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4
223화 장강혈사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줄기인 장강.
남궁세가는 안휘 지역의 장강을 장악하여 수로를 통해 번영했다.
안휘의 장강을 지배하는 남궁세가가 대외적으로 자랑하는 힘 중 하나는 창천함단이었다.
수전에서는 선박의 수와 크기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일부 고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배의 크기와 숫자는 얼마나 많은 전력을 일거에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
장강에 배치되어 있는 수군을 능가하는 창천함단의 규모는 장강의 지배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콰앙!
그 창천함단이 부서지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옆구리가 터져버린 배가 측면으로 기울며 좌초하고 있었다.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별칭, 창천(蒼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 부서져 흩어진 선박의 잔해와 함께 장강의 물결 위를 채웠다.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연합이 이뤄낸 결과다.
세간에선 도적 연맹이라 불리는 이 연합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많았다.
좋게 말해서 논란이지 대체적으로는 조롱과 일소로 이뤄져 있었다.
그들이 연합하기 이전에 있었던 천자산에서의 사건 때문이다.
녹림칠십이채의 대통합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만 해도 많은 무림 세력들이 긴장했다.
절대고수 한 사람의 무위가 판세를 바꾸는 일이 잦은 것이 무림의 전장이라고는 하나, 녹림의 전력은 그런 통상적인 인식을 무시할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대문파를 능가하는 전력, 단일 세력으로는 무림 최강이라는 마교에 버금가는 세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다들 숨을 죽였다.
그러나 결말은 너무나도 우스웠다.
녹림칠십이채의 대통합은 실패했다.
거대했던 전력은 반토막이 났고, 어수선한 상태로 장강수로십팔채와 연합을 했다.
세간에서는 이 연합의 미래 또한 쉬이 짐작하며 비웃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녹림이나 수로채나 결국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는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은 결국 사분오열(四分五裂)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같은(?) 녹림끼리도 대통합에 실패한 마당에 산적과 수적이 힘을 합친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머릿수는 많지만, 통제되지 않는 모래알 같은 집단.
조금만 흐름이 불리해져도 제 한 목숨 구하기 위해 내부 분열을 일으키리라 예측했다.
도적 연맹(?)이 남궁세가와 수전을 앞두게 되자 연맹의 실패에 대한 예측은 극에 달했다.
육전이라면 그래도 평가가 이리 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규모 전장에서 만 단위의 머릿수를 일거에 동원할 수 있는 힘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전(水戰)은 달랐다.
선박은 한정적인 자원이다.
그나마 도적 연맹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막대한 머릿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남궁세가가 초전에 승리하면 느슨한 연합인 도적 연맹은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고, 종래에는 천자산에서 벌어졌던 추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게 세간의 중론이었다.
콰콰쾅!!
허나 소문과 현실은 달랐다.
일격에 배를 부숴 버리는 괴물을 중심으로 녹림과 수로채 고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남궁세가 입장에서는 끔찍할 정도였다.
수전을 앞두고 남궁세가는 녹림의 세력을 얕봤다.
채주급 실력자들이 만만치 않은 고수들임은 인정하지만, 수전에 서툴러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시시각각 흔들리고 불안정한 선박 위에서의 싸움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고수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남궁세가를 이용해 녹림의 세를 꺾으려 들 수도 있다고 여겼다.
도적놈들 아닌가!
아무리 반토막이 난 녹림이라도 장강수로채에 비해 압도적인 세를 자랑한다.
수로채 입장에서는 차후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남궁세가는 그 틈을 노린다는 전략을 짰다.
설령 수로채에서 녹림을 의도적으로 고립시키지는 않을지라도 두 세력의 연계가 잘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녹림과 장강의 연계는 완벽했다.
하나의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남궁세가에 맞섰다.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하지만 가장 크게 어긋난 것은 도적 연맹의 선두에서 남궁세가의 진형을 찢고 들어오는 검은 기운을 다루는 저 존재였다.
쾅! 콰쾅!
“커억!”
“으아아악!”
녹림과 수로채의 중심에 있는 자.
양대 세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고수의 검은 손이 번뜩일 때마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남궁세가의 고수 중 그와 삼합 이상을 겨룬 자가 없었다.
심후한 내공을 가진 장로들조차 일합에 피를 토했다.
“이런 썩을!”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던 남궁세가의 가주는 이를 갈았다.
개인의 무위가 남궁세가를 뒤흔들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남궁세가의 전열이 출렁였다.
“물러나라! 물러나서 전열을 가다듬어라!!”
남궁가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야! 한이를, 뒤를 부탁하마!”
“형님!!”
믿을 수 있는 동생에게 뒤를 맡긴 남궁가주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드높았던 야망만큼이나 출중한 기량을 자랑했던 남궁세가 가주의 검에서 넉 자 길이의 검강이 치솟았다.
어지간한 대선조차 일격에 반토막 내 버릴 힘이 남궁가주의 검에 실렸다.
일생일대의 힘을 담아낸 일격이 검은 힘의 주인에게로 뻗었다.
콰아아아아아!!
수백 척의 배를 감당할 수 있는 장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한순간이나마 양단할 정도의 강격이다.
