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6
15화 중토신공
백진성 아저씨는 지시만 내리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유형의 지휘자가 아니었다. 직접 몸으로 이끄는 유형이다.
쓸어버리라는 말을 꺼내고는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저러다 혼났는데.”
[너야 치고 나가는 거에 정신이 팔려서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얼간이 짓이라 혼이 났던 거고. 저놈은 다르지.]굳이 설명을 해줘야 하냐는 듯 장삼풍 사부가 쏘아붙인다.
그리 사실로 후려 패시면 할 말이 없다.
확실히 그때는 눈앞의 적에만 신경을 쓰느라 아군의 움직임은 까맣게 놓쳐 버린 상태였으니까.
“혼내? 내 이야기냐?”
그런 내 말을 들었는지 나란히 달려 나가던 백무호가 물어온다.
그쪽에 한 말이 아니라 심히 낯간지럽다.
“혼잣말.”
“격돌이 코앞이라 정신줄 놨냐?”
당황 중인 적을 향해 닥치고 돌격인 상황이다. 뭐 빠지게 뛰어가는 중에 혼잣말이라고 헛소리를 하니 이상하게 볼 만도 하다.
“신경 꺼!”
달리는 하체에, 발끝에 힘을 넣으며 속력을 높이는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간다. 그렇다고 해도 돌격하는 대열에 간신히 끼는 게 고작이지만.
역시 경공 쪽은 아직 미숙하다.
한걸음에 닿는 단거리의 폭발력이라면 몰라도 거리가 있는 경우 그 폭발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빨리 와라, 느림보!”
어느 정도 내게 맞춰 주고 있던 백무호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랴!”
말에 탄 채 창을 휘두르는 표사 한 명이 기세 좋게 달렸다.
가장 앞쪽에서 백진성 아저씨가 적 진영과 맞닿는 순간 적 진영이 갈라졌다.
여세를 몰아 말을 타고 달리던 표사의 장창이 호쾌하게 큰 원을 그렸다.
터엉!
허나 백진성 아저씨가 검을 휘두를 때와 달리 그 장창이 낸 소리는 무겁고 묵직했다.
누군가 창날을 피해 창대를 쳐냈다.
그다음 이어진 것은 코앞의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매서운 것이었다.
콰앙!!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갈 때 땅이 울리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묵직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구슬피 울리는 말의 울부짖음과 함께 말의 전신에 파도가 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지른 주먹질이 말의 돌진을 막았다. 사람 한 명쯤 가볍게 날려 버릴 돌격을 주먹질 한 방으로 머리를 부수고 근육 덩어리인 몸을 날려 버렸다.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표사가 날렵하게 말 위에서 내려오지만 내려오는 순간을 노리는 상대의 움직임이 표홀하게 따라붙는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아군을 구하려면 저 주먹을 막아야 한다.
그 순간 저 주먹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단번에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무당의 유. 태극권의 화경이 아군을 노리고 덮쳐 오는 주먹을 비껴냈다.
‘윽!’
정면을 피해서 부딪치고 힘을 옆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는데 손목이 시큰할 정도다.
제대로 힘을 흘려냈음에도 몸에 충격이 남을 만큼 심후한 내력.
“거슬린다, 어린놈.”
노리던 먹이를 놓치게 한 원흉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상대가 거침없이 공세를 이었다.
비스듬히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는 외파각. 허리를 쪼갤 기세로 올라오는 공격에 몸을 숙이려는 순간 서늘한 감각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위험하다는 감각.
후확!
체면 따윈 내려놓고 힘껏 바닥을 구르는 머리 옆으로 묵직한 힘이 지나갔다.
“나려타곤이라니, 가지가지 하는군.”
각법(발차기)에 이은 권격의 연계.
몰아세우고 친다.
보고 파악하여 대응은 했으나 기본적인 역량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대다.
