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
17화 이 사부는 좀 아플 거라고 했다?
표행을 떠나기 전 기량을 증명하였기에 무난하게 백가표국의 표행에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연청운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표행 내에 존재했다.
본래 중이 싫으면 대자대비한 부처도 싫은 법이라던가.
뭔가 하나가 싫으면 다른 것들도 다 안 좋게 보인다. 상대의 장점조차도 단점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 사람의 어두운 면이다.
실력이 부족할 거라는 평가로 헐뜯었던 이들은 실력이 증명되자 경험이 부족한 초행자라는 점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표행이라는 게 무공 실력만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고, 장기간 외부로 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먼 길 가면서 길바닥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 자고 요리하고 정리하고 하는 것에 미숙한 곱게 자란 인간 뒷바라지할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문제는 전제로 깔린 감정의 편린이다.
감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본다면 꽤나 편향적인 평가들이었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낯짝이 부끄럽겠지만, 일방적인 감정을 쏟아내느라 그런 여유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본인들은 그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만 믿었다.
한 편에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를 인정해 버리는 순간 자신들의 부끄러운 수준이 드러나기에 억지로 무시했다.
그것이 깨진 것은 정신을 놓을 때까지 홍무문의 무인을 때려눕히고 기절하는 연청운의 모습 이후였다.
연청운에게 적대감을 품고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장절한(?) 연청운의 싸움을 보고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어긋난 모습이 바로 보이기 시작하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얼마나 못난 것이었는지 깨달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끝끝내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못난 인간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연청운이 거의 완전하게 백가표국에 받아들여진 순간이었다.
이른바 내 새끼가 된 거다.
저만큼 몸을 던져서 싸워 줬는데 그게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건 좋네. 한결 보기 편해졌어. 은근히 불편하게 째려보는 놈들을 볼 때마다 눈깔을 좌우로 쫙 찢어 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사람이 어떻게 다들 한 마음만으로 살겠나.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청운이가 딱히 손해 본 일도 없고.] [그야 그렇긴 하지만. 피해는 없었더라도 기분은 나빴잖아?] [허허. 그를 참는 것도 하나의 수련이 아니겠나.] [허이구, 보살 나셨어. 자네가 언제까지 점잔 떨지 어디 한번 보자고.]먼 곳에서 지켜보는 두 분은 이 변화가 퍽 반가운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좋은(?) 말들을 나눴다.
***
끊어졌던 의식이 다시 이어졌을 때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하늘에 달이 떠 있을 시간이라는 것보다 온몸을 찌르고 있는 통증이었다.
뭐랄까, 칼로 난도질하는 것 같은 통증이 아니라 신경 쓰이게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대상이 전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온몸을 바늘로 쑤시는 것 같다는 게 별것 아니라는 인간이 있다면, 그 작자 얼굴 좀 한번 보고 싶다.
마빡부터 바닥에 꽂아 버리게.
“끄응.”
“뭐야, 일어났냐? 정신이 좀 들어?”
[겨우 일어났구만.]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구나. 그만하면 다행이다.]정신이 들자마자 세 개의 목소리가 닿아 온다.
하나는 귀에, 둘은 직접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다.
바른생활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웃어른인 사부님들부터 신경 써야겠지만, 아무래도 여건이 좀 좋지 않긴 하……. 달마 사부? 그만하면 다행이라니?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뭐야, 눈깔이 왜 그래?”
여건을 뛰어넘어 잠깐 사부님들 목소리에 더 집중하는 바른생활 제자가 되어 보려 했더니 옆에서 바로 딴지를 걸어온다.
아무래도 사부님들과는 나중에 이야기해봐야겠다.
“눈 뜨자마자 보이는 게 너라면 당연한 눈깔이라 생각한다만.”
“야박하긴. 아랫도리라도 떼고 와 주랴?”
“네가 그거까지 떼고 오는 거면 목부터 메는 게 도리가 아닐까.”
솔직히 객관적으로 볼 때 이놈이 잘생긴 건 맞다. 같은 피를 나누어 받은 설아 누나의 미모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심리적 관점으로 볼 때, 이럴 때의 이놈은 유해물이다. 아주 해로운 놈이다.
“이야, 너무하네. 쓰러졌을 때부터 쭉 보호하고 간호해 줬더니 하는 말이 아주 앙칼져.”
죽마고우답게 감추는 거 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 줬더니 서운하다며 쭉 간호해 줬다는 걸 내세우는 백무호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약간 마음에 걸리긴 한데.
“이상한 짓은 안 했고?”
“이상한 짓? 무슨 짓?”
“딱 네가 할 법한 짓.”
“허 참. 나를 뭐로 보고. 너 기절한 틈을 타서 내가, 어? 바지 벗기고 다리 사이의 거기에다 차마 입으로 말 못 할 낙서 같은 거라도 막 써 놨을까 봐?”
그래, 이런 거!
딱 그런 거, 미친놈아!!
제 입으로 말하는 것부터가 딱 지가 할 만한 짓이 뭔 짓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천상에 계신 거룩한 사부님들. 당장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제 몸에 망측한 글자 같은 건 없다고 말이에요.
지금 당장!
당장!!
[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지.] [이상한 짓은 안 했으니 걱정 마라.]뒤룩거리는 내 눈을 보고 생각을 읽었는지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가 보증을 해줬다.
다행이다.
하긴 저놈도 야외의, 이렇게 어른들도 많은 탁 트인 곳에서 대놓고 미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지.
“그나저나,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졌다면 슬슬 이쯤에서 날 저기 바닥에 꽂아 버릴 시기인데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이놈이 느물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안 좋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네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다리 다친 까치를 바라보는 뱀의 눈이다.
