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움켜쥔 주먹으론 원하는 걸 잡을 수 없다
“되는군.”
자오경을 지켜보며 천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같잖은 기준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지상에선 상승무공의 구분을 나누는 선이 기의 온전한 유형화, 강기(罡氣)를 기준으로 잡는다지?”
제자인 연청운에게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본인이 휘두르는 힘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다.
“상승무공의 경지를 넘게 되면 그다음은 극상승의 영역으로 구분하게 될 거다. 거기서부터는 심상의 구현이 기준이 된다. 확실하게 사람의 영역을 넘어서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천상의 무공은 의념 그 자체를 힘으로 다룬다.”
하지만 어차피 머릿속에 수직으로 박히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네가 배운 무공은 이곳 천상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천상의 무공이다. 즉, 지금 네가 다루는 힘이란 의념, 심상의 구현이라는 거다.”
[……이 마신상(魔神像)이 말입니까?]힘에 휘둘리던 제자 연청운이 정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연청운의 뒤로 보이는 것은 본인보다 배는 더 큰 크기의 마신상이다.
묘하게 제자를 닮은 형상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네 의지의 구현이라고 보면 된다. 네 안에 있는 본질을 끄집어낸 것이지.”
[본질…….]“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느냐. 휘두르라고 있는 힘이다.”
사악하게 이죽거리며 천마가 은근한 목소리로 부추겼다.
“마음껏 휘두…….”
빠악!!
“끄억!!”
호쾌한 소리와 함께 천마의 머리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이 시러벨 놈이 지금 초를 쳐부려야.”
[……사부?]당황한 연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천마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존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좋은 거 가르친다, 이 개차반 놈아!”
“태을진인?”
“그래, 나다! 이 망나니 녀석아아아아아!”
곤륜십이선의 필두인 태을진인이 제대로 빡쳐서 날뛰었다.
“쯧쯧.”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장삼풍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 양반이 선근 좀 얻어 보겠다고 들인 공이 얼만데. 그걸 말아먹으려 드니 빡치는 것이 당연하지. 하아…… 어쨌거나 결국 뒷수습은 또 내 몫이군.”
천마와 태을진인이 뒤엉켜서 치고받는 것을 옆으로 밀어낸 장삼풍이 자오경으로 다가갔다.
“제자야, 들리냐?”
[예.]“거기서 그 아해 잘못 조지면 다들 힘들어질 것 같구나.”
***
‘천상도 콩가루네, 콩가루야.’
자오경으로 들린 주변 이야기와 장삼풍 사부의 설명으로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천상의 곤륜에서 움직인 것은 서왕모님뿐만이 아니라 태을진인이라는 분도 여러모로 뒤에서 손을 써왔다는 것이다.
내게 태허도룡검법을 전한 분이 아마도 태을진인일 것이다.
그냥 곤륜 소속의 신선이라고만 해서 과거 곤륜파 소속으로 등선했던 어르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 튀어나왔다.
‘나 참…….’
일단은 상황은 알겠다.
문제는 끓어오르는 이 힘을 휘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것이다.
천마신공의 전승자 중에서도 마신상을 드러내는 이가 있긴 했다지만, 이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내 등 뒤에 떠오른 이 마신상은 그야말로 천상의 영역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힘이다.
천마 사부의 말대로 내 힘의 본질 같은 것이다.
삼단전의 힘에 오행신력이 더해진 만큼 무공이라기보다 선술에 가까운 개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다시 이 힘을 구현해볼 수 있는 것은 언제가 되려나…….’
청조에게 빌린 물의 신력은 말 그대로 빌린 힘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곤륜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면…….’
이대로 천마 사부의 무공으로 뭉개버리는 결과는 최악의 선택이다.
천마의 무공이 아닌 것.
그러면서도 곤륜이 승복할 무공.
‘이걸 이렇게 써먹네.’
태허도룡검법.
태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곤륜의 검선지학.
마침 혼돈을 추구하는 천마 사부의 무공과 어느 정도는 맥락을 같이하는 무공이기도 하다.
무공의 본질만을 보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천마 사부의 무공으로도 어느 정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천마 사부가 말한 본질.
지금이라면 드러낼 수 있다.
“천지만물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 시작은 궁리에서 비롯되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궁리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
그 본능이 좇는 진리.
“만물의 형태가 갖춰지는 것이 시작이라면, 그 이전에 존재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전의 시작은 무엇인가.”
내 물음과 함께 내 등 뒤에서 존재감을 발하던 마신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허무(虛無)다. 허무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구이다. 나를 비우고 평온히 가라앉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내가, 나의 형태가, 마신상이 세상 속에 녹아든다.
녹아내리는 형태가 주변으로 스며든다.
“나의 영역에서 무(無)로 돌아가라.”
그리고 같이 함께 녹아내렸다.
“이건……!”
쿠오오오오오오오!!
내 주변으로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던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시작은 내 발밑에 있는 풀잎들부터였다.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나무가, 바위가, 모든 것이 무너져 신기루처럼 흩날렸다.
아침을 맞이한 꿈처럼 무너진 형태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광경은 현실감을 흐리게 만들 정도였다.
“이것이 시작 이전의 시작. 태허(太虛)이니라.”
그 현실감 없는 광경을 두고 나는 이 힘에 대한 정의(定義)를 선언했다.
꿈에 빠져있듯 넋을 잃고 있던 천경진인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태허라고?”
곤륜파의 제자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단어인 탓일까. 다시금 번갯불 같은 안광을 뿜어냈다.
“집어치워라! 어디서 사술 따위를!”
