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6
25화 소림의 명예 제자
“소림의 외인이 아니게 되는 거라면 제가 속가제자로 들어가는 게 가장 편한 방책이겠지만, 원론적인 해결법은 되지 않습니다. 속가제자 수준으로 저런 신공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까요.”
속가제자는 본산제자와 같은 수준의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 그건 속가제자 생활을 해본 내가 잘 안다.
그런데 속가제자 따위(?)가 소림 최고의 신공으로 꼽힐 수 있는 무공을 알게 된다?
물론 달마 사부 말대로라면 이 중토신공과 내 중토신공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부분은 있을 거다. 거기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속가제자 역시 과하지 않더라도 짊어져야 할 의무 같은 것도 있고요.”
무엇보다 속가제자가 되면 본산제자만큼은 아니지만 짊어져야 하는 부분들도 생긴다.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가제자라도 소림의 제자가 되면 어째 장삼풍 사부가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소림에는 명예 제자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명예 제자라……. 북란대전 때의 그것 말이냐?”
“예, 소림을 위해 큰 덕을 베푼 이에게 내리는 자리라고 하던데요.”
오랜 세월 정파 무림의 중심 자리를 지켰던 소림이다. 정파 무림을 노리는 사마의 무리가 반드시 꺾어야 하는 존재로 여기다 보니 크게 당한 역사가 없지 않았다.
국가의 명운이 갈리고 나라의 근본이 바뀌었을 때, 북방의 흉적들과 더불어 나라를 상대로 투쟁하여 싸우던 시절에 소림이 한 번 불탄 적이 있었다.
그를 복구하기 위해 나선 이들에게 줄 것이 별로 없었던 소림은 그들을 명예 제자로 소림의 명부에 올리고 그 덕을 칭송했다.
“그 수가 있었나.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텐데.”
“조부께서 무림 이야기를 좋아하셔서요.”
문사로서 무림을 접하신 할아버지다. 그러다 보니 여러 무림의 비사(秘事)들을 즐기셨고, 할아버지 옆에 있던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망할 놈들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짜증이 나는군.”
방법이 생겼으니 좋아해야 할 상황 아닌가? 어째 맞장구치는 것보다 짜증부터 낸다. 겁나게시리.
너무 큰 걸 바란 건가?
내 반응을 보았는지 혜원 스님이 입을 열었다.
“이해하시게. 사실상 소림이 지금과 같은 속성의 무공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 일이었던 터라. 사실 사전에 차단하여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은근히 암수를 걸어오는 놈들도 있다네.”
“흥! 뿌리가 굳건하면 그쯤이야 언제든 막을 수 있는 일이다.”
범각이 펼치던 그 기교를 이야기하는 걸 거다.
소림의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손쉽게 상대를 물리치기 위한 편법.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혜원 스님의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명예 제자라……. 달마 조사님의 최후 심득이라면 충분한 가치는 있지.”
짜증을 가라앉힌 이 또라이 노괴물도 우선 내가 내민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중토신공의 죽간을 내밀었다.
“알겠으니까, 이제 읽어.”
“지금요?”
“응? 아, 뒤에 있는 녀석들. 그래, 저 녀석들은 물리고 시작해야지. 외인도 있고, 자격 없는 녀석도 있으니.”
돌아왔구나, 또라이.
다시 눈을 번들거리는 꼴이 처음 봤을 때의 그 모습이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닌데.
“그게 아니라, 일단 제가 명예 제자로 인정받고 나서…….”
“내가 됐다고 했으면 끝난 거다. 그냥 방장 찾아가서 멱살잡이 몇 번 하면 끝나.”
“아, 예.”
무섭네, 이 또라이.
상상이 안 간다.
보통 무림인들에게 소림 방장 정도면 하늘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하늘에 대놓고 멱살잡이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뭐, 방금 이 또라이 노괴물이 말한 대로 달마 사부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심득이라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을 테니 별문제야 없겠지만.
“니들은 어여 나가 보고.”
마음이 급한지 바로 내 뒤를 향해 은근히 기세를 흘리며 말하는 또라이 노괴물이다.
