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대무장 개막
천마신교의 역사는 길다. 그 기나긴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외부의 침략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단 한 번도 본거지가 날아간 적이 없단 소리다.
그렇기에 옛것은 옛것대로 남아 있고, 그 옛것들을 중심으로 파문이 퍼져나가듯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천마신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집단이고, 신으로 모셔지는 초대 천마의 손길이 닿아 있는 것들은 유물(遺物)이라는 평가를 넘어 성물(聖物)로써 받들어지고 있다.
그런 성물을 없애버리자고 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대무장은 초대 천마가 만들라고 지시한 것 중 하나다.
당연히 천마신교 최심부에 위치해 있다.
거친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라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하긴 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천마신교의 기나긴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천마혈족이 대무장의 위험성을 느꼈음에도 완전히 폐기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 대무장이 새것처럼 재건되었다.
천마신교의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지난밤에 있었던 천마와 입천신마존의 담판은 반천파를 자극했고, 중립파조차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대무장으로 모여들었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순천파에도 전해졌다.
순천파야 이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대무장 위치가…….”
대무장 자체가 껄끄러운 순천파는 말끔하게 재건된 대무장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대무장은 순천파에게 있어 마치 턱 밑에 겨눠진 칼날처럼 느껴졌다.
***
“경치가 좋네.”
위로는 내가 날려버린 천마의 거처가 보이고, 멀리 보면 좌우와 정면으로 천산산맥의 정취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천 명쯤이 오와 열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대무장은 마교의 위와 아래, 모두를 포용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인원들이 지켜볼 수 있는 관람석 같은 자리도 있었다.
“대무장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하!”
이화의 설명을 들으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천마에게 부끄러움이 없던 시절, 모든 마교도들에게 당당하고 오연하게 설 수 있던 시절에 이 위에서 많은 것을 보여줬을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볍게 가슴이 뛰었다.
“밤새 수고했다.”
“소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내 앞에 도열해 있는 이들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천 명이 늘어서도 충분한 대무장을 고작 이 정도의 인원으로 다시 다듬었다.
당연히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나도 밤새 청조를 타고 곤륜산맥을 돌아다니느라 제법 지쳤지만, 이들의 노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수고했어. 정말로. 이거 빈말 아니야.”
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친형제처럼 다독여 주었다.
“감사…… 어어…….”
초대 천마에게서부터 내려오는 보물인 묵룡보의에 먼지가 묻는 것이 신경 쓰이는지 천마수신위가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괜찮아! 고생한 내 사람들을 격려하는 게 천마로서 부끄러워할 일인가?”
“그으……!”
분위기를 살핀다. 튀어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막는 것이 보일 정도다.
“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닌 것 같은 게 아니라, 아닌 게 맞아. 앞으로 그런 말을 하는 작자가 있으면 내 앞으로 데려와. 대가리를 부숴 버릴 테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유형은 아닌데 절로 말이 나온다.
여기서 나는 천마니까.
천마는 불굴불괴(不屈不壞)다.
꺾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천마수신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전에 제가 부숴 놓겠습니다!”
선을 정해주니 생각이 확고해진다.
죽으면 죽었지 자신들을, 더 나아가 나를 우습게 보이는 일만은 절대 허용하지 않을 기세다.
조만간 몇 놈 대가리가 박살 나는 꼴을 볼 것 같다.
여기가 정파였으면 지양(止揚)해야 할 자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과격함이 필요하다.
‘슬슬 걸려들 때가 됐는데…….’
생각보다 위치가 좋다. 대무장의 존재가 껄끄러운 자들에게 있어선 고약한 위치다.
조만간 제지가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그리 생각한 찰나였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십여 명의 무리를 끌고 나선 이가 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무장 위에 서 있는 나를 직시하며 기세를 피워 올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적당할 때 왔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뭐 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야…… 크흠!”
직설적으로 되묻자 뭔가 말하려던 상대가 헛기침을 했다.
