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이기어검?
‘이게 되네.’
내가 구현한 것이 평범한(?) 이기어검이었다면 다들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을 거다.
특히 종 노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기어검은 뛰어나다 평할 정도이지 놀라서 경악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구현하고 있는 이기어검(?)은 상식 밖의 영역에 있다.
이기어검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확실히 경악할 만한 일이다.
일반적인 이기어검은 검에 심의(心意)를 담아야 한다.
심검합일(心劍合一). 검과 내가 하나 되는 경지를 기반으로 한다.
내적 세계의 힘이 극에 다다라 외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심검의 경지.
의지를 세계에 관철시키는 심상의 구현을 통해 손을 떠나서도 검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기어검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의 힘을 외부 세계에 물리적으로 영향력을 부여할 만큼 강한 심상의 구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내공의 양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어설프게 구사하는 이기어검보단 차라리 익숙하게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편이 더 위력적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 난해한 조건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
심검합일은 삼재일기공의 소통으로, 심상의 구현은 천마무겁수의 구현으로,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막대한 내공은 일정 출력 범위 내에서 무한하게 뽑아낼 수 있는 무한 내공으로.
이기어검의 구사에 필수적인 깨달음을 꽁으로 때워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어는 상화에게.’
마음으로 검을 펼친다는 것은 생각과 의지의 일부를 허공에 떠 있는 검에 분배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복잡한 검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검에 생각과 의지를 실어야 하기에 이기어검을 시전하는 당사자는 그만큼 허점이 생기기도 쉽다.
그래서 구사하기에 난해한 경지임에도 어쭙잖은 수준의 이기어검은 겉멋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기어검을 쓰는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긴 하다.
다만 그럼에도 이기어검이 대단한 무공이라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
제대로 쓰면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고수의 공격은 섬광(閃光) 같다는 표현들을 한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적을 벤다.
그런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이유는 공격이 뻗어오기 전 어깨나 눈, 허리 등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예측하고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어검에는 그런 사전 전조가 없다.
대응할 방도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기어검의 궤적 또한 일반적인 검법과 궤를 달리한다.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검은 당연하게도 뻗어낼 수 있는 검로에 제한이 생긴다.
사람 관절이라는 것이 인형마냥 휙휙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어검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
미리 보고 대응할 여지가 없는 검이 예상 못 할 궤적으로 날아든다.
직접 당해보면 환장할 일이다.
이런 장점이 있기에 이기어검을 구사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단점을 메우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제대로 이기어검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반으로 나누는 심법인 분심공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무림의 정설이다.
대표적으로 무당파의 양의신공이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인 상화에게 맡기면 된다.
‘진짜 날로 먹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이 속사정을 알게 되면 욕을 세게 박을 것 같다.
“……무당파의 양의신공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종 노 못지않게 경악 중인 이경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음, 뭐…….”
“하지만 무당제일검조차 열 자루의 이기어검을 펼쳤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천마신공의 공능인 겁니까?”
“뭐…… 일단은?”
“하하하하…….”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이 앞으로 천마신공에 일생을 걸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평생을 걸어도 풀어내는 게 불가능한 숙제를 던져준 것 같아 기분이 약간 찜찜하다.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도 일각을 차지하긴 했지만 장삼풍 사부, 달마 사부의 무공 단련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무당과 소림, 천마신교의 무공을 동시에 익히는 것 자체가 현재 무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뭐, 일단 지금은 눈앞의 싸움에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은 미친놈들 대 미친놈들의 싸움이지만, 언제 싸움이 확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 부탁한다, 상화야.’
끄덕끄덕.
“…….”
준비를 갖추기 위해 한 생각에 갑자기 내 주변에 떠 있던 여덟 자루의 검이 고개를 끄덕이듯 검첨을 까닥거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 자루의 검이 고양이가 영역표시라도 하듯 내 어깨 언저리에 검면을 부볐다.
검이 애교를 부린다.
세상에!
생각도 못 한 부작용이다.
‘그런데 어째 이화의 눈초리가 싸늘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이화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이기어검을 굉장히 유연하게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오오오오!”
“저렇게 부드러운 제어라니!!”
조금 전의 급박한 상황은 다 어디로 갔는지 벌써 이기기라도 한 듯 긴장감이 사라진 이들의 탄성이 귀를 간지럽혔다.
‘굉장한 건 내가 아니지 말입니다…….’
말할 수 없는 진실에 속이 답답해졌다.
이 답답함을 저것들을 싹 쓸어버리는 걸로 풀어야겠다.
“종 노.”
“명하십시오.”
“도망치는 놈들 없게 눌러버리세요.”
“존명.”내 지시에 종 노가 움직였다.
“천마수신위와 나머지는 보조.”
“존명!!”
“나는 중앙을 찢겠다.”
‘가자!’
내 움직임에 검들이 호종하듯 따른다.
두 자루의 검은 저쪽에서 광혈마제를 쑤시고 있기에 이쪽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여덟 자루의 검만으로도 대단한 위용이다.
내가 봐도 놀라운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할 것이다.
하지만 미친놈을 괜히 미친놈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똘기인지, 광기인지, 마구니가 가득한 천마혈족 장로 중 하나가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잡술 따위가!!”
집채만 한 바위도 부술 것 같은 강기를 머금은 천마혈족 장로는 허공에 주유 중인 검을 향해 초식을 펼쳤다.
그런데 노리는 방향이 뭔가 심히 어긋나 있다.
검의 손잡이 부근, 마치 뭔가를 끊어내려는 듯한 일격이다.