파각!
그러나 그런 힘조차도 저 검은 기운에 닿는 순간 살얼음처럼 깨져버리며 무력하게 자취를 감췄다.
“흐읍?!”
단 일합의 교환이었을 뿐이다.
남궁가주는 쏟아져 나오려는 각혈을 억지로 틀어막고 삼켰다.
왜 다른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손을 겨룬 것만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가주의 손은 먹물을 부은 듯 검게 물들어 갔다.
그 얼룩을 타고 뻗어나가는 기운이 기혈을 엉망으로 헤집었다.
상대의 기운은 그 짧은 순간 검강의 기운을 가르고 들어와 손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이 무공은…….”
남궁가주는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를 보며 전설처럼 전해지는 옛 소문을 떠올렸다.
무림삼불기의 하나.
흑사신(黑死神)의 마라구천공(魔羅九天功).
“흑사신의 후예가 어찌…….”
한 번 무림에 등장하면 반드시 큰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들.
그들을 괜히 무림삼불기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록되지 않은 존재로 분류되는 것은 그 존재와 근간인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나타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
그랬던 존재 중 하나가 녹림과 수로채의 연합을 이끌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부정하고 싶었지만, 남궁세가와 남궁가주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흐읍!!”
남궁가주는 다시 한번 내력을 끌어올렸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도피다. 남궁가주에게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었다.
끌어올린 내력이 검은 기운과 충돌할 때마다 기혈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났지만, 남궁가주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기운을 돌렸다.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게 무리를 했음에도 뻗어 나온 검강은 조금 전 펼친 것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파각!
간단히 남궁가주의 검강을 깨부순 흑사신의 후예가 그대로 파고들며 손을 뻗었다.
터엉!
“커헉!”
얼음처럼 차가운 흑색의 기운이 남궁가주의 어깨를 쳤다.
피화살을 뿜으며 나가떨어진 남궁가주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부서진 선박의 난간에 몸을 기댔다.
기혈이 크게 망가졌는지 남궁가주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후욱…… 후욱…….”
검은 기운이 어느새 심장과 폐에도 닿았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남궁가주의 눈에는 절망이 어렸다.
그 앞으로 흑사신의 후예가 태연한 얼굴로 섰다.
남궁가주가 보기에 그의 표정은 태연함을 넘어 어딘가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숨을 쉬기도 힘든 남궁가주의 폐에 힘을 불어넣었다.
“큭…… 크크…… 남궁세가…… 따윈 시…… 시시하단…… 얼굴이군…… 쿨럭쿨럭!”
“남궁세가가 오대세가와 연합을 했다면 이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걸세.”
“칵! ……크하하하! ……쿨럭! …시시하… 여긴… 맞군…….”
남궁가주의 외침에는 분노와 회한이 담겼다.
허나 얼굴까지 검게 물들고 있는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어 보였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흑사신의 후예를 두 눈에 담기 위해 남궁가주는 두 눈을 부릅떴다.
망막까지 잿빛으로 물들어 가는 중 남궁가주는 문득 기이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얼굴…… 낯이 익…… 본 적……던가? 쿨럭! 쿨럭!”
생의 마지막 순간 불구대천의 대적에게 꺼내기엔 어딘가 이상한 물음이었다.
남궁가주 스스로도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남궁가주의 물음에 흑사신의 후예가 처음으로 표정에 변화를 일으켰다.
“아마 이십 년쯤 전인가…….”
“이십…….”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남궁가주는 일순간 무엇을 떠올렸는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서……문…….”
이제는 표정조차 움직이기 버거워진 남궁가주가 얕은 숨과 함께 두 글자를 뱉어냈다.
흑사신의 후예의 표정에 서글픔과 씁쓸함이 뒤섞인 웃음이 걸렸다.
“잘 가시게.”
흑사신의 후예가 숨이 멎은 남궁가주의 어깨를 쓰윽 밀었다.
남궁가주의 몸이 스르르 무너지며 장강의 깊은 물 속으로 잠겼다.
***
녹림과 수로채의 연합을 비웃었지만, 그 전력 자체를 우습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초전을 통해 연계될 수 없는 두 세력을 각개 격파할 생각으로 나섰던 남궁세가는 세가의 전력을 동원한 총력전에 나섰다.
그들 대부분이 흑사신의 후예에게 죽었다.
패전한 남궁세가는 무인들이 줄어든 것도 문제였지만, 세가를 대표할 만한 고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 더 심각했다.
산송장처럼 얼굴을 굳히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인 남궁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 것 같으냐?”
“내어줄 건 내어줘야겠지요. 손해가 클 것입니다. 무리하게 확장했던 영역들이 날아가는 건 당연할 테고, 최악의 경우 봉문(封門)까지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그들의 전면에 서 있는 남궁한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런 남궁한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드높았던 자존심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 자들.
그 자존심에 걸맞은 힘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남궁한은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살아남은 가문 직계로서의 의무였다.
“다시 돌아올 겁니다! 반드시!”
그런 이들을 달래기 위함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
결의에 찬 목소리를 내는 남궁한의 말이 비참하게 퇴각하는 그들을 달랬다.
그날 남궁세가는 장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