딱 봐도 뭔가 꼬투리를 잡고 싶은데, 뚜렷한 건수가 없어 하는 행동이다.
“……아무튼, 이곳은 폐쇄된 금지(禁地)다. 집마법당 휘하 순찰단의 단주로서 명한다. 지금 당장 내려가라.”
일종의 치안 조직인 것 같다.
문제는 아무도 따를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누가 폐쇄시켰는데?”
“천마께서 내리신 지시다.”
“난 그런 지시 내린 적 없는데?”
“네놈 말고!”
‘내가 아니면, 혹시 사부가 하셨슴까?’
나는 장난삼아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짜증 나니까 긁지 마라.]역시 보고 계셨다.
[천마…… 크큭! 크흐흐흡!] [허허허.]아무래도 천마 사부만 계신 게 아닌 것 같다.
구경거리를 놓치실 분들이 아니다.
‘그럼 기대에 부응하며 날뛰어 볼까.’
“어서 내려오지 못할까!”
순찰단주라는 자의 언성이 높아진다.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시라도 당했다고 느낀 것 같다.
“자칭 천마라던 그 병신은 내 친히 대가리를 깨줬지. 그럼 현 천마는 누구냐?”
“끄응! ……장로회에서 정해질 것이다!”
“그럼 천마신교는 장로회 것인가?”
“그으……!”
“얘는 아니라는데?”
나는 보란 듯이 묵룡보의를 펄럭이며 천마신공을 운용했다.
짙은 남색의 표면 위로 검은 불꽃무늬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흑룡…….”
순찰단주의 뒤에 서 있던 마인이 선명한 무늬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름 식견이 있지만, 저들 입장에선 눈치 없는 짓이다.
잔뜩 화가 난 순찰단주의 시선에 중얼거리던 마인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순찰단은 내가 입고 있는 묵룡보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럼 이야기가 편하다.
“천마를 정하는 것은 장로회가 아니다. 부정하고 싶다면 장로회를 불러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로회에 자격이 있는지 따져봐야겠다.”
“끄응…….”
순찰단주가 입을 다물었다.
당연하다.
이화의 설명대로라면 지금까지 묵룡보의에 무늬를 띄운 사람이 없었다.
사실상 정통성 문제라면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꼬우면 올라오든가.”
“못할 줄 아는가!”
슬쩍 길을 열어주니 득달같이 몸을 날렸다.
아.주.멋.들.어.진.경.신.법.이.다.
화려함만을 보자면 십 점 만점에 십이 점을 줘도 좋을 정도다.
[병~~신.]‘그러게 말입니다.’
대놓고 걷어차 달라고 사정해 주는 수준이란 것만 빼면.
허공답보라도 펼치지 않는 이상 공중에서 방향을 틀거나 피할 길이 없다.
실전 경험이 전무한 병신이 치안을 유지하는 순찰단의 주인이란다.
새삼 마교 내의 부조리를 고발하던 흑완마군의 호소가 닿아 왔다.
순찰단주가 멋들어지게 대무장 위에 발을 올린 순간, 나는 그대로 가슴을 걷어찼다.
퍼억!
“크억!”
물수제비처럼 날아간 순찰단주는 몇 번이나 바닥을 튕긴 뒤 대무장 밖으로 떨어졌다.
“병신의 최후라…….”
[크크크! 마교 꼴 봐라. 크흐흡!] [허헙! ……허허헙! ……풉!] [꼴 받게 웃지 마라, 니들!]천마 사부가 빡치신 것 같다.
빡친 천마 사부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상하게 나도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약발 좋네.’
그리 크게 힘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내지르는 힘이 평소의 수준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다.
밤새 천산산맥을 돌며 영약을 찾아 입에 쑤셔 넣었더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동 범위의 한계치가 올라간 느낌이다.