백무호나 범각 등이 아쉽다는 얼굴로 잠시 죽간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엿들으려고 근처에서 서성대면 대가리 쪼개진다.”
“……하하, 설마요.”
완벽한 협박이다. 이미 무력시위가 제대로 되어 있었기에 백무호와 범각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하려고 했구나, 저 녀석들!
그 반응을 보고 대번에 눈치를 챘는지 혜원 스님이 직접 둘을 인솔하며 밖으로 나갔다.
“어서 시작해.”
이어 또라이 노괴물의 재촉이 다시 시작됐다.
마음이 급해 보이는 게 빨리 안 읽으면 내 머리도 쪼개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 같다.
일단 죽간을 펼쳐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못 읽었다.
범어 같기도 하고, 딴 동네 현지 언어 같기도 하고.
하긴, 이게 쉽게 읽히면 저 또라이 노괴물이 내게 목맬 이유가 없을 테지. 하는 짓을 보면 아마 여러 방면으로 내용을 알아보려 했다가 실패한 모습이니까.
어차피 달마 사부가 알아서 말해 줄 거다. 나는 그걸 듣고 말만 하면 된다.
자, 어서 불러주세요. 달마 사부.
[크흠!]달마 사부? 왜 대답이 없어요?
빨리요. 안 그럼, 여기 있는 귀여운 제자 머리 터집니다.
저기 눈깔 벌게지고 있는 미친놈 안 보이세요?
재촉하고 싶어도 당장 함부로 입을 벌릴 수 없는 처지라 당황하고 있는데 귓가에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업보로다. 아미타불.]“못 읽는 거냐?”
“아니요, 잠시만…….”
달마 사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는구나. 허허, 어릴 적 던져둔 일기를 들춰보는 게 이런 기분인가.]뭔 소리예요! 업보고 자시고 제 대가리 터진다니까요!!
이 또라이 진심이야!
저기 저 손가락 꼼지락거리는 거 보라고요!!
[알았다.]다행히 마음을 잡으셨는지 곧 머릿속으로 이 죽간의 글귀들을 이야기하셨다.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이 난잡하여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백 가지 법이 나뉘고 천 가지 가르침이 서로 옳음을 겨룬다. 이에 바른 법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많음을 알았느니, 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
말하면서 손발이 오그라든다.
달마 사부, 아무리 달마 사부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이거 열다섯 살쯤에 만든 무공이세요?
감성은 거의 그쪽인데?
새삼 왜 주저하셨는지 알겠다.
“오오오! 과연 달마 조사님이시구나!”
이 양반도 참 마음이 젊으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신다.
어쨌거나 그다음은 중토신공에 대한 구결이 이어졌다.
확실히 달마 사부가 한 이야기가 맞았다.
여기 적혀 있는 중토신공은 내가 배운 중토신공에 비하면 격이 좀 떨어졌다.
내가 배운 게 틈새 하나 없이 완벽하게 가다듬어진 물건이라면, 이건 듬성듬성 구멍 같은 것이 나 있는 물건이랄까.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신공이라 불릴 만한 것임은 분명했다.
눈앞에서 그 변화가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방 안이 좁게 느껴졌다.
내 입에서 구결이 나올 때마다 이 또라이 노괴물이 변화하고 있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죽간의 내용이 끝났을 때, 한층 더 깊어진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노괴물을 볼 수 있었다.
“명예 제자를 원한 것은, 소림에 묶여 있기 싫기 때문이겠지?”
“예.”
“그럼 무림에서 곤경에 처할 일이 있으면 내 이름을 팔아라. 나를 기억하는 자라면 네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쪽이 누구인 줄 알고 이름을 팔라 하시는지.
“저기, 법명이?”
“공료.”
“아, 공료……. 공료?!”
들어본 적 있는 법명이다.
“신승(神僧) 공료?!”
할아버지 입에서 소림이 언급될 때 자주 회자 되었던 이름이기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대, 아니 전 전대쯤일까? 하여간 엄청나게 오래전 이름을 떨친 법명이 분명 그랬다.
“흐흐흐.”
자신을 알아본 게 재미있는 걸까. 저 또라이 노괴물, 과거 무림에서 신승으로 불렸다는 존재가 흐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너도 나가라.”
