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71
270화 수중전
누군가 수적을 상대로 물속에서 싸운다고 한다면, 정신이 나갔냐며 머리 옆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줄 거다.
수전의 전문가. 누구보다 물에 익숙한 것이 바로 수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익숙한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사지(死地)로 발을 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마 혼원세 역시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희희낙락하며 필승을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했다.]장삼풍 사부가 내 판단을 긍정해 주셨다.
[물속에서 싸우면 네가 더 유리해.]솔직히 수중전은 처음인 데다가 자맥질도 배운 적이 없었으니 최악의 선택이나 다름이 없을 테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적어도 이 물속에 들어가 봤었기에 승산을 점칠 수 있었다.
전례가 없는 폭풍이 몰아치는 수면 위의 상황만큼이나 물속도 전례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물에 익숙하다?
적어도 수적 놈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물속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경험이 있는 놈은 살아있을 리가 없다.
똑같이 경험이 없다면 조건은 대등(對等)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내 판단에 대한 대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결이 크게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혼원세의 선공이다!
퍼어엉!
“칫!”
막아내긴 했지만, 아직 수심이 싶은 곳이 아니었던 탓인지 장력의 여파로 몸이 살짝 수면으로 떠 올랐다.
“저쪽이다!”
“죽여!”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든다.
피잇! 파팡!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날아드는 작살을 쳐내고 피한 뒤 다시 물속으로 몸을 날린다.
“흐읍!”
풍덩!
숨을 크게 들이마셔 공기를 머금은 뒤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그러자 빗발치던 주변의 공격이 뚝 끊어졌다.
분명 주변에는 수적 놈들이 산재해있다.
격랑에 쓸려나가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고수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출중한 기량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다.
허나 그런 고수들도 쉽게 공격을 할 수가 없다.
물속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격류로 인해 뿌옇게 일어난 황토로 가득했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그 황토 너머로 무언가를 보는 건 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눈으로 뭔가를 쫓는 것은 깔끔히 포기하는 게 나을 정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빠르고 무겁게 흐르는 물은 계속해서 몸을 밀어낸다. 수면 위는 물결이 거칠어 어느 의미로 물속보다 더 위험하다.
악조건들로 가득한 전장이다.
하지만 장강교룡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달려든다.
물속 깊이 들어온 나를 쫓아 강기가 실린 주먹을 뻗어낸다.
투웅!
소리라기보단 울림에 가까운 파장이 사방으로 뻗는다.
충돌의 여파가 위쪽까지 뻗어내지 못한 채 가라앉는다.
황토물 너머로 흐릿하게 혼원세의 얼굴이 보였다.
당황하고 있다.
단단한 땅 위에서 뻗은 주먹이 아니다. 그저 몸의 반동만을 이용했을 뿐이니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깊은 수심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격류가 흐르고 있으니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게 당연하다.
움직임이 둔해지는 만큼 위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뭍에서 펼쳤던 것 같은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수가 없다.
‘평생 수적질로 밥 먹고 산 작자가 이런 걸로 뭘 당황씩이나?’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윗대가리라 직접 물속에 들어가 전력을 다한 경험이 없는 건가?
‘뭐, 몰랐으면 죽어야지?’
반대로 나는 수중에서의 대응에 큰 차이가 없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어떻게든 파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상화를 통해 오감을 극대화하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물속임에도 상대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침없이 혼원세의 간격을 헤집었다.
다급히 초식을 펼치며 저항하려 하지만, 대처가 둔하다.
사소한 저항을 쳐낸 뒤 혼원세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강바닥을 향해 쭈욱 끌고 내려갔다.
뿌그르르르르!
같이 익사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물거품을 뿜어내며 몸부림치는 혼원세의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다.
‘장강교룡이라는 작자가 뭐 이리 수중전에 미숙해?’
아직 여유가 있는 나와는 달리 이 작자는 처음의 기세 좋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이다.
마치 물속에서 싸우는 방식을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야!’
완전히 강바닥에 내려선 나는 하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쿠우웅!
장강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강한 도약!
콰아아아!
빠르게 물 위로 부상해 허공으로 떠오른다.
“후아!”
텁텁한 황토가 여전히 입안을 더럽히고 있지만, 상쾌한 공기가 다시 폐를 채우니 한결 낫다.
“으아아아아!”
같이 딸려온 혼원세는 덤이다.
“벌써 약한 모습이면 곤란하지.”
니들 도적놈들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가 아팠는데.
그냥 죽여주는 것은 실례다.
“저쪽이다!”
“죽여!!”
그사이 나를 발견한 장강수로채 고수들이 작살을 던졌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허둥대는 혼원세의 몸부림을 쳐내고 작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혼원세를 끌어당겼다.
퍼억!
“아악!”
그중 하나가 박혔는지 혼원세에게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작살을 던진 수적 놈이 경악했다.
“비겁한 놈이!!”
“남이사!”
수적 주제에 뭐라는 건지 원.
그러는 지들은 얼마나 정정당당하다고.
퍼엉!
“쿨럭!!”
나는 작살이 날아온 곳으로 혼원세를 강하게 후려 찼다.
“대형!!”
나를 비겁하다 외치던 수적이 혼원세를 받기 위해 격랑이 치는 수면 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수적 주제에 의리는 있어 보인다.
“제가 받…… 억!!”
반대로 혼원세는 개새끼였지만.
혼원세는 자신을 받아 주려는 수적의 머리통을 밟고 운신하며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부하가 받아주는 걸로 몸을 멈췄다간 자칫 내 공격이 이어질 경우 대응하기 어려웠을 테니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긴 했다.