반대로 상대의 경우 충분히 통하리라 생각했었는지 목소리에 짜증이 느껴졌다.
그 짜증이 다음 움직임에 실리자 더욱 매서워졌다.
그리고 그만큼 읽기도 쉬웠다.
이번에는 낚아챘다.
거세게 날뛰는 힘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까지 빈틈없이 수행한 사량발천근의 수가 너무나 간단히 상대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바닥에 처박았다.
콰앙!!
머리부터 떨어트린 통렬한 한 수였다. 부족할까 봐 낙하하는 순간 얼굴을 걷어차기까지 했다.
보통이라면 목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
하지만 상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코피가 흘렀지만 큰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대신 눈빛이 차가워졌다. 더 이상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한 방 먹여 줬지만, 오히려 상대는 진지해졌다.
“……못 이기겠죠?”
기(技)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힘이 그를 따르지 못한다.
[나름 정통으로 무공을 익힌 놈이다. 네 성취가 빠르긴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놈의 나이를 고려하면 적어도 이십 년 이상 수련을 쌓은 녀석일 터.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이십 년의 세월을 넘길 바라는 건 양심 없는 짓 아니냐?]장삼풍 사부의 말은 통렬했다. 시간벌이라도 해내면 그게 이기는 일이란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뭐, 방법이 아주 없진 않지만.]그럼에도 방법이 있다.
[며칠 앓아누울 게다.]“가르쳐 주세요.”
치러야 할 대가를 듣는 즉시 답했다.
그 정도면 무척이나 싸다.
대가를 감수할 각오를 다지자 장삼풍 사부가 말을 이었다.
[청명심법의 구결을 제대로 끌어 올려라.]실전 중에?
물론 실전 중에 청명심법의 효용이 드러나는 일이 종종 있긴 하나 그를 제대로 끌어올리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해 보자’ 같은 막연한 시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해라. 아니면 시작조차 못 할 테니.]아쉬운 것은 나다.
위협적인 적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내 안에서 청명심법의 호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신경을 써서 숨을 쉬는 듯한, 직접 폐를 움직여 호흡을 하는 감각이 몸에 뻗어나갔다.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청명심법의 호흡이 깊게 그 영향을 뿌리내린다.
격돌 중인 사방의 시끄러운 소리가 고요하게, 그러면서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실전 중에 구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의외로 한 번에 성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달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정공의 원류는 중토신공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중토신공이라 하지 않고 토정공이라 했다. 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일부를 차용했을 뿐, 실제로 이 두 무공은 같다고 말하기 어려운 탓이다. 중토신공은…… 다르다.]“어려운데요.”
[지금은 이해하려 할 것 없다. 그저 느껴라.]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느끼라는 건지.
[구결에 집중해라.]그런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달마 사부의 말이 해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
왜 장삼풍 사부가 청명심법을 운용하라 했는지 알겠다.
맨정신으로 이 쏟아지는 구결을 받았다간 감당이 되지 않았을 거다.
달마 사부의 말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못으로 박아 넣는 것처럼 머릿속에 내리꽂혔다.
그렇게 쏟아지는 구결의 해일이 정점에 이른 순간.
[할(喝)!]머릿속에 벼락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이전에 느껴 본 적 있는 감각이 몸을 엄습해 왔다.
머리가 열리는 감각.
정수리를 타고 청량한 것이 쏟아 부어지는 그 느낌.
몸으로 들어오는 그 청량함이 사지백해로 뻗어나간다.
처음 중토신공, 아니 토정공을 익혔을 때 온몸의 뼈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자리 잡는 것을 느낀 바 있었다.
달마 사부의 지시를 따르니 뼈에 자리 잡고 있던 힘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몸의 중심인 뼈에서 사방으로 뿌리를 뻗어내는 느낌이었다. 둑을 가득 채운 물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넘쳐흐르는 것이 뼈와 근육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려는 듯 온몸을 가득 채워 나간다.