아무리 영약을 먹었다고 해서 이렇게 빨리 약발이 돌기는 힘들지만, 천상의 사부님들이 정련한 육체는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지금도 중토신공은 열심히 움직이며 몸 안에 남아 있는 약력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란 이야기다.
잠도 못 자고 구른 보람이 있었다.
그러니 잠도 못 자고 구른 짜증을 풀어야겠다.
“귀찮게 하나하나 올라오지 말고 한꺼번에 와라.”
“저, 저희 말입니까…… 요?”
“상사가 박살 났는데 니들만 몸 성히 가려고? 괜찮겠어?”
“어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무척이나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찰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저, 저저저!”
한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움켜쥐어야 할 곳은 그 집단의 규율을 관리하는 법도(法度)다.
당연한 말이지만 천마를 중심으로 천마신교를 움직여 온 장로회에 천마신교의 법도를 관장하는 집마법당은 수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휘하 소속인 순찰단 역시 마찬가지다.
대무장 위에서 박살이 난 순찰단의 추태는 아침부터 대장로 이원군의 혈압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대무장이라고? 대무장을 개방해?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 아닌가!”
이원군이 목소리를 높이며 울분을 토해냈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가! 아니, 어쩌면 진짜는 저 애송이가 아니라 뒤에 숨어 있는 그놈일지도 모르겠군!”
이제는 하다 하다 연청운이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라는 의심까지 했다.
“현암마존!”
“예, 대장로.”
대무장이 열렸다는 소문에 순천파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당연히 순천파를 지지하는 마존들 역시 자리했다.
“지금 당장 대무장에 올라 저 핏덩이를 찢……!”
“안 하는 게 좋을걸.”
허나 이원군의 지시는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이, 입천신마존! 네, 네놈이 어떻게!!”
말을 끊어낸 입천신마존이 좌중을 압도했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놀란 마음을 추스른 이원군이 뒤늦게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그 안에는 숨기지 못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안으로 호랑이가 들어온 상황이다.
순천파 전원이 극도로 긴장하며 입천신마존을 주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천신마존은 유쾌하게 말했다.
“장로회 정보력이라면 어젯밤 천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 긴말 안 한다. 마존을 올리면 내가 올라갈 거다. 그렇게 알고 있어.”
“네노오옴…….”
“모처럼의 축제다. 보름 정도는 즐겨보자고.”
대놓고 하는 협박이다.
하지만 순천파는 이 협박을 비틀 힘이 부족했다.
용건을 끝낸 입천신마존은 이미 소리 없이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장로 하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보름만 참았다가…….”
“멍청한! 보름씩이나 저 꼴을 내버려두란 건가! 저자가 왜 축제를 논했는지 몰라? 감정을 건드리고 가슴을 들뜨게 하니까 축제일 수 있는 거다! 그게 보름이나 이어지면 무슨 꼴이 날 것 같나! 그 보름 동안 쌓아 올린 것을 입천신마존 저놈이 거두면?!”
반천파가 움직인다.
모든 것을 방관하던 입천신마존조차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지금까지와 달리 축제로 달아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천마위에 오를지도 모른다.
“어린 애새끼에 불과하잖아! 죽여! 저 대무장 위에서 죽여! 개새끼처럼 땅을 기게 만들어서 비참하게 죽여버려!”
이원군이 발광하며 악을 썼다.
한 장로가 방도를 제시했다.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린놈 아닙니까. 그 나이에 내공을 쌓아 봐야 얼마나 될까요.”
“……차륜전을 하자?”
“예. 굳이 마왕급 고수가 나설 것도 없을 겁니다. 마장급이나 마군급을 몇 명 상대하고 나면 힘이 쪽 빠질 테니, 그때부턴 슬슬 가지고 놀면 되겠지요.”
“옳거니!”
머릿속에 그 광경이 선명하게 그려지는지 이원군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병신 같은.”
그런 이원군과 달리 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계책에 극마존이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