천경진인이 검을 세웠다.
강한 내력과 짙은 살기를 꾹꾹 눌러 담은 검이 나를 겨냥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곤륜을 승복시킬 생각으로 펼칠 힘의 방향을 정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나도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천경진인의 검이 나를 겨누고 있음에도 딱히 두렵지 않았다.
청조가 건네준 물의 신력이 다 소모되었음에도 마음의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천경진인에게 손짓했다.
“와라.”
“흐읍!”
천경진인의 검에선 그가 오랜 세월 담아온 검격이 뻗어 나왔다.
‘피할 수 있어.’
강하고 빠르지만, 감정이 담겨있는 검격은 미리 읽기도 쉽다.
천경진인의 검은 분명 대단하지만, 너무 가득 차 있었다.
‘가끔은 놓을 때도 있어야 한다는 거야.’
모든 것이 가득 차 있으면 정작 필요한 것을 놓치는 순간이 온다.
천경진인의 검이 딱 그랬다.
‘나도 그랬었지.’
더 완벽하게, 더 촘촘하게.
집착으로 나를 가득 채웠었다.
한 차례 초월성을 경험해 본 지금은 알겠다.
‘가득 채우는 것도 벽을 뛰어넘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이쪽이 더 빨라.’
집착을 버리고, 불필요한 부분을 쳐낸다.
남는 것은 순수한 정수뿐.
오롯한 간결함이 내 몸을 이끌었다.
“……!?!”
틀림없이 벨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걸까?
경악하는 천경진인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이 한층 가까워졌다.
‘빠르지만 느려.’
내 몸과 손이 빠르지만 느린 천경진인의 움직임을 파훼했다.
너무도 간단하게 영역을 파고든 내 움직임에 청경진인이 다음 순간을 상상했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파앗!
내 손이 청경진인의 왼쪽 가슴, 심장 언저리에 닿았다.
강하게 꿰뚫은 것도, 내가중수법으로 심장을 갈가리 찢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밀쳐진 천경진인이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뒤에야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지?”
“뭘?”
“날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긴 했지.”
“한데 왜…….”
“죽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천경진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라면 모독을 참을 리가 없을 텐데?”
“내 맘이다.”
“……허헛! 그건 좀 천마답군.”
넉살을 부리는 것이 내게 당했다는 충격은 충분히 수습한 모양이다.
뭔가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지금이다.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서는 꽉 움켜쥔 주먹을 펴야 할 것이다. 움켜쥔 주먹으론 원하는 것이 날아들어도 쳐내기 바쁠 테니까.”
“주먹을 펴라…….”
뭔가를 느끼는 바가 있는지 천경진인은 내가 한 말을 곱씹었다.
“그것이 태허인가?”
“이정표쯤은 되겠지.”
“허허…… 무조건 채우려고만 하지 말라…….”
돌연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자리에 주저앉은 천경진인의 몸에서 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뭔가 깨달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선근이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달음 하나 얻었다고 뚝딱 선근이 생긴다면 천상에서 저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길은 터 줬으니 그 길만 잘 따라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
“음?”
사부님들의 면목은 세웠다 싶은 와중에 돌연 다른 곳에서도 기세가 뿜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방향을 살피니 곤륜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천원진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주변의 당황하는 반응을 보면 갑자기 주저앉은 것으로 보였다.
‘내가 했던 말들을 듣고 저런 거면…….’
아무래도 겹경사가 될 것 같다.
[이얏호오오오오오!!]머릿속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선근도 생긴 모양이다.
아마도 이분이 태을진인인 것 같다.
‘설화 같은 데서 보면 태을진인은 매우 진중하고 엄격한 신선으로 표현되는데……. 어째 천상 쪽 기록들은 죄다 뻥 같냐.’
천상에 대한 내 불신감은 어느새 무척이나 깊어진 것 같다.
***
강서(江西) 포양호(我陽湖) 부근.
작년과 비교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곳에는 기묘한 구도의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쪽은 털 짐승 가죽을 걸친 이들이고, 다른 한쪽은 가벼운 복장이거나 아예 상의를 입지 않은 이들이다.
한쪽은 누가 봐도 산적이고, 다른 한쪽은 수적이다.
태극의 경계선처럼 섞이지 않고 대치하고 있었다.
“빠르군. 벌써 준비를 다 갖췄다니.”
“무능하단 소린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녹림의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면 더 빠르게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수적 장강수로십팔채 측의 선공에 녹림 벽지심의 껍데기를 위장하고 있는 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신승이 나서지 않았다면 내 쪽 역시 수월하게 마무리되었을 거다.”
“흥! 변명은.”
벽지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거듭되는 시비는 인내심을 자극했다.
자연히 벽지심에게서도 날카로운 말이 뱉어졌다.
“나처럼 실수하지 말고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하는 게 어떤가. 남궁세가주는 넘치는 야망만큼이나 기량이 출중한 자다. 준비에 부족함이 있다면 낭패를 볼 거야.”
“훗! 남궁세가주 따위가, 개뿔이.”
충고를 위장한 시비에 장강수로십팔채 측의 수적이 비웃음을 흘렸다.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벽지심이 재차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이분을 뵙고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
이윽고 그가 왜 여유를 부리는지를 드러냈다.
그 이유를 확인한 벽지심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수로채주의 말대로 지금 모습을 드러낸 중년인은 남궁세가주를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존재다.
남궁세가주가 아니라 신승조차도 눈 아래로 둘 고수다.
멸천회(滅天會)에서도 특별하게 취급되는 절대적인 존재 중 한 명.
중년인은 그런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