그리고 빠르게 발판이 많은 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물속에서의 싸움은 피하려는 모습이다.
물속에서는 확실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럼 더 들어가야지!”
파앙!
허공을 밟고 몸을 튕겨 혼원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절대 물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혼원세가 양손에 공력을 모았다.
크고 강렬한 강기가 혼원세의 손에서 타올랐다.
제대로 부딪치면 그 여파만으로도 타격이 있을 것 같은 강맹한 힘이다.
그럼 굳이 정면으로 맞붙을 이유가 없다.
나는 이제는 익숙해지기 시작한 힘을 휘둘렀다.
대라조화심결!
장강을 격동시킨 그 수법!
혼원세가 있는 부근을 대라조화심결로 흔들자 일순간 사람 하나쯤은 집어 삼킬법한 물보라가 일었다.
“무, 무슨!? 으아아악!”
내게 집중하고 있던 혼원세가 순식간에 물보라에 삼켜졌다.
뒤늦게 강기를 휘둘러 물보라를 없애보려 했지만, 반대로 이번에는 내게 허점을 드러냈다.
“여긴 더 이상 네 녀석의 영역이 아니야.”
허둥대는 혼원세의 영역을 파고들어 그대로 혼원세가 밟고 있는 발판을 부쉈다.
“내 영역이지.”
“이런 젠장!!”
다시 한번 물속에 처박힌 혼원세의 눈에 공포심이 가득했다.
뿌끄르르르르르!
물속에서는 호흡을 가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잊었는지 혼원세의 입에서 끊임없이 기포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배 속에 있는 모든 공기를 내뱉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비례해서 혼원세의 몸에서 내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귀어진.
불리한 곳(?)에 끌려온 만큼 절대로 혼자 죽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발악하는 혼원세의 각오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보내줘야 할 모양이다.
허리로 파고드는 장력을 빗겨내고 파고들어 혼원세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꾸르르르르!
머리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자 호흡이 딱 그친다.
근접해 있는 내 몸통을 후려치려는 생각이다.
같잖다.
내가 머리를 제압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다.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기라도 한 것인지 하수나 저지를법한 실수를 한다.
최후의 힘을 짜내 손을 뻗는 혼원세를 보며 나는 머리를 움켜쥔 손에 내력을 흘렸다.
투웅!
꾸르르르륵!
내가중수법이 단번에 혼원세의 머릿속을 뒤집어놓았다.
좌우 동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룩거리는 사이 칠공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우득!
목을 비틀어 확실하게 죽음을 내린 나는 그의 시체를 장강의 흐름 속으로 흘려보냈다.
생각보다 쉽게 이기긴 했지만, 그렇기에 의아했다.
어째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와 싸운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상념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이제 끝낼 시간이다.
장강수로채가 자랑하던 전선들은 모두 박살이 났다.
쭉정이들은 죄다 쓸려나간 뒤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놈들은 다들 한가락 하는 놈들이다.
‘여기 남아 있는 놈들은 살려둬선 안 된다.’
여기 있는 놈들을 삭초제근(削草除根) 하면 근 백 년은 장강이 평온할 것이다.
[흐름을 받아들여라. 소통을 한다 생각하며 대라조화심결을 펼쳐봐.]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한 것을 알아보신 걸까?
장삼풍 사부가 돌연 조언을 주신다.
‘아아아아…….’
지나가듯 던져주신 장삼풍 사부의 말을 따르자 문득 주변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시각적으로 환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주변은 여전히 황토물이다.
다만 주변의 모든 것이 읽혔다.
마치 손 위에 올려놓고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통제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펼쳐왔는데, 쓰기에 따라서는 이런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좋은 응용법을 하나 익히게 되었다.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효용이 무궁무진하다.
주변에 맹인이나 다름없는 꼴로 허우적거리는 놈들은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나는 빠르게 움직여 그중 하나를 덮쳤다.
콰직!
“으악!”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숨이 끊어진 시체가 순식간에 장강의 흐름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생각 이상으로 편하다.
아무리 다수가 포위하고 있어도 내 움직임을 누구도 따라잡지 못한다.
그저 일방적인 사냥만이 있을 뿐이다.
어차피 크게 힘을 주기 어려운 장소다.
어설프게 가격하기보다는 꺾고 부러트리는 편이 훨씬 유용하다.
그렇게 수적들을 휩쓸었다.
그때였다.
흠칫!
“응?!!”
뭔가가 다가왔다.
대라조화심결로 주변과 소통하고 있기에 빠르게 느낄 수 있었다.
크고 강대한 힘이다.
콰아아아아아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힘이 이 앞을 훑고 지나간다!
“크읏!!”
황급히 뒤로 물러나자 조금 전 내가 있던 자리를 가로지르며 하얀 길이 만들어졌다.
격랑이 치는 장강의 물결을 가르며 얼음으로 세공된 길이 열렸다. 물결이 거칠게 그 길을 때렸지만, 얼음의 길이 더욱 두터워질 뿐이다.
그 길의 끝에 누군가가 서 있다.
나를 바라보는 백발의 미녀.
“어머나…… 내가 요즘 피곤한가?”
고개를 갸웃하는 설아 누나가 보였다.
“나 맞는데…….”
“진짜?”
얼음으로 된 길에 올라서니 조심스럽게 다가온 설아 누나가 내 뺨을 만졌다.
설아 누나가 난처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운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방금까지만 해도 차가운 절대자 같은 패기를 뿜어내던 설아 누나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