‘진짜 잡술이라 생각했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검에 가늘고 투명한 실을 매달아 조종하는 비검술(飛劍術)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어검보다 조악하고 제한도 많았지만, 나름 허점을 찌르기에 유용하고, 상대에게 초고수라는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했었다.
‘뭐,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긴 하겠네…….’
이해는 되었다. 이해는 되는데,
내가 구사하는 건 그런 잡술 따위가 아니다.
화아아아!!
“어?”
천마혈족 장로가 펼친 일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실전에서 실수했으면 죽어야지?”
허공에 떠 있는 검이 천마혈족 장로의 빈틈을 노렸다.
검술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상화이기에 그 움직임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사실상 일반적인 검법과는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기어검이다.
그 특성을 생각해보면 상화의 제어가 더 잘 어울렸다.
푸억!!
“크억!”
팔을 휘감듯 나선으로 파고든 검이 천마혈족 장로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지닌바 무위에 비해 허무한 죽음이다.
“노오오옴!!”
피를 보고 분노한 천마혈족 장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을 부숴버려! 놈의 이기어검은 완벽하지 않다!”
늙은 능구렁이들답게 답을 내는 속도가 빠르다.
열 자루의 검을 한꺼번에 다스리는 만큼 검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분산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만만해 보일 만하지.’
일반적인 이기어검은 심검합일로 묶여 있는 만큼 검 자체가 자신이나 다름이 없다.
검이 부러지면 이기어검을 펼치는 자도 심대한 내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기어검은 검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내력을 주입해 검강(劍罡)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력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확실히 그런 일반적인 이기어검에 비해서 내가 펼친 이기어검(?)은 좀 약해 보이긴 하다.
‘그것도 정답은 아니지만.’
쩌엉!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는지 검 한 자루가 깔끔하게 부러졌다.
“어떠냐!”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천마혈족 장로와 눈이 마주쳤다.
“……응?”
허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평온한 내 모습에 천마혈족 장로는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푹!
“커억!!”
그런 천마혈족 장로의 목에 방금 막 부러진 검첨이 박혔다.
혼란을 느끼며 빈틈을 드러내긴 했으나 아예 무방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러진 검은 그 빈틈을 수월하게 파고들었다.
검은 부러졌지만, 여전히 상화의 제어 아래 있다는 의미다.
불신을 가득 담은 눈을 감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병신. 검에 심의를 담았으면 열 자루나 되는 검을 다룰 수 있겠냐?’
나는 검과 소통했을 뿐이다. 일반적인 이기어검과 달리 검에 담겨있는 것은 내 심의가 아니다.
애당초 심검합일이 아니니 내가 입은 타격은 그저 검에 담긴 내공이 파훼 되며 흩어진 여파가 전부다.
살짝 뜨끔하긴 했으나, 저 늙은이가 바란 것처럼 피를 쏟을 정도는 아니었다.
“너 이놈! 가짜 천마!!”
또 다른 천마혈족 장로가 세 번째 답을 찾은 모양이다.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며 달려든다.
열 자루나 되는 이기어검을 다루는 만큼 내 모든 의지와 신경이 검에 쏠려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허나 이번에도 오답이다.
‘일반적인 이기어검이 아닌데, 이기어검의 약점만 찌르려고 하니 답을 찾을 수가 있나.’
정면으로 달려드는 천마혈족 장로에 대응하며 오행신력을 움직였다.
‘으음. 좀 뻐근하긴 하네.’
열 자루나 되는 이기어검을 운용하는 데 이어 오행신력까지 움직이니 기혈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허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무림의 전설인 천상의 사부님들이 담금질한 몸이다.
게다가 천산산맥에서 쓸어 먹은 영약들이 빠른 속도로 녹아들며 한결 더 강건해졌다.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천마혈족 장로가 광기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순간 나는 오행신력을 담은 일장을 거침없이 뻗어냈다.
무극장!
천마신공 무극육식의 일수가 혈족 늙은이의 장력에 맞섰다.
콰아아앙!!
늙은 생강답게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내공이 확실히 깊다.
그러나 내 힘 역시 얕지 않다.
저돌적인 맹진이 멈춰선 순간, 내 주변을 맴돌던 검들이 사나운 이빨을 세웠다.
푸푹! 푹! 푸욱!!
“크어…… 어, 어째…… 꺼억!”
검이 사정없이 꿰뚫었다.
그리고.
퍼억!
철퇴가 홀연히 날아들어 검에 꿰뚫린 천마혈족 장로의 머리를 깨부쉈다.
부러진 검을 대신해 새롭게 들어 올린 무기다.
‘이기어검(以氣御劍)보단, 이기어병(以氣御兵)이라는 쪽이 맞겠는걸. 일반적인 이기어검과 달리 나는 굳이 검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으니까.’
다만, 어감이 뭔가 좀 병신스러우니 그대로 이기어검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뭣보다 이기어병이라고 칭하면 눈치 빠른 자들은 지금처럼 이기어검의 약점을 노리다 알아서 허점을 내주는 일이 줄어들 것 같단 말이지.’
알아서 낚여주는 인간들이 많은데 굳이 장점 하나를 내 손으로 버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안 그래?’
내 의견에 상화 역시 동의하는지 막 뚝배기 하나를 깨부순 철퇴가 까닥거렸다.
그리고 다시 애교라도 부리는 듯 뇌수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내 몸에 쓱쓱 부볐다.
“…….”
“어…….”
갑자기 주변이 싸늘해지는 기분이다.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이랄까.
사람들이 볼 땐 아무래도 이 철퇴의 움직임을 내가 제어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으으음…….”
뭔가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