백무호의 입가에 야비한 웃음이 그려진다.
“그렇군. 잘 알았다.”
“뭘 알아, 미친놈아!”
“네 도발에 응해서 한껏 나다운 짓을 해주지!”
이 미친 새끼가?
당당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확 몰리는 게 느껴진다.
진심인가? 실화냐?
[저 새끼도 가만 보면 거물이야.] [청춘이구나.]사부? 사부님들?
이게 무슨 청춘입니까, 미성년자 관람 불가지!
거기!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고 이 미친놈 말려!!
목소리도 크게 내기 힘들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막 소리를 지를 순 없었지만, 다행히 누군가 내 간절한 바람을 들은 것 같다.
빠악!
갑자기 실한 소리와 함께 백무호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툭 쓰러졌다.
그 뒤로 혀를 차는 백진성 아저씨가 보인다.
“푹 쉬어 둬라. 이건 저기 멀리 치워 놓을 테니까.”
“백 아저씨.”
백진성 아저씨 머리 뒤로 막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여자였으면 그대로 반했겠다.
그리고 운 좋게 맺어지기라도 하면 저기 백무호 같은 녀석을 낳았겠지.
……미친.
남자라서 다행이다.
***
그렇게 성가신 백무호가 떨어져 나가고, 주변에 코 고는 소리와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가득해졌을 때 나는 입술을 살짝 달싹이는 정도로 말문을 열었다.
“들리시죠?”
[당연히 들리지. 그 정도도 안 들릴 만큼 귀가 먹기엔 내가 너무 젊어.]“……아, 그러시구나.”
장삼풍 사부가 엣헴 헛기침을 하시며 대답하셨다.
수백 년 전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좀 묘하다.
뭐, 신선들 기준으로는 젊은 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어쨌거나 잘 들리신다니 다행이다.
“이거 얼마나 갈까요?”
[아픈 거?]“예.”
[글쎄다. 한 이틀쯤? 어떻게 생각해?] [나도 한 이틀은 운신이 어렵다고 본다만.]“하아…… 이틀… 이틀씩이나요?”
[이틀 ‘밖에’라고 해야지. 토정공으로 바탕을 만든 너 정도니 이틀이지, 다른 사람 같으면 반년은 꼬박 앓았을걸?]“반년…….”
이틀과 반년.
토정공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그 차이를 가늠해 보니 새삼 두 분 사부님이 내 몸 안에 참 여러 가지를 준비해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게는 여전히 이틀 ‘씩이나’였다.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의 단단한 기초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가늠을 잡을 수 있어서 참 기쁘고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곤란하네요.”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고작 이틀 가지고. 배가 불렀네, 이 녀석.] [그러게 말했잖느냐. 며칠 앓아누울 거라고.]두 분 사부님이 나를 타박하셨다.
사실 한창 날뛸 때는 이틀쯤 앓아눕는 거야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당장 그 상황이 닥치고 보니 크나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그 이틀 동안 먹는 거랑 싸는 걸 챙기겠다고 나설 게 백무호 그 녀석일 것 같아서요.”
[아…….] [음…….]단번에 납득하신다. 굳이 자잘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단하다, 백무호. 무림의 전설 두 분이 지금 너 때문에 뜻을 하나로 모으셨어. 이거 굉장한 일이다?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뭐, 조금 무리를 한다면 내일 아침까지 운신 정도는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제자의 애달픔을 깨달으셨는지 달마 사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정도면 감지덕지다.
“평생의 흑역사가 생기는 걸 마냥 지켜보느니 그냥 아프다 뒈지렵니다.”
[그 정도 각오라면, 알겠다.]쉬이 납득하신다.
나는 그런 달마 사부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저기, 달마 사부.”
[음?]“제가 중토신공을 터득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요?”
편법으로 끌어 올린 중토신공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지금처럼 부작용을 감수하지 않고 중토신공을 구사하려면 얼마나 더 수련을 해야 할까?
중토신공을 구사할 때의 전능감이 몸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나의 그런 물음에 달마 사부가 잠시 시일을 좀 계산해 보는지 얕은 신음을 흘리다 말씀하셨다.
[빠듯하게 잡으면, 한 이십 년?]갑자기 무지막지하게 아득한 세월이 튀어나온다.
“진짜요?”
[천상에 오르기 직전에 창안한 무공이라 수준이 꽤 높다 보니. 이십 년도 꽤 희망적인 관측으로 낸 결론이다만?]“아니, 저는 한 내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내년?]이십 년을 생각한다는 분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였는지 반문이 나왔다.
[아하! 이제 보니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구나. 난, 또. 중토신공을 터득이라 하기에 대성이라 생각했다. 네가 이야기하는 건 아마 낮에 구사한 그 정도를 말하는 거겠지?]“아, 예.”
[허허, 이 녀석. 맛보기도 안 되는 수준으로 터득을 운운하니 나도 착각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맛보기도 안 되는?
갑자기 뇌에 정지가 오는 것 같다.
[그 정도라면 한 달 안에 가능하지 않을까?]“아, 예…….”
그게 맛보기도 안 되는 수준이란다.
그럼 진짜 중토신공은 대체?
아무리 봐도 이분들 기준치가 너무 높다.
잠깐. 뭐지, 갑자기 올라오는 이 오한의 정체는?
[아아,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묻는 거다만.]이거 그거다.
뭔가 거대한 공포가 몰려오는 듯한?
[이 사부는 좀 아플 거라고 했다?]“……옙.”
설마 죽기야 하겠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