사람을 천천히 갉아먹는다면, 이건 한순간에 사람을 곤죽으로 만든다.
물론 내공이 강한 자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가 휘두르는 힘은 상대의 기운과 상극인 신력이다.
신력으로 펼치는 무당면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일장이 다시 한번 상대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팡!
이전 충돌과는 다른 소리가 났다.
마치 물로 가득 찬 돼지 방광이 터지는 듯한 소리다.
“푸우우우웁!!”
어딘가 터지긴 했는지, 격한 각혈과 함께 눈을 부릅뜨더니 풀썩 무너져 내렸다.
“크륵! 끄르르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거침없이 토해졌다.
“어우.”
천라무결까지도 필요 없었다. 중신상회에서 부딪쳤던 그놈보다 수준이 낮아 보였다.
그럼에도 방금 펼친 무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충분히 알 것 같지만.
하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화야.”
“예.”
“시신들 태워 버려.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게 말끔히.”
“존명.”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시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나는 시신에 남아 있는 흔적 하나도 허용할 생각이 없다.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시체가 거센 불길과 함께 타올랐다.
당연한 소리지만,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주변의 시선을 끌게 되어있다.
웅성거리는 기색과 함께 드문드문 이쪽으로 향하는 시선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단 튑시다.”
관중연을 낚아채 등에 업고 빠르게 자리를 피해 달렸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멀어져야 한다.
무슨 이유로 관중연이 이곳에 있고, 흑기를 쓰는 자들과 부딪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게 끝은 아닐 거다.
“적당히 관 형이라 부릅시다.”
“예, 뭐……. 소협이라면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됩니다.”
관중연은 내 제안에 순순히 동의했다.
내 손에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쓰러진 적들의 모습에 무척 당황스러운지 대답에는 옅은 놀라움과 경직이 느껴졌다.
“제가 소주는 초행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사람들 눈을 피해 숨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몸을 치료하는 데 반 시진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지금 시간대라면 두 곳이겠군요.”
“어딘데요?”
“기루랑 도박장.”
“하여간 돈 있는 작자들 생각하는 것 하곤.”
순식간에 납득이 됐다. 확실히 소주 같은 곳이라면 없는 게 이상할 곳들이긴 하다.
“도박장으로 갑시다.”
“어?”
놀라는 목소리 뒤로 ‘사내새끼가 맞는 건가?’라는 말이 들리는 느낌이다.
단순한 느낌만이 아닌지 등에 업혀 있는 관중연이 슬쩍 내 가슴 언저리를 툭툭 건드렸다.
“없는 겁니까, 없던 겁니까?”
이 작자가 정말.
“자꾸 개소리를 하면 내일까지 턱뼈를 뽑아 놓는 수가 있어요.”
“보통 그럴 때는 아혈을 점한다고 하지 않나요?”
“내가 점혈법을 배운 지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혈을 점했다가 뒈진 사람이 있거든요.”
“…….”
아무래도 방금 내가 펼친 무당면장에 곤죽이 되어서 죽은 적을 상상하는 느낌이다.
“……혹시 손을 쓰시게 된다면 턱뼈로 부탁드립니다.”
“그냥 입이나 닥쳐요.”
다행히 내 협박은 잘 먹혀들었다.
“도박장이 어디죠?”
문제는 이곳 지리를 모른다는 거다.
비밀리에 운영하는 도박장 같은 곳은 당연히 모른다.
“읍읍읍!”
길을 물었더니 입 닥치라고 했다고 읍읍거리고 앉았다.
‘왜 갑자기 백무호 그 자식이 떠오르지?’
“그냥 어디 저수지에 처박고 내 갈 길 갈까…….”
“왼쪽으로!”
협박처럼 들리는 진심을 내보였더니 바로 입을 연다.
다행히 눈치는 있는 양반인지, 그다음부터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이다음도 협조적이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단 휘말려버린 이상, 나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저 흑기를 쓰는 놈들의 정체라든가.’
중신상회에서도 맞붙었던 놈들이다.
덕풍 윤가와 선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무리인데, 그들과 용린대 사이도 서로 못 죽여 안달인 관계로 보인다.
맞서 싸우는 적이라면 충분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대체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들이 있는지, 그 부분은 반드시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