몸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이 아니라, 그런 인간 본연의 것을 넘어선 무언가로 돌변해 버린 것 같은 감각.
피부를 찢고 살을 가르면 거기에서 흐르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닐 것 같다. 아니, 피 따윈 흐르지도 않을 것 같다.
토정공이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본연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꾸 뭐라 중얼거리는 거냐?”
짜증이 한층 더 깊어진 상대가 노여움을 드러냈다.
일방적으로 얕보던 태도에서, 경계하고 탐색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시하던 상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리는 말의 머리를 부수고 몸뚱이를 날려 버린 그 심후한 공력을 앞세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
그의 투로는 처음과 다르게 빈틈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정갈했다.
그 정갈한 공격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귀찮게 흘려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부숴버려.] [부딪쳐라.]그것은 보증이 따라붙은 확신이었다.
콰직!
이십 년의 세월을 뭉개 버리는 불합리함의 극치.
그 극치가 소리로 표현된다.
내 주먹은 멀쩡했다.
반면 상대의 주먹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경악으로 물든 얼굴이 보인다.
듣기 싫은 비명이 들리기도 전, 앞으로 튀어 나가는 기세를 잇는 발이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우직! 콰가가각!
가슴뼈를 함몰시키는 소리와 함께 발에 차인 공처럼 바닥을 긁으며 날아갔다.
“무슨?!”
“컥!”
날아가는 몸뚱이가 그 뒤편의 두어 명을 덮쳤다. 부딪친 이들이 단말마를 흘리며 넘어지는 가운데 이미 미동도 하지 않는 걸레짝이 된 몸뚱이가 잠시 허공에 튀어 올랐다 이내 아래로 뚝 떨어졌다.
굉장히 역동적인 광경이라 주변에서 전투 중인 몇몇이 그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그중 한 명이 나였다.
내가 한 일이지만 내가 한 일 같지 않았다.
[이게 중토신공이다.]더 이상 달마 사부는 토정공을 언급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말했다.
이것이 중토신공이라고.
신공(神功).
비로소 그 두 글자의 무게를 실감한다.
“불가의 무공이 이렇게 무지막지해도 되는 겁니까?”
[허허허! 업보를 더 쌓기 전에 깔끔하게 끝내주는 것도 자비니라.]그건 또 뭔 소리인가요?
정신 나간 소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문제는 그 정신 나간 소리가 달마 사부에게서 나왔다는 점이다.
[소림 중대가리들이 수틀리면 ‘살계를 열겠노라’ 하며 다짜고짜 뚝배기 깨는 성질머리가 어디서 나왔을 것 같냐?]“…….”
달마 사부, 근엄 속성 아니었어?
새삼 달마 사부가 다르게 보인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삼풍 이 친구가 앓아누울 거란 소리 한 걸 잊었는고?]말을 돌리는 것 같지만 굳이 따져 물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이젠 겁난다.
이만한 힘을 발휘한 대가가 어느 정도일지 감이 안 잡힌다.
생각해보면 두 분이 행한 일 중 작고 쩨쩨한 것은 없었다.
그리 생각하니 앓아누울 거라는 경고가 무척이나 살벌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아픔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더라.”
니들도 아파(뒈져)봐라.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
“저놈은 무당파에서 산삼 비빔밥만 먹다 왔나?”
걸레짝이 되어 날아가는 습격자를 보며 백무호가 어이가 가출한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손에 쥔 검은 쉬지 않았다.
빠르다. 그러면서 변화가 무쌍하다.
화산파 검공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검세.
하지만 그 가운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검 끝이 그리는 변화 가운데 부드러움이 있다.
날카로움에 부드러움을 싣는다.
부드러움이 가미된 빠른 변화의 검세는 사나움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단기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짧은 시간 사이 백무호는 성장했다.
검에 부드러움을 실을 줄 알게 됐다.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도 혼잣말 같은 걸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