웃음과 함께 축객령을 내리는 신승 공료의 눈이 사르르 감겼다.
***
밖으로 나온 뒤 어느 정도 걸어간 후에야 기다리고 있던 백무호, 혜원 스님, 범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혜원 스님이 기쁘면서도 아쉬운 얼굴로 나를 대하셨다.
“내가 생각한 대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소림의 제자가 됐긴 했구나.”
“그렇게 됐네요.”
신승 공료의 진전을 잇는 정도까진 바라지 않았더라도, 소림의 원류를 추구하는 공통적인 성향을 지닌 만큼 저 노괴물의 무공에 감화되어 소림의 제자가 되는 걸 생각했을 거라고 추측이 됐다.
뭐,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가 없었다면 저 또라이 기질도 참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두 분과 접촉하는 일이 없었다면 이런 인연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겠지?
그나저나, 이제 줄 건 다 줬으니까. 받을 걸 받아야겠지?
“아, 저기.”
“말하게.”
“제가 소림은 처음이라서요. 주변을 좀 돌아다녀 봐도 될까요?”
달마 사부는 소림에 내 성장을 도울 만한 것이 남아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인즉슨, 소림의 영역 안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다. 손님 자격으로 혼자 들어가기 껄끄러운 곳일 수도 있으니까.
괜히 보물을 찾았는데 그것을 들켜 버리면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내 건 챙겨야지.
혜원 스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이제 자네는 소림의 명예 제자일세. 태사조의 눈에도 확실하게 든 사람이고.”
“허락이란 소리네요.”
“방장의 침실을 찾아가도 문제가 없을 거란 소리지.”
“그거 좋네요.”
이제 달마 사부가 내게 준다던 것이 어디에 숨겨진 물건이든 마음 놓고 찾아볼 수 있겠다.
오히려 다른 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소림이 한 번 크게 무너진 적이 있어 재건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달마 사부가 숨겨뒀다는 게 소실 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런 식으로 숨겨둔 물건이면 말도 안 했지.]‘아하!’
분명 남아있을 거다. 그를 확신하는 달마 사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소림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기에, 혜원 스님도 꽤 흡족해하는 기색이다.
“그럼 편하게 관람하시게.”
그렇게 혜원 스님이 몸을 돌리며 제자인 범각을 챙기셨다.
뭔가 불길함을 느끼는 걸까? 범각이 앙탈을 부렸다.
“초행이니 제가 안내를…….”
“넌 혀에 박힌 독기부터 좀 빼자꾸나.”
“히익!”
아무래도 범각은 끌려갈 운명인 것 같다.
그래, 새사람이 돼서 돌아오렴.
나는 귓불을 잡혀 끌려가는 범각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백무호가 슬그머니 접근해 왔다.
“자, 이제 우리밖에 없으니까 중토신공이란 거에 대해서 말해봐.”
달마 사부의 유진이라 하니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이야기 못 할 부분이다.
“머리 자를래?”
“머리카락 이야기지?”
“내가 입을 열면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잘릴 거다. 너만.”
“쳇!”
백무호가 혀를 차며 쓰윽 거리를 벌렸다.
반쯤 농담으로 물었던 말이었는지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머지 절반은 진심이었다는 소리겠지만.
달마 사부가 남겼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나눠줄 수 있는 거면 나눠주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여러모로 긴 인생 동안 많이 부대낄 녀석인데, 너무 나만 챙겨 먹어서 격차가 벌어지면 관계가 헝클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 녀석이 그런 식으로 내 옆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입맛이 너무 쓸 것 같다.
“응?”
괜히 감상에 빠져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누가 지나가다 흘낏 바라본 것이 아닌, 짙은 감정이 담겨 있는 시선이다.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왜 그 시선에서 짙은 감정이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윤시후.
그놈이 나를 발견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놈의 시선에는 알아보기 쉬운 감정이 똘똘 뭉쳐 있었다.
‘덤비게?’
당장이라도 시비를 걸어올 것 같은 눈빛이다.
“그럼 나야 좋은데.”
뒷배도 기량도 없던, 예전에 내가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